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10. 07:25

[맛있는 동네 산책]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의 울림, 목 메인 매운탕

은파호수공원 군산맛집 삼거리매운탕

근처 궁전매운탕’·‘코다리각시도 추천

600년 된 천연기념물 미군 기지로 편입

 

지난 5일 전북 군산은 봄을 재촉하는 비가 종일토록 흩뿌렸다. 비와 함께 바다를 건너온 바람은 우산의 제 구실을 방해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판초 형태 우의를 입고 군산의 대표적 관광자원인 은파호수공원을 일주했다.

 

인문역사문화 공동체 문화지평창립 10주년 기념답사로 당일치기 군산을 다녀왔다. 전북천리길 44개 코스 중 군산에 있는 4개 코스를 올해 모두 돌아볼 요량으로 시작한 답사다. 첫 출발지로 봄날 벚꽃이 수려한 은파호수 물빛길을 택했다. 결과적으론 개화시기를 맞추지 못해 꽃망울만 잔뜩 보고 왔지만 군산의 역사문화자원을 둘러보면서 나름 유의미한 답사를 했다.

 

은파호수는 둘레가 9km에 달하는 인공 저수지다. 원래 이름은 미제지(米堤池)로 우리말로 쌀뭍방죽이다. 이름대로 주변 농경지에 농수를 공급하는 농업용 저수지였다. 해 질 녘 물결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은파란 이름을 붙여 국민관광지로 만들었지만 수자원을 관리하는 한국농어촌공사가 정식으로 사용하는 명칭은 미룡저수지다.

 

은파저수지 본명은 미룡저수지

벚꽃이 활짝 핀 은파호수공원 전경.[사진제공=전북특별자치도]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에도 표시돼 있는 역사 깊은 곳이다. 처음 등장한 곳은 1530(중종 25)에 제작된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미제지는 옥구현 북쪽 10리에 있으며 둘레가 일만구백십 척(6.9km)’이란 기록이다. 따라서 조선 왕조 이전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본래 농업용 저수지였으나 저수지를 중심으로 인근의 작은 산들을 포함하여 1985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됐다. 만남의 광장에는 군산·옥구 출신 독립유공자 충혼탑이 세워져 있다. 호수 둘레에 인공데크와 자연지형을 이용한 길이 잘 조성돼 있다. 이 길을 따라 한 바퀴를 돌면 1시간30분가량 소요된다. 호수 중간에 다리를 두어 반 바퀴도 돌 수 있도록 했다.

 

멀리서 온 상춘객에게 벚꽃도 보여주지 않고 대신 비바람을 선물한 은파호수지만 일주(一周) 한 것도 기쁨이었다. 아쉬움이 남아야 또 한 번 오지 않겠나. 다섯 팀에 전문 해설사가 한 명씩 배정돼 오붓하게 답사와 식사를 함께 한 시간도 기억이 남는다.

 

예약도 없이 20여 명이 한꺼번에 식당에 들이닥치자 은파호수 맛집으로 유명한 삼거리매운탕은 두 팀 9명만 자리할 수 있었다. 다른 팀들은 인근 궁전매운탕코다리각시란 식당으로 입맛에 따라 나눠서 들어갔다.

 

구수한 솥밥 어우러진 새우매운탕 별미

삼거리매운탕의 대표 메뉴 새우매운탕은 구수한 솥밥, 간이 잘된 밑반찬과 어우러져 완벽한 미식 시간을 제공한다.

삼거리매운탕은 군산시가 앞장서서 홍보를 해주는 군산맛집’ 36곳 중 하나다. 군산맛집은 음식 맛 등이 우수하고 대중이 쉽게 이용가능한 일반음식점을 대상으로 엄격한 심의와 비노출 현지조사 등 절차를 거쳐 지정한다. 평가항목으로는 맛·메뉴·가격·식당역사성(50), 주방·음식·화장실 위생과 종사자 개인위생(30), 식사환경, 종사자 친절도(20) 등이며 장애인 휠체어 출입이 가능하면 가산점(10)을 준다. 매우 합리적인 평가항목이라고 본다.

 

일행은 새우매운탕을 주문했다. 9명이 두 테이블에 나눠 4인분씩 주문했지만 괜찮다며 받아 줬다. 5인분 분량이 애매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이런 호의는 기분을 좋게 한다. 군산은 예로부터 땅이 비옥해 옥() 자가 들어가는 지명이 많다. 그래서 쌀농사가 잘 되고 밥 맛이 일품이다. 군산 등 전북지역은 신동진 쌀을 많이 재배한다. 쌀알이 굵고 풍미가 좋다.

 

삼거리매운탕에서도 신동진 쌀로 갓 지은 솥밥을 내온다. 밥솥 뚜껑을 여는 순간 훅 하고 들어오는 구수한 밥 냄새, 반들반들 윤기 나는 쌀 사이 흑미를 살짝 섞은 먹음직한 자태, 쫀득쫀득 씹히며 단맛을 뿜어내는 미각 등 오감을 자극하는 밥맛. 매운탕 집이지만 한식 식탁의 주인공은 역시 밥이다.

 

물론 이 식당의 매운탕 역시 농후한 육수가 일품이다. 새우매운탕은 처음이었는데 우거지가 듬뿍 들어가 새우의 빈약한체급을 채웠다. 부들부들 부드러운 우거지와 제법 씨알 굵은 민물새우가 어우러진 새우매운탕은 이 식당의 대표 메뉴다. 푸짐하게 내주는 갖은 밑반찬도 단골을 만드는 중요한 포인트다. 반찬 모두 간이 적절하고 맛을 잘 냈다.

 

이날 처음 맛본 군산양조공사의 군산우리생쌀막걸리는 깔끔하고 담백해 음식과 궁합이 잘 맞았다. 한 달에 한번 필자 주관으로 문지미식포럼이란 미식 모임을 서울 종로구 창신동 공유공간 공유창신에서 연다. 그때마다 지역 전통주를 한 박스씩 주문하는 데 일전에는 경북 안동 회곡양조장, 전남 장흥 안양주조의 막걸리를 택했다. 다음번 미식포럼 자리에는 군산양조장 막걸리를 초대해야겠단 생각을 해 본다.

 

팽나무 이파리 나면 다시 찾으리

천연기념물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 앞에서 문화지평 회원들이 창립  10 주년 기념답사 단체사진을 찍는 모습 .

 

식사를 마치고 답사팀은 군산 하제마을에 있는 팽나무를 보러 갔다. 국가자연유산 천연기념물로 지난해 10월 지정된 노거수다. 생장추로 수령을 측정한 결과 국내 자생 팽나무 중 가장 나이가 많은 537(±50)(2020년 기준)이다. 편리하게 600년 된 팽나무라고 부른다. 나무높이가 건물 5층 높이인 20m, 가슴높이둘레 7.5m 규모다. 생육상태도 우수하고 나무 밑동 3m 높이에서 가지가 남북으로 넓고 균형 있게 발달해 수형이 아름답다.

 

팽나무가 위치한 하제마을은 원래 섬이었으나 1900년대 초 간척사업을 통해 육지화 됐다. 하제포구가 생기고 기차가 들어서면서 한때 개도 만원 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했을 정도로 번성했지만 2001년부터 추진된 군산미공군비행장 탄약고 안전지역 6개 마을에 포함돼 강제 이주를 해야만 했다.

 

군산시 옥서면 선연리 일대 미 공군기지는 일본 병참기지를 1945년부터 미군이 사용하기 시작했고 1974년 이후 미 제7공군 제8전투비행단이 주둔하면서 지금에 이른다. 우리 공군부대도 함께 주둔 중이다. 2004년 아파치 헬기장 부지와 탄약고안전거리 확보를 명목으로 추가로 확장되면서 하제마을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조선왕조를 관통하면서 살았던 팽나무만큼은 자리를 뜨지 못하고 묵묵히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미 공군기지가 자리 잡고 있는 이 공간은 물리적으로는 대한민국 영토지만 행정적으로는 미 캘리포니아에 속해 있는 미국 땅이다. 그래서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고 팽나무가 서 있는 땅도 언젠가는 울타리로 둘러싸이고 출입이 제한될 것이다. 그래서 지역 활동가들은 힘을 모아 팽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팽팽문화제등을 열어 여론을 환기시켰고 끝내 천연기념물 지정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천연기념물이란 표지판 하나 없다. 민간에서 세운 돌로 된 보호수 표석만 덩그마니 있을 뿐이다.

 

국가유산기본법에서는 국가유산이란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 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문화유산·무형유산·자연유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유산은 안내판을 설치해 관람객에게 공공언어로 국가유산의 정보와 가치를 알려야 한다.

 

안내판 종류에는 해설안내판과 기능성 안내판이 있다. 해설안내판은 각각의 성격에 따라 국가유산 전체 영역을 종합하여 설명하는 종합안내판, 국가유산 전체 영역 중 권역을 설명하는 권역안내판, 개별 국가유산 한 건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개별안내판으로 구분된다. 이 중 1개 이상의 안내판을 반드시 설치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하제마을 팽나무는 아직 아무런 표지판도 없는 상태다. 600년 된 노거수, 그것도 천연기념물에 대해 각별한 관심이 요구된다.

 

가까운 곳에는 해풍을 막았던 수령 200여년 된 곰솔 한 그루가 외로이 서 있다. 옛날 같았으면 마을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을 받으면 어울려 살던 이들 노거수들이 지금은 쓸쓸하게 미군부대 영내로 편입을 기다리고 있다. 이왕에 이렇게 됐으니 비행 방해 명목으로 베어지는 것만은 막아야겠단 생각이다.

 

마침 이날엔 팽나무 앞에서 이름 모를 활동가 한분이 야외 결혼식을 올렸다. 600살 팽나무 어르신의 무언의 주례사를 상상해 본다. 가슴이 먹먹하고 목메었지만 한편으론 따뜻한 울림이 있다. 연녹색 이파리로 가득 덮인 팽나무를 보러 다시 와야겠다.

2025. 3. 14. 06:00

[맛있는 동네 산책] 춘래불사춘 시대 봄내 춘천의 닭갈비 맛집은?

 전국의 음식거리<2> - 춘천명동닭갈비골목

1968년 형성된 춘천 명물 명동닭갈비골목

철판과 소금·간장·양념숯불닭갈비 등 다양

6남매 중 3명이 닭갈비 장사 ‘명동1번지’

 

춘래불사춘.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다는 말이다. 한나라 원제 때 오랑캐에게 시집간 왕소군의 심사를 후대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시로 표현한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에서 유래했다. 진영을 떠나 지금 우리 국민의 마음이 모두 이렇지 않을까.

 

가슴이 답답하던 차에 ‘카톡’이 울렸다. 지인이 갑자기 춘천행을 제안하는 톡이었다. 창밖에 흩날리는 눈발을 보며 상념에 빠져 있던 차에 ‘훅’ 들어온 ‘벙개’라 얼떨결에 응했다. 기차 시간을 보니 마음이 급하다. 준비를 하는 둥 마는 둥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어서 가까스로 경춘선 itx청춘을 잡아탔다.

 

차창 밖 가까운 눈발은 세상일처럼 어지럽게 흩날렸지만 멀리 원경에 쌓이는 눈은 차분했다. 세상일도 조용해지려면 멀리 차분하게 내리는 눈처럼 시간과 거리가 필요하단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춘천행은 얼마만이던가. 서울서 불과 한 시간. 서울 시내 지하철 소요시간보다도 짧은 길인데 강원도라는 심리적 거리가 그간 발목을 잡았다.

 

춘천, 순우리말 봄내 옛 이름은 오근내

춘천역에서 바라본 춘천대교 .  선사유적을 품은 하중도와 연결된다 .

 

 

춘천을 순우리말로 봄내라고 부른다. 한자로 봄 춘(春), 내 천(川) 자를 쓰기에 따온 말이다. 봄의 강, 봄이 흐르는 고장이라는 의미로 치자면 봄내 춘천은 봄의 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춘천은 예부터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봄이 되면 북한강과 의암호 주변이 푸르게 변하며 꽃이 만발하는 지역이다. 이런 지역적 특징 때문에 ‘봄이 먼저 오는 곳’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춘천 시민들은 지역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봄내 시민’, ‘봄내 축제’, ‘봄내길’ 등 다양한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춘천시청 시정 소식지 이름도 ‘봄내’다. 옛 지명인 오근내(烏斤乃)보다도 이제는 봄내가 더 많이 쓰인다. 오근내는 신라 문무왕 때 불렀던 춘천의 옛 이름이다. 춘천역사문화연구회는 고구려 때 불렀던 이름이라고 주장한다. 춘천이란 지명은 1413년(태종 13)에 처음 등장했다.

 

서울에는 오근내란 이름을 가진 닭갈비 전문점이 있다. 용산 백빈건널목 근처 본점을 가진 ‘오근내닭갈비’다. 근처에 ‘오근내2닭갈비’가 있고 출점을 하면 순번을 붙이는데 오근내4는 없다. 한때 미쉐린가이드 빕구르망에 선정된 명불허전인 곳이다. 춘천산 생닭 다리살만 이용해 포를 떠서 손님 앞에서 자르는 것이 오근내의 특징이다. 다른 곳은 대부분 손질된 채로 나온다.

 

서울 명동 본 딴 춘천 명동은 닭갈비 명소

닭갈비 고장 춘천의 대표적 닭갈비 거리인 춘천명동닭갈비골목 입구 . [사진=한국관광공서]

 

 

닭갈비는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의 향토음식이다. 춘천은 닭갈비 고장답게 ‘춘천명동닭갈비골목’이라는 1968년에 조성된 특화거리가 있다. 말 그대로 명동에 있다. 춘천 명동은 서울 명동과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 1960~70년대 춘천에서 가장 번화했던 중심가로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를 의미한다. 요즘은 점포임대 플래카드가 곧잘 눈에 띄고 예전만큼 번화하지 않지만 그나마 춘천명동닭갈비골목이 명맥을 유지하면서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이곳은 닭갈비 전문점이 골목을 사이에 두고 여러 점포가 몰려있다. 우미닭갈비, 명동골목닭갈비, 명동1번지닭갈비, 빨강머리이모닭갈비, 명동산골닭갈비, 구미닭갈비, Hwang’s도깨비집숯닭갈비, 유미닭갈비, 혜정닭갈비, 춘천중앙닭갈비, 춘천본가닭갈비, 대청봉숯불닭갈비, 고려닭갈비, 원조남촌닭갈비 등이 자체 단체도 결성하고 분투하고 있다.

 

춘천 닭갈비 유명세의 든든한 뒷배는 양계산업

춘천이 닭갈비로 유명세를 탄 이유에는 지역 양계 산업이 든든하게 받쳐줘서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닭갈비 문화 덕분에 닭 소비량이 많아지자 양계산업도 발달했다고 하지만 양계가 많아서 닭갈비 식문화가 발달했다고 보는 것이 순서상 맞다.

 

닭갈비가 처음 개발된 때는 1960년대 초반 춘천 중앙로에서 돼지고기를 팔던 김영석 씨로 알려져 있다. 한 날은 돼지고기가 떨어지자 급히 닭 두 마리를 사다가 양념구이를 한 것이 반응이 좋았다. 이후 김 씨는 닭을 돼지갈비처럼 포를 떠서 양념해 재웠다 구이로 선보였고 닭갈비 시초가 됐다.

 

당시 춘천지역에는 양계장이 많았다. 춘천은 강원도 내륙 지역으로 비교적 넓은 토지와 깨끗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런 조건은 양계 농장을 운영하기에 적합하고 가금류 전염병 관리에도 유리하기 때문에 춘천은 오래전부터 양계 농가가 많고 닭고기 가공업도 발전했다. 경춘선으로 대변되는 관광산업과 연계되면서 관광객들이 닭갈비를 찾고 소비가 증가하면서 양계산업 성장이라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

 

닭갈비 골목으로 유명해진 춘천 명동거리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서민들을 위한 작은 식당들이 있던 골목이었다. 그중 2~3군데 식당에서 싼 가격에 닭갈비를 판매하던 것이 80년대에 들어서 점점 유명해지더니 지금의 닭갈비 골목이 형성됐다. 처음엔 숯불구이였던 것이 철판에 각종 채소와 매콤한 양념을 넣고 볶아 먹는 철판양념닭갈비로 변주가 생겨났다.

 

골목 가득 닭갈비 굽는 냄새 진동

춘천명동닭갈비골목을 채우고 있는 닭갈비전문점 간판 .

 

 

춘천역 1번 출구서 중앙로로터리로 10여분을 걸으면 닭갈비골목 입구가 나온다. 여름 주말 저녁 골목에 들어서면 닭갈비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골목 가장 첫째 집 우미닭갈비가 나온다. 개업 55주년의 업력을 가진 곳으로 닭갈비 판을 깨끗이 물로 씻어내는 불판세척실을 따로 두고 있다. 이는 맛은 기본이고 위생을 앞세워 식객을 끌어들이겠다는 일종의 마케팅 포인트다.

 

유미닭갈비는 매콤한 양념으로 볶는 철판닭갈비와 숯불닭갈비 두 가지 조리법을 모두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숯불은 양념, 간장, 소금 세 가지 맛을 즐길 수 있어서 다양한 맛을 즐기는 식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춘천본가닭갈비는 3대가 50년을 훌쩍 넘게 이어오는 점포다. 신선한 계육만 사용하고 김치는 직접 담가서 내놓는다. 이곳 역시 숯불과 철판 닭요리를 모두 맛볼 수 있다. 메뉴 중 모둠삼색닭갈비가 인기가 좋은 데 이는 다름 아닌 양념, 간장, 소금구이 세 가지 맛을 뜻한다. 네이밍으로 식객의 입맛을 자극하는 나름 통하는 마케팅이다.

 

원조중앙닭갈비(간판은 이송금할머니의 춘천중앙닭갈비)는 ‘SINCE 1960년’이라고 써 붙여 놓고 은근 이 골목 터주대감 노릇을 하고 있다. 대를 잇는 시원한 동치미 국물 맛이 일품인 곳이다. 이곳 역시 이송금 할머니에 이어 2대째 이어져 오는 노포다.

 

자가제면 막국수 투박한 ‘강원도의 맛’

명동 1 번지닭갈비의 닭갈비와 막국수 .

 

필자는 이날 닭갈비 골목 중간쯤 위치한 ‘명동1번지닭갈비’를 방문했다. 이 식당은 ‘춘천명동닭갈비 골목에서 식도락 여행객들이 즐겨 먹는 닭갈비와 막국수의 최고의 맛을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고유한 양념과 요리법을 가진 맛있는 닭갈비와 막국수를 주 메뉴로 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특히 ‘닭갈비와 함께 곁들여 먹는 막국수는 메밀로 반죽하여 직접 뽑은 면을 사용합니다. 5남 1녀 가족 중 3명이 닭갈비가게를 운영하는 닭갈비 가족’이라는 홍보는 면을 좋아하는 식객의 구미를 한껏 당기게 했다. 명동1번지닭갈비는 농가와 직거래하는 춘천닭갈비협회의 고기를 사용한다.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나니 눈발이 잦아졌다. 일행과 춘천명동지하상가와 춘천중앙시장을 둘러봤다. 칼국수면과 소면을 사려고 요선시장에 있던 요선제면에 들리려 했지만 사라졌다고 했다. 그래서 대신 춘천중앙시장에서 황소표국수에서 칼국수면을 한 묶음 사 왔다. 며칠 후 마침 멸치 다신 물이 있어 감자 좀 썰어 넣고 칼국수를 끓였는데 면이 윤기 있고 쫄깃한 게 식감이 참 좋았다. 춘천행 ‘벙개’의 소소한 전리품이다.

2025. 2. 14. 07:00

[맛있는 동네 산책]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 손맛 웅숭 깊은 맛집? [서촌 맛집]

서울에 있는 수많은 음식거리 소개 시작

옛 금천교 시장 터줏대감 체부동잔치집

식객 허영만도 반한 전라도맛 경동맛집

 

서울은 세계적 대도시다. 인구 면에서 보면 2024년 기준 서울만으로는 950만 명, 인천과 경기도 등 수도권을 포함하면 2600만 명으로 세계 5위권 대도시다. 수도권 기준 일본 도쿄는 3700만 명으로 1위를 차지했고 인도 델리 3200만 명, 중국 상하이 2900만 명, 브라질 상파울루 2200만 명으로 뒤를 이었다.

 

2023GDP 기준 경제규모는 서울시 단독일 경우 약 4500억 달러로 뉴욕, 도쿄보다 작지만 수도권으로 확대하면 1.6조 달러로 세계 4~5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대도시가 된다. 일본모리재단에서 발표한 세계 도시 경쟁력 지수(GPCI 2023)에서 서울은 IT·테크, 제조업, 금융, 문화 산업이 강점으로 작용해 세계 7위를 기록할 정도의 메가시티다.

 

국제도시 서울 중심 종로구 맛집 차고 넘쳐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 서쪽 입구 전경 .

 

인구와 경제력이 뒷받침하다 보니 외식문화도 많이 발달해 있다. 지자체마다 음식 거리를 조성해 관광자원과 결합시키려는 노력이 활발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번 칼럼을 시작으로 서울 각 구별 대표적 음식거리와 들릴만한 식당을 두루 소개한다.

 

기준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필자의 경험과 입소문, 빅데이터를 종합해서 선정한 곳이기 때문에 순위와는 관련 없다는 점을 알린다. 앞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음식거리와 인근 둘러볼 곳을 소개할 예정이다. 첫 번째 순서로 종로구에 있는 음식거리를 소개한다.

 

종로구에는 세종음식문화거리, 인사동먹거리골목, 피맛골음식문화거리, 광장시장먹자골목, 익선동맛집골목, 낙원동아구찜골목, 동대문닭한마리골목 등이 대표적인 음식거리다. 이곳은 원래 금천교시장이란 이름의 시장골목이었다. 시장 입구에 사직동천에 걸쳤던 금천교란 다리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금천교는 1928년에 일제가 길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헐려 사라졌다.

 

그러던 것이 인근에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이 있어서 동네이름이 세종마을로 불리자 2010년대 초반 종로구청은 이 일대를 음식문화 특화거리로 발전시키는 계획을 수립하고 2013년 공식적으로 지정했다. 지역 상인들과 협력해 간판 정비, 거리 정돈, 음식점 품질 향상 사업 등을 진행해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를 브랜드화했다.

 

세종마을 일대는 예부터 유명한 한식 맛집과 전통주점이 많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경복궁이 가까워 고위 관료들이 많이 살았고 시장과 주점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특히 웃대(우대)라 불렀던 서촌 일대는 금력이 좋은 중인들이 많이 살아서 시장과 주점 등이 활발했을 것으로 보인다.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는 전통 한식과 현대적인 음식점 공존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청국장, 수제비, 한식, 고기구이집 등 한식부터 감성적인 카페, 퓨전 레스토랑까지 다양한 음식점이 몰려 있다. 뿐만 아니라 인근에 역사·문화와 녹아 있는 답사 탐방처가 많아 답사와 음식을 결합시키기 좋은 곳이다.

 

지하철 경복궁역에서 만나 사직단, 단군성전, 황학정(국궁전시관), 종로도서관, 매동초등학교, 배화여대(캠벨기념관), 이항복 집터(필운대), 홍건익 가옥, 체부동 생활문화지원센터 등을 돌아보고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로 접어들어 요기를 하거나 배를 가득 채우면 좋을 것 같다.

 

사직동천 물길 옆에서 맛보는 가성비 맛집

 

체부동잔치집의 비빔국수 ,  해물파전 ,  두부김치 .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에는 100여 개의 식당이 있다. 모두 한 음식하는 곳이다. 그러나 소비자의 입맛은 정확하다. 그것은 바로 입소문으로 표출되고 현대 사회에서는 SNS 리뷰로 나타난다. 물론 이를 역으로 이용한 마케팅도 횡행하지만 그것에 대한 판단은 소비자의 몫이다.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 맛집을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체부동잔치집을 좋아한다. 누가 물어보면 아주 소중한 곳이라고 말하곤 한다. 이 거리 아래로는 조선시대 금천교아래를 흐르는 사직동천이 여전히 살아있다. 시장 골목 한가운데 있는 체부동잔치집은 잔치국수와 들깨칼국수를 비롯해 각종 국수류와 전류에 주류를 곁들일 수 있다.

 

서촌 지역 답사 때면 가급적 들르려고 하는 곳인데 이유는 가성비에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극심한 곳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잔치국수가 4000원이다. 잔치국수, 들깨칼국수, 해물파전, 수제비, 칼국수, 들깨수제비, 김치전, 비빔국수, 파전 등이 인기 순위 메뉴다. 이 지역 상권에서 상상하기 힘든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메뉴 덕분에 주말 식사시간 때면 대기를 각오해야 한다.

 

손님들이 좁은 골목에 오랜 시간 줄 서 있는 것이 송구했던 식당 주인은 묘책을 생각했다. 이웃 식당과 협업을 통해 손님을 분산시켰고 여기서 더 나가 분점을 냈다. 기존 해장국집과 손을 잡고 체부동칼국수해장국이란 브랜드를 탄생시켰고 인근 통인시장에는 분점을 오픈한 것이다. 지하 공간도 있는데 바로 옆으로 사직동천이 흐르고 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아담한 2층 공간은 옛 추억 소환 창고

경동맛집의 대표메뉴인 홍어찜 ,  새꼬막 ,  가오리찜 ,  부추전 .

 

다음으로 경동맛집은 개인적으로 음식은 물론 공간을 좋아한다. 2층에 아담한 다락방 같은 좌식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 앉아서 막걸리를 몇 잔 하면 옛 추억이 감당할 수 없이 떠오른다. 젓가락 장단에 깊게 파인 술상 모서리와 암울한 시대의 울분, 매캐한 담배연기와 테이블마다 목청이 터져라 불렀던 노랫소리. 그리고 결국은 모두 하나가 되는 시간. 환청과 환각 같은 시간을 소환하는 곳이다.

 

음식도 옛 맛을 가득 담고 있어서 좋아한다. 체부동잔치집처럼 들깨수제비칼국수, 바지락칼국수, 수제비 등 면 요리와 떡국, 굴떡국, 만둣국 등을 식사 메뉴로 앞세우고 참소라, 홍어회·, 코다리찜, 가자미구이, 두루치기, 두부김치, 가오리찜, 모둠전, 부추전, 굴전, 무뼈닭발, 오징어볶음 등 군침 도는 안주류가 즐비하다.

 

여사장님 손맛이 좋아 식객들 방문에 문지방이 닳아 없어질 지경이다. 대표식객 허영만 화가는 5년 전 완전 전라도 맛! 새꼬막만 참꼬막으로 바꾸면 최고일 텐데 참꼬막이 너무 비싸서 쓸 수 없다네요. 아쉬워요란 사인지를 남기고 갔다. 살짝 아쉬움은 있지만 엄지를 척 들은 모습이 행간에 보인다.

 

일전에 2층을 전세 내 낮술을 했던 기억이 있다. 가오리찜을 시작으로 파전, 홍어찜, 닭발, 굴전 등 덤웨이터(음식 엘리베이터)를 통해 올라오는 메뉴에 탄성을 불렀던 시간에 대한 기억이다. 맛은 기억이다. 추억을 소환하고 군침을 돌게 한다.

 

종로구에는 수많은 음식문화거리가 있다. 그중에서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는 인근에 역사문화탐방 자원이 많아 자주 가는 곳이다. 이 지역 최고 매출은 토속촌삼계탕인데 음식문화거리 밖에 인접해 있다. 체부동잔치집과 경동맛집 이외도 수많은 맛집이 있는 세종마을 맛집골목에 얼마 전 이프타르(iftar)라는 독특한 할랄음식점이 생겼다.

 

이프타르는 라마단 기간에 낮 시간의 금식을 마치고 일몰 직후에 하는 첫 번째 식사를 뜻한다. 겉보기와는 달리 내부는 고즈넉한 한옥으로 공간이 넓다. 메뉴는 한식이지만 할랄음식을 표방하는 곳이라 한 번쯤 경험하고픈 곳이다. 주방과 홀 서버가 대부분 이슬람 원주민이다. 개업 날 내부 구경만 했던 기억을 남긴다.

2025. 2. 1. 12:32

[맛있는 동네 산책] 새길 찾아 사직에서 연희까지 [연희동 맛집]

맛있는 동네 산책새길 찾는 여정 출발~!

40년 업력 연희맛로 좌장 연희동칼국수

꽁보리와 갖은 나물의 조화 연희보리밥

사직동서 연희동까지 풍성한 역사이야기

 

신정과 설날, 양력과 음력 두 번의 새해 시작을 모두 공휴일로 정한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음력 설날은 중국(홍콩)을 비롯해 대만, 마카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에서 춘절이라고 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믈렉, 베트남 뗏, 몽골 차강사르 등으로 부른다. 주로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문화권에서 음력설을 쇤다. 동남아시아는 중국 화교문화 영향에 따른 것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양력 11일만 공휴일로 하고 신정만 쇠고 있다.

 

설날의 어원은 한국어의 고유어에서 비롯됐다. 의미와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있다. 가장 유력한 것은 설은 새롭다는 뜻의 고대 한국어 설다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이는 새해가 시작되는 날을 의미하는 새날이 변형돼 설날이 됐다는 것이다. 한자어 ()와 관련 있다는 설도 있다. 조심하다, 떼어내다, 삼가다 등의 뜻을 가진 고대 한국어 설다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어원은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대체로 설다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이는 새해를 맞이해 새로운 시작을 기원하고, 조심스럽고 경건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필자의 칼럼 맛있는 동네 산책은 을사년에도 새로운 여정으로 새길을 찾아 나선다. 아울러 여정의 끝에 만나는 인심 좋고 맛있는 식당을 소개하기 위해 다시금 신발 끈을 조여 본다.

 

첫 여정은 조선시대 한양의 중심이자 현대에도 서울 한복판이란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종각에서 시작했다. 보신각 앞을 약속 장소로 정해 만나면 동서남북 어느 쪽으로도 걷는 방향을 잡기가 쉽다. 목적지를 정해 놓지 않고 만난 이날도 어디로 갈까 하다가 서북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최종 목적지는 연희동 쪽을 염두하고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가장 먼저 서울역사박물관을 들러 태평계태평이란 기획전시를 관람했다. 도슨트 해설 없는 박물관 관람을 밋밋하고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 박물관은 학습하고 배우는 곳이기 때문에 선생과 같은 도슨트의 해설을 듣는 것이 좋다. 다행히 다음 달 9일 도슨트 해설을 예약한 상태라 이날은 슬쩍 눈요기만 하고 나왔다.

 

태평계태평은 역사적 중흥기로 평가되는 18세기 서울의 도시 풍경을 주제로 한 전시다. 정조(17761800)가 태평성대를 꿈꾸며 한양의 도시 풍경을 글과 그림으로 담아낸 성시전도’(城市全圖) 18세기 한양 풍경을 살펴볼 수 있는 유물 200310점을 보여준다.

 

사직2구역 재개발 전 마지막 모습 볼 수 있어

경희궁 뒤편 사직 2 구역은 재개발을 앞두고 슬럼화 된 상태다 .

 

 

서울역박을 나와 옛 경기감영과 서대문정거장 터 있던 서대문사거리 쪽으로 가려다가 경희궁 뒷길이 궁금해져 발길을 돌렸다. 언제든 가고 싶은 곳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것이 개별 도보 답사의 묘미다. 경희궁 뒤편은 사직2동으로 개발이 어렵고 낙후된 곳이라 지금은 폐허로 남아있다.

 

대부분 집들이 이사를 했고 몇몇 집들은 여전히 가파르고 좁은 골목을 이웃 삼아 남아있다. 2010년 조합 설립과 함께 롯데건설과 손잡고 재개발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서울시가 2017년 조합 측의 변경인가 신청을 반려하고 동시에 정비구역 지정을 직권해제 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이에 조합 측이 정비구역 해제 및 조합설립 취소 무효소송을 제기해 대법원 판결까지 모두 승소하면서 재개발 사업에 물꼬가 트였다. 그러나 서울시는 2017년 조합 측이 서울시에 매각한 캠밸 선교사주택(현 이회영기념관)을 우수건축자산으로 지정해 재개발사업에 제동을 거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2022년 삼성물산이 입찰을 통해 시공사로 확정돼 개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서울 사대문 안(종로구, 중구 일대)에는 삼성물산 리조트부문에서 분양한 래미안브랜드의 아파트가 없다. 사직2구역 사대문 안에 들어서는 최초의 래미안 아파트다.

 

캠벨 선교사 집에 들어선 우당기념관

 

 

사직동 길을 걷다 보니 이곳 재개발의 최대 이슈였던 캠벨선교사 주택이 나왔다. 지금은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회영기념관은 서촌 웃대 신교동에 있다가 2021년 남산예장자락으로 이전했다. 신교동 이회영기념관에는 우당교육문화회관이 남아 있다. 이곳은 지난해 9월 남산예장자락에서 옮겨 온 것이다. 재개발이 확정된 상황에서 다시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다. 고국을 떠나 만주를 떠돌았던 부평초 같은 우당의 삶과 겹친다.

 

이회영 기념관 입구에는 이회영 선생의 동상이 서 있다. 중구 명동1120(명동1) 옛 우당의 집터에도 같은 모양의 우당 흉상이 서 있다. 기념관은 지하 1, 지상 2층 규모로 외관이 벽돌이 아닌 석재로 지어졌다.

 

이곳은 미국 남감리회 파송을 받은 조세핀 캠벨(18531920) 선교사가 살았던 집이다. 1897년 우리나라에 온 그는 배화여대 전신인 배화학당을 세워 근대 여성 교육에 매진했다. 우당은 상동교회 교인이었는데 미국 북감리회 소속 메리 스크랜튼 선교사가 세웠다. 그의 기념관이 이곳에 옮김으로써 미 남북 감리교의 정신이 한 곳에 깃든 셈이 됐다.

 

우당기념관 바로 옆이 한양도성길이다. 이 길을 따라 인왕산 쪽으로 올라가면 행촌동 딜쿠샤를 만날 수 있다. 그동안 수차례 방문했지만 늦은 시간이라 내부 구경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이날은 일찌감치 방문해서 내부를 꼼꼼하게 둘러보면서 테일러 가문의 한국생활과 활약상을 접할 수 있었다. 정갈하게 복원되고 꾸며진 실내를 둘러보노라면 일제 강점기 테일러 가족의 한국 사랑이 따스하게 스미는 느낌이다.

 

사직터널 위쪽 길을 통해 독립문으로 향했고 동행에게 중간에 대성집을 지난다고 했더니 한 끼 하자고 했다. 그러나 브레이크타임에 걸려 아쉬움을 남기고 지나쳤다. 원래 대성집은 경희궁자이아파트가 들어선 곳 이면도로 한옥집에 있었다. 마당에 들어서면 무쇠 가마솥 여럿이 나란히 걸려 있고 그 안에는 펄펄 끓는 해장국과 푹푹 삶기는 도가니가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독립문과 영은문 주초를 둘러보고 금화터널을 통과했다. 금화터널은 금화산 밑을 지나면서 붙은 이름이다. 금화산은 안산에서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금화산 이름은 지금도 산 자락에 있는 봉원사의 고려시대 이름인 금화사에서 유래됐다. 연세대 동문회관이 있는 동문(東門)을 통해 교내로 들어가 정문으로 나왔다. 선교사, 윤동주 등 동문 등 수많은 역사를 품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교정을 한 바퀴 도는 캠퍼스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연세대를 빠져나와 연희동으로 향했다. 연희동에는 연희굴다리부터 북쪽으로 난 도로명이 연희맛로. 연희동은 부자동네로 오래전부터 동네주민들이나 직장인, 인근 대학 교수들을 고객으로 한 고급 중식당, 한정식집이 많았다.

 

특히 사러가쇼핑 주변에 외식 상권이 잘 형성돼 있다. 사러가쇼핑 앞을 지나가는 길 이름이 연희맛로다. 연희동칼국수, 영월, 연희동태찜, 연희녹두삼계탕 등 맛있는 노포가 즐비하다. 이연복의 목란, 라이라이, 이화원 등 마들급 이상 중식당이 몰려 있다. 인근 한성학교에서 배출된 화교들이 일대에 중식당을 차리면서 중식 맛집촌을 형성했다.

 

농후한 사골육수와 얼갈이 백김치 맛집

 

연희맛로 식당 중 1년 전 찾았던 연희동칼국수를 소개한다. 주차장이 널찍하고 매장이 단독 건물로 크다. 이 동네 주택이 대부분 큰 필지에 지어졌다. 마당 넓은 반 지하 2층 양옥을 개조해 1986년 식당으로 꾸몄다. 연희동칼국수는 연희맛로의 좌장 격인 곳이다. 메뉴는 칼국수와 수육 단 두 종류. 칼국수는 보통과 대자(곱빼기)로 나뉜다.

 

처음 나왔을 때 면기는 작아 보이지만 양은 결코 적지 않았다. 양이 적다 싶으면 공깃밥을 추가하면 된다. 작은 그릇의 500원짜리 공깃밥은 좋은 아이디어다. 쫄깃한 얼갈이 백김치가 이 식당의 또 하나의 시그니처다. 백김치 먹으러 온다는 손님이 꽤나 있을 정도다.

 

친절한 직원들 덕에 눈치 안 보고 김치를 몇 번이고 채워먹었다. 면은 명동교자 같이 매끈하고 부드러웠다. 육수는 사골 단독은 아닌 듯 끈적였는데 아마도 육수를 진하게 내는 비법이 있는 듯하다. 둘이 갔기에 수육에 한잔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입장할 때 다른 테이블을 슬쩍 보니 양지수육이다. 사골에 양지로 육수를 낸다는 소리다.

 

비빔밥 채소 무한리필 인심 좋은 한식당

 

이번 답사에서는 연희동칼국수와 마찬가지로 연희맛로에 위치한 연희보리밥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깔끔한 노출 콘크리트 빌딩 2층에 위치해 있어서 노포를 선호하는 필자의 눈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이날은 동행도 있고 중식에 구미가 당기지 않아서 재빨리 빅 데이터를 돌려 선택한 곳이다.

 

외관보다 훨씬 내부가 깔끔한 식당이다. 자리에 앉아서 테이블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주전부리 보리강정을 맛보면서 음식을 기다렸다. 비빔밥을 좋아해서 ‘2인분 된장청국장&보리밥한상이란 메뉴를 주문했다.

 

비주얼이 압도적으로 무시무시한(?) 거무튀튀한 꽁보리밥이 대접에 담겨 나왔다. 기물은 개량 놋그릇을 사용하는데 커다란 접시에 8가지 형형색색 나물이 담겼다. , 애호박, 고사리, 느타리버섯, 콩나물, 우거지, 궁채 등과 함께 한가운데는 계란부침이 동그랗게 담겼다.

 

필자는 이를 보리밥 그릇에 보기 좋게 가지런히 빙 둘러 담았다. 따로 나온 열무·얼갈이김치도 올리고 약간의 고추장과 참기름을 두어 바퀴 돌렸다. 그리고는 세상 신나게 섞고 비볐다. 질 좋은 참기름 냄새가 비비는 손길을 재촉했다.

 

원래는 된장·청국장과 그 속에 들어 있는 두부를 함께 넣고 비비는데 이곳에선 참았다. 기대했던 장맛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름과 달리 된장, 청국장 맛 대신 고추장찌개 맛이 떠올랐다. 전통적인 청국장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에 만들어진 애매한 맛이지 싶다.

 

살짝 아쉽지만 보편적 입맛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란 측면에서 충분히 이해가 된다. 꽁당보리밥 비빔밥은 아쉬움을 채우기 충분했다. 게다가 나물 채소가 모자라면 무한리필을 해준다고 하니 비빔밥 마니아들에겐 성지 같은 곳이다. 새해 맛있는 동네 산책을 비빔밥으로 함포고복했다. 출발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