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솔솔 불면 생각나는 만둣국 맛집
50여 년 시간이 빚은 만두전문 ‘개성만두궁’
헌법재판소 건너편 골목 안 맛집 ‘깡통만두’
어린 시절 할머니가 만들어 준 맛 ‘봉산옥’
드디어 아침저녁으로 선선함이 느껴지는 소위 말해 가을이 왔다.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던 태양이 살짝 기울었다는 의미다. 이제는 가을 진객 단풍의 시간이 오고 있다. 일설에는 올 단풍이 그다지 예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가을이 왔다는 것, 계절이 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것이다.
어느새 시나브로 고속도로에는 여행과 관광에 나선 차들이 늘어나고 있다. 본격적인 단풍철이 오면 도로는 몸살을 앓고 주차장을 변하겠지만 이 또한 여행의 일부다. 여행은 숙식이 중요하다. 잠자리와 먹을거리가 여행의 질을 좌우한다는 의미다. 특히 먹을거리는 여행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얼마 전 전북 부안해수욕장에서 열린 ‘부안붉은노을축제’를 탐방하고 왔다. 만두처럼 생긴 붉은 해가 단풍처럼 붉은 색을 품고 바닷속으로 퐁당 떨어지는 멋진 장면은 축제의 화룡점정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부안은 세 번째 합쳐서 3박 6일을 방문했지만 음식에 큰 만족을 느끼지 못한 곳이다.
서해 갯벌서 나온 백합을 이용한 백합죽, 꼬막칼국수, 꼬막무침, 각종 회 등을 토속음식이라고 내놓지만 여행자에게 여행지 음식으로써의 감흥을 이끌어 내기에는 2% 부족했다. 물론 개인적 견해지만 부안은 축제도 커지고 늘어나는 상황이라 토속음식 레시피 개발에 좀 더 신경 쓰면 좋겠단 생각이다. 축제 프로그램에 토속음식 경연대회도 넣어보면 어떨까란 주문도 해본다.
각설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생각나는 음식 중 대표적인 것이 국물요리다. 그중에서도 필자는 만둣국이 떠오른다. 묵은 김장 김치로 추석 때 만들어 놓은 만두를 본격적으로 끓여 먹기 시작할 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김장도 안 해 먹고 하니 김치가 없어서 만두 빚기는 언감생심이다. 게다가 맛있는 공장표 만두가 수도 없이 쏟아지는 세상이라 고생스럽게 만두를 빚지 않는 것도 한 이유다.
만두 중국유래설과 자생설 양립
만두는 중국 송나라 때 엮은 사물기원(事物記原)에 따르면 “제갈량이 남만 왕 맹획을 정벌하고 돌아올 때 파도가 거셌다. 남만 풍속에 의하면 사람을 죽여 그 머리로 제를 지내면 신이 받아먹고 풍랑을 멎게 한다하나, 그리할 수 없기에 제갈량은 생각 끝에 밀가루로 만두피를 만들고 돼지고기와 양고기로 소를 만들어 사람 머리모양 만두를 만들어 제사를 지내니 풍랑이 멎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만두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됐다.
우리나라 만두 기원은 고려시대 고려가요인 쌍화점에 상화(霜花)란 이름으로 시구가 실려 있는 증거로 고려시대를 전후해 도입된 중국 유래설과 고대로부터 자생적으로 절기, 세시음식으로 해 먹었다는 자생설이 있다. 상화란 하얀 눈꽃이 핀 것 같다고 해서 묘사한 이름이다.
만두는 조선시대에 다양한 종류로 이용됐다. ‘만두의 조리방법에 대한 문헌적 고찰’(복혜자)에 따르면 1600년대 문헌 ‘현풍곽씨언간주해’의 기록에서는 만두로 혼사와 잔치에 각각 사용했으며 쇄미록‘에서는 오휘문이 임진왜란 시절 피난살이 하다가 순창을 떠날 때 지인 군수 부인이 만두를 싸줘 고맙게 잘 먹었다는 기록으로 전쟁 시 식사대용으로 이용한 듯하다.
또 ‘동국세시기’에는 4월 유두에 화전을 지지고 생선을 넓고 두껍게 잘라 육소를 싼 것을 어만두라 하는데 이것을 초장에 찍어먹는 풍속이 있었다. 고조리서인 ‘음식디미방’과 ‘시의전서’ 등에는 고기와 표고 등을 넣은 절기음식으로 전해진다.
세시만두는 대부분 지역에서 만둣국 형태로 먹었고 떡국과 함께 혼식되는 경우가 많다. 세시만두는 풍작 기원의 상징물이자 매개물로도 활용됐으며 떡국이나 팥죽처럼 첨세병(添歲餠)의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 첨세병이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떡이라는 뜻으로, 설날에 먹는 떡국을 이르는 말이다.
최근 시원한 바람이 불자 만둣국이 생각났다. 때마침 생일이 끼어 있는 주간이라 첨세병 음식으로도 적격이다. 인사동 미술관 나들이가 약속된 터라 북한식 만두로 유명한 ‘개성만두 궁’을 찾았다.
상호에서 알 수 있듯이 개성 출신 실향민 사장님이 1945년에 영등포 집에서 만두를 빚어 팔기 시작한 후, 지금의 자리인 인사동으로 이전해 1970년부터 손녀까지 3대째 운영하는 역사가 있는 곳이다. 매해 미쉐린가이드 빕구르망(합리적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에 선정되는 맛집이기도 하다.
개성 만두 특징은 무엇보다 알이 크고 속이 꽉 찬 것이다. 종업원 한 명이 식당 한편 밖에서 보이는 창가에 앉아 종일토록 만두를 빚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속을 꾹꾹 눌러 싸고 알이 제법 큼지막하다. 만두소는 배추와 숙주나물을 넉넉히 넣었다. 만두전골을 주문했는데 양지 육수와 만두소에서 우러나온 채수가 섞여 담백하고 삼삼한 맛을 낸다.
고기만두와 김치만두 두 가지 다 인기 있다. 개성만두 궁은 한옥이 보존돼 있는 인사동 골목 안에 위치해 한국적 분위기가 물씬 난다. 그래서인지 외국인 손님 비중이 비교적 높다. 만두란 음식이 자극적이지 않고 모둠전, 해물파전, 생감자전, 녹두전 같은 전류가 외국인들 입맛에 맞기 때문이다. 이날도 옆 자리 외국인들은 녹두전정식, 해물파전정식을 주문해 골고루 맛을 보는 슬기로운 메뉴 주문을 시전 했다.
만두전골 1인분 가격이 싸진 않지만 맛으로 충분히 커버를 한다. 마지막 국물 한 숟갈까지 긁어먹고 나오니 종업원이 감탄을 한다. 반찬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클리어’ 한 것을 보고는 “우리는 이렇게 드시면 참 좋다”고 인사를 건넨다. 맛있는 식사와 기분 좋은 마무리였다. 식사 전후 식당 건너편 한옥인 경인미술관을 가볍게 둘러보면 완벽한 맛있는 동네산책이 완성된다.
칼만두·비빔칼국수·만두전골 추천
서울 종로구 재동에 있는 헌법재판소. 정면 건너편에는 골목 안에 몇 개의 맛집이 숨어 있다. 현대사옥과 작은 사무실, 게스트하우스 등이 있어 내외국인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과거에는 직장인 상대 밥집, 술집이었던 것이 최근에는 베이글·식빵·소금빵 전문점 등 젊은 층이 좋아하는 베이커리 카페가 늘어나고 있다. 식당 역시 무겁지 않은 파인 다이닝 밥집이 들어서고 있다.
이 골목에 있는 ‘깡통만두’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한 그릇 만둣국에 몸을 데우는 식객들로 북적거린다. 한겨울에도 추위를 마다하지 않고 줄을 서는 곳이다. 깡통만두는 상호대로 만두전문점이다. 만두 본연의 맛을 접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대표 메뉴인 칼만두는 한꺼번에 두 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어 인기가 좋다. 칼만두는 칼국수와 속이 꽉 찬 어린아이 주먹만 한 만두가 들어 있는 국물요리다. 만두소를 구성하는 식재료 조합이 좋고 물기를 완전히 잘 짜내서 식감이 폭신하다. 여름엔 기본 만두, 새우만두 두 종을 제공하고 겨울엔 김치만두가 추가된다.
특색 있는 메뉴로는 육전이 올라간 비빔칼국수를 추천한다. 비빔칼국수는 영등포구 문래동 영일분식이 투박하고 맛있는데 비해 이곳은 육전 고명을 얹어 격을 높였다. 육전은 고명 역할에 충실할 뿐 육쌈냉면의 고기처럼 맛이나 식감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다만 시각적 효과와 밀가루만의 허기를 채워주는 보완재 역할은 톡톡히 한다. 깡통만두 역시 저녁에는 만두전골이 주력 메뉴다.
황해도식 매콤한 고기 고명이 특징
예술의 전당에서 서초역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만날 수 있는 ‘봉산옥’ 역시 미쉐린가이드 빕구르망 만두전문점이다. 황해도 사리원 출신 시어머니를 통해 배운 황해도식 만둣국을 며느리가 선보이고 있다. '고향의 맛 혹은 어린 시절 할머니가 만들어주셨던 만둣국 맛'이라는 평을 뜯는다.
황해도 지역에서 널리 맛을 따르는데 육수에 가득 담긴 만두 위로 매콤한 양념이 어우러진 고기 고명이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다. 고기 고명은 이촌역 부근에 있는 개성식 손만두 전문점 ‘갯마을’ 만둣국과 비슷하다.
만두는 떡국과 더불어 간단하게 주식으로 먹을 수 있는 밥 대체식이다. 과거에는 남쪽보다 북쪽 지방에서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남쪽에서는 만두보다 떡국을 즐겨했다. 옛말에 ‘속 먹는 만두요 껍질 먹는 송편’이란 말이 있다. 만두는 피가 얇아야 만두소 맛을 음미할 수 있고 송편은 두꺼운 피를 떡 삼아 먹는다는 의미다. 생일 주간 첨세병으로 만둣국 한 그릇 먹었으니 나이도 늘고 뱃살도 늘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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