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23. 16:52

[맛있는 동네 산책] 뜻밖의 여정에서 만난 뜻밖의 안양 맛집

 

남도 손 맛 진수 보여준 갯마을칼국수보쌈

80년대부터 한자리 지킨 새호남식당’·‘우래

기형도 시인 족적 따라 답사한 안양 원도심

 

 

최근 경기도 남부지역을 연이틀 다니면서 도시를 보다 깊게 알게 된 특별한 경험을 했다. 특별하단 의미는 여정 속에 쉽게 접할 수 없는 경험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경기남부는 경기도 중 한강과 북한강의 남쪽을 말한다. 김포처럼 위도상 북쪽에 있지만 서울과 인천에 의해 월경지가 된 곳도 남부에 속한다.

 

경기남부 인구는 경기도 전체 13077153 명 중 9677305 (2018년 기준)이며 2019년 하반기에 서울시보다 인구가 많아졌다.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대 인구 밀집지역이고 그만큼 가볼 만한 곳이 많다는 의미다. 서울을 에워싼 형태라서 서울시민들에게는 경기도 어디든 접근도가 좋다.

 

이번 칼럼은 지난 12일 답사를 한 안양이야기다. 안양은 서울과 인접한 경기도 핵심 도시 중 하나다. 수도권 남서부 교통 요지이자 서울시 관악구, 금천구와 가까워 서울과 생활권이 중첩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악산, 수리산 등 산지와 안양천의 조화로 주거공간으로서의 기능도 뛰어나다.

 

기형도 시인 친누나·문우와 함께 뜻 깊은 시간

‘ 기형도 시인의 흔적 따라 걷는 뜻밖의 여행 ’ 이란 주제로 안양 원도심을 걸었다 .  출발 전 안양역 앞 단체사진 .

 

 

이번 안양 답사는 기형도 시인의 흔적 따라 걷는 뜻밖의 여행이란 주제로 오래된 원도심을 찾아 걸었다. 고인이 기형도 시인(1960-1989)은 태어나기는 인천시 옹진군 연평면이지만 광명시(당시 시흥군)에 오래 거주했고 안양은 문우들과 어울려 운문의 근육을 늘리던 곳이다.

 

오랜 거주지인 광명에는 2017년 그를 기리는 기형도문학관이 문을 열었다. 안양에서는 그의 흔적을 좇아 그의 문학적 성취를 공유하는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답사 역시 안양의 대표적 동네책방 뜻밖의 여행과 안양작가회의에서 주관하고 문화지평이 후원해서 이뤄진 추모 답사다.

 

시인의 큰누나인 기향도 기형도문학관 명예관장과 문우 홍순창 시인이 뒤풀이까지 함께 하면서 고인에 대한 추억과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뜻밖의 여행이었다. 언어학자이자 도시인문학자인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사범대 국어교육과 교수도 나와 안양의 기억을 이야기하고 시인의 족적을 따라 걸었다.

 

조동범 시인 해설로 도시 깊숙이 알게 돼

 

안양 토박이 조동범 시인(사진 맨 우측)의 해박한 해설로 역사도시 안양의 깊이를 좀 더 알게 된 시간이었다는 평가다.

 

이번 답사는 기형도 시인의 후배였던 조동범 시인이 길잡이 해설을 맡아 더욱 의미를 더했다. 조 시인의 말이다. “기형도 선배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의 흔적을 따라 걸었다. 서른 명 넘는 분이 참여했다. 기형도 시인이 안양에서 보낸 기간은 길지 않지만, 안양 시절은 그의 문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성석제 작가가 기형도 전집에 밝힌 것처럼 초기작의 대부분을 이 시기에 쓰고 정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양 시절은 기형도 문학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지만 거의 알려진 바 없다.”

 

그는 이어 이번 답사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그걸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기형도 시인은 안양 호계동에서 방위병으로 군복무를 하며 안양의 젊은 문학동인 수리시동인에 참여했다. 이들은 등단 전의 문학청년이었지만 열정적이었음은 물론이고 작품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기형도 시인은 거의 매일 이들과 어울리며 시를 썼다고 한다. 기형도 시인보다 열 살 아래인 내가 그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수리시동인에 막내로 참여한 덕분이다. 이번 답사에는 기형도 시인의 큰누나가 시인의 유년 시절을 이야기했고 수리시동인 홍순창 시인이 습작 시절 기형도 시인의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후기를 썼다.

 

안양역서부터 시작한 답사는 원도심부터 수리산성지까지 오후 반나절을 걸었다고 했다. 남의 이야기처럼 쓴 이유는 답사 중간에 빠져나와 끝까지 걷지 못했기 때문이다. 답사 시작과 함께 내린 비는 끝날 때까지 오락가락 흩뿌렸다. 조 시인은 답사팀의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 중간에 카페에 들렀다. 한꺼번에 30여 명이 들이닥친 카페는 부하가 걸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잘 아는 지인들 몇 명과 다른 곳을 찾다가 뜻밖의 간판을 발견했다.

 

웅숭깊은 김치·밑반찬 맛 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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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시 안양동에 있는 ‘갯마을칼국수보쌈’은 보쌈 수육과 김치 모두 감칠맛 나는 맛집이다.

 

비도 오고 해서 간단히 파전에 막걸리 한잔 할 곳을 찾다가 갯마을이란 연식이 느껴지는 허름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해물칼국수와 시골보쌈을 주력한다고 간판에 큼지막하게 써 놨다. 식당은 안양천 제1지류인 수암천 양지1교가 있는 안양동에 있다. 포털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식당명은 갯마을칼국수보쌈이다.

 

보쌈도 급하게 간식으로 먹기 좋을 듯싶어 한달음에 달려갔다. 주어진 시간이 30분 정도라 급하게 보쌈이 되느냐고 물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비에 젖은 손님 꼴을 보니 그냥 보내기 안쓰러워서 브레이크 타임이었지만 아무 소리 않고 들였던 것이다.

 

수육이 나오기 전에 도토리묵, 통나물무침, 열무김치, 참나물무침 등 밑반찬이 상에 깔렸다. 음식이 발하는 색을 보면 맛도 보인다. 특별하지 않은 반찬이지만 역시 예사롭지 않은 웅숭깊은 맛을 선보였다. 밑반찬만으로 곡차가 몇 순배 돌 정도였다.

 

이윽고 등장한 보쌈 큰 접시는 넉넉한 돼지 삼겹 수육과 배추김치, 갓김치에 알배추, 깻잎, 상추 등 쌈채소가 곁들여져 넉넉하고 풍성했다. 배추김치, 갓김치 역시 식객들의 기대와 기준 이상의 맛을 선사했고 자연스레 스몰토크로 이어졌다. 갓김치 때문에 손맛이 여수 출신일 거라고 지레짐작을 해봤지만 멀리서 듣던 여사장님이 전남 영광이라고 알려준다. 자연스레 갯마을이란 식당 이름의 연원을 유추할 수 있었다.

 

전체적인 음식이 역시 대한민국 식재료 보고이자 손맛 일번지 전남의 솜씨다. 맛에 빠져 한참을 허우적대는데 조 시인으로부터 기별이 왔다. 이제 카페에서 출발한다고. 꼬리를 붙잡고 따라가겠다고 하고 술잔을 돌리고 있자니 답사팀이 식당 옆을 지나고 있다. 답사 중에 딴짓(?)을 한걸 보니 끝까지 답사할 마음이 없었거나 하반기에 같은 프로그램을 한번 더 한다는 것 때문에 의지가 박약해진 게 아닐까 한다.

 

중앙시장 순대곱창골목은 필수 방문 명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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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중앙시장 순대곱창골목은 안양 명물이다. 새호남식당은 1986년부터 한 자리를 지켜온 노포다.

 

답사팀 본진이 천주교 수리산성지에 있을 때 잔류 팀은 이미 안양역 전으로 내려와 중앙시장 안 순대곱창골목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요즘은 순대와 돼지곱창을 별미로 먹지만 옛날에는 빈자의 음식이었다. 1970~80년대 안양역 일대가 공단 지역으로 번창하면서 많은 노동자와 상인들이 유입됐다. 안양중앙시장으로 사람들이 몰렸고 인근에 값싸고 든든한 한 끼 음식으로 순대와 곱창 요리가 유행하게 됐다.

 

마치 기차처럼 복도 양측에 똑같은 모양과 넓이의 점포가 15개씩 들어섰다. 독특하게 1층은 입식, 2층은 좌식으로 복층형 구조를 가졌다. 2층 좌식은 주저앉으면 일어나기 싫은 주객들의 요람(이라 쓰고 무덤이라 읽는다)이다. 일부 점포는 현재 2층에 손님을 받지 않고 창고로 쓰고 있다. 대부분 똑같은 순대곱창볶음 메뉴를 주력으로 하지만 점포마다 양념이 조금씩 다르다.

 

호남집, 고창집, 안양집, 칠갑산, 양주집, 예산집 등 지역명을 앞세운 식당명을 쓰고 있는 것도 순대곱창골목을 걷는 재미다. 일행은 ‘SINCE 1986’을 강조한 호남집을 택했다. 다른 곳에 비해 손님이 한 팀도 없었기 때문에 마수걸이 차원도 있지만 1986이란 숫자가 주는 친근함 때문이다. 1986은 필자의 대학 학번이다. 사심 가득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벽에는 빨간 바탕에 흰 물방울무늬가 있는 앞치마를 두르고 곱창을 볶고 있는 여 사장님의 40년 전 사진이 걸려 있다. 사진 속 간판으로 보니 새호남식당이다. 지금도 간판은 호남집이지만 네이버에선 새호남식당으로 검색이 가능하다. 여 사장님에게는 세 자녀를 키운 삶의 터전이다. 지금은 아들에게 2대 대물림을 하고 있다.

 

자리에 앉자 맛보기 순대와 돼지 간을 약간 내준다. 순대곱창볶음이 나오기 전에 안주 삼거나 요기를 하란 의미다. 음료수도 두병이나 서비스로 내주신다. 이런 작은 서비스가 식객의 재방문 의지를 자극한다. 조금 있자니 조 시인이 답사를 마무리하고 합석했다.

 

중앙시장 안 횟집으로 자리를 옮기니 기향도 명예관장과 홍순창 시인이 합류했다. 안양역과 관악역 사이에 한시적으로 안양풀장역이 있던 일, 비행기 군수공장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오가고 안양일번가부터 대농단지, 양지마을, 능골, 율목마을, 병목안으로 이어지는 길의 사연을 되짚은 시간을 갖는 사이 밤이 무르익었다.

 

44년 한자리 지킨 기형도 시인 단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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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 대폿집 우래는 기형도가 자주 들렀다고 한다. 지금도 80년대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마지막으로 세 명만이 남아 기형도 시인이 자주 들렀던 정종대폿집 우래에 들렀다. 서울의 유명 평양냉면 노포 우래옥과 같이 또 오란 의미의 우래(又來). 1981년에 문을 연 안양의 대표적 노포다. 같은 장소에서 지금까지 영업을 하면서 45년간 주인이 딱 한번 바뀌었다고 한다. 내부도 거의 원형에 가깝게 유지되고 있다.

 

히레 사케를 주문했더니 불에 그슬린 복어 지느러미 꾸러미를 꺼내 두 조각 잔에 담는다. 온도 조절 다이얼이 있어서 금고처럼 생긴 기계에서 백화수복이 김을 모락거리며 쫄쫄 나온다. 이를 잔에 따르고 살살 저으면서 성냥으로 히레에 불을 댕기는 퍼포먼스가 우래의 가장 큰 매력 볼거리다.

 

비릿한 시사모(열빙어) 구이 안주는 그저 거들뿐 달도 뜨지 않은 우래의 밤은 어둠으로 빨려든다. 기형도 시인의 마지막 목소리가 아련하다. ‘내 입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밤이 이슥토록 안양에 머물렀다. 시인의 족적이 족쇄처럼 붙잡았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면 다시 오리라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