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동네산책'에 해당되는 글 8건
- 2025.02.14 [맛있는 동네 산책]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 손맛 웅숭 깊은 맛집? [서촌 맛집] 3
- 2025.01.21 [맛있는 동네산책] 한탄강 윗물길서 만난 매운탕·전 찐 맛집 3
- 2025.01.10 [맛있는 동네 산책] 새해 첫 산책 이야기는 강릉·파주 탐방기 2
- 2024.12.13 [유성호의 미각 여행] 박수근의 따뜻한 시선이 스민 창신동 갈빗집 37
- 2024.11.15 [유성호의 맛있는 미각 여행] 만추 억새가 장관 수원화성은 미식의 성(城) 4
- 2024.11.13 [유성호의 맛있는 미각 여행] 대방어 계절 시즌 업! 4
- 2024.11.05 [유성호의 미각 여행] 낙조 명소 강화 장화리 가는 길 식후경 맛집 3
- 2024.10.21 찬바람 솔솔 불면 생각나는 만둣국 맛집 7
서울에 있는 수많은 음식거리 소개 시작
옛 금천교 시장 터줏대감 ‘체부동잔치집’
식객 허영만도 반한 전라도맛 ‘경동맛집’
서울은 세계적 대도시다. 인구 면에서 보면 2024년 기준 서울만으로는 950만 명, 인천과 경기도 등 수도권을 포함하면 2600만 명으로 세계 5위권 대도시다. 수도권 기준 일본 도쿄는 3700만 명으로 1위를 차지했고 인도 델리 3200만 명, 중국 상하이 2900만 명, 브라질 상파울루 2200만 명으로 뒤를 이었다.
2023년 GDP 기준 경제규모는 서울시 단독일 경우 약 4500억 달러로 뉴욕, 도쿄보다 작지만 수도권으로 확대하면 1.6조 달러로 세계 4~5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대도시가 된다. 일본모리재단에서 발표한 세계 도시 경쟁력 지수(GPCI 2023)에서 서울은 IT·테크, 제조업, 금융, 문화 산업이 강점으로 작용해 세계 7위를 기록할 정도의 메가시티다.
국제도시 서울 중심 종로구 맛집 차고 넘쳐
인구와 경제력이 뒷받침하다 보니 외식문화도 많이 발달해 있다. 지자체마다 음식 거리를 조성해 관광자원과 결합시키려는 노력이 활발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번 칼럼을 시작으로 서울 각 구별 대표적 음식거리와 들릴만한 식당을 두루 소개한다.
기준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필자의 경험과 입소문, 빅데이터를 종합해서 선정한 곳이기 때문에 순위와는 관련 없다는 점을 알린다. 앞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음식거리와 인근 둘러볼 곳을 소개할 예정이다. 첫 번째 순서로 종로구에 있는 음식거리를 소개한다.
종로구에는 세종음식문화거리, 인사동먹거리골목, 피맛골음식문화거리, 광장시장먹자골목, 익선동맛집골목, 낙원동아구찜골목, 동대문닭한마리골목 등이 대표적인 음식거리다. 이곳은 원래 금천교시장이란 이름의 시장골목이었다. 시장 입구에 사직동천에 걸쳤던 금천교란 다리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금천교는 1928년에 일제가 길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헐려 사라졌다.
그러던 것이 인근에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이 있어서 동네이름이 세종마을로 불리자 2010년대 초반 종로구청은 이 일대를 음식문화 특화거리로 발전시키는 계획을 수립하고 2013년 공식적으로 지정했다. 지역 상인들과 협력해 간판 정비, 거리 정돈, 음식점 품질 향상 사업 등을 진행해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를 브랜드화했다.
세종마을 일대는 예부터 유명한 한식 맛집과 전통주점이 많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경복궁이 가까워 고위 관료들이 많이 살았고 시장과 주점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특히 웃대(우대)라 불렀던 서촌 일대는 금력이 좋은 중인들이 많이 살아서 시장과 주점 등이 활발했을 것으로 보인다.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는 ‘전통 한식과 현대적인 음식점 공존’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청국장, 수제비, 한식, 고기구이집 등 한식부터 감성적인 카페, 퓨전 레스토랑까지 다양한 음식점이 몰려 있다. 뿐만 아니라 인근에 역사·문화와 녹아 있는 답사 탐방처가 많아 답사와 음식을 결합시키기 좋은 곳이다.
지하철 경복궁역에서 만나 사직단, 단군성전, 황학정(국궁전시관), 종로도서관, 매동초등학교, 배화여대(캠벨기념관), 이항복 집터(필운대), 홍건익 가옥, 체부동 생활문화지원센터 등을 돌아보고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로 접어들어 요기를 하거나 배를 가득 채우면 좋을 것 같다.
사직동천 물길 옆에서 맛보는 가성비 맛집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에는 100여 개의 식당이 있다. 모두 ‘한 음식’하는 곳이다. 그러나 소비자의 입맛은 정확하다. 그것은 바로 입소문으로 표출되고 현대 사회에서는 SNS 리뷰로 나타난다. 물론 이를 역으로 이용한 마케팅도 횡행하지만 그것에 대한 판단은 소비자의 몫이다.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 맛집을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체부동잔치집’을 좋아한다. 누가 물어보면 ‘아주 소중한 곳’이라고 말하곤 한다. 이 거리 아래로는 조선시대 금천교아래를 흐르는 사직동천이 여전히 살아있다. 시장 골목 한가운데 있는 ‘체부동잔치집’은 잔치국수와 들깨칼국수를 비롯해 각종 국수류와 전류에 주류를 곁들일 수 있다.
서촌 지역 답사 때면 가급적 들르려고 하는 곳인데 이유는 가성비에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극심한 곳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잔치국수가 4000원이다. 잔치국수, 들깨칼국수, 해물파전, 수제비, 칼국수, 들깨수제비, 김치전, 비빔국수, 파전 등이 인기 순위 메뉴다. 이 지역 상권에서 상상하기 힘든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메뉴 덕분에 주말 식사시간 때면 대기를 각오해야 한다.
손님들이 좁은 골목에 오랜 시간 줄 서 있는 것이 송구했던 식당 주인은 묘책을 생각했다. 이웃 식당과 협업을 통해 손님을 분산시켰고 여기서 더 나가 분점을 냈다. 기존 해장국집과 손을 잡고 체부동칼국수해장국이란 브랜드를 탄생시켰고 인근 통인시장에는 분점을 오픈한 것이다. 지하 공간도 있는데 바로 옆으로 사직동천이 흐르고 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아담한 2층 공간은 옛 추억 소환 창고
다음으로 ‘경동맛집’은 개인적으로 음식은 물론 공간을 좋아한다. 2층에 아담한 다락방 같은 좌식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 앉아서 막걸리를 몇 잔 하면 옛 추억이 감당할 수 없이 떠오른다. 젓가락 장단에 깊게 파인 술상 모서리와 암울한 시대의 울분, 매캐한 담배연기와 테이블마다 목청이 터져라 불렀던 노랫소리. 그리고 결국은 모두 하나가 되는 시간. 환청과 환각 같은 시간을 소환하는 곳이다.
음식도 옛 맛을 가득 담고 있어서 좋아한다. 체부동잔치집처럼 들깨수제비칼국수, 바지락칼국수, 수제비 등 면 요리와 떡국, 굴떡국, 만둣국 등을 식사 메뉴로 앞세우고 참소라, 홍어회·찜, 코다리찜, 가자미구이, 두루치기, 두부김치, 가오리찜, 모둠전, 부추전, 굴전, 무뼈닭발, 오징어볶음 등 군침 도는 안주류가 즐비하다.
여사장님 손맛이 좋아 식객들 방문에 문지방이 닳아 없어질 지경이다. 대표식객 허영만 화가는 5년 전 ‘완전 전라도 맛! 새꼬막만 참꼬막으로 바꾸면 최고일 텐데 참꼬막이 너무 비싸서 쓸 수 없다네요. 아쉬워요’란 사인지를 남기고 갔다. 살짝 아쉬움은 있지만 엄지를 척 들은 모습이 행간에 보인다.
일전에 2층을 전세 내 낮술을 했던 기억이 있다. 가오리찜을 시작으로 파전, 홍어찜, 닭발, 굴전 등 덤웨이터(음식 엘리베이터)를 통해 올라오는 메뉴에 탄성을 불렀던 시간에 대한 기억이다. 맛은 기억이다. 추억을 소환하고 군침을 돌게 한다.
종로구에는 수많은 음식문화거리가 있다. 그중에서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는 인근에 역사문화탐방 자원이 많아 자주 가는 곳이다. 이 지역 최고 매출은 토속촌삼계탕인데 음식문화거리 밖에 인접해 있다. 체부동잔치집과 경동맛집 이외도 수많은 맛집이 있는 세종마을 맛집골목에 얼마 전 이프타르(iftar)라는 독특한 할랄음식점이 생겼다.
이프타르는 라마단 기간에 낮 시간의 금식을 마치고 일몰 직후에 하는 첫 번째 식사를 뜻한다. 겉보기와는 달리 내부는 고즈넉한 한옥으로 공간이 넓다. 메뉴는 한식이지만 할랄음식을 표방하는 곳이라 한 번쯤 경험하고픈 곳이다. 주방과 홀 서버가 대부분 이슬람 원주민이다. 개업 날 내부 구경만 했던 기억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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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전설 서린 고석정 맛집 ‘임꺽정가든’
축제 음식 가성비 끝판 왕 ‘해버섯샤브샤브’
매년 1월 철원 한탄강얼음트레킹축제 열려
이번 칼럼은 한국축제포럼 탐방단으로 다녀온 제13회 철원 한탄강얼음트레킹 축제가 열린 강원도 철원군 한탄강이 배경이다. 오랫동안 한탄강은 경기도 연천군이 유명했다. 연천군 전곡리에 있는 한탄강관광지 때문이다. 한탄교와 사랑교 사이 1.5km에 달하는 강변을 개발해 1970년 3월 한탄강유원지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고 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면서 수도권 시민들에게 휴양지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던 한탄강이 남북화해 무드와 관광산업 활성화에 힘입어 상류지역인 철원군과 포천시 권역이 개발되면서 요즘은 연천군보다 더 각광받는 분위기다. 특히 2020년 이들 3개 시군 일대를 지나는 한탄강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유네스코가 정의한 지질공원이란 ‘특별한 과학적 중요성, 희귀성 또는 아름다움을 지닌 지질현장으로서 지질학적 중요성뿐만 아니라 생태학적, 고고학적, 역사적, 문화적 가치도 함께 지니고 있는 지역으로 보전, 교육 및 관광을 통하여 지역경제 발전을 도모함’을 의미한다.
한탄강은 유네스코가 인증한 세계지질공원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가 2010년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지질학적 특성이 국제적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는 계기가 됐다. 현재 제주도를 비롯해 청송, 무등산권, 한탄강, 전북서해안권 등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됐다. 매 4년마다 재인증하는 시스템으로 한탄강은 지난해 그간의 성과로 다시 인증을 받는 데 성공했다.
한탄강세계지질공원에서 철원군의 지질명소는 고석정, 직탕폭포, 삼부연폭포, 샘통(용천수), 소이산(용암대지), 송대소, 평화전망대(용암 기원지) 등 7개소이며, 연천군 10개소, 포천시 10개소(1개소 행정구역 중복 포함) 등 총 26개소다.
철원군은 한탄강을 활용해 물윗길트레킹로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이 지역의 지질학적 특성을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관광자원화에 성공했다. 물윗길 트레킹로는 10월부터 3월까지 직탕폭포에서 순담까지 8.5km 구간으로 부교와 강변길을 걸으며 주상절리, 기암절벽, 봄과 가을에는 야생화를 감상할 수 있다.
고석정 국민관광지 볼거리·먹거리 풍성
이맘때 겨울이면 철원 한탄강얼음트레킹이란 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지난 11일 시작해 이번 주말인 19일까지 열린다. 2013년 소규모로 시작된 축제는 현무암 협곡을 흐르는 한탄강 위 얼음길을 걷는 트레킹이 주요 프로그램이다. 한탄강은 화산폭발로 인해 생긴 국내 유일의 강으로 주변은 현무암 주상절리, 용암평원, 폭포 등 화산지형이 많고 다양한 암석이 분포되어 있어 학술적, 지질학적 가치뿐 아니라 경관자원으로도 활용도가 크다.
트레킹 코스는 한탄강 직탕폭포부터, 태봉대교, 승일교(주 행사장), 고석정, 순담계곡에 이르기까지 총거리가 8.5km이다. 2000만 원이란 소규모 예산으로 시작한 축제가 지금은 5억 원에 달하는 축제로 변모했다. 이는 방문객이 많아지면서 입장료 수입이 늘어났기 때문에 선순환 투자가 이뤄진 결과다. 하지만 축제평가위원 시각에서 볼 때 콘텐츠 보강과 교통편의, 먹거리 코너 확대, 굿즈 개발 등 관람객 만족 차원에서 투자가 좀 더 이뤄져야 한다.
태봉대교 아래서 시작한 트레킹은 그간 포근했던 날씨 탓에 강물이 얼지 않아 아쉽게도 얼음 위를 걷진 못했다. 대신 물윗길 부교와 강변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순담에 다다랐다. 직탕폭포를 보기 위해서 태봉대교에서 상류로 500m가량 거슬러 올라야 하는데 이번 트레킹에선 이를 생략하고 곧바로 하류로 향했다. 트레킹 3분의 2 지점인 승일교와 한탄대교 아래는 메인 무대가 설치돼 있어서 트레킹 대신 오롯이 즐길거리, 볼거리, 먹거리만 즐길 수도 있다.
트레킹로 중간중간 어묵탕과 컵라면, 커피 등을 파는 간이매점에서는 따뜻한 음식을 팔고 있어 언 몸을 데우기 좋았다. 어묵 한 꼬치 가격이 1천 원, 철원 특산품인 오대쌀로 만든 국수, 떡국이 각각 4천 원, 5천 원 등 축제 음식치곤 매우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됐다.
철원 대표 맛집 손맛 고스란히 축제장으로
축제를 망치는 첫 번째 원흉(?)이 바가지요금의 음식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축제 음식은 칭찬할만하다. 비록 규모가 크지 않지만 따뜻한 공간의 식당과 겹치지 않는 적절한 메뉴, 다회용기 사용 등 변화하는 축제 모습을 잘 대변했다.
이번 축제장에서 깜짝 놀랄만한 음식을 접했다. 축제장 식당 첫 번째 부스에 입점해 있는 ‘해버섯샤브샤브’의 전(煎) 요리다. 원래는 행사장에서 4km 정도 떨어진 43번 국도변에서 100% 예약제로 운영하는 샤부샤부 전문식당이다.
샤부샤부에는 팽이, 만가닥, 표고, 목이, 느타리, 황금, 새송이버섯 등 다양한 버섯에 질 좋은 소고기를 한 바구니 내준다. 육수도 각종 한약재를 우려서 웅숭깊은 맛을 낸다. 곁들이는 메뉴로 감자전을 제공하는데 가성비가 좋기로 유명하다. 각종 묵나물 무침과 김치류 등 밑반찬도 모두 이혜숙 대표가 손수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이번 축제 식당 부스에도 직접 나와 다섯 가지 부침요리와 우리밀 박수제비, 호박죽 등을 선보였다. 필자 일행은 물경 40여분을 줄 서서 기다려 감자전, 김치전, 버섯전을 맛봤는데 맛과 가격이 가성비를 뛰어넘어 ‘갓성비’를 자랑한다. 파전, 배주천 등 다섯 종류 전 가격이 일괄 1만 원으로 필자 나름의 체감가격은 각 1만 2000원, 1만 5천 원원, 2만 원 정도 받아도 불만 없는 압도적 맛과 양이다. 축제장에서 다양한 고급 버섯이 섞인 버섯전을 맛볼 수 있는 배경에는 샤부샤부 전문점을 경영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대표는 지역 인재 육성을 위해 장학금을 쾌척하는 등 손맛만큼이나 철원에 대한 애향심이 남다르다.
한 뼘 넘는 빠가사리·메기의 깊은 맛
개인적으로 철원 한탄강트레킹의 경관 ‘원픽’은 고석정이다. 고석정은 아파트 5층 높이인 약 15m로 돌출된 화강암 노두가 관찰된다. 이는 기반암인 화강암을 현무암질 용암이 고수로와 함께 메운 후 한탄강의 새로운 물길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암석 접촉부를 침식해 만들어졌다. 고석정 일대는 기반암인 화강암이 현무암에 의해 부정합으로 덮여있는 모습을 광범위하게 관찰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남북이 각각 교량공사에 참여해 완공한 철원승일교다. 역사적 가치와 스토리가 재미있는 국가등록문화재다.
고석정의 뛰어난 경관은 많은 드라마와 영화 무대로 활용되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이곳은 16세기 중엽 의적으로 활동한 임꺽정이 은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면서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고석정 일대는 국민관광지이면서 철원군의 ‘고석정 오대미 외식지구’로도 지정돼 있다. 20여 곳의 맛집이 저마다 손맛을 자랑하고 있다. 이번 탐방에서는 임꺽정 전설을 담은 ‘임꺽정가든’이란 민물 매운탕 전문점에서 만찬을 열었다.
임꺽정가든은 쏘가리회와 매운탕, 빠가사리(동자개), 메기, 한탄강서 잡은 잡고기 등으로 매운탕을 제공하는 민물매운탕 전문점이다. 이날은 빠가사리와 메기를 섞은 매운탕을 주문하고 도토리묵을 곁들였다. 국자로 매운탕 안쪽을 헤집으니 어른 한 뼘 크기의 배가 샛노란 빠가사리가 보였다.
지금까지 빠가사리 매운탕 집에서 보던 크기와 사뭇 다른 역대급이다. 일반적으로 어류는 클수록 제 맛이다. 육수도 따로 진하게 내려서 모자라면 연신 채워 준다. 단체 손님들에겐 미나리를 특별히 많이 제공해 준다. 좋은 마케팅 정책이다. 곁들인 도토리묵 역시 탱탱한 식감의 묵과 좋은 참기름, 갖은 채소를 썰어 넣어 ‘도토리묵 계의 에르메스’를 시전 했다. 일반적으로 상추나 깻잎 정도 넣은 도토리묵과 달리 쑥갓, 당근, 오이, 양파 등 다채로운 채소가 녹록지 않은 솜씨의 양념과 어우러져 맛에 맛을 더했다. 너무 맛있어서 남은 도토리묵을 포장해 왔다. 믿기 힘들겠지만 하루 지나 더 맛있게 먹었다.
철원군 한탄강의 매력을 한껏 접할 수 있는 겨울 얼음트레킹 축제. 대행사 아트카오스 이성욱 총감독의 노련하고 짜임새 있는 운영으로 벌거리, 즐길거리가 풍성했다. 또 축제장 안팎으로 참 맛있는 미식 경험을 할 수 있어 좋은 추억으로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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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강릉과 파주를 연이어 여행할 기회가 생겼다. 반도의 동쪽 끝 강릉과 서쪽 끝자락 파주까지는 193km 떨어져 있지만 도시 여행자에게는 거리가 문제 되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서울서 훨씬 먼 강릉은 당일치기로, 파주는 1박 2일로 다녀온 이야기로 2025년 새해를 열어 본다.
당일치기 강릉행은 벤츠 공식 딜러사인 더 클래스 효성이 제공한 스타크루저를 타고 다녀왔다. 스타크루저는 더 클래스 효성이 고객 서비스 일환으로 운영하는 20인승 고급 리무진 버스다. VIP 고객의 이동 편의를 제공하거나 행사에 특별히 투입되는 차량이다. 편안한 좌석과 넓은 공간이 특징으로 좌석이 거의 수평에 가까울 정도로 펴진다.
조동범 작가가 꾸린 강릉문화답사단
시인인 조동범 작가가 차량을 섭외해 문우(文友)들과 강릉문화답사단을 꾸렸다. 사당역에서 오전 9시에 출발한 차량은 세 시간 가까이 달려 평창군 대관령면에 있는 남경식당에 도착했다. 시원한 대형 창을 가진 남경식당은 여름엔 막국수, 겨울엔 꿩 만둣국에 주력하는 곳이다. 막국수와 꿩 만둣국은 강원도 대표 음식이다. 특히 꿩 만둣국과 꿩 칼국수는 평창을 본고장으로 친다.
평창은 겨울에 꿩이 많아 사냥이 활발했던 곳으로 이를 활용한 음식 문화가 자리 잡았다. 꿩고기로 낸 육수에 칼국수를 넣어 끓이는 꿩국수와 꿩고기를 넣어 빚은 만두와 함께 끓여내는 꿩 만둣국이 발달했다. 메밀과 꿩의 슴슴한 맛의 조화가 척박한 강원도 겨울 날씨에 훈기를 불어넣었다.
이날 답사단과 스타크루저 기사까지 모두 21명 중 대부분이 꿩 만둣국을 주문했고 필자 포함 단 두 명은 마치 ‘얼죽아’처럼 살얼음 육수를 기대하고 막국수를 선택했다. 꿩 만둣국에는 만두가 상당량 들어가 여성들은 한 그릇 비우기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필자는 오래전 강릉과 제주에서 꿩 만둣국을 맛본 후 주문을 피하는 메뉴다. 평이한 육수와 만두 맛 때문에 미식의 즐거움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국수를 선택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역시 강원도 특유의 맛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출발 직전까지 점심식사 식당이 정해지지 않아 명주 상회 근처 맛집을 잔뜩 찾아 놓은 수고가 더욱 아쉬운 순간이었다.
강릉 옛 지명 명주를 사랑한 이정임 작가
서둘러 점심을 먹고 이날 주요 목적지인 명주상회에 도착했다. 명주는 강릉의 옛 지명이다. 이곳은 강릉 태생 이정임 작가가 꾸려 가는 여행자의 쉼터이자 작은 문화 공유공간이다. 아울러 밀크티의 인도 버전인 짜이를 맛볼 수 있는 아담한 카페이기도 하다.
이 작가는 지난해 여름 ‘내가 좋아하는 것들, 강릉’이란 에세이집을 펴냈다. 그는 책 자기소개에 청년 시절 잠시 강릉을 떠났다 돌아온 이후 줄곧 시민운동가로 살았다고 적고 있다. 평생을 살아온 강릉이지만 지금도 알아 가는 중이라며 자신 안에 담긴 강릉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답사단 20명이 들어서자 명주상회는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작고 아담한 공간을 짜이의 달근한 향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벽에는 인도에서 가져온 여러 소품과 짜이와 작가의 책 등이 어우러져 이국적 분위기를 더했다. 이 작가가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한 잔씩 따라서 답사단을 대접했고 조동범 작가 진행으로 작은 북토크가 진행됐다.
각종 향신료의 이국적 맛 짜이
이 작가는 명주상회를 기반으로 짜이 마니아층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짜이는 인도 국민 차(茶)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향신료를 첨가한 밀크티다. 짜이는 힌디어로 차를 의미한다. 특히 마살라 짜이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홍차·우유·설탕·각종 향신료가 주재료다. 인도에서 짜이는 하루 여러 번 마시는 일상 음료다. 각 지역과 집마다 독특한 조리법과 향신료 조합이 있는 것이 우리네 다방 커피와 비슷하다. 인도 길거리 노점에서는 짜이왈라라고 불리는 차 판매원이 따뜻한 짜이를 종이컵이나 작은 유리잔에 담아 판매한다.
명주상회 짜이는 홍차·카다멈·클로브·시나몬·진저·블랙페퍼·스투아니스·넛맥·베이리프·히말라야솔트 등의 조합으로 맛을 낸다. 반은 알고 반은 모르는 향신료 이름이다. 인도는 역시 향신료의 나라답다. 짜이는 아주 달디 단 밀크티에 다양한 향신료 맛이 혀의 이곳저곳을 자극하는 맛이다. 겨울철 몸을 데우기에 딱 좋은 차다. 여름엔 아이스로 마시면 더위를 식힐 수 있을 것이니 아메리카노 커피와 다를 바 없다.
일정상 명주상회의 짧은 북토크를 마치고 이 작가의 안내로 허난설헌 생가와 경포호를 둘러봤고 강문해변을 자유롭게 산책했다. 경포대·오죽헌·소금강·정동진·선교장·대관령 자연 휴양림·강릉단오제·경포도립공원이 강릉 8경이라는데 지역이 너무 넓어 두어 곳 보기도 버거울 정도다. 그나마 제1경 경포대를 멀리서나마 본 것을 위안 삼는다. 강문해변에 있는 분식점 강문분식에서 막걸리에 곁들인 튀김의 기름지고 고소한 여운이 입안에 오래 남는다.
국립민속박물관파주관 인근 맛집
필자는 서울로 돌아와 잠시 눈을 붙이고 다음 날 파주로 도보 문화답사를 떠났다. 이번엔 꼭 둘러보고 싶었던 곳을 찾아 개인적으로 움직였다. 합정역에서 2200번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리면 파주 맛고을 입구에 다다른다. 이곳은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3월3일까지 ‘수장고 산책·문자 한 바퀴’가 전시되고 있다. 개방형 수장고를 활용한 시원한 전시 기법으로 보다 많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도자기·단지·금박함·나전, 등잔·저울추 등 각종 생활용품 속에 담겨 있는 문자의 재발견을 소구하고 있다. 박물관 맞은편 전통 건축 부재 보존센터에는 운현궁에 있었던 아재당을 복원시켜 놓아서 볼 만하다.
점심시간이 됐기에 파주 맛고을 초입에 있는 코다리 요리 전문점 ‘황금 코다리 헤이리점’으로 향했다. 산등성 끝 둔덕에 현대식 한옥을 지었는데 향(向)이 좋아 정오 햇살이 실내로 한껏 들이닥친다. 특이하게 흘러간 60·70년대 올드 팝송이 잔잔히 깔려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손님 연령대가 음악과 딱 맞아떨어진다.
코다리 작은 접시는 맛과 양을 보니 가성비가 좋다. 게다가 막걸리 첫 주전자는 공짜로 제공되기 때문에 반주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매력적인 서비스다. 밥과 국수를 선택할 수 있는데 각각 하나씩 주문해서 다양하게 맛보길 추천한다.
비빔국수에 싸 먹는 숯불닭갈비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파주 장단콩 웰빙마을과 검단사를 거쳐 파주프리미엄아울렛까지 둘러본 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장준하 공원과 묘소를 들렀다. 도보 답사의 한계상 멀리는 못 가지만 아기자기하게 둘러볼 수 있어서 좋다. 이번 파주 여정도 그런 면에서 좋은 코스였다. 숙소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저녁 식사를 위해 생활의 달인 2관왕으로 숯불닭갈비와 비빔국수를 전문으로 하는 ‘고구려최강달인의집’을 찾았다.
간장과 고추장 양념 닭갈비를 각 1인분씩 시켜서 맛을 본 후 두 번째 주문은 간장 닭갈비로 의견 일치를 봤다. 사장님은 비빔국수에 싸 먹어야 제맛이라고 권했지만 고기로 배를 채우겠단 욕심 때문에 그리하지 않고 닭갈비만 연신 먹어댔다.
닭이 실해서 배는 불렀지만 아쉬움이 남는 맛이다. 역시 권유대로 국수에 싸서 육쌈을 했어야 맞다. 또 닭은 뼈를 발라내고 네 조각이 나오도록 큼지막하게 잘라야 제맛이다. 이 또한 사장님이 강조한 맛있게 먹는 방법 중 하나다.
서비스로 내준 더덕을 구워 숯불 향이 은근하게 밴 닭갈비와 함께 입안에 넣으면 식감과 식향의 변주가 좋다. 사장님의 구수한 입담과 적극적인 서비스가 인상적인 곳이다. 달인이란 자부심이 음식에 묻어난다. 닭갈비가 고소하고 노릇하게 숯불에 구워지면서 파주의 밤도 덩달아 깊어 갔다. 2025년 올해도 다양한 지역 ‘문화+맛집’ 답사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갈 예정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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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百서 창신동까지 박수근 로드 답사
문구도매골목 한쪽 수줍은 듯 숨은 맛집
진짜 ‘돼지갈비’만 파는 고깃집 ‘동문갈비’
미석(美石). 화가 박수근(1914-1965)의 호다. 예술적 철학을 표현하고 삶의 단단함과 그림의 서민적 아름다움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박수근은 강원도 양구에서 출생해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다. 1932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조선미술전람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와 같은 관전(官展)에 출품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광복 이전에는 주로 농가 풍경과 여인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이러한 모티프를 일관되게 이어오다가 한국전쟁 이후에는 미군 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리며 어렵게 생활하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똬리를 튼 그에게 거리 풍경과 서민들의 일상은 작품의 주된 소재가 됐다. 화면에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해 화강암과 같은 질감을 내는 그의 화풍은 매우 독자적이고 창의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미석이란 호는 작품 스타일과 그의 인생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박수근은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화가다. 반대로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는 주춤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박수근은 미술사가들이나 비평가들에 의해 해석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박수근이란 틀에서 벗어나 그의 일생과 작품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있었다.
신세계~창신동 집터까지 예술다양성 답사
예술전문지 데일리아트 한이수 대표가 지난달 30일 박수근이 활동했던 신세계백화점 본점(신세계스퀘어)부터 종로구 창신동 집터까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예술 다양성에 대한 답사를 이끌었다. 신세계백화점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 미츠코시 경성지점으로 지어진 르네상스식 건물이다. 해방 후 동화백화점이었다가 한국전쟁 때는 미군 PX로 사용됐다. 1963년부터 신세계백화점으로 개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곳은 건축가이자 소설가 이상의 작품 '날개', 여류 소설가 박완서의 ‘나목’에도 등장하는 주요한 글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나목에서 주인공 이경(이름이 외자라 경아라 불림)은 미8군 PX 초상화부 점원이다. 화가 옥희도는 미군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서 생계를 유지했다. 이경과 옥희도는 서로에게 연정을 품었지만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경은 결혼 후 두 자녀를 낳고 살다가 어느 날 옥희도의 유작전 기사를 보고 전시회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옛날 옥희도의 집에서 봤던 그림이 고목이 아닌 나목이란 사실을 알고 소설은 끝을 맺는다. 박완서는 ‘나목’ 헌사에서 ‘이 소설은 내가 사랑했던 한 화가의 삶을 더듬어본 것이다.’라고 적었다. 두 사람은 실제 1951년 겨울 미8군 PX에서 처음 만난다. 로맨스가 있었는지는 고인이 된 두 사람만이 알 일이다.
지난 2021년 겨울부터 2024년 3월 봄까지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린 박수근의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전시회 추억이 소환된다. 전시회에는 회화 작품 수 100여 점과 자료 200여 점 등이 나와 박수근을 가장 폭넓게 접할 수 있었다. 당시 필자는 세 차례나 전시회를 찾아 감동을 덧쌓았던 기억이 남아 있다. ‘나목’은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참혹한 시대에 곤궁한 생활을 이어나간 사람들,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고 찬란한 예술을 꽃피운 박수근을 상징한다.
‘나무’는 곤궁을 이겨낸 화가 상징
박수근은 12세 때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을 보고 감동을 받아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부친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기울면서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박수근은 초등학교 담임인 오득영 선생님의 격려를 받으면서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했고 18세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했다.
박수근은 1953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특선을 하면서 화단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국전, 대한미술협회전, 현대작가초대미술전 등 중요 전람회에 참여하면서 중견 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미대 학출도 아니고 당시 유행하는 그림을 그리지도 않았지만 진솔한 소재를 선택하고 개성 있는 화법을 구사해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한이수 대표는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서 그림만 그리며 사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미군 PX에서 초상화가로 일했고 용산 미군부대에서 전시를 열고 그림을 팔았다”라고 설명했다. 또 “미국 개인전을 제안받고 열심히 준비했지만 병으로 갑자기 타계하면서 꿈을 이루지 못했다. PX 초상화부에서 함께 일했던 박완서가 훗날 소설가가 되어 박수근이 참혹한 시절을 얼마나 묵묵히 견뎌냈는가를 기록한 것이 나목”이라고 말했다.
한국전쟁 때 박수근은 남한으로 피난을 내려왔다. 전쟁 전 강원도 양구는 38도선 이북이었다. 종로구 창신동에 정착한 10년 동안은 그가 화가로서 가장 전성기를 누린 시간이었다. 판잣집이 즐비한 창신동 골목길은 좁고 시끄러웠지만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이웃들은 단단하고 따뜻했다. 이때 그린 ‘창신동 기와집’은 그가 살던 창신동 집을 포대종이 위에 연필과 크레용을 사용해 그린 사실적 작품이다.
비평가들은 이 당시 박수근의 그림에 대해 ‘참혹한 전쟁이 지나가고 폐허가 된 서울에서 강인하게 삶을 이어나가는 이웃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그림에 새겨 넣었다’고 표현했다. 비평가들은 박수근을 ‘서양의 유화를 한국적으로 잘 해석한 화가’라는 평가도 했다. 답사팀은 2층 높이의 크리스마스트리가 서 있는 롯데호텔 앞에 멈춰 섰다. 이곳은 과거 반도호텔과 그 안에 반도화랑이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은 반도화랑을 통해 박수근의 작품을 구매했다고 한다.
박수근은 창신동의 시장 풍경과 길가에서 노는 아이들, 시장을 오가는 여인들, 휴식을 취하는 노인 모습 등 전후 서울살이에 고단한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삼았다. 그는 그림 전체에 온기를 불어넣는 온화한 색조, 둥글고 부드러운 형태감,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시선 등에서 대상에 대한 작가의 따스한 애정을 담았다. 답사팀은 박수근 집터와 그가 다녔던 동신교회, 그리고 여전히 1950년대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창신동 뒷골목을 누비고 일정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필자가 두 번에 걸쳐 사전 답사한 ‘동문갈비’로 향했다.
동대문 밖 첫 동네 창신동 돼지갈비 맛집
동문갈비 상호는 말 그대로 ‘동쪽 문’, 즉 동대문 쪽에 있는 갈빗집이란 의미다. 동문갈비가 있는 창신동은 동대문 밖 첫 동네다. 문구도매상가가 밀집해 있는 골목 안쪽에 보일락 말락 부끄러운 듯 동문갈비가 들어서 있다. 처음 찾을 때는 살짝 헤맬 수도 있는 골목 구조다.
일단 이 식당은 알려주기 싫은 숨은 맛집이다. 네이버 스마트플레이스 리뷰가 극히 적어 맛이 없는 곳인가 싶겠지만 접해 보면 신세계다. 초로의 부부가 다정하게 운영하는 곳이다. 홀과 숯불을 담당하는 남 사장님은 주방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여 사장님이 오순도순 장사를 하신다. 홀 한 구석에는 ‘해병대231기서울동기회’ 빨간색 목간판이 서있다. 남 사장님이 1970년 231기로 해병대를 입대했다고 한다.
종업원이 따로 없기에 바쁠 때는 손님들이 눈치껏 무상 ‘알바’를 해야 한다. 신세계에서 창신동까지 예술다양성 답사 후 식후경하기 위해 맛을 보고 예약도 할 겸 사전 답사도 두 번 하고 답사 당일까지 총 세 번을 다녀왔다. 첫날은 돼지갈비가 떨어져 동태탕을 먹었다. 없는 메뉴도 해 달라고 하면 가능하고 모든 반찬을 직접 만들어서 자주 바꿔주니 집밥 대접 느낌을 받는 곳이다.
돼지갈비는 간이 심심한 것이 오래전 접했던 원조 양념 맛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찾아 헤맨 맛이던가! 더욱 중요한 사실은 갈비 붙은 살 아니면 절대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구리 부위도 있지만 돼지갈비 판다고 써놓고 접착갈비나 목살을 내놓는 곳에 비하면 ‘돼갈천국’이다. 게다가 가격이 비현실적 실화인 1인분 300g 1만5000원이아리! 가성비가 ‘갑 오브 갑’이다.
밑반찬도 경기 음식 기반으로 차분하고 맛깔스럽다. 여 사장님 고향이 경기도 용인이다. 그래서 간이 세지 않다. 경기 음식은 과거부터 궁중음식이 확산돼 맛이 구축된지라 고급진 맛도 있다. 물은 생수병의 찬물은 물론 따뜻한 주전자 숭늉을 제공해 겨울 식객의 언 손을 녹여준다.
넉넉한 인심과 친절, 맛있는 음식은 필자가 추구하는 좋은 가성비의 최고 맛집이다. 현재 자리에 정착한 지는 불과 3년, 업력이 짧아 보이지만 이전에는 성북구에서 크게 음식점을 했다고 한다. 지금 양념돼지갈비 레시피는 그때 주방실장한테 배운 것이다.
이전에 갈비를 먹으러 갔으나 이틀간 휴무로 인해 재고가 없어서 동태탕을 먹었는데 그것도 만점이다. 점심식사는 동네 일하시는 분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이모카세’도 시전 한다. 구수한 청국장 베이스의 2000원짜리 된장찌개는 필수다. 공깃밥은 한 그릇 값에 양껏 퍼다 먹어도 눈치 주지 않는다. 박수근이 살면서 접했던 정과 따뜻한 시선이 머무는 느낌이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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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문화유산 보유도시 자긍심
식당 두 곳 잘못된 영업행위에 상처
맛있고 인심 좋은 ‘두부고을’서 위로
서울서 경기도 수원은 가깝고도 멀다.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발길이 잘 가지 않아서 멀게 느껴져서다. 특별한 연고도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천, 부천 등 경인선 라인도 마찬가지다. 등하불명이라고 가까운 곳이라 발길을 소홀히 한 것이 아닌지 약간의 반성도 된다.
오랜만에 수원행을 했다. 그것도 무려 1박 2일 일정으로. 오후 느지막이 도착했기에 하루 더 머물면서 야무지게 보고 오잔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도보 여행자의 이동시간 한계 때문에 내린 결정이다. 결과적으로 잘했다 싶다.
첫날 오후 3시 반경 지하철로 수원역에 닿았다. 수원역은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했다. 내년이면 120년 역사를 가진 오랜 기차역이다.
역 남쪽에는 콘크리트로 지은 대형 급수탑과 붉은 벽돌의 소형 급수탑이 남아 있다. 이는 각각 증기기관의 표준궤와 협궤열차에 물을 채우기 위해 만든 구조물로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되면서 수원역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수원역~화홍문 화성순성 반나절 코스
오늘 목적지는 수원역에서부터 수원화성 화홍문, 수류방화정까지다. 순성(巡城)을 하기 때문에 도보만이 가능하다. 수원역을 출발해 먼저 건너편에 있는 매산시장을 한 바퀴 둘러본다. 매산시장의 이름은 팔달산 자락인 이 지역에 매화나무가 많이 자란 데서 유래했다. 매산시장의 마스코트 역시 매화에서 따온 매화소녀다. 매산시장은 복개천 위에 자연스레 형성된 전형적인 전통시장이다.
매산시장을 둘러본 후 중심도로인 매산로의 이면 향교로를 따라 수원향교로 향한다. 향교로는 아카데믹한 도로명과 달리 먹자골목이 길게 형성돼 있다. 먹자골목이 끝날 무렵 매산초등학교가 나오고 바로 옆이 수원향교다. 1291년(고려 충렬왕 17)에 화성군 봉담면 와우리에 세운 것을 1789년(조선 정조 13)에 수원성곽을 축성하면서 이축했다. 배치는 향교의 가장 전형인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이다.
수원향교 옆 계단을 이용해 중산간으로 오르면 수원시민회관과 중앙도서관이 있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접근도가 참 안 좋단 생각을 하면서 지석묘군 쪽으로 오른다. 철제 울타리를 쳐 놓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법한 돌무더기가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라니. 이를 찾아낸 사람의 안목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유물이다.
지석묘군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니 수원화성 성벽이 보이기 시작한다. 서남각루 지역이다. 이 지역에선 보기 드문 용도(甬道)를 만날 수 있다. 용도는 양쪽을 담으로 쌓은 좁은 길을 말하는 데 서남각루에서 서남암문까지 이르는 길이다. 성안에 무기나 양곡을 운반하거나 군사들이 매복을 서기 위해 낸 길이다.
성 밖을 돌다가 수원화성 관광안내소가 나타나면 성 안쪽으로 접어들어 화성의 가장 높은 화성장대에 이르면 앞뒤로 멋진 풍광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을 지나 서남각루로 향하는데 서쪽으로 해가 떨어진다. 서남각루부터 화서문, 서북공심돈까지 성 밖으로는 펼쳐진 억새밭과 그 위로 펼쳐지는 해거름 석양이 일품이다. 젊은 남녀들은 이곳에서 낙조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성 안 길은 걷기 편하고 볼거리도 많다. 서북공심돈부터 장안문까지는 카페가 즐비하고 연인들이 성곽 둔덕에 앉아 어깨를 맞대고 도란도란 밀어를 나눈다. 멀리 지붕이 희한하게 생긴 건물이 있어 유심히 보니 책고집이란 간판의 작은 도서관이었다.
노숙자를 위한 인문학 강연으로 사회공익에 기여했던 거리 인문학자 최준영 씨가 운영하는 곳이다. 요즘도 북토크를 지속적으로 열고 있다. 지나면서 책고집의 발전을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장안문 동북적대를 지나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화홍문과 수류방화정이 나온다. 이곳에 도달할 무렵 땅거미가 지고 성벽으로 조명이 비치면 수원화성의 새로운 모습인 아름다운 야경이 펼쳐진다.
수원화성은 축성 초기 현재의 모습보다 더욱 아름다웠다. 수원화성은 일제강점기 근대화 명목으로 훼철되고 한국전쟁으로 많은 부분 훼손된 채 방치됐다. 1976년~1979년 화성복원정화사업(화성성곽복원)으로 재정비됐다.
1989년 화성행궁복원추진위원회가 창립되고 1996~2002년 6여 년에 걸쳐 행궁복원이 이루어졌다. 1997년 12월 4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현재까지도 미복원시설에 대한 복원과 정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수원화성은 수원의 보물 중 보물이다. 반나절 답사탐방을 마감하고 배를 채울 시간이다.
수원에서 마주했던 민폐 식당 두 곳
예정했던 화홍문 인근 갈빗집은 주말엔 돼지갈비를 팔지 않고 비싼 소고기 위주만 제공한다고 해서 ‘패싱’했다. 돈이 없어 안 먹었다기보다 입맛이 똑 떨어졌다. 아니 어쩌면 멀리서 온 손님이 식당으로부터 패싱 당한 꼴일 수도 있겠다 싶어 입맛이 씁쓸했다. 업주와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닌지라 아무 소리 안 하고 발길을 돌렸다.
뒤이어 찾은 식당은 왕갈비, 수제돼지갈비 전문이란 커다란 간판을 달고 있어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게다가 최고의 맛집이라고 자랑하기에 지나칠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돼지갈비는 역시 갈비가 아닌 목살이 나와 돼지구이가 됐다. 대부분 식당이 돼지갈비라고 쓰고 갈비가 아닌 부위를 파는 요즘이라 별 이상할 것도 없지만 이참에 가격을 달리해 갈비와 구이를 구분해 팔면 어떨까 싶다.
1만 원 하는 차돌된장은 가성비가 떨어지고 다행히 새로 지어 온 밥은 좋은 쌀을 써서 밥맛이 구수하니 좋았다. 다만 이 식당은 파김치, 무생채 등 몇 가지 밑반찬을 재사용하는 것으로 목격돼 충격을 줬다. 이제 갓 업력 3년 차 식당 주인의 작은 욕심이 나중에 큰 화를 부를 것 같아 우려됐다. 음식물을 재사용하다 적발되면 영업정지를 당하는 데 1차 15일, 2차 2개월, 3차 3개월이다.
수원먹거리 양대산맥 ‘통닭거리’
더는 수원 식당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잠을 청하러 가는 길에 수원통닭거리를 지나는데 관광객이 죄 이곳에 몰려 있는 것 같이 통닭집마다 인산인해다. 수원통닭은 수원갈비와 함께 수원을 대표하는 먹거리 양대산맥이다.
통닭거리 원조는 매향통닭으로 통닭거리 첫 집이다. 이곳을 시작으로 진미통닭, 용성통닭, 남문통닭, 대봉통닭, 장안통닭, 중앙치킨타운 등 수 십 년 동안 형성된 통닭집들이 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과거에는 통닭거리축제까지 열었지만 점포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축제는 사라졌다. 그러나 수원을 상징하는 대표 먹거리 자리는 수원화성처럼 여전히 공고하다.
통닭거리 대표주자는 매향통닭은 1970년 개업해 한 가지 메뉴로만 54년째 영업해 오고 있다. 매향통닭 같이 오리지널 옛날통닭을 튀겨내는 곳도 있지만 프라이드, 양념 같은 치킨집도 성행이다.
화서시장 인근 두부요리 전문점
이튿날 숙소를 나와 인근 화서공원 억새에 눈부시게 부서지는 햇살을 만끽하고 수원역 방향으로 걷다가 화서시장을 만났다. 1980년 개설된 깔끔한 시장이 좋은 인상으로 다가왔다. 시장을 오래도록 지켜 온 ‘할머니김치’의 무청김치가 입맛을 한껏 자극했다. 시장을 둘러본 후 인근에 있는 30년 가까운 업력의 향토음식 두부요리전문점 ‘두부고을‘로 향했다.
주말 점심시간대에 단체 손님이 들고 붐비는 식당은 동네 맛집일 가능성이 크다. 이날도 21명 규모 단체 손님과 여러 식객들이 식당을 꽉 채웠다. 식당이 잘 되는 이유는 여럿 있지만 필자는 맛과 친절의 밸런스라고 생각한다. 물론 위생, 입지 등도 변수지만 누가 뭐래도 맛은 불변의 진리다. 여기에 주인과 종업원의 친절한 서비스가 더해지면 식당은 입소문을 타고 맛집이 된다.
수원 화서동의 두부고을 역시 그런 곳이 아닐까 싶다. 인상 좋은 부부가 부지런히 홀을 오가며 친근한 미소로 접객을 한다. 손이 모자랄 경우 손맛만 보여 주던 주방 찬모까지 홀 서빙을 도우며 손을 보탠다. 찬모의 부지런함은 밑반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만든 것이 없고 양념 밸런스가 모두 제 맛이다.
청포묵과 호박전은 따뜻하게 제공됐고 나머지 반찬들 역시 적당량이 담겨 나왔다. 제대로 우려낸 육수의 두부버섯전골은 큼지막한 두부를 뭉텅 썰어 넣고 갖은 버섯을 먹기 좋게 잘게 찢어서 나온다. 옆 테이블을 보니 코다리조림, 연잎밥보쌈 등도 많이들 찾는다. 전날 두 식당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를 두부고을에서 따끈하게 위로받았다. 막걸리 가격도 착해서 꼭 공유하고 싶은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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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의 계절이 왔건만 색깔이 예전만 못하다. 비도 오고 일교차가 커야하는데 아직도 도시에는 반팔을 입고 돌아다니는 시민들이 눈에 띌 정도로 기후변화 때문에 단풍이 완전치 못하다.
2020년 이 무렵 썼던 칼럼을 보면 “연일 올라오는 설악산, 지리산, 내장산의 단풍은 도시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거대한 산은 여름이 남긴 녹색과 자연의 신비로운 변화인 선홍과 황금색이 울긋불긋 어우러진 황홀한 채색화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거대한 자연과 변화무쌍한 색에 압도당한 눈은 고양이 눈처럼 동그랗게 커졌고 입에선 탄성이 절로 나왔다. 엉덩이가 들썩이고 다리가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했다.”고 적고 있다.
서울의 단풍은 창덕궁 후원이 갑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인원 통제와 시간제한 등 관람이 자유롭지 못해 발걸음 하는데 걸림이 된다. 답은 의외로 가까이 있다. 바로 창경궁이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접해 있어서 단풍이 창덕궁 못지않게 수려하다.
특히 현 춘당지는 원래 창덕궁과 창경궁이 공유하는 후원 권역이었다. 일제는 춘당대 앞 친경적전(積田)을 하는 귄농장 자리에 창덕궁을 둘러싼 언덕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냇물을 모아 연못을 파고 춘당지라고 이름 붙였다.
관덕정 노루꼬리만한 단풍으로 만족
창덕궁과 창경궁 일대를 세밀하게 그린 동궐도(東闕圖)를 보면 창경궁 춘당지 자리에 열한 배미의 논자리가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 농경지는 일제가 1907년에서 1909년 사이에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만들면서 사라지게 된다.
원래 옛날 춘당지는 창덕궁 쪽 절벽인 춘당대와 짝을 이룬 연못이었다. 지금은 담장으로 창덕궁과 창경궁이 나뉘어 있는데 현재 소춘당지가 원래 옛날에 춘당지로 불린 곳이다. 일제가 내농포에 속한 11개 논을 하나의 연못으로 만들면서 생겨난 것을 지금은 춘당지(대춘당지)라고 부른다.
일제는 이곳에 놀잇배를 띄우고 주변 경관을 사쿠라(벚꽃)로 채웠다. 해방 후에도 온갖 놀이 시설이 들어섰고 1980년 대 들어서야 복원에 들어가 주변을 버드나무와 소나무 등 전통 수목으로 바꿨다. 그러나 여전히 내농포는 춘당지 속에 수몰돼 있다.
궁궐 후원에 논과 밭을 조성하고 군주가 친경의 모습을 보인 역사는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사례다. 이는 조선의 독자적인 궁궐 문화로 애민농본의 전형이다. 아울러 이미 오래전부터 궁궐에서 왕실의 주도로 다양한 농업 활동이 전개됐다는 점은 현대 도시농업의 효시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역사가 배어있는 창경궁 춘당지와 대온실 영역을 찾은 날, 가을이 꽤나 깊었다. ‘10말11초’가 창경궁 단풍 피크인데 올해는 달랐다. 창경궁은 이미 창덕궁과 더불어 단풍 성지로 이름나 있다. 그래선지 11월초 찾은 이날도 많은 사람들이 붐볐다. 창경궁에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이왕가박물관 터가 있다. 지금은 철거되고 남은 부재만 약간 쌓여있을 뿐 옛 모습을 알 수가 없다. 이 지역도 개방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왕가박물관은 일제가 창경궁 명정전 일원에 식물원, 동물원을 지으면서 박물관도 함께 만들었다. 1911년에는 일본식 연와건물의 박물관 본관을 신축, 이듬해 낙성식을 가졌다. 박물관 본관은 이왕가박물관이 1938년 덕수궁의 이왕가 미술관으로 옮겨가면서 장서각으로 이용되다가 1992년 해체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창경궁은 춘당지 주변 단풍이 압권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고 손명순 여사가 좋아했던 단풍이라고 한다. 춘당지 옆 큰 단풍나무 아래서는 나무를 올려다보고는 탄성을 터트릴 정도였다고 한다. 올해는 아직 단풍이 덜 든채 푸른 단풍나무가 즐비했고 일부는 색을 발하지 못하고 타들어간 모습이었어. 예전엔 그 자리서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붉은 별이 머리 위로 와락 쏟아지는 착각이 들 정도의 장관이었다’고 적었었다.
대방어 11월 ‘시즌 업’ 2월까지 제철
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인지라 경(景)을 했으니 마무리는 식(食)이다. 계절 별미인 방어 철이 다가오고 있어서 의견 일치를 봐서 메뉴를 방어회로 정했다. 방어는 11월부터 2월까지 산란을 위해 몸에 영양을 축적시킨다. 이 시기 방어가 가장 맛있는 이유다.
대방어는 일반적으로 9kg 이상 되는 대물을 말한다. 5kg까지를 소방어, 5~8kg 정도를 중방어라고 한다. 노량진수산시장 같은 곳에서 대방어를 고르는 방법은 몸매가 날렵한 것보다 배가 불룩한 것이 좋다. 그만큼 기름진 뱃살이 잘 발달했다는 증거다. 또 입 꼬리를 잘 살펴서 대방어와 부시리를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대방어는 입 꼬리가 직각 모양, 부시리는 둥글게 발달했다.
방어는 다른 생선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고 지질이 풍부하다. 칼슘, 인, 철, 나트륨, 칼륨 등 무기질도 함유돼 있고 DHA와 EPA, 타우린 등 기능성 물질이 많아 고혈압, 동맥경화, 심근경색, 혈전, 뇌졸중 등 질환을 예방하는 데 좋다.
특히 비타민D가 풍부한데, 이는 한국인에게 부족한 영양소 중 하나다. 식약처 조사 결과 우리나라 남성 86%, 여성 93%가 비타민D 결핍이다. 비타민D는 면역력 증가와 우울증 예방을 위해 꼭 필요한 필수 영양소다. 해가 짧은 겨울철에 특히 더 부족해지기 때문에 겨울 방어는 영양소이기도 하다.
깔끔하고 질서 정연한 담음새 ‘혜화수산’
커다란 간판에 압도적인 큰 글씨의 ‘혜화수산’. 비록 점포는 명륜동에 있지만 ‘혜화수산’이란 이름을 달았다. 명륜보다는 대학로가 있는 혜화가 더 유명하기 때문이다. 창경궁 직원들은 ‘혜화수산’을 많이 이용한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창경궁에서 나와서 혜화동 로터리 쪽으로 걸어 올라오는 길에 회식을 할 만한 식당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혜화수산’은 실내가 넓기 때문에 여럿이 오기 적당한 장점도 있다.
대방어가 날렵하게 해체된 채 접시에 차분히 담겨 나왔다. ‘혜화수산’의 담음새(플레이팅) 특징은 가지런함에 있다. 방어는 물론 농어, 광어 등도 가지런히 질서 있고 보기 좋게 담아낸다. 특히 가마살, 배꼽살, 뱃살, 등살, 사잇살, 꼬리살 등 거의 전 부위 맛을 볼 수 있도록 골고루 담아 내오는 것이 특징이다.
분말을 갠 와사비가 나온다면 한 단계 위 와사비를 주문하면 가져다준다. 개인적 기호일 수 있지만 분말와사비보다는 알갱이가 조금 씹히는 생와사비가 낫다. 물론 진짜 고추냉이를 갈아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서울 대방어 대명사 ‘바다회사랑’
겨울 대방어 하면 손꼽히는 집이 또 있다. 전통의 강자 서교동과 연남동에 있는 ‘바다회사랑’이다. 한 겨울 웨이팅 지옥을 맛보고 싶다면 피크타임 때 ‘바다회사랑’을 가란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는 곳이다. 이곳의 특징은 둥그런 큰 접시에 먹음직스럽게 탑처럼 쌓아주는 것이다.
커다란 레몬 슬라이스 두세 쪽을 대충 회 위에 올려서 내오는 것은 이 집의 트레이드마크다. 썰어 낸 회를 보면 압도적 크기의 대방어 살이다. 배꼽살의 경우 아삭하고 꼬들한 식감이 일품이다.
배꼽살은 대방어의 훈장 같은 부위다. 소방어, 중방어에서 느낄 수 없는 맛이기 때문이다. 밑반찬으로 내주는 마른김을 깔고 회 한점, 묵은지, 밥, 날치알을 차례로 조합해서 싸 먹으면 별미 식사가 되기도 한다.
이달 말이면 제주도 모슬포항에서 최남단대방어축제가 열린다. 제주 현지를 가기로 약속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선지 방어가 물살을 거슬러 힘차게 서울로 향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대방어 ‘벙개’가 내심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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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나들길 7코스 ‘낙조 보러 가는 길’ 팀방
4대 100년 고집스러운 된장맛 ‘편가네된장’
새우양식장 운영 새우구이 전문 ‘장곶횟집’
강화도 나들길을 걷고 싶었다. 더불어 서해 바다 낙조(落照)도 보고 싶었다. 지난해 강화나들길 점검 차 갔던 7코스 ‘낙조 보러 가는 길’을 택했다. 서울 당산역에서 화도면까지 버스로 2시간 넘게 달려갔다.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지만 시간을 투자하기 아깝지 않은 곳이다.
강화대교를 건너 닿는 강화읍에 비해 초지대교를 건너는 화도면은 대중교통으로 접근성이 떨어진다. 반면 강화읍 쪽 보다 한갓지다는 나름의 매력이 있다. 그중 한 곳이 화도면 장화리이고 낙조가 명물이다. 강화나들길 7코스는 강화도의 남쪽 해안중 서쪽 면을 끼고 있다. 가장 서쪽이라 낙조 조망에 최적화된 곳이다.
장화리 낙조마을은 서남쪽 해안을 끼고 발달한 마을로 7코스의 중심이다. 장화리는 길게 뻗어서 발달한 마을이란 의미에서 장곶으로 불리다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재 이름으로 정해졌다. 마을은 신안 주 씨와 김해 김 씨 집성촌이다. 일제 강점기 이 마을 주윤호 선생은 백범 김구를 숨겨주고 독립자금까지 대준 사건이 회자되는 역사를 품은 마을이다.
장화리는 출사지로 유명한 일몰 명소
장화리 낙조가 유명한 이유는 서해안 특유의 넓은 갯벌이 펼쳐진 곳이기 때문이다. 해가 지면서 하늘과 바다, 갯벌이 붉게 물들면서 펼쳐지는 풍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특히 물이 가득 찬 만조 시기에는 석양이 바다에 반사되면서 만들어내는 금빛 윤슬이 웅장하다. 그래서 전문 사진작가들 사이에서 출사 명소로도 유명하다.
장화리는 특히 물이 빠지면 갯벌로 나가 다양한 해양 생물들이 살았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인천시교육청학생교육원 해양환경체험학습장이 들어서 있을 정도로 갯벌과 해양 생태환경이 좋은 곳이다. 때문에 낙조와 함께 갯벌에서 활동하는 새나 해양 생물들의 모습도 감상할 수 있다.
장화리 낙조마을은 낙조를 감상하기 좋은 전망대와 산책로, 주차장 등이 잘 마련돼 있다. 강화군에서는 낙조 감상용 벤치와 포토존도 만들어 놨다. 강화나들길 관리 차원이다. 그런데 이번 방문에서 나들길 이정표와 방향을 알리는 리본 등에 대한 관리가 부실한 것을 발견했다. 지난해 나들길 현황 조사가 반영되지 않은 것 같아 씁쓸했다.
아무튼 장화리 낙조는 사계절 내내 감상할 수 있지만 가을·겨울이 특히 낭만적이다. 대기가 맑아지는 계절이라 더욱 선명하고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다. 갯벌이 발달한 전남 신안군 증도와 충남 서산 간월도 낙조가 가을과 겨울 사이 낙조가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다시 찾은 장화리에서 맞이한 낙조는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두루 볼 수 있어서 감동적이었다. 50원짜리 동전만 하던 태양이 수평선에 가까워지자 갑자기 500원짜리 크기로 변하면서 색도 더욱 짙은 선홍색으로 타들어갔다. 마지막을 더 보여주고자 하는 몸짓인양 이글거리며 수평선 너머로 빨려 들어가는 태양을 마지막으로 하늘은 코발트블루와 선홍이 혼재하면서 점점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콩·보리·밀·고추·소금이 만든 전통 맛
가을치곤 꽤나 따가운 햇살을 안고 화도버스터미널에서 점심식사 예정지 ‘편가네된장’까지 걸었다. 화도버스터미널 부근에 있는 칼국수, 백반 전문점 ‘나들식당’과 우동, 돈가스 전문점 ‘미가우동2호점’은 지난해 들렀던 곳이고 칼럼에도 소개했다. 그래서 이번엔 터미널서 북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편가네된장을 찾았다.
편가네된장은 4대째 100여 년의 전통을 지키면서 된장을 만들어 온 집안인 편가명가에서 하는 식당이다. 1대 전수자인 된장 명인 이정선 할머니로부터 편가명가 대표이사 편도영 씨까지 4대째 고집스럽게 옛 전통방식을 고수하면서 된장을 만들고 있다.
된장은 100% 국산 콩을 가마솥에 6시간가량 푹 삶아 적당한 온도에 진이 나도록 하루 동안 띄운다. 보리를 곱게 갈아 반죽해 개떡을 만들어 왕겨 불에 5시간 동안 구운 보리메주와 밀을 곱게 갈아 떡을 찐 밀떡, 풋고추를 갈고 천일염 소금을 넣어 5가지 재료를 혼합해 만든다. 이렇게 만든 된장은 짜지 않고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차별화된 웰빙 된장으로 탄생시키는 것이 편가네 제법 노하우다.
편가명가 편가네된장 모토는 ‘건강’이다. 우리나라에서 기가 가장 세다는 마니산 아래 자리 잡아 맑은 공기, 수질 검사기관에서 인정받은 지하 암반수, 서해안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해풍, 100% 국내산 콩, 어머니의 정성 등을 모아 건강한 된장과 식단을 제공하고 있다.
식당 측에서는 간장게장, 양념게장 등을 앞세우지만 된장 맛집인 곳이기에 강된장비빔밥에 차돌박이통보리된장찌개를 주문했다. 오후 늦은 시간이었지만 매장을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고 주문은 20~30분 밀렸다고 한다. 기다리는 동안 강화탁주의 강화생막걸리 ‘이화’를 한 병 주문해 목을 축였다. 강화 명물 새우튀김도 주문했다. 시월 하순 뙤약볕에 말라 있던 입안이 생기를 찾았다.
높은 천장의 현대식 한옥으로 꾸민 식당은 쾌적하고 전망과 채광이 좋았다. 실내서 맞은 햇살은 싱그러웠다. 이런저런 감상에 젖어 한잔 두 잔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데 드디어 기다리던 식사가 나왔다. 강된장, 차돌된장이 놓인 식탁은 풍성하고 예뻤다. 강화 식탁의 대표주자인 순무김치를 위시해 독특한 식감과 맛을 선사한 애호박무침, 고추된장무침은 곁들임 반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오색 나물과 김 가루 등 비빔재료에 밥 한 공기를 털어 넣고 강된장 한 뚝배기를 부어 써억써억 비볐다. 짤 것 같지만 강된장 맛이 순하고 달다. 달단 의미는 감칠맛이 제대로 난다는 것이다. 차돌된장 역시 된장 본연의 맛에 차돌박이의 기름진 맛이 적당히 섞여 우리가 모두 아는 그 맛에 충실했다.
다만 미역국은 이 정도 규모의 식당에서 제공하는 맛으로는 한참 부족하다고 느꼈다. 미역국은 끓이기와 맛 내기가 어렵지 않은 메뉴라 요리 내공을 살짝 의심하게 된다. 다른 테이블을 보니 많은 식객들이 간장게장을 쪽쪽 빨아먹는 모습이 눈에 띈다. 간장게장, 비빔게장 역시 된장서 나온 간장과 고추장으로 만든 것이니 그 맛을 짐작할 수 있다. 짜지 않은 감칠맛, 편가네된장의 장점이다.
가을새우 이달 초까지 제철
편가네된장서 식사를 하고 후포항(선수포구)를 거쳐 장화리로 향했다. 새우구이 전문점 ‘장곶횟집’에서 구운 새우를 포장하기 위해 강화나들길 7코스를 벗어나 도로를 걸었다. 강화도 도로는 인도가 없는 곳이 많아 위험하다. 선수포구에서 장곶횟집을 들러 숙소인 장화리까지 가는 길 역시 인도가 거의 조성돼 있지 않아서 차를 피해 걷는데 애를 먹었다.
장곶횟집에 도착하니 이곳 역시 강화도서 유명한 맛집인지라 좌석이 꽉 찼다. 게다가 지난 9월부터 이달 초까지가 가을새우 제철이라 더더욱 손님이 많았다. 필자 일행은 원래부터 포장을 계획했기 때문에 주문 후 밖에서 기다렸다.
횟집 옆 옛 방갈로 터 평상에 앉아 기다리는데 태양 각도가 서서히 낮아지면서 빛이 산란하기 시작했다. 바다는 황금빛 윤슬로 일렁거렸고 이들 풍경이 소나무 가지 사이로 한 폭의 그림처럼 연출됐다.
석양의 붉은색은 낮은 각도의 태양 빛이 대기를 길게 통과하면서 짧은 파장의 파란색과 보라색 빛이 산란되고 상대적으로 긴 파장의 붉은색과 주황색 빛이 남아 우리 눈에 보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마음이 급해졌다. 포장한 새우구이를 들고 숙소 앞 해변가에서 와인에 대하구이 합을 맞춰볼 작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목적지 해안가에는 제시간에 잘 도착했지만 숙소에 들러 짐을 풀 시간까진 없었다. 어쨌건 계획한 대로 장화리 낙조를 온전히 봤으니 대만족이다.
포장 새우구이는 24미 이상 들어서 새우만으로도 충분히 배를 채웠다. 새우를 생으로 포장해 가면 1만 원이 싸다. 횟집에서는 새우구이, 새우 칼국수, 새우라면, 머리버터구이 등을 맛볼 수 있다. 강화섬 장화리 낙조 보러 가는 길 들른 맛집은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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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 시간이 빚은 만두전문 ‘개성만두궁’
헌법재판소 건너편 골목 안 맛집 ‘깡통만두’
어린 시절 할머니가 만들어 준 맛 ‘봉산옥’
드디어 아침저녁으로 선선함이 느껴지는 소위 말해 가을이 왔다.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던 태양이 살짝 기울었다는 의미다. 이제는 가을 진객 단풍의 시간이 오고 있다. 일설에는 올 단풍이 그다지 예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가을이 왔다는 것, 계절이 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것이다.
어느새 시나브로 고속도로에는 여행과 관광에 나선 차들이 늘어나고 있다. 본격적인 단풍철이 오면 도로는 몸살을 앓고 주차장을 변하겠지만 이 또한 여행의 일부다. 여행은 숙식이 중요하다. 잠자리와 먹을거리가 여행의 질을 좌우한다는 의미다. 특히 먹을거리는 여행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얼마 전 전북 부안해수욕장에서 열린 ‘부안붉은노을축제’를 탐방하고 왔다. 만두처럼 생긴 붉은 해가 단풍처럼 붉은 색을 품고 바닷속으로 퐁당 떨어지는 멋진 장면은 축제의 화룡점정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부안은 세 번째 합쳐서 3박 6일을 방문했지만 음식에 큰 만족을 느끼지 못한 곳이다.
서해 갯벌서 나온 백합을 이용한 백합죽, 꼬막칼국수, 꼬막무침, 각종 회 등을 토속음식이라고 내놓지만 여행자에게 여행지 음식으로써의 감흥을 이끌어 내기에는 2% 부족했다. 물론 개인적 견해지만 부안은 축제도 커지고 늘어나는 상황이라 토속음식 레시피 개발에 좀 더 신경 쓰면 좋겠단 생각이다. 축제 프로그램에 토속음식 경연대회도 넣어보면 어떨까란 주문도 해본다.
각설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생각나는 음식 중 대표적인 것이 국물요리다. 그중에서도 필자는 만둣국이 떠오른다. 묵은 김장 김치로 추석 때 만들어 놓은 만두를 본격적으로 끓여 먹기 시작할 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김장도 안 해 먹고 하니 김치가 없어서 만두 빚기는 언감생심이다. 게다가 맛있는 공장표 만두가 수도 없이 쏟아지는 세상이라 고생스럽게 만두를 빚지 않는 것도 한 이유다.
만두 중국유래설과 자생설 양립
만두는 중국 송나라 때 엮은 사물기원(事物記原)에 따르면 “제갈량이 남만 왕 맹획을 정벌하고 돌아올 때 파도가 거셌다. 남만 풍속에 의하면 사람을 죽여 그 머리로 제를 지내면 신이 받아먹고 풍랑을 멎게 한다하나, 그리할 수 없기에 제갈량은 생각 끝에 밀가루로 만두피를 만들고 돼지고기와 양고기로 소를 만들어 사람 머리모양 만두를 만들어 제사를 지내니 풍랑이 멎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만두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됐다.
우리나라 만두 기원은 고려시대 고려가요인 쌍화점에 상화(霜花)란 이름으로 시구가 실려 있는 증거로 고려시대를 전후해 도입된 중국 유래설과 고대로부터 자생적으로 절기, 세시음식으로 해 먹었다는 자생설이 있다. 상화란 하얀 눈꽃이 핀 것 같다고 해서 묘사한 이름이다.
만두는 조선시대에 다양한 종류로 이용됐다. ‘만두의 조리방법에 대한 문헌적 고찰’(복혜자)에 따르면 1600년대 문헌 ‘현풍곽씨언간주해’의 기록에서는 만두로 혼사와 잔치에 각각 사용했으며 쇄미록‘에서는 오휘문이 임진왜란 시절 피난살이 하다가 순창을 떠날 때 지인 군수 부인이 만두를 싸줘 고맙게 잘 먹었다는 기록으로 전쟁 시 식사대용으로 이용한 듯하다.
또 ‘동국세시기’에는 4월 유두에 화전을 지지고 생선을 넓고 두껍게 잘라 육소를 싼 것을 어만두라 하는데 이것을 초장에 찍어먹는 풍속이 있었다. 고조리서인 ‘음식디미방’과 ‘시의전서’ 등에는 고기와 표고 등을 넣은 절기음식으로 전해진다.
세시만두는 대부분 지역에서 만둣국 형태로 먹었고 떡국과 함께 혼식되는 경우가 많다. 세시만두는 풍작 기원의 상징물이자 매개물로도 활용됐으며 떡국이나 팥죽처럼 첨세병(添歲餠)의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 첨세병이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떡이라는 뜻으로, 설날에 먹는 떡국을 이르는 말이다.
최근 시원한 바람이 불자 만둣국이 생각났다. 때마침 생일이 끼어 있는 주간이라 첨세병 음식으로도 적격이다. 인사동 미술관 나들이가 약속된 터라 북한식 만두로 유명한 ‘개성만두 궁’을 찾았다.
상호에서 알 수 있듯이 개성 출신 실향민 사장님이 1945년에 영등포 집에서 만두를 빚어 팔기 시작한 후, 지금의 자리인 인사동으로 이전해 1970년부터 손녀까지 3대째 운영하는 역사가 있는 곳이다. 매해 미쉐린가이드 빕구르망(합리적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에 선정되는 맛집이기도 하다.
개성 만두 특징은 무엇보다 알이 크고 속이 꽉 찬 것이다. 종업원 한 명이 식당 한편 밖에서 보이는 창가에 앉아 종일토록 만두를 빚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속을 꾹꾹 눌러 싸고 알이 제법 큼지막하다. 만두소는 배추와 숙주나물을 넉넉히 넣었다. 만두전골을 주문했는데 양지 육수와 만두소에서 우러나온 채수가 섞여 담백하고 삼삼한 맛을 낸다.
고기만두와 김치만두 두 가지 다 인기 있다. 개성만두 궁은 한옥이 보존돼 있는 인사동 골목 안에 위치해 한국적 분위기가 물씬 난다. 그래서인지 외국인 손님 비중이 비교적 높다. 만두란 음식이 자극적이지 않고 모둠전, 해물파전, 생감자전, 녹두전 같은 전류가 외국인들 입맛에 맞기 때문이다. 이날도 옆 자리 외국인들은 녹두전정식, 해물파전정식을 주문해 골고루 맛을 보는 슬기로운 메뉴 주문을 시전 했다.
만두전골 1인분 가격이 싸진 않지만 맛으로 충분히 커버를 한다. 마지막 국물 한 숟갈까지 긁어먹고 나오니 종업원이 감탄을 한다. 반찬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클리어’ 한 것을 보고는 “우리는 이렇게 드시면 참 좋다”고 인사를 건넨다. 맛있는 식사와 기분 좋은 마무리였다. 식사 전후 식당 건너편 한옥인 경인미술관을 가볍게 둘러보면 완벽한 맛있는 동네산책이 완성된다.
칼만두·비빔칼국수·만두전골 추천
서울 종로구 재동에 있는 헌법재판소. 정면 건너편에는 골목 안에 몇 개의 맛집이 숨어 있다. 현대사옥과 작은 사무실, 게스트하우스 등이 있어 내외국인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과거에는 직장인 상대 밥집, 술집이었던 것이 최근에는 베이글·식빵·소금빵 전문점 등 젊은 층이 좋아하는 베이커리 카페가 늘어나고 있다. 식당 역시 무겁지 않은 파인 다이닝 밥집이 들어서고 있다.
이 골목에 있는 ‘깡통만두’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한 그릇 만둣국에 몸을 데우는 식객들로 북적거린다. 한겨울에도 추위를 마다하지 않고 줄을 서는 곳이다. 깡통만두는 상호대로 만두전문점이다. 만두 본연의 맛을 접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대표 메뉴인 칼만두는 한꺼번에 두 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어 인기가 좋다. 칼만두는 칼국수와 속이 꽉 찬 어린아이 주먹만 한 만두가 들어 있는 국물요리다. 만두소를 구성하는 식재료 조합이 좋고 물기를 완전히 잘 짜내서 식감이 폭신하다. 여름엔 기본 만두, 새우만두 두 종을 제공하고 겨울엔 김치만두가 추가된다.
특색 있는 메뉴로는 육전이 올라간 비빔칼국수를 추천한다. 비빔칼국수는 영등포구 문래동 영일분식이 투박하고 맛있는데 비해 이곳은 육전 고명을 얹어 격을 높였다. 육전은 고명 역할에 충실할 뿐 육쌈냉면의 고기처럼 맛이나 식감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다만 시각적 효과와 밀가루만의 허기를 채워주는 보완재 역할은 톡톡히 한다. 깡통만두 역시 저녁에는 만두전골이 주력 메뉴다.
황해도식 매콤한 고기 고명이 특징
예술의 전당에서 서초역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만날 수 있는 ‘봉산옥’ 역시 미쉐린가이드 빕구르망 만두전문점이다. 황해도 사리원 출신 시어머니를 통해 배운 황해도식 만둣국을 며느리가 선보이고 있다. '고향의 맛 혹은 어린 시절 할머니가 만들어주셨던 만둣국 맛'이라는 평을 뜯는다.
황해도 지역에서 널리 맛을 따르는데 육수에 가득 담긴 만두 위로 매콤한 양념이 어우러진 고기 고명이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다. 고기 고명은 이촌역 부근에 있는 개성식 손만두 전문점 ‘갯마을’ 만둣국과 비슷하다.
만두는 떡국과 더불어 간단하게 주식으로 먹을 수 있는 밥 대체식이다. 과거에는 남쪽보다 북쪽 지방에서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남쪽에서는 만두보다 떡국을 즐겨했다. 옛말에 ‘속 먹는 만두요 껍질 먹는 송편’이란 말이 있다. 만두는 피가 얇아야 만두소 맛을 음미할 수 있고 송편은 두꺼운 피를 떡 삼아 먹는다는 의미다. 생일 주간 첨세병으로 만둣국 한 그릇 먹었으니 나이도 늘고 뱃살도 늘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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