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동네 산책]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의 울림, 목 메인 매운탕

은파호수공원 군산맛집 삼거리매운탕

근처 궁전매운탕’·‘코다리각시도 추천

600년 된 천연기념물 미군 기지로 편입

 

지난 5일 전북 군산은 봄을 재촉하는 비가 종일토록 흩뿌렸다. 비와 함께 바다를 건너온 바람은 우산의 제 구실을 방해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판초 형태 우의를 입고 군산의 대표적 관광자원인 은파호수공원을 일주했다.

 

인문역사문화 공동체 문화지평창립 10주년 기념답사로 당일치기 군산을 다녀왔다. 전북천리길 44개 코스 중 군산에 있는 4개 코스를 올해 모두 돌아볼 요량으로 시작한 답사다. 첫 출발지로 봄날 벚꽃이 수려한 은파호수 물빛길을 택했다. 결과적으론 개화시기를 맞추지 못해 꽃망울만 잔뜩 보고 왔지만 군산의 역사문화자원을 둘러보면서 나름 유의미한 답사를 했다.

 

은파호수는 둘레가 9km에 달하는 인공 저수지다. 원래 이름은 미제지(米堤池)로 우리말로 쌀뭍방죽이다. 이름대로 주변 농경지에 농수를 공급하는 농업용 저수지였다. 해 질 녘 물결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은파란 이름을 붙여 국민관광지로 만들었지만 수자원을 관리하는 한국농어촌공사가 정식으로 사용하는 명칭은 미룡저수지다.

 

은파저수지 본명은 미룡저수지

벚꽃이 활짝 핀 은파호수공원 전경.[사진제공=전북특별자치도]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에도 표시돼 있는 역사 깊은 곳이다. 처음 등장한 곳은 1530(중종 25)에 제작된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미제지는 옥구현 북쪽 10리에 있으며 둘레가 일만구백십 척(6.9km)’이란 기록이다. 따라서 조선 왕조 이전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본래 농업용 저수지였으나 저수지를 중심으로 인근의 작은 산들을 포함하여 1985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됐다. 만남의 광장에는 군산·옥구 출신 독립유공자 충혼탑이 세워져 있다. 호수 둘레에 인공데크와 자연지형을 이용한 길이 잘 조성돼 있다. 이 길을 따라 한 바퀴를 돌면 1시간30분가량 소요된다. 호수 중간에 다리를 두어 반 바퀴도 돌 수 있도록 했다.

 

멀리서 온 상춘객에게 벚꽃도 보여주지 않고 대신 비바람을 선물한 은파호수지만 일주(一周) 한 것도 기쁨이었다. 아쉬움이 남아야 또 한 번 오지 않겠나. 다섯 팀에 전문 해설사가 한 명씩 배정돼 오붓하게 답사와 식사를 함께 한 시간도 기억이 남는다.

 

예약도 없이 20여 명이 한꺼번에 식당에 들이닥치자 은파호수 맛집으로 유명한 삼거리매운탕은 두 팀 9명만 자리할 수 있었다. 다른 팀들은 인근 궁전매운탕코다리각시란 식당으로 입맛에 따라 나눠서 들어갔다.

 

구수한 솥밥 어우러진 새우매운탕 별미

삼거리매운탕의 대표 메뉴 새우매운탕은 구수한 솥밥, 간이 잘된 밑반찬과 어우러져 완벽한 미식 시간을 제공한다.

삼거리매운탕은 군산시가 앞장서서 홍보를 해주는 군산맛집’ 36곳 중 하나다. 군산맛집은 음식 맛 등이 우수하고 대중이 쉽게 이용가능한 일반음식점을 대상으로 엄격한 심의와 비노출 현지조사 등 절차를 거쳐 지정한다. 평가항목으로는 맛·메뉴·가격·식당역사성(50), 주방·음식·화장실 위생과 종사자 개인위생(30), 식사환경, 종사자 친절도(20) 등이며 장애인 휠체어 출입이 가능하면 가산점(10)을 준다. 매우 합리적인 평가항목이라고 본다.

 

일행은 새우매운탕을 주문했다. 9명이 두 테이블에 나눠 4인분씩 주문했지만 괜찮다며 받아 줬다. 5인분 분량이 애매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이런 호의는 기분을 좋게 한다. 군산은 예로부터 땅이 비옥해 옥() 자가 들어가는 지명이 많다. 그래서 쌀농사가 잘 되고 밥 맛이 일품이다. 군산 등 전북지역은 신동진 쌀을 많이 재배한다. 쌀알이 굵고 풍미가 좋다.

 

삼거리매운탕에서도 신동진 쌀로 갓 지은 솥밥을 내온다. 밥솥 뚜껑을 여는 순간 훅 하고 들어오는 구수한 밥 냄새, 반들반들 윤기 나는 쌀 사이 흑미를 살짝 섞은 먹음직한 자태, 쫀득쫀득 씹히며 단맛을 뿜어내는 미각 등 오감을 자극하는 밥맛. 매운탕 집이지만 한식 식탁의 주인공은 역시 밥이다.

 

물론 이 식당의 매운탕 역시 농후한 육수가 일품이다. 새우매운탕은 처음이었는데 우거지가 듬뿍 들어가 새우의 빈약한체급을 채웠다. 부들부들 부드러운 우거지와 제법 씨알 굵은 민물새우가 어우러진 새우매운탕은 이 식당의 대표 메뉴다. 푸짐하게 내주는 갖은 밑반찬도 단골을 만드는 중요한 포인트다. 반찬 모두 간이 적절하고 맛을 잘 냈다.

 

이날 처음 맛본 군산양조공사의 군산우리생쌀막걸리는 깔끔하고 담백해 음식과 궁합이 잘 맞았다. 한 달에 한번 필자 주관으로 문지미식포럼이란 미식 모임을 서울 종로구 창신동 공유공간 공유창신에서 연다. 그때마다 지역 전통주를 한 박스씩 주문하는 데 일전에는 경북 안동 회곡양조장, 전남 장흥 안양주조의 막걸리를 택했다. 다음번 미식포럼 자리에는 군산양조장 막걸리를 초대해야겠단 생각을 해 본다.

 

팽나무 이파리 나면 다시 찾으리

천연기념물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 앞에서 문화지평 회원들이 창립  10 주년 기념답사 단체사진을 찍는 모습 .

 

식사를 마치고 답사팀은 군산 하제마을에 있는 팽나무를 보러 갔다. 국가자연유산 천연기념물로 지난해 10월 지정된 노거수다. 생장추로 수령을 측정한 결과 국내 자생 팽나무 중 가장 나이가 많은 537(±50)(2020년 기준)이다. 편리하게 600년 된 팽나무라고 부른다. 나무높이가 건물 5층 높이인 20m, 가슴높이둘레 7.5m 규모다. 생육상태도 우수하고 나무 밑동 3m 높이에서 가지가 남북으로 넓고 균형 있게 발달해 수형이 아름답다.

 

팽나무가 위치한 하제마을은 원래 섬이었으나 1900년대 초 간척사업을 통해 육지화 됐다. 하제포구가 생기고 기차가 들어서면서 한때 개도 만원 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했을 정도로 번성했지만 2001년부터 추진된 군산미공군비행장 탄약고 안전지역 6개 마을에 포함돼 강제 이주를 해야만 했다.

 

군산시 옥서면 선연리 일대 미 공군기지는 일본 병참기지를 1945년부터 미군이 사용하기 시작했고 1974년 이후 미 제7공군 제8전투비행단이 주둔하면서 지금에 이른다. 우리 공군부대도 함께 주둔 중이다. 2004년 아파치 헬기장 부지와 탄약고안전거리 확보를 명목으로 추가로 확장되면서 하제마을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조선왕조를 관통하면서 살았던 팽나무만큼은 자리를 뜨지 못하고 묵묵히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미 공군기지가 자리 잡고 있는 이 공간은 물리적으로는 대한민국 영토지만 행정적으로는 미 캘리포니아에 속해 있는 미국 땅이다. 그래서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고 팽나무가 서 있는 땅도 언젠가는 울타리로 둘러싸이고 출입이 제한될 것이다. 그래서 지역 활동가들은 힘을 모아 팽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팽팽문화제등을 열어 여론을 환기시켰고 끝내 천연기념물 지정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천연기념물이란 표지판 하나 없다. 민간에서 세운 돌로 된 보호수 표석만 덩그마니 있을 뿐이다.

 

국가유산기본법에서는 국가유산이란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 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문화유산·무형유산·자연유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유산은 안내판을 설치해 관람객에게 공공언어로 국가유산의 정보와 가치를 알려야 한다.

 

안내판 종류에는 해설안내판과 기능성 안내판이 있다. 해설안내판은 각각의 성격에 따라 국가유산 전체 영역을 종합하여 설명하는 종합안내판, 국가유산 전체 영역 중 권역을 설명하는 권역안내판, 개별 국가유산 한 건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개별안내판으로 구분된다. 이 중 1개 이상의 안내판을 반드시 설치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하제마을 팽나무는 아직 아무런 표지판도 없는 상태다. 600년 된 노거수, 그것도 천연기념물에 대해 각별한 관심이 요구된다.

 

가까운 곳에는 해풍을 막았던 수령 200여년 된 곰솔 한 그루가 외로이 서 있다. 옛날 같았으면 마을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을 받으면 어울려 살던 이들 노거수들이 지금은 쓸쓸하게 미군부대 영내로 편입을 기다리고 있다. 이왕에 이렇게 됐으니 비행 방해 명목으로 베어지는 것만은 막아야겠단 생각이다.

 

마침 이날엔 팽나무 앞에서 이름 모를 활동가 한분이 야외 결혼식을 올렸다. 600살 팽나무 어르신의 무언의 주례사를 상상해 본다. 가슴이 먹먹하고 목메었지만 한편으론 따뜻한 울림이 있다. 연녹색 이파리로 가득 덮인 팽나무를 보러 다시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