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호의 맛있는 미각 여행] 대방어 계절 시즌 업!
단풍의 계절이 왔건만 색깔이 예전만 못하다. 비도 오고 일교차가 커야하는데 아직도 도시에는 반팔을 입고 돌아다니는 시민들이 눈에 띌 정도로 기후변화 때문에 단풍이 완전치 못하다.
2020년 이 무렵 썼던 칼럼을 보면 “연일 올라오는 설악산, 지리산, 내장산의 단풍은 도시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거대한 산은 여름이 남긴 녹색과 자연의 신비로운 변화인 선홍과 황금색이 울긋불긋 어우러진 황홀한 채색화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거대한 자연과 변화무쌍한 색에 압도당한 눈은 고양이 눈처럼 동그랗게 커졌고 입에선 탄성이 절로 나왔다. 엉덩이가 들썩이고 다리가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했다.”고 적고 있다.
서울의 단풍은 창덕궁 후원이 갑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인원 통제와 시간제한 등 관람이 자유롭지 못해 발걸음 하는데 걸림이 된다. 답은 의외로 가까이 있다. 바로 창경궁이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접해 있어서 단풍이 창덕궁 못지않게 수려하다.
특히 현 춘당지는 원래 창덕궁과 창경궁이 공유하는 후원 권역이었다. 일제는 춘당대 앞 친경적전(積田)을 하는 귄농장 자리에 창덕궁을 둘러싼 언덕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냇물을 모아 연못을 파고 춘당지라고 이름 붙였다.
관덕정 노루꼬리만한 단풍으로 만족
창덕궁과 창경궁 일대를 세밀하게 그린 동궐도(東闕圖)를 보면 창경궁 춘당지 자리에 열한 배미의 논자리가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 농경지는 일제가 1907년에서 1909년 사이에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만들면서 사라지게 된다.
원래 옛날 춘당지는 창덕궁 쪽 절벽인 춘당대와 짝을 이룬 연못이었다. 지금은 담장으로 창덕궁과 창경궁이 나뉘어 있는데 현재 소춘당지가 원래 옛날에 춘당지로 불린 곳이다. 일제가 내농포에 속한 11개 논을 하나의 연못으로 만들면서 생겨난 것을 지금은 춘당지(대춘당지)라고 부른다.
일제는 이곳에 놀잇배를 띄우고 주변 경관을 사쿠라(벚꽃)로 채웠다. 해방 후에도 온갖 놀이 시설이 들어섰고 1980년 대 들어서야 복원에 들어가 주변을 버드나무와 소나무 등 전통 수목으로 바꿨다. 그러나 여전히 내농포는 춘당지 속에 수몰돼 있다.
궁궐 후원에 논과 밭을 조성하고 군주가 친경의 모습을 보인 역사는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사례다. 이는 조선의 독자적인 궁궐 문화로 애민농본의 전형이다. 아울러 이미 오래전부터 궁궐에서 왕실의 주도로 다양한 농업 활동이 전개됐다는 점은 현대 도시농업의 효시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역사가 배어있는 창경궁 춘당지와 대온실 영역을 찾은 날, 가을이 꽤나 깊었다. ‘10말11초’가 창경궁 단풍 피크인데 올해는 달랐다. 창경궁은 이미 창덕궁과 더불어 단풍 성지로 이름나 있다. 그래선지 11월초 찾은 이날도 많은 사람들이 붐볐다. 창경궁에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이왕가박물관 터가 있다. 지금은 철거되고 남은 부재만 약간 쌓여있을 뿐 옛 모습을 알 수가 없다. 이 지역도 개방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왕가박물관은 일제가 창경궁 명정전 일원에 식물원, 동물원을 지으면서 박물관도 함께 만들었다. 1911년에는 일본식 연와건물의 박물관 본관을 신축, 이듬해 낙성식을 가졌다. 박물관 본관은 이왕가박물관이 1938년 덕수궁의 이왕가 미술관으로 옮겨가면서 장서각으로 이용되다가 1992년 해체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창경궁은 춘당지 주변 단풍이 압권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고 손명순 여사가 좋아했던 단풍이라고 한다. 춘당지 옆 큰 단풍나무 아래서는 나무를 올려다보고는 탄성을 터트릴 정도였다고 한다. 올해는 아직 단풍이 덜 든채 푸른 단풍나무가 즐비했고 일부는 색을 발하지 못하고 타들어간 모습이었어. 예전엔 그 자리서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붉은 별이 머리 위로 와락 쏟아지는 착각이 들 정도의 장관이었다’고 적었었다.
대방어 11월 ‘시즌 업’ 2월까지 제철
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인지라 경(景)을 했으니 마무리는 식(食)이다. 계절 별미인 방어 철이 다가오고 있어서 의견 일치를 봐서 메뉴를 방어회로 정했다. 방어는 11월부터 2월까지 산란을 위해 몸에 영양을 축적시킨다. 이 시기 방어가 가장 맛있는 이유다.
대방어는 일반적으로 9kg 이상 되는 대물을 말한다. 5kg까지를 소방어, 5~8kg 정도를 중방어라고 한다. 노량진수산시장 같은 곳에서 대방어를 고르는 방법은 몸매가 날렵한 것보다 배가 불룩한 것이 좋다. 그만큼 기름진 뱃살이 잘 발달했다는 증거다. 또 입 꼬리를 잘 살펴서 대방어와 부시리를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대방어는 입 꼬리가 직각 모양, 부시리는 둥글게 발달했다.
방어는 다른 생선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고 지질이 풍부하다. 칼슘, 인, 철, 나트륨, 칼륨 등 무기질도 함유돼 있고 DHA와 EPA, 타우린 등 기능성 물질이 많아 고혈압, 동맥경화, 심근경색, 혈전, 뇌졸중 등 질환을 예방하는 데 좋다.
특히 비타민D가 풍부한데, 이는 한국인에게 부족한 영양소 중 하나다. 식약처 조사 결과 우리나라 남성 86%, 여성 93%가 비타민D 결핍이다. 비타민D는 면역력 증가와 우울증 예방을 위해 꼭 필요한 필수 영양소다. 해가 짧은 겨울철에 특히 더 부족해지기 때문에 겨울 방어는 영양소이기도 하다.
깔끔하고 질서 정연한 담음새 ‘혜화수산’
커다란 간판에 압도적인 큰 글씨의 ‘혜화수산’. 비록 점포는 명륜동에 있지만 ‘혜화수산’이란 이름을 달았다. 명륜보다는 대학로가 있는 혜화가 더 유명하기 때문이다. 창경궁 직원들은 ‘혜화수산’을 많이 이용한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창경궁에서 나와서 혜화동 로터리 쪽으로 걸어 올라오는 길에 회식을 할 만한 식당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혜화수산’은 실내가 넓기 때문에 여럿이 오기 적당한 장점도 있다.
대방어가 날렵하게 해체된 채 접시에 차분히 담겨 나왔다. ‘혜화수산’의 담음새(플레이팅) 특징은 가지런함에 있다. 방어는 물론 농어, 광어 등도 가지런히 질서 있고 보기 좋게 담아낸다. 특히 가마살, 배꼽살, 뱃살, 등살, 사잇살, 꼬리살 등 거의 전 부위 맛을 볼 수 있도록 골고루 담아 내오는 것이 특징이다.
분말을 갠 와사비가 나온다면 한 단계 위 와사비를 주문하면 가져다준다. 개인적 기호일 수 있지만 분말와사비보다는 알갱이가 조금 씹히는 생와사비가 낫다. 물론 진짜 고추냉이를 갈아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서울 대방어 대명사 ‘바다회사랑’
겨울 대방어 하면 손꼽히는 집이 또 있다. 전통의 강자 서교동과 연남동에 있는 ‘바다회사랑’이다. 한 겨울 웨이팅 지옥을 맛보고 싶다면 피크타임 때 ‘바다회사랑’을 가란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는 곳이다. 이곳의 특징은 둥그런 큰 접시에 먹음직스럽게 탑처럼 쌓아주는 것이다.
커다란 레몬 슬라이스 두세 쪽을 대충 회 위에 올려서 내오는 것은 이 집의 트레이드마크다. 썰어 낸 회를 보면 압도적 크기의 대방어 살이다. 배꼽살의 경우 아삭하고 꼬들한 식감이 일품이다.
배꼽살은 대방어의 훈장 같은 부위다. 소방어, 중방어에서 느낄 수 없는 맛이기 때문이다. 밑반찬으로 내주는 마른김을 깔고 회 한점, 묵은지, 밥, 날치알을 차례로 조합해서 싸 먹으면 별미 식사가 되기도 한다.
이달 말이면 제주도 모슬포항에서 최남단대방어축제가 열린다. 제주 현지를 가기로 약속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선지 방어가 물살을 거슬러 힘차게 서울로 향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대방어 ‘벙개’가 내심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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