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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2. 28. 13:12
그림보다 액자가 좋다...
2006. 12. 28. 13:12 in 記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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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898년 오스트리아 빈 분리파의 첫 번째 전시회가 열린 직후 <독일 미술과 장식>이라는 잡지에 실린 논평의 일부다. 그림 액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논평이다. 그림 액자는 서적의 장정(裝幀:책의 겉장이나 면지(面紙), 도안, 색채, 싸개 따위의 겉모양을 꾸미는 일)과 비교된다. 액자와 장정은 한 시대의 양식, 삶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는 문화지표로 작용하는 데, 특히 액자는 그림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은 항상 그림의 중앙으로부터 외부로 이동하다가 액자와 맞닿는 곳에서 멈춰서거나 훌쩍 뛰어 넘어 버리고 만다. 이는 액자의 중요성이나 예술적인 면에 대해 미술사적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한 이유가 크다. 미술 평론가들은 미술가의 작품만을 평론할 뿐 액자를 논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 외려 그림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뜨릴 우려 때문에 기피할 지도 모른다. 목마른 자가 샘을 파기 마련이다. 그래서 액자 전문가가 직접 액자의 중요성을 외치고 나섰다. 약 30여년간 액자 장인으로 활동한 W.H.베일리가 출간한 <그림보다 액자가 좋다>는 그림의 '생사여탈권'을 쥔 액자이야기다. 저자는 뉴욕에서 활동했던 미술 액자 전문가로 현재는 파슨스 디자인 스쿨과 뉴욕 LIM대학에서 전시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세잔, 반 고흐, 피카소 작품의 액자를 디자인하는 베테랑이다. 그는 액자의 기능 중 가장 의미 있는 것은 관람자와 그림 사이의 중재자 역할이라고 소개한다. 너무 크거나 장식이 과도한 액자는 그림을 압도해 상대적으로 미약하고 초라한 작품으로 전락시킨다는 지적이다. 반대로 액자가 왜소하고 장식이 지나치게 단조로우면 그림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조언하고 있다. 중재자로서의 액자의 역할은 그림 속으로 관람자를 초대하면서 일단 경계 안으로 빠져들면 쉽게 빠져나갈 수 없도록 시선을 그림 안에 묶어둘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 액자는 관람자의 눈과 마음이 그림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포용할 수 있도록 조력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올 미술계의 새로운 코드로 부상한 구스타프 클림트는 동생인 게오르그와 협업을 통해 불멸의 작품을 남겼다. 집안이 금세공업을 하는 관계로 클림트의 그림에는 금박패턴이 많이 등장한다. 동생이 액자를 만들었음직한 <유디트Ⅰ>은 그림과 액자가 일체형인 독특한 양식의 작품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액자는 동생이 만들었겠지만 모양은 형의 주문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같이 화가 자신이 직접 액자를 디자인하는 경우도 많은데, 에드가 드가 <판화 수집가>, 조르주 쇠라 <포즈를 취한 여인들>, 한나 글룩 <자화상>, 피에트 몬드리안 <구성 B(흰색과 붉은색의 구성)>, 살바도르 달리 <머리에 구름을 가득 담고 있는 한 쌍>, 제스퍼 존스의 <평면 위의 무용수들>이 그것이다. 디자인으로만 성이 차지 않아서 직접 제작에 나선 화가들도 있다. 이때야말로 그림과 액자가 완벽한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그래서 일부 화가는 실제 액자를 사용하는 대신 캔버스 위에 액자를 그려 넣는 방법으로 그림의 주제의식을 극대화시키기도 했다.
자세히 보면 두 가지의 다른 황색 계열 물감을 사용하면서 직사각형 모양의 격자무늬로 리듬감을 주었다. 이 같은 붓질은 관람자의 시선을 그림 속 정물로 이끌고 들어가 평화로운 가을 낮에 잘 익은 과일을 즐기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액자와 그림의 행복한 동거’라고 표현한다. 저자에 따르면 액자의 개념은 이미 선사시대에 존재했다. 밝은 낮 시간 동굴에서 밖을 내다 볼 때 입구 틀에 둘러싸인 풍경은 액자의 존재와도 같다는 개념이다. 실질적으로 그림에 틀을 사용하기 시작한 때는 초기 기독교 시대라고 한다. 당시 성상화(이콘, icon)를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틀이 교회의 번성과 맞물려 부를 과시할 목적으로 제작되면서 발전한다. 르네상스 시대 ‘전시’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작품에 액자를 두르는 일은 유행처럼 이탈리아를 기점으로 전 유럽에 이어 무역로를 따라 러시아, 소아시아, 남아메리카까지 퍼져 나가 오늘에 이른다. 이 책에는 이러한 선사시대 틀의 개념에서 초기 교회시대의 이콘을 보관하는 장치에서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써의 테두리, 그리고 궁극에는 그림과 행복한 동거를 위해 관람자의 시선을 잡아두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발전한 액자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다 읽고 나면 그림 보는 '제2의 눈'이 뜨여질 것인가는 독자의 몫이다. <파리에서 달까지>의 저자 애덤 곱닉은 책 서문에서 “액자는 그림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자백하는 만드는 훌륭한 탐정”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베일리가 이렇게 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림)나와라. 나와라! 너는 포위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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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2. 20. 21:07
앤디 워홀 손안에 넣기...
2006. 12. 20. 21:07 in 記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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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열린 한 경매에서 김수근의 <노상>은 10억4000만원으로 낙찰돼 근∙현대 미술작품으로는 가장 비싸게 거래됐다. 국내 미술계의 이 같은 현상은 세계적인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올 세계 미술계 경매에서는 역대 최고가를 경신한 작가만 50명이 나왔다고 한다. 특히 지난 11월 8일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그림 몇 장으로 하루 동안 5억 달러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고 하니 매력적인 시장이 아닐 수 없다. 미술 경매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리처드 폴스키의 <앤디 워홀 손안에 넣기>를 추천한다. 이 책은 현직 미술품 딜러가 앤디 워홀(1928~1987)이라는 미술가의 작품을 사고 파는 여정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경매시장의 메커니즘을 담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미술계에서 장사하는 이야기"라고 털어 놓는다. 어찌 보면 실전 지침서인 셈이다. 워홀은 미국 팝아트의 대부로서 그의 주요 작품은 수 천만 달러에 거래되는 등 경매 시장을 이끄는 유명 작가로 여전히 명성이 높다. 저자는 경험에 의해 앤디 워홀이 투자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12년간 그의 작품을 쫓는다. 쫓는다는 의미에는 '작품=돈'이란 공식이 담겨 있다. 그것이 딜러를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런 여정에서 미술계 이면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작품가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재미다. 또 거래과정에서 드러나는 작가, 컬렉터, 딜러, 갤러리, 경매회사의 인적 관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읽을거리다.
1960년대 초반임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당시 크러샤는 한 잡지 인터뷰에서 "이 그림은 IBM 주식과 같은 겁니다. 지금이 살 때라구요!"라고 외쳤다고 한다. 독자들은 그런 크러샤를 제 정신으로 보지 않았다. 이유는 1950년대 태동한 팝 아트가 존속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크러샤의 말이 옳았지만 그는 불행하게도 자신의 예상이 적중하는 것을 못보고 타계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1967년 <오렌지 마릴린>은 독일인 컬렉터인 칼 스트로허에게 약 2만5000달러에 팔렸다. 중간에 주인이 몇 차례 바뀌면서 결과적으로 40여년 만에 경이적인 가격의 미술품이 됐다. 서양에서는 미술품이 주식이나 수익증권과 같이 재테크의 수단이 된 지 오래다.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미술시장이 호황을 맞는다. 올 우리나라 미술계의 성황도 부동산 정책과 따로 무관하다고 보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책 속에는 어떻게 미술품을 구입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전체를 읽고 나면 거품을 구별할 수 있는 '희미함'은 얻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미술 시장 전반을 관통하면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한편, 다른 책과 달리 옮긴이의 성실함이 눈에 띈다. 워홀의 주요 작품이 전시돼 있는 갤러리를 직접 찍은 사진으로 보여준 꼼꼼한 정성은 평면적인 책을 화려하게 시각화시켰다는 면에서 높이 살만하다. 또 미술사학을 전공한 옮긴이의 전문성 또한 쉬운 우리말로 번역할 수 있었던 장점으로 꼽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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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배우는 사람이 급속히 늘고 있는 폴리머클레이(Polymerclay) 공예의 한 장면입니다. 폴리머클레이는 말 그대로 폴리머(중합체)와 클레이(점토)의 합성어입니다. 화학적으로 만든 고분자중합 점토쯤으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이번 시간엔 폴리머클레이 공예를 배우는 모임을 찾았습니다. 먼저 폴리머클레이의 역사에 대해 좀 더 공부를 해 봅니다. 이 공예의 첫 출발은 1930년대 후반 독일의 진보적 여성인 피피(Fifi)가 자신의 이름을 본 딴 인형 '피피 모자이크'를 점토로 빚어 시장에 내놓으면서부터 입니다. 그녀는 1964년에 점토 배합공식을 에버하르트 파버에게 팔았고 파버 형제가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는 '피모(FIMO)'라는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이후 나라마다 조금씩 만드는 방법과 성분을 달리한 제품들이 개발됐으며 1970년대 미국에서 붐을 이루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난 8월 8일 있었던 공예모임에는 8명의 수강생이 자리했습니다. 강사는 경력 22년의 우리나라 폴리머클레이 공예 1세대인 박수행(47)씨. 모임 장소는 공방이 아니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한 가정집이었습니다. 장소를 제공한 이는 한현남(34)씨로 인테리어 디자인을 했던 손끝 매서운 주부입니다. 이번 이야기공방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집안은 선풍기 두 대가 쉼 없이 바람을 토해내지만 여름 한낮의 열기와 수강생들의 열의가 뒤섞여 후끈했습니다. 이들을 찾아갔을 때 마침 화려한 무늬를 가진 열대어를 빚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선호하는 색을 이용해 물고기 비늘무늬 만드는 방법을 배웠는데, 설명 없이 보자니 도대체 어떻게 만든 것인지 마냥 신기하기만 합니다. 이날 강습에는 웹디자이너였던 송정선씨, 전 직장을 그만두고 강사를 찾아 온 김연진씨, 풍선아트 전문가인 강다영씨, 비즈공예와 은점토공방을 운영하는 박미선씨, 뭔가 배우고 싶은 열정에 이끌려온 박내정씨, 경기도 광주의 이수연씨, 충남 공주에서 온 선서현씨 등이 참여했습니다. 이들이 폴리머클레이를 선택한 이유는 창의력만 있으면 무궁무진한 작품을 만들 수 있고 또한 우리 시장의 잠재력 때문입니다. 취미일 수도 있고 필요에 따라서는 강사요원으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남보다 빨리 배우려는 것입니다. 박수행씨는 "비즈공예 열기가 한풀 꺾이면서 취미활동인구가 대거 폴리머클레이로 이동해 강사가 부족하다"며 "저가로 남녀노소가 아무런 도구 없이 손만으로도 만들 수 있는 공예라서 인기가 좋은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박씨에 따르면 6주(48시간) 정도 배우면 어느 정도 수준이 되고 이들은 백화점 문화센터, 학교 특별활동 등의 강사로 활약하게 됩니다. 초보자의 경우 문양 배우는데 2시간, 구워서 완성하는데 까지 총 4시간이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고수들 앞에서 흉내 낼 엄두를 못 내다가 초보자도 2시간이면 된다는 말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쓰다 남은 자투리를 모아 빚어 봤습니다. 합쳐진 두개의 색깔은 손길에 따라 섞이면서 '마블' 문양이 됩니다. 폴리머클레이는 액세서리는 물론 생활소품까지 만들 수 있는 기능성이 우수한 공예재료입니다. 독성이 없어서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재료이기도 합니다. 가격 역시 개당(56g) 3500원으로 큰 부담이 없습니다. 서로 다른 색 두 개(7000원) 정도만 있어도 알록달록한 핸드폰 고리 수십 개를 만들 수 있으니 비용 효과적입니다. 오븐에 굽기 전에는 언제든지 재활용이 가능하며 자투리 한 톨도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재료구입은 취미 인구가 늘면서 폴리수(www.polysoo.co.kr) 등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곳이 많이 생겼습니다. 오프라인에서는 알파문구 등 대형문구점에서 구입이 가능합니다. [How to - 단추 만들기]
폴리머클레이는 참 많은 특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 한가지 색으로도 작품을 빚을 수 있고 여러 가지라면 더욱 화려한 무늬를 연출할 수 있습니다. 도구래 봤자 커터 칼에 이쑤시개 정도만 있으면 웬만한 것을 다 만들 수 있습니다. 대부분 손으로 조몰락거리면서 모양을 만들기 때문에 별다른 도구가 필요 없습니다. 다만 마무리로 작품을 구워내기 위해 토스트오븐, 전자렌지는 필수입니다. 그마저도 없다면 프라이팬에 구울 수도 있습니다. 단추 만들기 첫 단계는 색깔이 다른 두개의 폴리머클레이를 적당한 무늬로 배합합니다. 두 가지 색일 경우 흔히 만들 수 있는 무늬는 체크입니다. 재료를 단면이 정사각형이 되도록 붙이고 이를 2등분해서 다시 붙입니다. 다시 8㎝ 정도로 늘인 후 2㎝씩 4등분해서 체크무늬가 되도록 붙이기를 몇 번 반복하면 멋진 체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늘였다 잘라 붙이기를 반복할수록 무늬는 촘촘해지고 작아집니다. 그리고 단면을 조심해서 잘라내고 이쑤시개로 단추 구멍을 냅니다. 마지막으로 토스트오븐에 구워내면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만의 단추가 완성됩니다. 무늬가 작을수록 구별이 어려워 작품이 같아 보입니다. 또 복잡할수록 차이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단추는 빨래와 드라이클리닝도 견딜 수 있습니다. 수빈이 바지에는 사방체크무늬 단추가 달려있군요. 오늘의 이야기 주인공은 장소를 제공한 한씨와 수빈이입니다. 한씨는 공예를 배우고는 싶은데 생후 6개월의 수빈이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게 되자 자기 집을 강의실로 제공한 것입니다. 수빈이는 환한 이마의 또렷한 눈매를 가진 작고 귀여운 여자 아이입니다. 30대 중반에 죽을 고비를 넘기며 얻은 첫 아기인 만큼 한씨에게는 더 없이 소중합니다. 수빈이가 특별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수빈이를 낳을 때 아이 머리가 커서 제왕절개를 했는데, 수술직후 계속되는 하혈과 혈압강하로 위험한 고비를 몇 차례 넘겼다고 합니다. 병원에 예비한 혈액을 다 쓰고도 모자라 혈액원에서 응급으로 공수하는 등 한씨에게 무려 39단위를 수혈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의료진은 한씨의 남편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두 번째 인생의 동반자 수빈이 그리고 폴리머클레이
한씨는 "아직 시작하고 배우는 단계라 더욱 많은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직장생활 할 때와는 달리 너무 보람되고 엔도르핀이 마구 샘솟는 느낌"이라며 "무엇보다 수빈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더불어 일도 즐길 수 있는 탁월한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액세서리로 시작해 점차 전공분야인 인테리어와 접목시키겠다는 것이 한씨의 계획입니다. 아기들 모빌, 커튼 고리, 컵 받침, 책표지, 그릇, 컵 등을 만들면서 차츰 본인만의 뚜렷한 색깔과 주제를 가진 작품으로 확대한다는 옹골찬 계획이 이미 서 있습니다. 수빈이와 함께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한씨와 그의 인생길에 동반자가 된 폴리머클레이 공예. 빚어내는 정성과 노력에 따라 아름답고 멋진 문양이 완성되는 폴리머클레이 같은 인생이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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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2. 8. 15:58
한라산 성판악-관음사 코스...
2006. 12. 8. 15:58 in 記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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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일 새벽 6시에 숙소에서 아침을 챙겨먹고 7시에 성판악으로 향했다. 4박 5일 여정에서 온전한 하루가 보장된 마지막 날이다. 다음날이면, 첫날에 그랬듯이 뱃길과 육로를 통해 서울로 15시간가량 가야 한다.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마지막 여정으로 한라산을 택했다. 성판악에 도착해 김밥과 물을 챙기고 18km의 원거리 산행을 대비해 화장실에 들러 몸을 가볍게 했다. 사전에 정보를 알아보지 못한 관계로 이번 산행도 앞서처럼 성판악 왕복산행으로 생각했다. 1998년과 2004년에 했던 두 차례 산행이 그러했다. 1998년도 겨울에는 한라산에 70cm가량 눈이 내렸다. 다행히 성판악 길이 개척돼서 아름다운 설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다만 예정했던 관음사 길은 열리지 않아 되돌아와야 했던 아쉬운 기억이 있다.
처음으로 관음사 길로 하산… 진경산수와 조우 2004년에는 아이들과 함께 성판악에서 올랐는데,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 및 그것에서 비롯된 운무, 추위 등으로 진달래 밭에 가기도 전에 산행을 포기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이번엔 혼자 몸으로 단출하게 오르니 아이들 때문에 중간에 포기할 걱정은 없었다. 내심 관음사로 하산하는 기대를 은근히 품고 산에 올랐다. 성판악에서 매점이 있는 진달래 밭까지 가려면 비교적 완만한 경사면을 7.3km 가량 가야 한다. 화산암을 다져서 길을 냈고 정상까지 오로지 외길이다. 육지 산에서 흔히 보는 나무가 아니라 이국적 향취를 물씬 풍기는 아름드리나무들이 산길 옆에 호위하듯 서 있다. 나무들은 8월 땡볕을 완벽하게 막아주면서 등산객을 반겼다. 진달래 밭에 오후 1시까지 도착해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그 시간을 넘기면 하산 시간과 일몰, 잠재된 위험 등을 고려해 입산을 통제하고 있다. 오전 8시께부터 오르기 시작한 나는 평소 산행을 즐겼던 터라 어렵지 않게 오전 10시 반께 진달래 밭에 도착했다. 산행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경유로 움직이는 모노레일이 설치된 점. 마침 성판악에서 출발한 모노레일과 나란히 산행하는 추억을 남겼지만, 시끄러운 엔진소리와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연료냄새는 지우고 싶다. 산장과 매점의 물품을 옮기는 것 같아보이는 모노레일엔 사람도 세 명이나 타고 있었다. 진달래 밭 매점을 지나면 숲이 사라지고 하늘이 보인다. 키 큰 나무들을 보기 어렵고 산길도 넓어져 그늘을 기대하기 어렵다. 땀으로 범벅돼 눅진하고 후끈 달아오른 체온을 식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소나기를 기대했는데, 마음이 하늘에 닿았는지 정상까지 가는 길을 시원하게 적신다.
한라산 정상은 마땅히 비를 피할 곳이 없는 개활지다. 아래로는 화산 분화구인 백록담이 있고 물은 많지도 적지도 않게 차 있다. 낮았던 하늘은 어느새 훌쩍 높아져, 흰색 구름의 실루엣 사이로 푸른 속살을 드러냈다. 백록담에 비친 비취빛 하늘은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이었다.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관음사로 하산할 수 있단다. 가슴이 설??? 세 번째 도전 만에 관음사 길을 밟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그 길에 집착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왕복 산행의 지루함을 피하고자 했을 뿐이다.
다음엔 관음사 길로 오르는 꿈을 꾼다 관음사로 하산 길을 잡고 출발하자 하늘이 다시 낮아진다. 구름이 몰리고 사위가 운무로 자욱하다. 그러고는 다시 소나기를 뿌리는데 세찬 정도가 좀 전 것을 능가했다. 한라산은 폭 2m 가량의 산길 이외엔 한 발도 옆으로 나갈 수 없도록 금줄이 쳐져 있다. 설사 그것을 뛰어 넘더라도 소나기를 피할 곳은 마땅찮다. 옷 젖는 것에 대해 대충 포기하고 터벅이다 보니 바위 밑 작은 동굴에 등산객이 올망졸망 모여 있다. 더 이상 비집을 틈이 없을 것 같던 그곳에 일행 6명이 들어설 수 있었다. 만원지하철에 구겨 타듯 동굴로 몸을 피하자마자 비가 멎었다. 관음사 길은 성판악 길의 반대편 길로, 분화구의 뒤편을 볼 수 있다. 엄청나게 퍼부었던 소나기 때문에 속옷까지 후줄근하게 젖었기에, 이번엔 옷을 말릴 수 있도록 볕과 바람을 원했다. 물론 소원은 성취됐다.
관음사 길은 비교적 경사가 심하고 산길이 험해 화산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졌음을 알 수 있었다. 해발 1000m 고지쯤에 내려오자 용암이 꿈틀거리며 요동치면서 지나간 자리가 계곡으로 만들어져 아래로 선명하게 나 있다. 움푹 파인 화산암 사이에 고인 물속에는 신기하게도 올챙이와 개구리가 그득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득한 동굴 속에는 올챙이 대신 용(龍)이 살지는 않을까. 아득한 심연이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관음사 길에서 만난 새로운 경험들은 삼수의 기쁨이었다. 한라산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그동안 길을 열어 주지 않았나 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중에 일행을 태울 버스가 왔다. 다음엔 관음사부터 정상을 올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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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성패는 대본도 좋아야 하지만 주연배우의 연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럼 배우는 어디서 어떻게 연기를 배워야 하나. 연기를 배우는 방법은 다양하다. 연기학원을 통해서나 선배 연기자의 지도로 연기력을 쌓을 수 있다. 또 거개의 학문이 그렇듯이 전문 서적을 통할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타인의 연기색깔에 살짝 물들 수 있다. 그러나 후자는 설명서를 보고 따라하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연기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 면에서 연기입문서는 초보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가이드인 셈이다. 초보에게 적합한 연기 입문서인 <액팅원>을 소개한다. '필독서'라고 칭한 대상은 일반인이 아닌 연기지망생이나 기성 연기자들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다소 따분하고 전문적인 연기지침서다. 외국에서는 '연기 교재의 바이블'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책이다. 연극평론가 로버트 코헨(미국 켈리포니아 어바인대학 연극과 교수)이 펴낸 이 책은 연기를 막 배우려는 학생들에게 적합한 입문서로 1984년 초판 발행 이후 3차례 개정 과정을 거쳐 4판을 찍어낼 정도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코헨은 뉴욕의 액터스 센터에서 연기자들을 위한 마스터 클래스를 지도하며 세계 각지의 극장과 연극학교에서 연기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또 수많은 연극 관련 책과 학술논문을 발표했고 연극과 오페라 작품을 번역하기도 하는 등 전문 연극인이다. 이 책은 연기에 대한 주입식 지식 전달보다는 '연기의 원칙'을 세웠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 책은 총 5부 28개 강의 과정으로 나뉘어져 1년 또는 2년간 연기의 기초를 다질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호흡법, 발성법은 물론 동작 하나하나까지 제어하는 방법이 모두 담겨져 있다. 막전, 막후에서 배우의 미세한 움직임과 심리상태를 모두 텍스트로 규정해 놓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나 가급적 이론에 얽매이지 않아야 제대로 된 연기라고 지적한다. 책은 참고서란 의미다. '말아톤'의 조승우 "1학년 때 교재였다" 적극 추천 "나는 이 책이 교실에서의 중대한 작업을 해치치 않으면서 자극을 줄 수 있도록, 제한적이고 지시적이기보다는 개방적이고 암시적인 것이 되도록 노력했다. 연기와 배우 훈련은 집단적이고 협력적인 기술과정의 범주 안에서 개인적인 예술이다. 배우는 기술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계발해야 한다. 연극예술은 그 두 가지 구성요소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대로 기술도 중요하지만 배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자아를 확립하는 것이 무대 예술의 요체인 것이다. 배우의 감정이 관객에게 이입되는 예술에서는 배우의 올곧은 자아 확립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액팅원>과 같은 전문서적은 입문자의 마음가짐을 다지게 하는 중요한 지침서가 된다. 책을 옮긴 박지홍 교수(단국대 공연영화학부)는 "이 책이 처음 발행됐을 때 미국 대학에 입학해 첫 연기 수업교재로 배웠던 학생 중 한명"이라며 "내게 연극이란 무엇인지 깨우쳐주고 이 분야로 첫발을 내딛을 수 있게 해준 첫사랑의 감동과도 같은 존재"라고 역자 후기를 적고 있다. 영화 <말아톤>과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열연한 조승우씨 역시 대학 1학년 때 교재로 이 책을 사용했다면서 연기를 배우는 학생으로서 이만큼 좋은 연기 입문서는 없었던 것 같다고 추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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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2. 8. 15:54
쪽동백나무공예...
2006. 12. 8. 15:54 in 記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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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에는 재미난 취미를 가진 이들이 많습니다. 취미란 말 그대로 생업과 별개로 자신이 좋아하는 여가 활동입니다. 본 연재에서는 눈썰미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소품 제작 취미를 가진 이들과 그들의 사는 이야기를 엮어 봅니다. 자! 함께 만들어 볼까요.<편집자 주> |
마침 홍대 앞 프리마켓이 개장 5주년을 맞는 날이군요. 여러 예술가 틈 속에 앉아 있는 그녀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바로 쪽동백나무 때문입니다. 멀리서도 뚜렷이 보이는 짙은 나무 빛깔과 뽀얀 속살의 대비가 쪽동백의 트레이드마크입니다. 멀리 안동에서 올라 온 배은주씨. 뙤약볕 아래 쪽동백을 닮은 구리 빛 피부가 건강미를 한껏 발산합니다. 주중에는 환경단체의 책임 있는 활동가인 배씨는 주말이면 나무공예가가 됩니다. 그는 어느덧 홍대 앞 프리마켓에 참가해 대중들 앞에 솜씨를 뽐낼 정도가 됐습니다. 그녀가 주로 만드는 작품은 한 뼘을 넘지 않는 소품입니다. 종류로는 장승, 솟대, 나무목걸이, 연필, 열쇠고리, 휴대폰 고리, 사슴, 장서인, 도장 등입니다. 요즘은 또 뭘 만들까 행복한 고민 속에 산다고 합니다. 그녀에게 쪽동백 공예의 매력과 작품 만드는 법을 듣고 배워봤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사는 이야기 한 토막도 함께. 매력 만점 쪽동백... 일상 소품제작에 적합
재미난 것은 동백나무와 전혀 닮지 않았는데 붙여진 이름입니다. 서양에서는 꽃 모양 때문에 'snowbell'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는 왜 쪽동백이 됐을까요. 그것은 열매에서 짜낸 기름이 옛날에는 동백기름을 대신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한방에서는 열매를 옥령화라고 해 요충을 제거하고 종기의 염증을 완화하는 약재로도 쓰인답니다. 흔히 눈에 띄는 나무는 아니랍니다. 제법 깊숙한 숲으로 들어가야 군락을 만날 수 있답니다. 쉽게 찾는 방법 중 하나는 계곡 주변을 유심히 봐야 합니다. 물을 좋아하는 수종이라 계곡 주변에 가지를 널찍이 드리운답니다. 그런 가지를 예쁘게 전지하면서 재료를 구합니다. 다른 나무들도 그렇지만 약전(弱剪)은 가지를 더욱 번성하게 합니다. 가로수로 많이 쓰이는 버즘나무 전지를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물론 손아귀를 넘는 굵어진 가지는 손대지 않습니다. 쪽동백은 비속성수이기 때문에 손가락 굵기의 잔가지를 주로 전지합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만들기에 들어갑니다. [How to - 나만의 휴대폰 고리 만들기]
별다른 손재주가 필요 없는 나만의 휴대폰 고리를 만들어 봅니다. 먼저 숲에서 구해 온 쪽동백 가지를 씻어서 10∼15일 정도 말려야 합니다. 수분을 적당해 날려보내야 조각칼이 '아삭하게' 잘 먹는 답니다. 그늘에서 말려야 갈라짐 없이 매끈한 재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음 순서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냅니다. 휴대폰 고리는 새끼손가락 굵기의 가지가 적당합니다. 길이는 약 3cm 전후가 좋지만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불편함이 없는 범위 안에서 더 길게 해도 괜찮습니다. 자르는 것은 쇠톱을 사용하면 되고 자른 면은 사포를 이용해 부드럽게 처리합니다. 사포는 자른 면만 처리해야 합니다. 외피에 사포질을 하면 흠이 납니다. 외피는 천으로 닦아줍니다. 이제부터 멋진 나만의 문양을 새깁니다. 자신이 없을 때는 책이나 인터넷에서 문양을 찾아 흉내 냅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입니다. 그녀는 꽃, 물고기, 동물 문양을 주로 새긴다고 합니다. 또 자신만의 기하학적 문양을 새기기도 합니다. 이름이나 짧은 소원 등 글자를 새겨 넣으면 더욱 뜻 깊은 작품이 된다고 조언합니다. 그녀의 조각칼은 맞춤으로 2mm 굵기로 가늘게 팔 수 있는 것부터 끌까지 다양하게 있지만 이번엔 작은 둥근칼과 삼각칼을 사용했습니다. 가정에서는 문구점에서 파는 삼각칼을 이용하면 됩니다. 평소에는 환경단체 활동가, 주말엔 목공예가...예리한 눈과 조각도는 내 무기 그녀의 본업은 환경단체 활동가입니다. 경북 안동시에 있는 사단법인 낙동강환경연구센터의 정책팀장입니다. 대학 졸업 후 이 단체에서만 5년째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학 2학년 때 나무심기 자원봉사 행사를 통해 환경단체의 매력을 느낀 것이 인연이 됐답니다. 센터는 안동에 있는 임하댐, 안동댐 등 댐의 수질 및 환경을 감시하고 강 상·하류 지역의 분쟁을 조정합니다. 1988년 사회문제연구소라는 이념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단체로 출발한 센터는 반독재, 도시빈민, 대구페놀사태 등 사회 환경문제 해결에 앞장섰습니다. 최근에는 매년 환경마라톤을 개최해 지역 축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대회는 친환경 마라톤 코스를 달리면서 1회용품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쓰레기 배출 최소화를 실천하는 이색 대회입니다. 지역민의 반응이 좋다고 귀띔하네요. 그녀는 2년 동안 활동비를 한 푼도 받지 않고 일했습니다. 참여정부 들어서기 전까지 시민사회단체가 대부분 그렇듯이 재정이 빠듯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자연을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이 금전적 보상보다 앞섰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녀의 자연 사랑에 대한 짧은 글입니다. "식물을 좋아하다 보니 봄이면 숲이나 식물원, 화훼단지를 찾아가는 즐거움이 만만치 않습니다. 원래 지구의 주인은 식물이라고 합니다. 지구상의 유일한 생산자이기도 합니다. 흙을 알게 하고, 순환과 기다림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말없는 벗입니다." 그녀는 또 자신의 취미 활동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무가 좋아서 쪽동백 공예를 시작했습니다. 환경단체에 있다보니 숲에 가는 일이 많았는데, 어느 날 쪽동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지치기를 하고 뭘 할까 궁리하다가 조각을 시작했습니다." 지구의 원래 주인은 식물... 나무가 좋아서 공예 시작
지난해 생명평화축제 대회에서 전시하던 중 관람객 한 분이 홍대 앞 프리마켓을 알려줘서 참여하게 됐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답니다. 그런 인연으로 기자도 안동에 사는 그녀를 서울 하늘아래서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레츠(LETS) 운동가인 일본 공예가 후쿠이 테쓰야는 공예와 생활기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공예와 생활기술을 이어주는 선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제 삶을 영위하는 '생활인' 자신이다. 공예라는 것은 일용생활품을 미적 의식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행위이며, 생활기술이라는 것은 '자본제에 의존하지 않고, 또 자원·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의미한다." 그녀 역시 이와 일맥상통한 말을 합니다. "좋아하는 일이 먹고사는 문제와 상충되지 않고, 함께 연동되어 갈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란 생각이 듭니다. 정직한 노동을 통해서 '앎'이 단순히 지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깨어있는 지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시장은 우리의 오래된 미래이며 현재입니다." 어느새 그녀는 기자 이름이 새겨진 휴대폰 고리를 완성해 쥐어줍니다. 이름의 한 획 위로 푸르디푸를 것 같은 잎새 두 닢이 하늘로 뻗어 주변 벚나무가지에 닿으려는 듯 합니다. 문양으로는 목어가 새겨있습니다. 항상 뜬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의미를 담았답니다. 직접 해보고 싶었지만 잘 갈아진 조각칼을 망가트릴까 싶어 참았습니다. 평일에는 환경일꾼, 주말이면 목공예가의 삶을 사는 그녀의 당당한 얼굴로 석양이 드리울 무렵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휴대폰 고리는 무르고 따뜻한 질감 때문에 요즘도 만지작거리며 하루에도 몇 번씩 손때를 묻힙니다. 그럴 때마다 쪽동백은 반질거리며 뽀얀 속살이 도드라지게 드러냅니다. "이상과 현실 또는 앎과 실천 사이의 거리를 좁혀 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숙제일 것이다. 어느 글귀에서처럼 '돈이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 일하라'가 가식이 아닌 삶에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다. 그것을 지금 실험중이다. 그녀가 취미를 뛰어 넘어 홍대 앞 프리마켓에 좌판을 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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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2. 8. 15:54
강원도 인제 수해...
2006. 12. 8. 15:54 in 記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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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호우가 휩쓴 강원도 인제군 일대는 쑥대밭이 됐다. 지난 17일부터 2박3일간 인제군 일대 비 피해와 수해복구 현장을 취재했다…<기자 주>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이하 봉사단)이 수해 현장으로 출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동행했다. 17일 오후 6시 30분 서울을 출발한 차는 밤 10시경 강원도 홍천에 도착했다. 19명으로 구성된 구호봉사단은 10t 물량의 구호품과 1000여만원의 구호자금을 챙겨 현장으로 출동했다. 봉사단은 홍천을 거처 인제군 일대 수해현장으로 들어갈 계획이었지만 낙석으로 곳곳이 깨진 31번 국도를 야간에 타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결국 홍천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날인 18일 일찍 차를 몰아 인제군청에 차려진 인제군 재난안전대책본부에 들러 피해 상황을 확인했다. 재난대책본부에 따르면, 17일 자정을 기준으로 인제군 일대에서만 39명의 인명피해(사망 12명, 실종 27명)가 있었다. 이재민은 4개 읍면 15개 리에서 773명이 발생해 수용 시설과 인근 주택에 대피해 있는 실정이었다. 집도 전파 63채, 유실 28채, 반파 72채, 침수 154채, 매몰 2채, 화재 2건 등 모두 321건의 피해가 발생했다. 봉사단은 인제읍 덕적리(140명)에 이어 두 번째로 이재민이 많이 발생한 하추리(115명)를 찾았다. 이날도 인제에는 비가 내렸다. 더구나 인제군청에서 하추리로 들어가는 도로는 곳곳이 유실되거나 토사에 뒤덮여 있어 접근이 쉽지 않았다. 가리산 줄기 밑에 위치한 하추리. 아래 하(下), 가래나무 추(楸)를 쓰는 이 마을 산에는 호도와 비슷한 가래나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이번 폭우에는 가래나무도 마을을 지키지 못했다. 가리산천이 흐르는 지역의 마을은 여지없이 급류에 휩쓸려 이재민과 재산피해를 냈다. 물길이 꺾이는 바깥쪽에 있던 집들은 여지없이 쓸려 날아가거나 토사에 파묻혔다. 그동안 어렵잖게 물살을 막아내던 담벼락은 맥없이 떨어져 나가버리고 그 뒤에 있던 집들은 아수라장이 됐다. 밀려들어 온 토사는 물길을 제멋대로 틀어 놨고 밭을 모두 쓸어갔다. 마을 주민들은 입을 모아 지도가 바뀌었다고 한탄했다. 하추리 입구에 있는 하추리 식당에는 이 지역 수재민들이 만든 주민대책본부가 차려져 있었다. 박재균 이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주민대책본부는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 맞는 수해에 매우 당황스러워 하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서 직접적인 수해를 입은 계곡마을까지는 길이 끊어진 상태. 하루 이틀 작업으로 복구될 상황이 아니었다. 물길이 세차게 지나는 곳에는 두께 20㎝ 콘크리트 옹벽이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물살에 실려 떠내려 온 집채 만한 바위가 옹벽을 깨고 뒤이어 들이닥친 물살이 토사를 갉아냈다. 토사가 지지하고 있던 아스팔트 도로는 종잇장처럼 찢어지며 무너졌다. 도로가 붕괴되면서 도로변에 서 있던 가로등과 전봇대도 모두 쓰러졌다. 전봇대는 연결돼 있는 억센 전깃줄 때문에 하나가 쓰러지자 줄줄이 뽑히거나 부러지면서 동강났다. 이 때문에 일대는 며칠간 계속 정전 상태에 있다.
이재민들은 마을회관과 지금은 폐교가 된 남인제 초등학교 하추분교에 수용돼 있었다. 전기가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은 이미 접었고 먹을거리라도 충분히 공급되길 바라고 있었다. 하추분교에는 약 30여명의 이재민이 수용돼 있었다. LP가스가 바닥나 취사를 할 수 없어 이들은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대부분 주민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말을 아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서다. 괜한 말 한 마디가 이런 상황에선 쉽게 상처가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 김순자씨는 "가리산천 상류지역에는 다행이 인명 피해는 없지만 죄다 쓸려 사라져 숟가락 하나 못 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녀는 "비로 모두 휩쓸려가고 남아 있는 건 강원도 인심뿐"이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하추분교에 마을 주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놀러왔다 수해를 만난 관광객 30여명도 고립돼 하룻밤을 떨면서 지새우다가 이튿날이 되어서야 걸어서 빠져나갔다고 한다. 남겨진 관광버스 때문에 운전기사는 아직 하추리에 남아 도로가 복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하추리에는 인명 피해가 없었다. 일 때문에 가리산천 상류를 찾았던 김군호(청·장년회 부회장)씨가 급격히 물이 불어난 것을 보고 하류 쪽으로 차를 몰아가며 비상사태를 다급히 알렸기 때문이다. 윤종남 청·장년회 회장은 "마을 앞 성황당 옆 수백 년 된 돌무덤이 이번 수해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면서 "어르신들도 이런 물난리는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하추리 박재균 이장도 "1984년에 조그만 물난리가 있었지만 평생 이런 물폭탄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박 이장은 "현재 주민들이 100% 복구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삽, 괭이, 리어카 등 개인 복구장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지원을 요청했다.
아주머니들은 구호키트를 머리에 이고 청년들과 봉사단은 둘러맸다. 청년회라고 해야 모두 40~50대 아저씨들이다. 이들은 끊긴 도로 옆 산길을 등산하듯 아슬아슬하게 탔다. 빗물을 머금은 돌무더기는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게 위험하게 매달려 있었다. 피해가 없는 주민들도 모두 나와 구호에 손을 보탰다. 구호키트에는 햇반, 컵라면, 초코파이, 빵, 우유, 옷가지, 속옷, 커피, 고무장갑, 화장지, 여성용품까지 고립지역에서 한 사람이 이틀 정도를 버틸 수 있는 필수품이 들어 있다. 쌀은 항공지원을 요청했지만 일기가 좋지 않고 착륙할 곳이 마땅찮아 안타깝게 무산됐다. 하추분교보다 상류지역인 마을회관에는 생후 2개월이 채 안 된 갓난아기를 비롯해 영아들이 분유가 떨어져 부모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구호팀은 급히 인제군 시내에서 아기들이 필요한 분유, 물티슈, 기저귀와 이재민들 위한 쌀 50포를 지원했다. 또 전기 발전기를 지원해 전기공급을 가능케 했다.
주민들은 비가 그치길 기다렸지만 이날 자정을 넘겨서까지 비가 내렸다. 다행스럽게 다음날인 19일 새벽 비는 그쳤고 날이 밝자 복구작업과 각급 봉사단의 활동도 활발해졌다. 하추리 입구의 하추교 밑에서 대형 포클레인과 12t 트럭이 굉음을 내며 토사를 걷어내고 물길을 다듬는 분주한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누더기처럼 유실된 31번 국도 전역에서 도로정비 작업을 하고 있는 등 복구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춘천성심병원에서도 무료진료팀을 보내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한편 하추리에서 이틀간 재난 구호활동을 벌인 봉사단은 인근 인제군 기린면으로 이동, 기린면사무소에 구호키트 60여박스를 전달했다. 봉사단은 또 인제 체육관으로 옮겨 헬기를 통해 구호키트 50박스와 쌀 50포대를 고립지역으로 보냈다. 봉사단을 이끈 조현삼 목사는 "작은 힘을 보태서 이재민들이 힘을 내는데 도움을 주고자 왔다"며 "주민들이 하루빨리 수해의 고통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오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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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2. 8. 15:50
당신이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입니까...
2006. 12. 8. 15:50 in 記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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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 세워진 작품들은 바깥벽에 대부분 붉은 벽돌을 사용했다. '건축은 빛과 벽돌이 짓는 시'라고 정의한 벽돌예찬론자 김수근의 면모를 들여다 볼 수 있다. 그가 벽돌을 편애(?)하는 이유는 실용과 예술이라는 건축예술을 한껏 살리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리 급해도 벽돌은 한꺼번에 쌓지 못한다. 때문에 한장 한장 단정히 쌓지 않으면 무너지거나 제대로 힘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벽돌이 지닌 조소성은 무한히 인간화되는 과정을 상징한다"고 벽돌 예찬론을 펼친바 있다. 예서 창경궁 길로 조금만 걸으면 현대사옥 옆구리에 있는 김수근 건축예술의 산실 공간 사옥이 나온다. 나이 마흔이던 1971년에 지은 검정 벽돌 건물이다. 이곳은 그가 열네 살 때 해방을 맞은 언저리이기도 해 공간이 주는 의미는 색다르다. 그는 이곳에서 15년을 더 혼신을 다해 종합 문화예술 활동을 이끌다 지난 1986년 지병인 간암으로 타계했다. 종합문화예술인의 길을 걸어 간 건축가
김수근문화재단에서 엮었다. 건축가와 문화재단, 어쩐지 생소한 조합이지만 생전 그의 발걸음과 그와 깊게 교우했던 이들(원고 집필자)의 면면을 보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건축계에서는 이승우 종합건축 대표, 박춘명 예건축 대표, 강병기 걷고싶은도시만들기 시민연대 대표, 전상백 한국건축 대표, 조구현 신세대건축 대표 등 우리나라 건축 1세대들이 앞 다퉈 그와의 추억 보따리를 풀었다. 그리고 미술평론가 박용숙, 유홍준 문화재청장, 사진작가 정정웅, 이종복 도서출판 심설당 대표,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교수, 한국민예연구가 김기수, 작곡가 강석희, 화가 권옥연, 가야금 명인 황병기, 무용가 최현, 수필가 조경희, 미술가 이구열, 이제는 같이 천국 생활을 하고 있을 백남준과 시인 구상까지…. 그의 문화예술 사랑은 공간 사옥에 '공간사랑'이란 소극장을 마련한데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이곳에서 당시 무명이던 김덕수 사물놀이, 병신춤의 공옥진, 살풀이 춤의 이애주씨의 공연을 올려 예술 차원에서 인정받도록 후원했다. 이보다 앞서 1966년에는 국내 최초라고 할 수 있는 종합예술지인 <공간>을 창간하는 등 우리 문화를 알리고 기록하는데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1997년 잡지 제호를 'SPACE'로 바꿨다. 그러고 보니 올해로 벌써 불혹을 맞았다. 그의 이런 행보에는 공간을 통한 여러 예술분야의 통합운동에 대한 이상을 담고 있던 것이라고 윤승중 전 김수근문화재단 이사장은 회고했다. 말년의 그를 만난 일본 사진작가 무라이 오사무의 회고는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그분이 병원 입원 중 수술 직전에 그린 화집을 보여주셨다. 그림선의 혼란스런 격렬함 속에서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에게서 배어나오고 있는 동요를 느꼈다. 그분이 역Y자 지퍼모양 그린 것을 보여주면서 물었다. 내가 이해 못하고 허둥대자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수술한 내 배입니다' 그 분다운 농담" 책 표지 사진은 오사무씨가 찍은 것이다. 1985년 일본 교토통신사 의뢰로 완성 직전의 잠실올림픽경기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부탁했는데 병중의 김수근이 쾌히 응한 것이다. 당시 이미 병세가 악화돼서 수술과 요양을 거듭하고 있던 터라 애써 웃음을 만들기 쉽지 않았을 때다. 그것이 이듬해 영정 사진이 될 줄이야. 김수근과 공간 사옥을 접하다보니 얼마 전 취재했던 북촌창우극장의 허규가 겹친다. 원서공원을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는 공간과 북촌창우, 그리고 지금은 가고 없는 우리 문화를 위한 열정으로 뭉친 주인들. 이들은 각각 건축과 연출이 전문이지만 국민들에게 '문화종합선물세트'를 선사하기 위해 애썼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헌정집과 함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게-건축가 김수근 이야기>란 책도 출간됐다. 또 사라져 가는 그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가 지은 아르코 미술관에서는 그의 삶과 예술을 현재의 눈으로 바라보는 '지금 여기(Here and Now) 김수근'전을 이달 28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회는 건축가로서의 사명감, 자연과 인간의 조화, 전통과 현대에 대한 고민 등 한국 건축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그의 건축사상을 한눈에 보여주기 위해 기획됐다고 한다. 책과 함께 그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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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2. 8. 15:49
유쾌한 CEO...
2006. 12. 8. 15:49 in 記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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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중국 병법이 서양에서는 꽤나 신기한 모양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시장 독점과 특허 침해 혐의로 소송에 휘말렸을 때 빌 게이츠 회장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참고했던 책 중 하나가 <손자병법>이었다. 또 1991년 걸프전쟁을 승리로 이끈 노먼 슈워츠코프 장군 역시 <손자병법>을 전술에 응용했다고 전해진다. 서양인들이 손자병법과 같은 중국 고전을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 2500년 전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병서가 21세기에도 통한다는 방증 아닐까. 최근에 중국 고전에 담긴 지혜를 간추린 번역서 한권이 출간됐다. 마이클 탕의 < 고전에서 경영철학을 배우는 유쾌한 CEO >라는 다소 긴 제목의 처세 책이 그것이다. 이 책은 중국 고전을 영어로 써서 서양에 소개된 점에서 흥미롭다. 원제는 < A Victor's Reflections-and other Tales of China's Timeless Wisdom For Leaders >이다. 너무 식상하다고 판단했는지 다시 우리말로 옮겨지면서 제목이 생뚱맞게 변했다. 책에는 스콜라리가 지혜를 빌렸던 <손자병법>은 물론 다양한 중국 고전이 등장한다. 귀에 익은 <논어> <맹자>는 물론 <열자> <장자> <도덕경> <육조단경> 같은 철학과 종교 서적, <전국책> <사기> <춘추좌씨전> <여씨춘추> 같은 역사책, <손자병법> <손빈병법> 같은 병법서가 등장한다. 또 교훈적인 글로는 <안씨가훈>과 <주백로치가격언>이 인용됐고 <신서> <설원> 같은 설화집, <삼국지> <초한지> <삼언이박> 같은 문학작품에서 <소녀경>까지 망라하고 있다. 이 중 <손자병법>은 서양 사람들이 가장 흥미롭게 받아들이는 중국 고전이다. 왜 현대인은 고전에 빠져 드는가 저자는 중국 문화혁명 때 한학자였던 할아버지에게 고전을 배웠다고 한다. 그는 현재 뉴욕과 상하이를 오가며 중국에 대한 벤처캐피탈 투자 분야에서 활동 중인 비즈니스맨이다. 그는 독자들에게 고전을 통해 중국의 지혜를 배워 이를 비즈니스 사회에 접목시켜보라고 권한다. 이 책은 지난 2001년 <하버드생이 본 중국 고전의 지혜>란 제목으로 출간된 것을 다시 찍은 것이다. 책의 특징 중 하나는 앞서 열거했듯이 지금껏 나온 고문 해설서에 비해 고전인용 스펙트럼이 무척 넓다. 각 고전에서 가장 재미나고 교훈적인 내용 100여 편을 엄선했다. 역자인 안찬수씨는 이 책을 한마디로 이야기책이자 역사책이며 지혜의 책이라고 했다. 때문에 현대 비즈니스 세계에서 성취감을 맛보려는 사람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고 후기를 적고 있다. 고전을 풀어놓은 책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만큼 읽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대인은 왜 고전을 읽나. 현대의 가치관이 분명 과거와 다른데, 서점가에 고전이 넘쳐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고전의 핵심은 객관적 불멸'이란 속성 때문일 것이다. 비근한 예로 지금은 우리에게 고전 주인공인 돼 버린 공자에게 그 속성을 찾을 수 있다. 공자는 겸손하게도 온고지신(溫故知新), 술이부작(述而不作), 학이시습(學而時習)이란 학습 방법을 통해 자신 또한 고전을 통해 지식을 얻었다고 했다. 술이부작은 옛 고전을 읽고 단지 풀어 쓴 것이지 창작은 아니라는 의미로 공자가 말한 것이다. 공자 자신도 고전을 통해 지혜를 얻었다는 의미다. 공자 시대 역시 고전을 '학이시습'하고 지식을 '온고지신'하는 것을 학습의 덕목으로 삼은 것이다. 얼마 전 외신은 중국 장쑤성(江蘇省) 쉬저우(徐州)사범대학에서 문제 학생들에게 고전을 읽힌다고 전했다. 처벌 학칙에 고전읽기를 추가해 사서삼경을 읽고 독후감을 써내면 '개과자신(改過自新)'이란 문구를 학생부에 기록, 벌을 대신하는 것이다. 개과자신은 잘못을 고쳐 새사람이 됐다는 뜻이다. 고전의 효용성을 가장 현명하게 사용하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고전은 새로움을 잉태한 선현의 지혜 저자 탕 역시 이것을 바라고 책을 냈다. 그 또한 공자처럼 고전에서 지혜를 얻으며 '술이부작'을 한 것이다. 책에는 공자이야기, 맹모삼천, 적벽대전 등 우리에게도 친숙한 고전도 많다. 특히 <주백로치가격언> 같은 것은 불과 500여 자로 구성됐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나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는 교육효과가 좋아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격언 중 하나이다. 한 문장만 소개한다. '다른 사람에게 준 것은 생각지 말고 받은 것은 잊지 말라'(施因忽念 受恩莫忘). 글자 여덟 자가 지나온 수많은 시간을 생각게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과거가 현재에서 재해석 되면서 역사를 변화시킨 예로 르네상스를 손꼽는다. 알다시피 르네상스는 문예부흥이다. 중국불교는 인도에서 가져 온 고전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이처럼 고전은 새로움을 잉태하고 있는 선현들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미국을 방문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손자병법>을 선물했다. 그에 대해 갖가지 해석이 난무했는데, '부전이굴(不戰而屈)'을 전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뜻풀이가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부전이굴은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을 뜻한다. 북한 미사일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북미 상황. 부시 대통령이 후 주석이 선물한 손자병법을 한번 쯤 들춰봤는지 궁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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