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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2.08 암흑가의 대부 알카포네...
- 2006.12.08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 2006.12.08 북촌창우극장, 그리고 허규...
- 2006.12.08 조작된 역사...
- 2006.12.06 망월동 가는 길...
- 2006.12.06 아웅산 수지 여사...
- 2006.12.06 지폐, 꿈꾸는 자들의 초상...
- 2006.12.06 안치환 ...
- 2006.12.06 네 마음의 푸른 눈...
- 2006.12.06 잘 사는 나라 못 사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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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노 이오리초의 <암흑가의 대부 알 카포네>는 당대 1급 악인으로 낙인찍힌 카포네의 ‘뒷모습’을 담고 있다. 미디어에 노출되거나 법정에 기소된 죄목은 물론 때로는 미국 하층민의 희망의 상징이라고까지 불리던 그의 생활사 이면까지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다. 다만 ‘하층민의 희망’은 다소 부풀려진 것이지만. 이탈리아 산(産) 카포네가 유명해지기까지는 미국 미디어가 일등공신이다. 물론 카포네는 이민 2세대지만 마피아라는 이름과 결부해서는 이탈리아 산 꼬리표를 피할 수 없다. 1920년대 미디어는 피의자인 카포네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적 세부사항까지 신경 쓰거나 고려하지 않았다. 카포네의 기소 이유는 잔챙이급 범죄 그때부터 기자들이나 라디오 진행자, 영화제작자들은 카포네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책은 소개하고 있다. 그만큼 그가 뉴스 가치를 담보할 수 있는 흥미로운 인물이었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힐 만큼 그의 범죄 혐의가 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현대 미국의 ‘오만과 편견’이 역사성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지난 2002년 부시 대통령은 반테러 전쟁의 제2단계 표적으로 이라크·이란·북한을 지명하면서 그들을 총칭해서 ‘악의 축’이라고 불렀다. 이에 앞서 레이건 대통령은 집권 당시 구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칭하는 등 세계 질서를 지배하려 들었다. 악의 축이라 일컬어지는 이라크에서는 대량살상 무기가 발견되지 않았고 북한은 6자회담을 위해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를 초청했지만 미국이 이를 거부했다. 이란 역시 농축 우라늄 관련 ‘이란판 6자회담’ 가능성을 여는 등 미국의 시선과는 달리 세계는 악을 지탱하는 축 따윈 없는 듯 하다. 괜한 편견으로 공공의 적이 된 카포네 역시 최근의 이라크, 이란, 북한과 마찬가지로 뉴스메이커였으며 가끔은 미디어로 인해 슈퍼스타가 되기도 했다. 카포네 역시 과장된 자신에 대한 평가를 알고 있었지만 철저히 그것을 즐겼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미디어에 이어 정부까지 그를 띄운 사례는 1930년 시카고 범죄위원장인 프랭크 뢰시가 카포네를 공공의 적 1호로 지목했을 때였다. 카포네의 죄는 그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의외로 소박(?)해서 그를 1급 악당으로 부르는데 문제가 있어 보인다. 탈세, 도박, 금주법 위반 정도로 벌금을 물거나 징역을 살았다. 물론 법정 증거부족으로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빠져나갔지만 살인, 매춘, 주류밀매, 도박에 빠진 조직폭력배 두목이라는 데 작가나 기자들이 의견을 같이했다. 그래도 뭔가 석연치 않다. 왜 유독 그만이 미디어에 의해 이렇게 침소봉대 됐는지. 마피아는 미국 미디어가 만든 허상
두 번째 잘못 인식된 것은 조직범죄에서 카포네의 역할을 미디어가 과장한 것이다. 카포네는 사실 나폴리 출신이기 때문에 시칠리아 출신만이 가능한 마피아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언론과 작가 등 미디어는 그를 상업용 조폭 두목으로 분장시켜 우려먹기 시작한다. 실제로 법원의 판결기록에는 단 한 줄도 나와 있지 않지만 미디어는 그를 잔인하고 짐승 같은 살인자로 묘사하고 있다. 심지어 ‘성 발렌타인 대학살’(1929년 2월 14일 경찰복장을 한 일곱 명의 괴한이 기관총을 들고 벅스 모런(경쟁 밀주업자)의 본부로 알려진 한 차고로 들어가서는 신분을 확인하지도 않고 전원을 사살한 희대의 사건)에서처럼 자신은 플로리다 태양 아래 일광욕을 즐기면서 부하들에게는 비열한 짓을 시키는 악당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조직에는 쓴맛만 있는 것이 아니다. 씁쓸하고 어두운 곳만 알리는 글쟁이들이 있는 반면 달짝지근하고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물론 이들은 카포네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를 견제했고 결코 옹호하지 않았다. 다만 그를 폭력과 부패의 시대, 대공황의 시대적 산물쯤으로 여긴 것이다. 가정적이면서 하층민의 희망으로 평가되기도 이들은 카포네를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과거의 이탈리아적 가치를 신봉하며 부모, 형제, 주변 인물들에게 헌신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 첫 감옥살이 1년을 마친 1930년에 석방된 카포네는 자신이 운영하는 시카고 수프키친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제공했다. 어떤 이들은 19세기 미국 농촌에서 영웅시됐던 살인자이자 도둑 제시 제임스(은행·열차강도로 서부의 로빈 후드로 불림)를 카포네와 비교했다. 카포네는 분명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부유한 생활, 방탄유리와 장갑판 차체를 가진 자동차들, 경호원의 호위를 받으며 화려한 여인들을 끼고 도시를 활보하는 모습, 맞춤 양복과 진주색 중절모 등은 그가 가진 부의 상징이며 권력과 등호가 성립되는 재화다. 이러한 요소와 카포네의 작은 선행이 어우러지면서 그는 불황기에 억압받는 하층민의 희망적인 존재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쟁쟁하고 떵떵거리던 그도 20대 풋내기 재무성 요원에 의해 탈세혐의가 입증되면서 몰락의 길을 걷는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언터처블>은 그의 마지막 몰락을 그린 영화로 유명하다. 이후 그는 매독 증세가 심해지면서 1942년 페니실린 치료를 받은 최초의 민간인 중 한사람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병세를 되돌리기엔 상태가 너무 악화돼 있었다. 1947년 1월 시카고 공공의 적 1호 또는 하층민의 희망, 알 카포네는 눈을 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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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는 카파가 직접 쓴 2차대전 종군기다. 이 책은 1987년에 민영식씨가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란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한 적이 있어 낯설지 않다. 책 제목은 <라이프>지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찍은 카파의 사진에 붙인 설명에서 비롯됐다. 사진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 <라이언일병 구하기>를 상상해 보라.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총알이 빗발치던 오마하해변을 떠올린다면 카파의 손 떨림은 당연한 것이다. 1944년 6월의 프랑스 오마하 해변의 물은 차가웠고 상륙정에서 내렸지만 해안까지는 100m나 남아 있는 상태. 주위로 총탄이 날아들어 물이 튀고 적의 총탄이 쫓아오는 것 같은 상황. 카파는 당시를 그렇게 적고 있다. 카파는 상륙정을 타고 노르망디 제1파 병사들 틈에 섞여 상륙작전을 감행했다. 스페인 내전, 중일전쟁, 2차대전 등을 겪어 온 카파에게 전쟁은 역사적 순간이지 더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노르망디만큼은 달랐다. 그만큼 전선이 치열했고 사선이 가까웠다. "또 다른 박격포 한 발이 날아와 철조망과 바다의 중간지점에 떨어졌다. 그 파편에 병사 한 명이 죽었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로 찍었다. 전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포탄 한 발이 또 터졌다. 나는 전혀 겁먹지 않고 콘탁스 카메라 파인더에 눈을 댄 채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 댔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카파가 찍은 사진은 종군기자들 중 가장 훌륭한 사진으로 기록된다. 사진 현상을 하던 암실 조수 역시 흥분한 나머지 건조과정에서 너무 많은 열을 가하는 바람에 유제가 녹아 대부분 망가지는 불상사도 겪었다. 106장의 사진 중 고작 8장을 건졌는데, <라이프>는 사진에 '카파의 손은 몹시 떨리고 있었다'라는 설명을 붙였다. 스페인 내전의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으로 명성 카파를 보도사진가로 세상에 각인시킨 것은 1936년 스페인 내전 때 찍은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이란 사진이다. 그해 <라이프> '올해의 표지'를 장식한 이 사진은 참호를 뛰어나온 인민전선파 한 병사가 기관총을 맞고 쓰러지는 모습을 포착한 것이다. 한 병사가 넓디넓은 하늘을 향해 양팔을 벌린 채, 피폐한 대지로 쓰러지기 직전의 순간을 극적으로 사진에 담았다. 이 사진의 감동은 구도나 표정, 배경이 아니다. 찰나적 긴장의 연속인 전장의 극적인 순간을 담아 낸 현장성에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 세기에서 가장 뛰어난 전쟁기록사진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게르다 역시 당시 스페인 내전에 종군하던 인민전선파 사진작가였다. 1937년 카파가 잠시 프랑스 파리에 와 있는 사이 홀로 스페인에 남아서 취재를 하던 게르다는 후퇴하던 공화파의 탱크에 치여 죽는다. 카파는 전쟁의 허망한 실상을 뼈저리게 느끼고 오랜 시간 게르다의 죽음을 슬퍼했다. 1938년 6개월간 중일전쟁을 취재한 카파는 1939년 다시 스페인 내전을 기록한다. 그리고 2차대전 발발과 함께 미국, 영국,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전선의 가장 앞에서 때론 아군보다 적진 깊숙이에서 전쟁의 역사와 상처를 오롯이 담았다. 18년간 다섯 곳의 전쟁터다. 2차대전 막바지인 1945년에는 미 공수부대와 함께 독일에 침투, 연합군의 라이프치히, 뉘른베르크, 베를린 함락을 가장 먼저 세계에 타전했다. "만약 당신의 사진에 문제가 있다면 그건 너무 멀리서 찍었기 때문"이라는 말은 카파이즘의 정수(精髓)다. 그는 언제나 교착된 전선이 아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단에 있었던 것이다. 카파의 이름이 쉬 잊히지 않고 이어져 오는 이유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치열한 전장에서 억압받는 이들 편에서 전쟁의 실상을 알리고자 했다는 점이다.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럴드 트리뷴> 종군기자 출신 존 스타인벡은 "카파의 사진은 그의 정신 속에서 만들어지고, 사진기는 단순히 그것을 완성시킬 뿐"이라고 회고하는 장면에서 명성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카파의 사진은 그의 정신 속에서 만들어진다" 191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는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난 카파는 1931년 좌익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조국에서 추방돼 베를린으로 건너간다. 이곳에서 <데포트>라는 사진통신사 암실보조원을 하면서 자질을 인정받아 현장 취재를 시작한다. 그러다가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에 쫓겨 파리로 이주하게 된다.
당시 그는 카메라를 표현의 도구로 사용해 정치적 현실에만 초점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게르다의 죽음은 그에게 전쟁의 실상과 비인간성을 통찰하는 안목을 길러주었고 '정신'으로 사진을 찍는 카파이즘의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치열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구촌은 다시는 전쟁이 없을 것만 같았다.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워낙 거대한 전쟁을 치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전쟁을 앞세워 기록된다. 종전과 함께 미국 시민권자가 된 카파는 <매그넘>이라는 사진배급사를 차린다. <매그넘>은 잡지사의 청탁을 받아 요구하는 사진을 찍어 바치는 것이 아닌 찍고 싶은 사진을 찍어 사진은행을 만들었다가 파는 에이전시다. 카파의 <매그넘>은 이전의 사진 유통체계에 일대 변혁을 일으켰다. 사진작가들의 표현의 자유를 충분히 담보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이로써 보도사진 분야는 보다 개성 있고 전문성을 가진 분야로 발전했다. 다시 찾은 전장...게르다 곁으로 날아간 삶
북베트남 전장에 도착한 카파는 5월 25일 하노이 남쪽에서 프랑스 부대에 합류해 푸른 초원을 걷고 있었다. 잠시 후 셔터소리 대신 정적을 깨는 폭음이 들렸다. 카파의 카메라가 크게 흔들렸고 그와 함께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지뢰를 밟은 것이다. 이후 카파는 다시는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게르다가 있는 하늘로 날아갔다. 그이 나이 마흔한 살이었다. 카파는 일생 동안 약 70만 장의 사진을 남겼다. '위대한 카메라의 시인'은 카파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다. 이 책은 카파의 자전적 전기의 일부로 2차대전에 대한 종군 기록물이다. 안타깝게도 스페인내전, 중일전쟁, 이스라엘전쟁, 인도차이나전에 대한 기록은 없다. 이 책은 오래 전부터 사진작가들의 '바이블'로 여겨져 왔다고 한다. 책에는 사진기술에 대한 단 한 줄의 언급도 없는데 말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철한 기자정신으로 포착해 낸 전쟁의 실상과 그 이면의 휴머니즘. 바로 '카파이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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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병세가 악화된 1998년 이후 운영에 파행을 겪었던 북촌창우극장이 오는 6월 3일 인형극 전문극장으로 재개관한다. 고인이 민예극장 시절 <꼭두각시 인형극>을 연출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가졌던 인형극 분야 전문 극장으로 재탄생 한다고 하니 그간의 서운함을 씻고 흡족해 하리라. 북촌창우극장은 북쟁이 허규의 분신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의 권력이 하늘에 닿았던 1981년. 허규는 40대 후반의 나이로 국립극장장이 된다. 문화계는 민간이 맡아야 한다는 여론으로 군부를 압박, 허규가 천거된 것이다. 1989년까지 국립중앙극장장을 맡으면서 내부 개혁과 밖으로는 우리나라 마당극, 축제, 창극을 재정립하는데 일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북촌에 있는 창우(倡優), 즉 창극을 하는 배우들의 놀이터란 의미에서 극장 이름을 지었다. 몸짓을 통해 시대를 표현하려는 광대들에게 재정적 부담 없이 끼를 발산할 수 있는 오롯한 공간을 준비한 것이다. 극단 <민예>를 만든 실험정신과 30년 연출인생을 마지막으로 수렴하기 위한 공간에서 허규는 몸을 아끼지 않았다. 오랜 지병인 당뇨는 그를 살판에서 뒷방으로 주저 앉혔지만 북채는 끝내 놓지 않았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을 일찍 깨우친 그는 우리 고유의 몸짓과 소리에 천착했다. 그러는 사이 몸은 조금씩 사위어 갔고 극장에 내려가는 시간보다 병원에 가는 시간이 많았다.
허규의 죽음 이후 북촌창우극장은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얼마 전까지 공전을 거듭했다. 정동극장이 임대를 했지만 정기공연을 띄우지 않고 대관사업이나 연습실로 사용하는 등 고인의 뜻을 잇지 못했다. 또 문예진흥원(현 문화예술위원회)에서 나서기로 했지만 끝내 약속을 지키지 않아 홀로 남겨진 미망인 박현령(시인)씨를 우울증에 빠지게 했다. '우리 것'에 천착한 인생...2000년 65세 일기로 영면
“한달에 한번씩 은행에 가면/그가 거기에 살아 있다/은행원이 남편의 이름을 부르고/내가 그의 통장에/신용카드 쓴 값을 입금시킨다/은행원들은 참 고맙다/그를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으로/살아서 신용카드를 쓰고 있고/매월 신용카드값을 갚아가고 있는/산 사람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나는 비로소 은행에 가서/살아 있는 그를 만나고/아직도 그와 가족으로 묶여서/가족카드를 같이 쓰고/그가 서울시내 어딘가에서 소줏잔을/기울이고 있겠지 하는 생생하고도/타당하기 그지없는 실감 속에 빠져서/그의 이름이 적힌 통장을 들고 ”이름을 지워주세요. 그는 돌아가신 분이세요.“/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다짐한다/은행통장에서 아직도 살아 있는 그와/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저녁때가 되면 연극판에서 파김치가 된/그가 돌아오겠지 하는 기대감 속에서/내 마음은 그제사 이름 모를 평안 속으로/ 깊이깊이 빠지고 만다. - <한달에 한번 은행에 가면>
인형극 전문극장 선언...김종구씨의 <목각인형이야기> 공연
개관 기념공연으로는 국내 마리오네트 인형극 1인자인 김종구씨의 <목각인형이야기>를 무대에 올린다. 김종구 씨가 직접 한달 보름 동안 관객들 앞에서 인형들을 조작하고 연기를 펼친다. 대가의 숨소리와 땀 냄새를 아주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무대다. 미망인 박 씨는 이 공연에 과거 허규와 인연을 맺었던 연극계 인사들을 대거 초청할 계획이라고 밝혀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할 예정이다. 허규가 떠난 지 6년. 병상에서 떠올린 아이디어인 왕궁 수문장 교대식은 어김없이 계속되고 있는데, 허규는 없다. 북촌창우극장도 제자리를 잡았는데 그는 자리에 없다. 그런데 극장에 홀로 있으면 심장소리 같은 꿈틀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둥둥 낙랑 둥~ 둥둥 낙랑 둥~. 허규가 북채를 쥐고 어디선가 걸어 나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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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된 역사는 증거를 앞세워 복원하면 되지 않겠냐는 반문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지배자의 역사는 '잃어버린 고리'를 자기 것으로 채우고 자신들과 가치관이 다른 것은 부정하고 악으로 몰아세우게 마련이다. 따라서 조작된 역사를 되돌리는 것을 극도로 회피한다. 그래서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 하지 않았나. 기득권, 즉 역사를 조작한 무리들은 이러한 역사의 균열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혼돈이 두려워 과거의 조작 따위는 애써 무시한다. 그러는 사이에 역사 조작은 세대를 이어 교육되면서 역사관을 망쳐 놓는다. 조작된 역사는 비가역적이다 밀가루 반죽같이 멋대로 빚어진 그릇된 역사관으로 말미암아 세계사는 연대적 오차, 시각적 오독에 휘말리게 된다. 이는 곧 인간사의 왜곡이며 조작인 셈이다. 이를 되돌리기란 시간을 거스르는 타임머신이 없는 이상 어렵다. 저자도 대체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독일의 우베 토퍼는 30년간 모국은 물론 유럽의 역사 서술을 바꾸기 위해 조작된 역사를 파헤쳐 온 소위 재야 학자다. <조작된 역사>는 지난 1999년 펴낸 <만들어진 역사>의 연작인 셈이다. 우베는 비가역적일 것만 같았던 조작된 역사를 현장방문과 문헌을 통해 촘촘하게 세상에 드러냈다. 그렇다고 역사가 가역적으로 제자리를 찾지는 않는다. 우베의 한마디로 역사가 뒤바뀐다면 '세계사 연대기'는 매일 뜯어 고쳐도 모자랄 것이다. 다만 역사 조작이 우리의 상상을 초원할 정도로 버젓이 행해졌고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는데 목적을 다한다. 이 점에서 작자는 세상을 혼돈에 빠트리기보다는 엇박자라도 삐걱거리면서 돌아가는 역사가 그나마 낫다는 입장이다. 우베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조작된 유물들을 확실히 만천하에 드러내고 그와 관련된 문헌들이 믿지 못할 것임을 밝혀두자는 것이다. '잃어버린 사슬' 선점에 따라 역사는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감시의 눈이 없으면 역사는 언제고 또다시 조작될 수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바로 '잃어버린 사슬' 때문이다. 누가 그럴 듯하게 이 사슬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톱니바퀴가 굴러가는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사실 조작된 역사에 대한 비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1450년대에 역사 조작은 조직적으로 끊임없이, 그리고 더욱 거세게 행해졌으며 동시에 최초로 비판가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1650년대에 들어서서야 '역사 사기'에 대한 삭제 작업이 진지하게 이루어진다. 문제는 '반짝 관심'일 뿐 역사를 사기극에서 벗어나게 하기는 어려웠다. 역사바로세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온전치 못하다. 때론 사학자들의 실수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조직적 범죄도 많다. 차라리 책을 열지 말 것을. 머리가 지끈거리며 무거워 진다. 우베도 처음엔 같은 생각이었으리라. 조작이나 마나 그냥 스쳐갈 것을. 역자에 따르면 저자의 역사관 저변에는 우주빙하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학계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우주생성이론으로, 이로 인한 지구의 재난과 역사의 단절, 공백 때문에 역사 일부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공백을 메우는 과정에서 인위적 사실, 즉 조작된 역사가 채워져서 잘못된 역사체계가 만들어 졌다는 것이 우베의 설명이다. 다분히 독특한 야사(野史)적 관점이다. 우주빙하설의 진위 이전에 저자가 조작의 근거로 내세우는 주장은 방대하다. 방대함이 때론 읽기 불편함을 주지만. 그나마 고고학에 관심이 있어서 역자 후기가 책 말미에 있는 것을 알았지 녹녹치 않은 책이다. 전문용어는 물론 지명, 인명 등 고유명사가 주는 딱딱함과 무료함, 그리고 방대한 참고문헌 인용이 유발하는 널뛰기 지식, 마지막으로 대중적이지 못한 소재에서 오는 난독증까지. 쉽게 손이 가는 책은 아니다. 추천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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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독립의 아버지인 아웅산 장군의 딸인 수지 여사가 개인적인 일로 입국한 것을 기점으로 폭발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은 그녀를 세상 한가운데로 나서게 했다. 이른바 '88-8-8민주항쟁'으로 인해 수지 여사는 이듬해 첫 가택연금을 시작으로 군사정부의 입맛에 따라 수시로 '박제'처럼 대외활동을 금지 당했다. 지금껏 4차례 장기 가택연금 조치가 있었으며 단기까지 치면 모두 7차례나 된다. 최근에는 지난 2003년 5월 30일 감금 이래 현재 외부와 극도로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다. 미얀마 군사정부는 지난해 11월 수지여사에 대한 가택연금을 6개월 연장 후 해제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따지면 이달 말이다. 그러나 최근 현지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정보는 비관적이다. 가택연금이 연장될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미얀마 진보 월간지 <이러와디(The Irrawaddy)>는 지난 5월 8일 인터넷 판을 통해 '오는 5월 27일 만료되는 수지 여사의 가택 연금을 군사정부가 연장할 것이 확실하다'고 보도했다. <이러와디>는 "수지 여사가 사무총장으로 있는 버마민족민주동맹(NLD)이 해외로 추방되거나 망명한 민주세력과 결탁해 정정을 불안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군사정부 정보장관의 말을 인용했다. 89년 이후 7차례 가택연금
이듬해 7월 수지 여사는 계엄령 하에서 군사정부에 의해 초법적 가택연금을 당한다. 이와 더불어 미얀마 민주인사들의 망명러시가 시작됐다. 우리나라에도 지난 1999년 5월에 NDL 한국지부가 결성돼 조국 민주화를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미얀마 군사정부가 수지 여사의 가택연금을 연장하려는 이유치고는 조잡하다. 구실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지난해 갑작스런 수도 이전에서도 엿볼 수 있다. 랭군에서 북부 밀림 쪽인 핀마나로 수도를 이전하면서 미국의 침공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여론에 슬쩍 흘린 것을 보면 조잡하다기 보다는 혹세무민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인 랭군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제사회가 인정한 미얀마 인권과 민주화의 상징 수지 여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관심은 그녀에게 수여된 각종 상이 대변해 주고 있다. 노르웨이 라프토인권재단(The Rafto Foundation)은 1990년 가택연금 중인 그녀를 라프토인권상을 수여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노벨평화상을 받음으로써 그녀의 비폭력 민주화·인권 운동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동시에 미얀마에 대한 세계적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녀는 노벨상 상금 130만 달러를 조국의 보건·교육기금으로 내놓았다. 우리나라가 제정한 국제인권상인 5·18광주인권상도 수지 여사의 공적을 기렸다. 5·18기념재단은 2004년 이 상의 다섯 번째 수상자로 수지 여사를 선택했다. 기념재단은 선정 이유에서 "80년 암울했던 우리 상황보다 더 비참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언급함으로써 미얀마 군사독재 상황과 수지 여사의 노력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수지 여사의 자유와 미얀마 민주화는 언제쯤?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풍기는 것은 군사 독재정권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필연적인 충돌에 있을 것이다. 우리의 5월 광주와 87년 6월 항쟁, 그리고 필리핀이 그러했고 태국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말 수지 여사의 가택연금을 6개월 늘렸던 군사정부는 또 다시 연장을 계획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화운동의 또 다른 상징적인 인물인 살라이툰탄 박사가 미국에서 귀국한다는 소식으로 미얀마 민주진영이 술렁거리고 있다. 농학자인 살라이 박사는 지난 2001년 민주화를 요구하며 랭군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다가 붙잡혀 18개월 감옥 생활을 하고 미국으로 건너갔었다. 그는 오는 6월 19일 수지 여사의 생일날에 맞춰 귀국할 예정이다. 그는 5월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나를 희생해 군사독재 정권의 종식을 쟁취 하겠다"며 비폭력 평화투쟁 재개 계획을 밝혔다. 상황이 이쯤 되면 수지 여사의 연금 해제는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그동안 국제사회의 어떤 압력과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군사정부가 '마이동풍'으로 흘려들었던 것은 그녀의 자유는 곧 미얀마 민주화의 기폭제가 될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분간 자유로운 모습의 수지 여사를 만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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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의 지폐 속에 새겨진 인물들의 열전인 <지폐, 꿈꾸는 자들의 초상>은 작은 위인전이다. 전 세계 22개국 39명의 지폐 초상 인물들의 모노드라마를 보여준다. 등장인물은 1인이지만 그들이 빚어낸 역사는 장대한 뮤지컬 이상으로 생동감 있고 역동적이다. 한 나라 경제력과 집약된 역사의 결정체라 일컫는 화폐. 특히 지폐에 초상으로 얼굴을 올린 이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자들이다. 이들은 개인만이 만족한 삶이 아닌 인류공영과 문화인류를 지향한 업적을 남기고 사라지거나 현존한 인물들이다. 또한 지폐에는 인물뿐만 아니라 각국의 전통과 문화, 기술력이 총체적으로 담겨있다. 지폐의 역사는 위폐와의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5㎝ 지폐 속에 촘촘히 담겨 있는 인물, 역사, 위폐방지 기술, 그리고 전통과 문화 등을 한 권의 책으로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15㎝ 세상에 촘촘히 담겨 있는 역사 책이 제공하는 정보는 짧지만 유익하다. 개인의 간략하지만 뚜렷한 삶의 궤적을 동행하면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또 인물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를 만나는 것은 봄비 같은 단맛이 난다. 아르헨티나 의학도 출신이면서 쿠바혁명에 가담해 임무를 완수한 체 게바라가 카스트로의 질문을 잘못 들어 쿠바중앙은행 총재가 된 일화, 자습을 시키기 위해 1에서부터 100까지 모두 더하라는 덧셈문제를 내고 돌아 서는 선생님에게 즉답을 내놓은 10살의 가우스(독일 수학자), 자국에 오면 부귀영화를 보장하겠다는 스페인 국왕의 제의를 거절한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 이들 개인의 소사가 후일 세계사에 미친 영향은 대단하다는 표현만으로 모자라다. 어린왕자처럼 하늘로 날아간 생텍쥐페리, 인류에게 무상으로 라듐을 선사한 마리 퀴리, 동심에 정의를 심은 그림형제, 에베레스트 산 초등에 성공한 에드먼드 힐러리, 중국 인민의 붉은 별 마오쩌둥, 그리고 어린 백성을 긍휼히 여겨 눈과 귀를 열어 준 성군 세종대왕까지. 나라마다 인물초상 선정에 독특한 차이를 만나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예술과 문화의 나라 프랑스는 유로화 사용 전까지 지폐에 정치인을 등장시키지 않고 문화예술인과 과학자를 새겨 넣었다. 생텍쥐페리(50프랑)를 비롯해 작곡가 드뷔시(20프랑), 화가 폴 세잔(100프랑), 건축가 구스타프 에펠(200프랑), 그리고 500프랑에는 과학자 퀴리 부부의 초상이 새겨져 있다. 이탈리아 역시 유로화 이전인 1970년대에는 예술가, 탐험가를, 1985년 이후 발행권종에는 문화예술계 인사로 장식했다. 모차르트가 들어 간 오스트리아의 50실링 지폐는 1990년 유럽은행권 콘테스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폐 디자인상을 받았다. 대통령 위주의 미국과는 사뭇 다름을 알 수 있다. 멕시코, 쿠바, 칠레 등 남아메리카 지역 지폐들에는 유독 좌파지도자, 혁명가들이 많다. 제국주의 지배에서 독립한 나라들이 많기 때문이다. 많은 인물들이 과거의 초상이라면 영란은행(BOE)의 모든 권종에 새겨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현존 인물이다. 골프로 한 시대를 휘어잡았던 '필드의 신' 잭 니클로스는 스코틀랜드 5파운드 지폐를 장식했다. 인도네시아는 독재자 수하르토의 초상을 넣었다가 국민적 반감이 거세지자 통용중인 지폐를 회수하는 소동을 빚는 등 현존 인물에 대한 초상은 역사적 검증 부족으로 가급적 회피한다. 나라마다 인물 선정에 독특한 차이...남미는 혁명가 많아 모양새도 나라마다 특성을 보인다. 대부분 가로 도안를 채택한 데 반해 스위스, 이스라엘 등은 돈을 세는 시각(視角)을 기준으로 세로 도안을 사용하고 있다. 세로 도안은 은행권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판단이지만 과학적으로 검증되지는 않았다. 다만 도안배치에 효과적이고 여백을 가득 메울 수 있는 장점은 있다.
지폐의 액면가는 소득수준, 지급결제 관행 등에 의해 결정된다. 최근 발행한 최고 액면가치는 싱가포르의 1만싱가포르 달러로 미국 달러로 환산하면 5799달러에 이르는 고액권이다. 또 이란의 1만리알은 1.3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액면단위가 가장 컸던 것은 1924년 독일이 발행한 100조 마르크. 1차 세계대전 후 전쟁배상금 마련과 경제부흥을 위해 무분별하게 고액권을 남발한 결과다. 이처럼 지폐 속에는 인물초상의 역사와 함께 한 나라의 정체성까지 엿볼 수 있는 쏠쏠함이 있다. 그리고 지폐 제조기술과 함께 발전하는(?) 위폐 범죄의 수법, 이를 방지하기 위한 신기술의 개발은 컴퓨터와 컴퓨터바이러스 간의 전쟁을 보는 듯하다. 위폐기술은 지폐기술과 동반 발전(?)한다 미국의 대북 압박 수단으로 최근 이용하고 있는 슈퍼노트(100달러권) 위폐 논란에서 보여지 듯 위폐 제조와 유통은 한 나라를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다. 그러나 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위폐 제조는 '예술적 경지'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정교해 지고 있다. 12세기 영국에서는 위폐가 범람하자 헨리 1세는 조폐기관 직원들의 위폐제조 가담 혐의를 잡고 직원 100여명의 손목을 자른 일화가 있다. 위폐에 대한 응징이며 동시에 비극인 셈이다. 최근에는 인쇄기술의 발달로 전문가들도 위폐를 단박에 알아내기 힘들다고 한다. 이런 측면에서 14가지의 위조방지 장치가 들어 있는 스위스 지폐는 위폐범들이 몹시 싫어하는 돈인 셈이다. 지폐는 위폐에 의해 가끔 일생을 마감하는 비운을 맞기도 하지만 그 속에 그려진 인물들의 역사는 어떤 위폐도 위조할 수 없는 영원불변성을 담고 있다. 이런 보이지 않는 이유로 지폐에 인물 초상을 넣은 것이 아닐까. 경제부에 몸담았던 현직 기자가 엮은 책은 가장 세속적인 가치(돈) 속에서 철학과 문화적 가치(인물과 사상)를 끄집어냄으로써 '돈'의 중요성을 새삼 깨우치게 한다. 매일 접하는 흔한 소재를 세계사와 버무림으로써 맛난 비빔밥이 됐다. 책을 다 읽을 무렵 느껴지는 포만감은 이 때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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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다는 것 부서진다는 것 구멍이 뚫리거나 쭈그러진다는 것 그것은 단지 우리에게서 다른 모양으로 보일 뿐 그것은 깊은 바닷속 물고기처럼 지느러미 하나라도 잃지 않고 이 세상 구석구석 살아가며 끝없이 파란 불꽃을 퉁긴다 사라진다는 것 부서진다는 것 그것은 단지 우리에게서 다른 모양으로 보일 뿐 부서지지 않으리(김준태 시, 이미영 작곡) 그 노래, 지금 우리 곁에 웅얼거린다
노래는 사라지고 부서지는 것들과 함께 존재하고 노동과 삶 속에 불려진다. 화려한 조명과 방송 카메라 앞이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장에서 불려지는 삶의 애환과 저항을 담은 노래. 우리는 그것을 민초들의 노래, 민중가요라고 부른다.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비합법의 시대. 유신과 80년대는 은유도 직설도 통하지 않는 사방이 '벽'으로 막힌 세계였다. 그 높은 사방사위 담장을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온몸 부서지는 저항의 몸짓과 노래뿐이었다. 벽을 깨지 못하면 물러나서 노래를 불렀다. 담장을 넘어 멀리멀리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게 크고 또렷하게 불렀다. 목이 쉬어 쇳소리가 나도 좋았다. 부르다 지치면 춤을 췄고, 그리고 다시 벽을 향해 달려갔다. 몸짓과 노래는 같았다. 그 때의 노래는 '소리'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행위'였다. 노래에 따라붙은 농무, 여럿이 추니 군무
배달의 농사형제 울부짖던 날 손가락 깨물며 맹세하면서 진리를 외치는 형제들 있다 밝은 태양 솟아오르는 우리 새 역사 삼천리 방방곡곡 농민의 깃발이여 찬란한 승리의 그날이 오길 춤추며 싸우는 형제들 있다 -농민가(작자미상) 7·80년대 학번이라면 가장 먼저 배웠을 노래다. 운동권이건 비운동권이건 <농민가>는 대학생활의 오브제였다. 그리고 <해방가>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을 배웠다. <농민가>와 <해방가>에는 춤이 따라 붙었다. 농무(農舞)라고 해도 좋을 만큼 우리네 흥과 추임새를 고스란히 담은 흥겨운 춤이다.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여럿이 어울리면 군무(群舞)가 된다. 옆 친구의 호흡과 체취를 맡을 수 있는 정겨운 율동이다. 이제는 향수만 남긴 채 거의 사라졌지만. 시간이 꽤 흘렀다고 생각했다. 춤사위도 아스라해지고 노랫말도 꼬이고 뒤범벅되니 말이다. 기억과 작별할 시간이 온 것뿐이라고 애써 외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수리에 꽂히는 서늘한 쇳소리를 들었다. 오랜 기억이 잠에서 깨며 진저리를 쳤다. 안치환의 목소리에 실린 70년대의 노래들이 귓전에서 "사라지는 것은 없어 다만 다른 모양으로 보일 뿐이야"하며 기억의 짧은 유효기간을 나무라고 스쳐갔다. 그의 새 앨범 <비욘드 노스탤지어>는 70년대부터 불려져 80년대 이념의 회오리 속에서 무수히 회자되던 민중가요의 고전을 담았다. 절반은 지은이조차 알려지지 않은 노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시대의 정서와 교감만으로도 충분했다. 평택 대추리가 눈에 보이면 이상화의 시에 변규백이 곡을 붙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가락이 겹친다. 이번 음반은 클래식 기타, 어쿠스틱 기타, 대금, 북이 어울리며 '가리마같은 봄 길'로 노래가 걸어간다. <땅의 사람들>이 <희망가>를 노래했고 <찔레꽃> 핀 <까치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석양으로 무리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보여준다. 피땀 흘려 일군 땅 위에 빈 <코카콜라> 병이 뒹굴고 <이 세상 사는 동안> 오로지 땅을 일구고 산 죄 밖에 없는 <민중의 아버지>는 <미칠 것 같은 이 세상>을 부수기 위해 <농민가>를 부르며 출정한다(※< >안은 이번 음반에 실린 노래 제목이다). 빼앗긴 봄에서 민중의 아버지가 출정한다
안치환은 말한다. "라디오나 TV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이 세상의 모든 노래인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노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하고 노래에 대한 나름대로의 세계를 만들 수 있게 뿌리를 이루어 준 고마운 노래들이 있었다. 그 시절 노래들은 처절하고 엄숙했으며 정직하고 깨끗했다. 때로는 기쁘게 다가오기도 했고 때로는 눈물로 부르기도 했다. 그야말로 가슴으로 불렀던 것이다. 참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시대는 흐르고 그 흐름 속에서 노래가 조금씩 잊혀져 가고 있다. 아니 버림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 안타까운 마음으로 오랜 세월 가슴에 묻어두었던 노래를 이제야 불러 본다. 그 기억으로부터, 그 순수함으로부터…" 노래 가락에 실린 몸은 어느새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 싱그러운 5월 햇살이 온전히 내리쬐는 자유의 땅, 사방사위 철조망과 벽이 무너져 내린 해방의 땅.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 이웃들이 어깨를 겯고 한판 대동 춤을 추는 평화 땅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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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지나가다>를 내고 3년 동안 그녀는 낯선 곳을 떠돌며 그곳에서 만난 운명(작가의 말로는 운명이려다 만 것)을 엮었기 때문이다. 미완의 운명에서 완성된 운명보다 뚜렷한 푸른색을 얻어 냈다는 그녀는 이번 작품을 통해 현실과 환각적 몽환이 겹치는 경험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11편의 작품이 실린 이번 단편집은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문학동네> <세계문학> <현대문학> <작가세계>와 같은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을 모은 것이다. 특히 장편연재를 제외하고 지난해만 중단편을 무려 여덟 편을 발표하는 다작을 했다. 그녀는 '소설'에게 빚 갚음을 위해 쓰고 또 썼다고 한다. 그러나 쓰기는 마음먹기로 되지 않고 언제나 독기를 요구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었던 것은 한 가지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내가 진 이 빚은 정녕 무엇인가? 소설가로 데뷔한 이래 나는 늘 소설에게 미안했다." 표제작인 <네 마음의 푸른 눈>에 등장하는 '일산 아이'는 외국 생활에 따른 이중 언어습득 과정에서 오는 유사자폐를 가지고 있다. 그는 말하지 않았고 언어장애를 치료받고 있었다. 생각과 삶의 이중구조는 가끔 현실에서 달아나기 좋은 재료다. 작가는 일산 아이의 입을 빌어 이번 단편집의 주제를 말하고 있다. "Nothing is real" 주제가 주는 몽롱함과 더불어 단편을 엮은 단편집을 평하기는 쉽지 않다. 자칫 작가의 의도된 주제를 한참 비켜가는 결례를 범할 수 있고 또 하나는 의도된 공통의 주제가 없는 것을 억지로 짜내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오류를 피해가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작가의 입을 통해 직접 듣는 것이다. 물론 작가의 말에서 대부분 작가가 관통하는 세계를 엿볼 수 있지만 이번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작가가 숨겨놓은 '몽환의 덫'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단편집에 대한 평은 의도된, 혹은 의도되지 않은 주제와 작가의 근황을 엮는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소설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나에게 온 어떤 것이다. 생애 첫 단편으로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까지 소설가를 꿈꿔본 적이 없다(믿기에 어렵겠지만!). 데뷔 이래 늘 소설과 낯가림을 해왔고, 매 소설을 시작할 때마다 낯선 세계를 여행하는 여행자의 심정이었다. 데뷔 때부터 직장생활(문학사상 기자, 작가세계 편집장, 솔출판사 편집부장)과 병행하면서 창작해온 관계로 늘 부족한 시간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1998년 이후 전업 작가 생활을 하면서 중·장편도 시도하고, 소설을 본업으로 인접 장르에 대한 글도 쓰게 되었는데, 이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창작할 당시에는 유럽예술묘지기행서인 <그리고 나는 베네치아로 갔다>와 파리기행서 <인생의 사용>, 미술 에세이 <나를 사로잡은 그녀, 그녀들> 등 에세이 작업이 몰려 있어서 소설을 위한 시간을 온전히 내지 못했다. '미안하다'는 것은 작가에게는 작품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는 문예지의 소설 청탁을 다음호로 미루고, 미루고 하면서 갖게 된 안타까움, 아쉬움의 표출이다. 늘 마음속에는, 언제 한번 제대로 소설을 써보았으면 하는 간절함이 있다. '소설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소설을 하나의 살아 있는 존재(인간)로 섬길 때 가능한 표현이다. 나는 소설 이상의 애인을 둔 적이 없다. " - 푸른색이 주는 이미지가 여행(또는 여정) 속에서 만난 미지의 인연들과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지 설명해 달라. "<네 마음의 푸른 눈>에서의 푸른 눈은 심안(心眼)의 빛이다. 그것은 순간적인 찰나의 빛으로 영원한 소통이 가능한, 그러니까 훼손된 자아의 치유, 또는 소외된 자아의 만남(환원)의 순간을 의미한다. <푸른 모래>에서의 그는 소설의 여정이 작가의 여정을 이끄는 신비로운, 초월적 인연을 선사하고 있다. 지금 나는 소설처럼 일산에서 부산 청사포 바닷가에 살고 있다. 청사포는 푸른 모래의 모티브가 된 지명이다. 실제 청사포의 청은 맑을 청이지만, 이곳 해운대 청사포 사람들은 도로 표지판에서 한자의 '淸'자에서 물 수(水) 변을 지우고 푸를 청(靑) 자로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맑은 모래, 푸른 모래, 푸른 뱀(靑蛇)…. 소설을 정밀하게 읽어보면 이러한 이미지와 의미의 변주가 가능할 것이다." - 작품 속에 참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작가의 분신으로 숨어 있음직한 등장인물에 대해 귀띔해 줄 수 있는지. 또는 가장 연민을 갖는 인물이 있다면 이유를 설명해 달라. "<문어에게 물어봐>는 <문학동네> 젊은 작가 특집의 '자전소설'란에 들어간 작품이다. 소설가의 소설치고 자전 소설 아닌 것이 있으랴마는, 자전이라는 타이틀을 비석처럼 거느리고 있으니 가장 흡사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앞서 말했던 <푸른 모래> 또한 그렇다. 가장 연민을 갖는 인물은 <네 마음의 푸른 눈>의 일산 아이다." - 많은 작품 중에서 11편을 묶은 의도된 주제(또는 의도한 바)가 있으면 설명해 달라. "의도는 없다. 나는 새로움을 중요시하는 작품 스타일을 갖는 작가지만, 또한 무엇보다 자연스런 흐름을 중요하게 여기는 작가이기도 하다. 의도라고 하자면, 원래는 10편으로 마무리가 되었던 것인데, 나중에 <푸른 모래>를 넣었다. <푸른 모래>와 더불어 같은 시기 발표한 작품은 다음 작품집에 수록할 예정인데, 그러고 보니 딱히 열한 편의 의도라기보다 책 한권의 형상을 위한 의도가 없지 않다. <네 마음의 푸른 눈>에서 <푸른 모래>로의 이행, 그러면서 푸른 빛, 환각의 현상학적 환원의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함이었다." - 지난해처럼 중·단편 다작인지 아니면 장편인지, 번역을 준비하고 있는지 등 앞으로 작품 활동에 대해 말해 달라. "그동안 소설집을 6권 출간했다. 그러니 중단편(거의 단편)을 50편 이상 창작한 셈이다. 장편은 두 권이고, 올해 출간 예정인 연재한 장편이 한 권이니 단편에 상당히 치중된 편이다. 처음에는 시 또는 시적인 것으로 글을 시작한 이유도 있지만, 호흡 면에서 나는 단편에 적합한 작가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스토리(서사)보다는 의미(시적 이미지)의 창출에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었다. 현재는 서사와 이미지의 강한 결합을 꿈꾼다. 장편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계간 <작가세계>에 <내 남자의 책>을 연재 중이며 프랑스의 현대 작가 브누아 뒤퇴르트르의 경장편들을 번역중이다. " - 그간 독자나 문단에 펼쳐 놓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해달라. "함께 소설가의 길을 걸으며, 또 그 소설가들의 소설을 읽으며 살아온 모든 이들에게 동지감을 느낀다. 소설에게 미안한 마음을 떨치고, 오직 그것에 전념함으로써 자유로워지고 싶다. 새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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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동 지하철역에서... (0) | 2006.1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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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허점이 알려질 새라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을 알았는지 아이들이 엄마에게 기습적으로 질문한다. 달러에 대한 환율이 내려가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뿔싸! 이를 두고 '머피의 법칙'이라 했던가. 엄마는 뼈아픈 일격을 당하고 폐지 뭉치에서 아침나절에 버린 신문을 뒤적인다. 옛날에는 경제도 모르는 이가 대통령을 하기도 했는데 엄마 노릇 하기가 이리 힘들어서야, 하며 한숨을 쉬면서 신문을 펼치지만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오늘따라 원-달러 환율 기사가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질 않는다. 이런 소동이 벌어질까 걱정이 됐을까? 석혜원은 엄마이자 선생님으로서 경제 용어, 원리, 행위를 쉽게 설명한 지구촌 경제이야기 시리즈 <잘 사는 나라 못 사는 나라>를 최근 출간했다. 필리핀계 은행인 메트로은행 서울지점 부지점장인 석씨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경제를 전문분야로 하는 선생님이다. 그럼 석 선생님이 엄마로서 어떤 답을 내놓는지 들어보자.
이를 경제 용어로 '원화절상'이라고 한다. 원화가 절상되면 수입보다는 수출업체가 힘들어진다. 수출대금을 원화로 바꾸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급기야 수출을 중단하는 사태까지 간다. 듣고 보니 참 쉬운 설명이지만 막상 설명하려다 보면 꼬이기 십상이다. 책은 환율과 같은 알쏭달쏭한 경제상식을 비롯해 잘 사는 나라 못 사는 나라의 척도인 국민소득, 국내총생산, 국민총소득 등의 용어 정의, 경제성장과 경제발전의 개념, 무역 및 수출입, 국제수지 등에 대해 실례를 들어 꼼꼼히 설명하고 있다. 딱딱하고 복잡한 경제 분야라서 아이들이 쉽게 식상해 할까 봐 문답식으로 풀어가는 구성이 재미있다. 책 전체가 문어체 아닌 하나의 묻고 답한 내용을 옮겨 놓은 모양이다. 책이 담고 있는 용어나 범위 등을 따져보면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들 눈높이에 알맞다. 그 아래 또는 그 이상 연령대에서는 너무 어렵거나 다소 심심하게 느낄 만하다. 중간 중간 어른들도 알아두면 좋은 정보들이 나와 어른들도 심심찮게 손이 가는 책이다. 외환보유액이 많을수록 좋을까란 질문에 독자는 어떻게 대답겠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적정 외환보유고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외환보유액이 많으면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고 국가신인도를 높이는데 도움을 주지만 외환을 투자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외환 위기를 겪은 우리나라의 경우 피해의식 때문인지 국민이 외환보유액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정보다. 고상미씨가 그린 삽화도 내용과 잘 어울리면서 볼거리를 제공한다. 책은 끝으로 변화에 적응해야 잘 살 수 있다고 잘라 말한다. 공룡의 멸종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요, 경제의 세계 역시 동물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퇴행한다고 지적한다. 예로 코카콜라와 노키아는 변화에 빠르고 능동적인 대처했기 때문에 100년 이상 장수하는 기업이 됐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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