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15. 08:46

[유성호의 맛있는 미각 여행] 만추 억새가 장관 수원화성은 미식의 성(城)

 

 

유네스코 문화유산 보유도시 자긍심

식당 두 곳 잘못된 영업행위에 상처

맛있고 인심 좋은 두부고을서 위로

 

서울서 경기도 수원은 가깝고도 멀다.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발길이 잘 가지 않아서 멀게 느껴져서다. 특별한 연고도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천, 부천 등 경인선 라인도 마찬가지다. 등하불명이라고 가까운 곳이라 발길을 소홀히 한 것이 아닌지 약간의 반성도 된다.

 

오랜만에 수원행을 했다. 그것도 무려 12일 일정으로. 오후 느지막이 도착했기에 하루 더 머물면서 야무지게 보고 오잔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도보 여행자의 이동시간 한계 때문에 내린 결정이다. 결과적으로 잘했다 싶다.

 

첫날 오후 3시 반경 지하철로 수원역에 닿았다. 수원역은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했다. 내년이면 120년 역사를 가진 오랜 기차역이다.

 

역 남쪽에는 콘크리트로 지은 대형 급수탑과 붉은 벽돌의 소형 급수탑이 남아 있다. 이는 각각 증기기관의 표준궤와 협궤열차에 물을 채우기 위해 만든 구조물로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되면서 수원역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수원역~화홍문 화성순성 반나절 코스

수원 유림의 본향인 수원향교 .

 

오늘 목적지는 수원역에서부터 수원화성 화홍문, 수류방화정까지다. 순성(巡城)을 하기 때문에 도보만이 가능하다. 수원역을 출발해 먼저 건너편에 있는 매산시장을 한 바퀴 둘러본다. 매산시장의 이름은 팔달산 자락인 이 지역에 매화나무가 많이 자란 데서 유래했다. 매산시장의 마스코트 역시 매화에서 따온 매화소녀다. 매산시장은 복개천 위에 자연스레 형성된 전형적인 전통시장이다.

 

매산시장을 둘러본 후 중심도로인 매산로의 이면 향교로를 따라 수원향교로 향한다. 향교로는 아카데믹한 도로명과 달리 먹자골목이 길게 형성돼 있다. 먹자골목이 끝날 무렵 매산초등학교가 나오고 바로 옆이 수원향교다. 1291(고려 충렬왕 17)에 화성군 봉담면 와우리에 세운 것을 1789(조선 정조 13)에 수원성곽을 축성하면서 이축했다. 배치는 향교의 가장 전형인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이다.

 

수원향교 옆 계단을 이용해 중산간으로 오르면 수원시민회관과 중앙도서관이 있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접근도가 참 안 좋단 생각을 하면서 지석묘군 쪽으로 오른다. 철제 울타리를 쳐 놓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법한 돌무더기가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라니. 이를 찾아낸 사람의 안목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유물이다.

 

지석묘군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니 수원화성 성벽이 보이기 시작한다. 서남각루 지역이다. 이 지역에선 보기 드문 용도(甬道)를 만날 수 있다. 용도는 양쪽을 담으로 쌓은 좁은 길을 말하는 데 서남각루에서 서남암문까지 이르는 길이다. 성안에 무기나 양곡을 운반하거나 군사들이 매복을 서기 위해 낸 길이다.

 

성 밖을 돌다가 수원화성 관광안내소가 나타나면 성 안쪽으로 접어들어 화성의 가장 높은 화성장대에 이르면 앞뒤로 멋진 풍광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을 지나 서남각루로 향하는데 서쪽으로 해가 떨어진다. 서남각루부터 화서문, 서북공심돈까지 성 밖으로는 펼쳐진 억새밭과 그 위로 펼쳐지는 해거름 석양이 일품이다. 젊은 남녀들은 이곳에서 낙조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성 안 길은 걷기 편하고 볼거리도 많다. 서북공심돈부터 장안문까지는 카페가 즐비하고 연인들이 성곽 둔덕에 앉아 어깨를 맞대고 도란도란 밀어를 나눈다. 멀리 지붕이 희한하게 생긴 건물이 있어 유심히 보니 책고집이란 간판의 작은 도서관이었다.

 

노숙자를 위한 인문학 강연으로 사회공익에 기여했던 거리 인문학자 최준영 씨가 운영하는 곳이다. 요즘도 북토크를 지속적으로 열고 있다. 지나면서 책고집의 발전을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장안문 동북적대를 지나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화홍문과 수류방화정이 나온다. 이곳에 도달할 무렵 땅거미가 지고 성벽으로 조명이 비치면 수원화성의 새로운 모습인 아름다운 야경이 펼쳐진다.

 

수원화성은 축성 초기 현재의 모습보다 더욱 아름다웠다. 수원화성은 일제강점기 근대화 명목으로 훼철되고 한국전쟁으로 많은 부분 훼손된 채 방치됐다. 1976~1979년 화성복원정화사업(화성성곽복원)으로 재정비됐다.

 

1989년 화성행궁복원추진위원회가 창립되고 1996~20026여 년에 걸쳐 행궁복원이 이루어졌다. 1997124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현재까지도 미복원시설에 대한 복원과 정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수원화성은 수원의 보물 중 보물이다. 반나절 답사탐방을 마감하고 배를 채울 시간이다.

 

수원에서 마주했던 민폐 식당 두 곳

수원화성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화성장대 < 사진 위 > 와 화홍문 위에 있는 수류방화정 .  이들은 수원화성 건축물 중 규모가 있고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

 

예정했던 화홍문 인근 갈빗집은 주말엔 돼지갈비를 팔지 않고 비싼 소고기 위주만 제공한다고 해서 패싱했다. 돈이 없어 안 먹었다기보다 입맛이 똑 떨어졌다. 아니 어쩌면 멀리서 온 손님이 식당으로부터 패싱 당한 꼴일 수도 있겠다 싶어 입맛이 씁쓸했다. 업주와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닌지라 아무 소리 안 하고 발길을 돌렸다.

 

뒤이어 찾은 식당은 왕갈비, 수제돼지갈비 전문이란 커다란 간판을 달고 있어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게다가 최고의 맛집이라고 자랑하기에 지나칠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돼지갈비는 역시 갈비가 아닌 목살이 나와 돼지구이가 됐다. 대부분 식당이 돼지갈비라고 쓰고 갈비가 아닌 부위를 파는 요즘이라 별 이상할 것도 없지만 이참에 가격을 달리해 갈비와 구이를 구분해 팔면 어떨까 싶다.

 

1만 원 하는 차돌된장은 가성비가 떨어지고 다행히 새로 지어 온 밥은 좋은 쌀을 써서 밥맛이 구수하니 좋았다. 다만 이 식당은 파김치, 무생채 등 몇 가지 밑반찬을 재사용하는 것으로 목격돼 충격을 줬다. 이제 갓 업력 3년 차 식당 주인의 작은 욕심이 나중에 큰 화를 부를 것 같아 우려됐다. 음식물을 재사용하다 적발되면 영업정지를 당하는 데 115, 22개월, 33개월이다.

 

수원먹거리 양대산맥 통닭거리

 

수원통닭거리 통닭집은 주말이면 대기줄이 즐비하다 .

더는 수원 식당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잠을 청하러 가는 길에 수원통닭거리를 지나는데 관광객이 죄 이곳에 몰려 있는 것 같이 통닭집마다 인산인해다. 수원통닭은 수원갈비와 함께 수원을 대표하는 먹거리 양대산맥이다.

 

통닭거리 원조는 매향통닭으로 통닭거리 첫 집이다. 이곳을 시작으로 진미통닭, 용성통닭, 남문통닭, 대봉통닭, 장안통닭, 중앙치킨타운 등 수 십 년 동안 형성된 통닭집들이 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과거에는 통닭거리축제까지 열었지만 점포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축제는 사라졌다. 그러나 수원을 상징하는 대표 먹거리 자리는 수원화성처럼 여전히 공고하다.

 

통닭거리 대표주자는 매향통닭은 1970년 개업해 한 가지 메뉴로만 54년째 영업해 오고 있다. 매향통닭 같이 오리지널 옛날통닭을 튀겨내는 곳도 있지만 프라이드, 양념 같은 치킨집도 성행이다.

 

화서시장 인근 두부요리 전문점

두부요리 전문점 두부고을의 두부버섯전골과 솜씨 좋은 밑반찬.

 

이튿날 숙소를 나와 인근 화서공원 억새에 눈부시게 부서지는 햇살을 만끽하고 수원역 방향으로 걷다가 화서시장을 만났다. 1980년 개설된 깔끔한 시장이 좋은 인상으로 다가왔다. 시장을 오래도록 지켜 온 할머니김치의 무청김치가 입맛을 한껏 자극했다. 시장을 둘러본 후 인근에 있는 30년 가까운 업력의 향토음식 두부요리전문점 두부고을로 향했다.

 

주말 점심시간대에 단체 손님이 들고 붐비는 식당은 동네 맛집일 가능성이 크다. 이날도 21명 규모 단체 손님과 여러 식객들이 식당을 꽉 채웠다. 식당이 잘 되는 이유는 여럿 있지만 필자는 맛과 친절의 밸런스라고 생각한다. 물론 위생, 입지 등도 변수지만 누가 뭐래도 맛은 불변의 진리다. 여기에 주인과 종업원의 친절한 서비스가 더해지면 식당은 입소문을 타고 맛집이 된다.

 

수원 화서동의 두부고을 역시 그런 곳이 아닐까 싶다. 인상 좋은 부부가 부지런히 홀을 오가며 친근한 미소로 접객을 한다. 손이 모자랄 경우 손맛만 보여 주던 주방 찬모까지 홀 서빙을 도우며 손을 보탠다. 찬모의 부지런함은 밑반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만든 것이 없고 양념 밸런스가 모두 제 맛이다.

 

청포묵과 호박전은 따뜻하게 제공됐고 나머지 반찬들 역시 적당량이 담겨 나왔다. 제대로 우려낸 육수의 두부버섯전골은 큼지막한 두부를 뭉텅 썰어 넣고 갖은 버섯을 먹기 좋게 잘게 찢어서 나온다. 옆 테이블을 보니 코다리조림, 연잎밥보쌈 등도 많이들 찾는다. 전날 두 식당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를 두부고을에서 따끈하게 위로받았다. 막걸리 가격도 착해서 꼭 공유하고 싶은 식당이다.

 

유성호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