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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2.06 미시마 유키오 대 동경대 전공투...
- 2006.12.06 창동 지하철역에서...
- 2006.12.06 선사시대 사랑이야기...
- 2006.12.06 뇌성마비 배우 서민정...
- 2006.12.06 부모자격 시험문제...
- 2006.12.06 세상을 파고든 유혹의 기술 브랜드...
- 2006.12.06 거제도...
- 2006.12.06 낮술...
- 2006.12.06 녹색의 상상력...
- 2006.12.06 환한 봄날의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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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의 경제부흥 과도기인 1969년 5월 13일 도쿄대학 교양학부 900번 강의실. 당대 전성기를 누리던 문학가이자 투철한 극우파인 미시마 유키오와 좌파의 대명사 동경대(원제를 살리는 의미에서 일어발음을 배제했다) '전공투(전국학생공동투쟁위원회)' 패널 7명이 강단에 섰다. 미시마는 혼자였고 상대는 800명을 등에 업은 7명이었다. 일본 역사의 한 획을 긋는 논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토론은 당시 휴교령이 내려진 동경대 전공투 학생들이 미시마를 초청해 이뤄졌다. 단신으로 동경대 교양학부 강당에 들어선 미시마는 의미를 담뿍 함축하면서도 균형을 잡으려는 듯 입을 연다. "이렇게 나를 세우는 것이 반동적이라는 의견이 있었다고요?" 1 대 800의 끝장 토론, 차이만 확인한 채 마무리 토론은 시간이 흐를수록 불꽃 튀는 논쟁으로 번진다. 쏟아내는 언어의 지평이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자아와 육체, 자연 대 인간, 계급투쟁과 자연으로 돌아가는 투쟁, 게임 또는 유희의 시간과 공간, 천황과 프리섹스와 신인(神人) 분리사상, 사물과 말과 예술의 세계, 관념과 현실에서의 미(美) 그리고 천황·미시마·전공투라는 이름에 대해서 까지. 신격의 천황을 지키고 부활시키려는 미시마와 '욕구불만의 비참한 육체'를 가진 인격체로 전락한 '천왕'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전공투 사이에서 발견되는 간극은 극우와 극좌의 이념적 좌표가 사사분면 대척점에 위치해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논쟁은 그러나 '스스로 적을 논리적인 형태로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적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토론한다'라는 기본 명제에 충실하면서 전공투의 문제제기와 미시마의 대응과 반격, 둘 사이의 겹쳐질 수 없는 평행선을 발견하면서 마무리로 치닫는다. 미시마는 전공투를 향해 끊임없이 천황의 개념과 권위를 인정하기를 요구했고 그것이 가능하다면 공투(공동투쟁)에 기꺼이 응하겠다며 분위기를 정리한다. 그러나 전공투는 천황의 개념은 이미 그를 회자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미시마에게 공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받아쳤다. "지금 제안은 아주 묘한 꼬드김이라 매우 유혹적이지만, 나는 공투를 거부합니다" 논쟁에 숨은 약속...이듬해 비합법 투쟁 후 할복자살 논쟁은 끝났다. 그러나 논쟁의 정점에서 미시마가 뿜어냈던 한 호흡이 목에 생선가시처럼 걸린다. "나는 한 사람의 민간인입니다. 내가 행동을 벌일 때는 결국 제군과 똑같이 비합법적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합법적으로 결투의 사상으로 사람을 죽이면 살인범이니까, 포돌이에게 잡혀가기 전에 자결이든 뭐든지 해서 죽어버릴 겁니다. 그런 때가 언제 올지 모르지만 그때를 대비해서 몸을 단련시키고, '근대 고릴라'로서 훌륭한 고릴라가 되고 싶습니다" 실제로 미시마는 이듬해 11월 육상 자위대 동부방면 총감부실을 점거, 헌법의 나약함을 외치며 동경대 강당에서 흘렸던 '자결'을 실행한다. 그것도 가장 고통스럽게 할복으로 풍미한 한때를 마감한다. '인간'과 '역사'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미시마와 '인간'과 '역사'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전공투의 치열한 공방. 이 공방은 1969년에 끝나 1970년 미시마의 자결로 종지부를 찍나 했지만 30년 후인 1999년 미시마가 궐석인 채로 또다시 진행된다. 사실 이 책 읽기의 쏠쏠함은 30년 후에 모인 당시 전공투 주역들의 '복기(復碁)'에 있다. 당시를 회상하면서 평가와 반성, 그리고 논쟁에서 놓쳤던 부분을 현재라는 공간 속에서 '시뮬레이션'하는 모습은 현대 일본 지식인이 어떻게 탈근대화를 이뤘는지를 보여주는 표본 같다. 30년 후 모임은 비교적 비평에 가까운 논리로 펼쳐진다. 파리 5월 혁명, 민족적 시간과 혁명공간, 스탈린주의, 무정부주의, 국어의 성립, 일본과 유럽의 근대과학, 세계 경제 시스템과 일본, 과학기술과 존재론, 인구 문제 등 주제의 지평은 무한하리만큼 넓어졌고 분석은 평자의 연륜만큼 깊어졌다. 좌우의 이념적 대립이 사회 시스템 전 분야에 미친 영향을 곱씹는 자리에서 평자들은 청년시절의 순간적 불꽃이 아닌 용광로 같은 지식을 쏟아내고 있다. 다시 미시마로 돌아가 보자. 미시마는 동경대 방문을 대체로 유쾌한 경험이었다고 후기에 쓰고 있다. 미시마 역시 동경대 법대 졸업생인 만큼 낯설지는 않았지만 패널 토론을 하는 2시간 30분 동안은 편안하고 부드럽지만 않았다고 했다. 그것을 미시마는 몇 가지 짜증 나는 관념의 상호모색이라고 표현했다(사실 책 내용이 관념어의 나열이 심하다). 양해 불가능한 질문과 사막과 같은 관념어의 나열 속에서 미시마는 정신과 육체의 극심한 피로를 겪었고 시간 때문에 충분한 문제 전개를 못했다고 술회했다. 전공투와의 토론 결과에 대해서는 논리성은 인정하되 그들이 노리는 권력이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다는 지적과 함께. 자기부정의 논리...변증법의 안티테제 이는 당시 동경대 전공투가 내세웠던 '자기부정의 논리'와 상통하고 있다. 자기부정이란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전공투의 행동강령이 대변하는 논리다. 동경대생들이 자기부정 논리를 투쟁주체로 삼은 것은 지성의 중심인 동경대를 지켜야 한다는 학교와 반학생운동 진영 분위기를 해체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적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소속집단(동경대)의 좌표와 자아(동경대생)의 윤리적 좌표가 공교롭게도 한 점에서 충돌함에 따라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기부정 논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종국에는 일본 학생운동의 한계를 스스로 지운 업보로 작용했지만. 미시마는 이런 자기부정 논리 속에 폭력혁명을 갈망하던 전공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이 책 저변을 흐르는 변증법적 안티테제인 것이다. "평화주의의 미명 뒤에 언제나 단 하나의 옳은 전쟁, 즉 인민 전쟁을 긍정하는 논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위험스럽게 여겨왔다. 이것이 내가 평화주의에 대해 커다란 증오를 품어 온 이유 중 하나이다. 그리고 나의 폭력 긍정은 당연히 국가 긍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므로, 평화주의의 가면 뒤에 숨은 인민 전쟁의 긍정이 국가 초극을 목적으로 하는 양하는 기만에 대해서 싸울 수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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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확인한 결과 지하철 1호선 창동역 지상 역사에 설치된 수도권전철 안내간판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은 여전히 경복궁(3호선)에 있는 것으로 표시돼 있다. 더욱 황당한 것은 동대입구역(3호선)에 있는 국립중앙극장이 이촌역(1,4호선)으로 표시된 것. 안내표지판 속지를 바꾸면서 국립중앙박물관을 이촌역으로 변경해야 하는 것을 바로 위에 있는 국립중앙극장과 혼동한 것이다. 사소한 실수 같지만 지난번엔 한 곳만 틀렸는데 이번엔 박물관, 극장 등 2곳을 엉터리로 안내하고 있다. 한 나라 문화의 심장이라고 일컫는 국립중앙박물관 안내에 대한 철도공사의 잇따른 실수가 '작은 착오'로만 보여 지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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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를 읽기 전에 먼저 모라비아가 누군지 궁금하다. 모라비아는 이탈리아 출신 소설가로 문학사에서 그의 위치는 단단하다. 그는 22살 때 이탈리아 중산층의 부패와 무기력한 삶을 그린 <무관심한 사람들>로 문단에 나왔다. 이후 파시스트 정권하에서 <가장무도회> 등을 발표하지만 발매를 금지당하는 정치적 탄압을 받기도 했다. 그 때문일까. 이후 발표되는 <로마의 여인> <고독한 청년> <권태> 등은 도발적이고 악의적 비극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그의 글을 한번쯤 접한 독자라면 이번 우화집에서 드러난 '뜻밖의' 변화에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치열한 리얼리스트인 그가 한갓지게 우화라니. <선사시대 사랑이야기>는 1982년에 발표됐다. 모라비아가 1990년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으니 그의 나이 75세에 쓴 글이다. 말년 작품인 셈이다. 도발과 악의적 비극으로 천착했던 작품세계를 우화로 마무리한 것이다. 거장다운 발상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책은 거장의 마지막 내공을 펜 끝에 모아 날린 듯, 가벼운 우화 속에 묵직한 교훈의 무게가 느껴진다. 가볍게 읽혀지는 우화, 느껴지는 묵직한 교훈 모라비아는 가만히 앉아서 물고기를 한입에 잡아먹으려는 게으른 악어, 그릇된 신념을 고집하는 펭귄, 황새를 사랑한 올빼미, 자기가 어떤 동물인지 모르는 기린, 벼룩에게 당해 자멸하는 디노사우루스 등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등장시킨다. 어미 품속에서 온실의 화초처럼 자라서 홀로 먹이를 잡을 수 없는 게으른 악어에게 공생관계의 악어새는 멋진 이벤트를 준비한다. 악어의 커다란 입 속에서 물고기들의 무도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벤트는 계획대로 진행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실패한다. 악어의 입속으로 물고기를 불러 모으기는 성공했다. 하지만 악어가 끝내 군침을 억제하지 못해 침을 뚝뚝 흘리는 것을 눈치 빠른 철갑상어에게 들켜버린 것이다. 물고기들은 악어의 입을 모두 빠져나갔고 악어는 오랫동안 입을 벌리기 위해 괴어 둔 주먹만한 바윗돌을 애꿎게 씹었지만 자기 손해였다. 이후 악어가 무도회를 연다는 말에 누구도 속지 않았고 배고픈 악어는 나일강변 모래위에서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악어의 눈물이 된 것이다. 악어와 더 이상 공생할 수 없는 악어새는 떠났고 무도회에 참석했던 도요새가 지나면서 말했다. 욕심이 과했다고. 동물들의 이야기, 인간 군상의 세상을 대변하다 단번에 그간의 배고픔을 만회할 수 있는 '한방'을 노린 악어의 얼굴 너머로 로또의 대박을 기다리는 우리네 모습이 설핏 스친다. 우화는 이처럼 우리에게 동물들의 탈을 씌우고 우스꽝스러운 삶을 반성하는 교훈을 느끼게 한다. 일반적으로 우화는 인간과 친숙한 동물들을 등장시켜 이들의 몸을 빌려 이야기하고 그것을 인간에게 되돌려주는 구조로 돼 있다. 때문에 소재의 제약을 받지 않아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 다만 인간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이 없거나 도덕적 기반이 없이 쓰일 경우에는 화자(話者)인 동물이 필자가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우회적으로 쉽게 쓸 수는 있지만 자신의 삶을 투영시키기에 역부족인 사람이 써서는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는 의미다. 우화는 작가의 오롯한 삶에서 나오는 우회 문학 과거 이솝이 들려주었던 인간의 도덕 재무장, 라퐁텐의 군주제 비판 등 우화는 여러 가지 교훈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모라비아가 이 책을 통해 들려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주제파악 하면서 사는 인간이 아름답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같은 기린 무리에 있으면서도 자기가 기린일 줄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자신이 너무 작다며 푸념하는 기린. 그 모습에서 아집으로 똘똘 뭉쳐 공동체와 융화하지 못하는 불쌍한 인간군상이 오버랩 되는 것을 모라비아도 경험했을 것이고 이제는 그것을 우리에게 묻고 있다. 혹시 당신도 그렇게 사냐고.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축선으로 따라오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창조주'다. 선사시대 사랑 이전부터 존재했고 현재와 미래까지도 무한히 영속하는 창조주의 손바닥에서 인간의 탄생과 소멸을 거듭한다. 우화도 마찬가지다. 모라비아는 생의 마감이 끝날 무렵 우화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신에 대한 경외심을 이 책에 담았다. 서툴게 인간 세계를 비판하기보다 창조주의 산물인 인간을 사랑하는 게 우선이란 것을 다시금 깨우치게 하는 책이다. 모라비아의 이 작품은 1994년 '동화의 노벨상'인 안데르센 동화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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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너의 모습을 사랑한다.' 아주 오래전 한 토기장이는 자신이 빚어낸 많은 토기 중에서도 모양이 뒤틀어진 한 토기를 사랑했다. 물론 빚은 의도대로 쓰임새가 있는 예쁘고 단아한 토기들도 사랑했지만, 여느 토기장이처럼 뒤틀어진 토기를 매정하게 부숴버리지 않고 더욱 귀하게 여겼다. 아무리 보잘 것 없이 생긴 존재라도, 언제, 어느 곳에서는 반드시 귀하게 쓰일 수 있다는 토기장이의 깊은 뜻을 담았기 때문이다. 토기장이는 볼품없는 '물두멍'을 왜 만들었을까 4·19 영령들의 눈물인 양 봄비가 변덕스런 바람을 타고 흩뿌리던 19일,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 위치한 공연장 '예술마당'을 찾았다. 대사가 있는 이미지 퍼포먼스라는 색다른 장르의 연극을 보기 위해서다. 지난 7일 막을 올린 <토기장이>는 5개의 토기를 의인화한 이야기다. 각각 '욕심' '열정' '거만' '못난이'라는 이름을 가진 토기들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쓸모 있으며, 더 강하고 때론 독특하다고 으쓱거리며 티격태격한다. 하지만 '물두멍'이란 이름의 토기는 빚는 과정에서 뭐가 잘못됐는지 온 몸이 뒤틀려서 볼품없는 모양이다. 그런 물두멍을 친구들은 토기 세계에서 따돌린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물두멍이지만 그는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고 자신을 빚어낸 토기장이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던 어느 날 토기장이는 한 소녀에게 물두멍을 선물한다. 소녀는 단 한번도 스스로 걸어 본 적이 없는 몸이다. 온 몸이 뒤틀리는 뇌성마비를 안고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다. 물두멍과 소녀는 많이 닮았다. 자신을 빚어낸 '손'을 원망하기는커녕 그 뜻을 헤아리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이들은 이내 친구가 된다. 물두멍, 자기와 닮은 소녀를 만나다
물두멍의 쓰임새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 토기친구가 오만과 교만으로 자신을 뽐내면서 응달을 벗어나 뜨거운 볕이 내리쬐는 곳에서 까불다가 온몸이 갈라질 위기에 처했을 때다. 물두멍은 자신의 수로를 열어 뻣뻣이 굳어 가는 그를 되살린다. 그동안 자신을 '왕따' 시킨 나쁜 친구지만 물두멍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쯤에서 토기장이의 목소리가 이해된다. "있는 그대로의 너의 모습을 사랑한다"던. 그리고 그것을 사랑으로 받아들인 물두멍의 순종이 아름다운 열매로 맺히는 것을 목도할 수 있었다. 연극은 이미지 퍼포먼스답게 역동적이면서 빠르게 진행됐다. 이글거리는 가마 속 2000도의 불꽃이며 조명, 음향이 현실감 있게 뜨거움으로 전해진다. 원래 전공이 무대미술인 연출가 변창희씨의 솜씨답다. 그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은 토기장이가 휠체어에 앉은 소녀에게 물두멍을 전달하는 순간이다. 실루엣으로 처리됐는데, 토기장이에게서 물두멍을 받는 소녀의 손끝이 심하게 굽어 있다. 실루엣만으로 보기에도 힘겨운 모습이다. 소녀의 정체는 연극이 모두 끝난 후 무대 인사를 할 때 비로소 밝혀진다. 1분 동안 가려진 커튼 뒤에서 열연한 이는 바로 서민정씨. 올해 마흔 셋의 '소녀'다. 그녀의 작은 체구는 휠체어 안에 폭 담겨 있었다. 뒤틀리는 오른손을 진정시키랴, 휠체어 바퀴를 돌리랴, 왼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녀는 선천성 뇌성마비로 지금껏 제대로 걸어 본 적이 없다. 그녀에게 말을 걸다
인터뷰는 한편의 퍼포먼스처럼 진행됐다. 일상적인 대화는 어렵지만 상대방이 말한 의도가 본인 생각과 맞으면 그녀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거린다. 연극에 출연하게 된 동기는 원작자인 동생의 권유 때문이란다. 그런데 언니의 잠재적 능력에 동기부여만 했을 뿐이라는 동생 은영씨의 말이 더 맞을 듯싶다. 그 정도로 그녀가 연극무대에 갖는 애착과 열정은 남다르다. 많은 날을 좁은 방안에 머물면서 원망과 자괴감 속에 살았음직한 그녀의 변신은 주위를 놀라게 했다. 가족들조차 몰랐던 그녀의 용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동생의 조심스런 출연 제의에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는 동의했고 짧지만 묵직하고 비중 있는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배역에 걸맞는 출연료를 보장받은 것은 물론이다. 출연료가 얼마냐는 질문에 그녀는 함박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나중에 출연료를 받으면 커피 한잔 사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고개를 크게 여러 번 끄떡였다. 비록 1분. 그것도 그림자로 출연하는 단역이지만, 주연 격인 물두멍이 그녀의 분신임을 알아차린다면 그녀는 이 연극의 숨겨진 주연이다. 이날 두 딸과 함께 연극을 보러 온 한 엄마는 그녀를 직접 보고는 감동한 나머지 울먹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다른 이들도 먹먹해진 가슴을 오랫동안 보듬는 모습이었다. 서민정씨를 지켜본 모든 이들 사이에 공유된 감정이리라. 단 1분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녀 공연장을 찾은 아이들과 그녀는 한참 동안 몸짓과 쉽지 않은 언어로 교감하고 있었다. 연극이 아이들에게는 어떤 감동을 준 것일까. 아이들 눈에는 그녀의 장애가 더 이상 별스런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토기장이가 물두멍에 담은 오묘한 이치를 어느새 알아버린 듯했다. 더이상 슬픔이 아닌 기쁨과 희망을 담은 그녀의 큰 눈망울이 아이들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다. 그녀의 눈빛은 연극 팸플릿에 글자가 되어 녹아 있었다. "나는 날 때부터 뇌성마비라는 중증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단다. 자라면서 내 모습이 다른 사람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뒤틀어지는 내 모습에 화가 나서 원망해 많이 울기도 했단다. 애들아… 그런데 어느 날, 기도 중 십자가에 빛이 비추이더니 그 분을 만났단다. 그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지. '사랑하는 딸아, 아무도 원망하지 말아라! 딸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그녀에게 커튼콜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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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은 장장 6시간짜리. 이미 오래전 부모자격을 얻었는데 뒤늦게 무슨 시험이냐고 아내는 눈을 흘긴다. 그러면서도 이내 시험 감독처럼 옆에 서서 1교시 생활탐구영역을 함께 풀어간다. 부모자격에 대한 시험이 진짜로 존재한다면 합격률은 얼마나 될까. 발칙한 상상이다. 대부분이 과락을 면치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떨어질 것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정해진 시험문제의 답처럼 정답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험이 있다면 일정정도 자녀 기르는데 많은 영향과 변화를 주지 않을까. 1교시 시험문제를 훑어본다.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문제로 엮었다. 답이 알쏭달쏭한 5번 문제를 짚어본다. 독자 여러분도 한번 풀어 보시라. ‘이번에 다른 곳으로 멀리 다녀오면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돌아옵니다. 당신의 자녀는 중고생으로 사춘기와 입시 준비 등 아주 예민한 시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①파견근무를 포기한다 ②가족을 다 데리고 간다 ③내가 먼저가고 얼마 뒤 가족을 부른다 ④친구나 친척에게 가족을 부탁한다 ⑤소식을 자주 전하거나 집에 자주 온다 ⑥상의하여 결정한다 독자 여러분이라면 몇 번을 정답으로 고르시겠는가. 한 선생님은 ⑥번을 정답이라고 했다. 가족들의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상의해서 결정하는 것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가장 현명한 의사결정이라는 해답 설명과 함께. 승진도 좋지만 헤어지지 않는 방법을 찾거나 헤어졌을 때의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가족간 상의를 통해 찾는다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답이란 표현은 적합치 않다. 가정마다 상황의 차이가 있기 마련이니 모범답안 정도로 참고할 순 있겠다. 시험은 2교시부터 어려워진다. 대한민국 부모들의 절대화두인 자녀들의 학교와 교육 문제(3교시)를 다루기 때문이다. ‘당신은 아이를 왜 학교에 보냅니까’라는 첫 문제부터 답안 작성을 주춤거리게 만든다. 다행이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객관식 답이 있기 망정이지 주관식 문제였다면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고민의 근본 이유는 교육은 학교 이전에 가정이 먼저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교육자 페스탈로치(1746~1827)는 ‘가정은 도덕상의 학교’라고 정의하며 인성교육의 원천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가족집단에서 어머니와 자녀의 인격관계를 중요시하고 모든 교육의 기저라고 했다. 일평생 교육에 헌신한 그가 가정을 교육의 맨 꼭대기에 위치시킨 것은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면 자연히 시민으로서의 자질이 높아지고 국민으로서의 자각이 강화돼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정신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고 본데 따른 것이다. 다시 말해 학교에 왜 보내는지 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주저하는 수험생 부모는 가정교육을 먼저 되돌아 봄직하다. 위기탐구영역을 다루는 4교시에서는 2차 성징의 외적표현인 이성문제, 학교폭력, 음주, 음란물 등에 대한 부모들의 시각을 조심스레 묻고 5교시 대화탐구영역 시험에서는 아이들 마음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평가한다. 이 영역에서는 권위적인 부모의 역할대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 입장으로 문제를 풀어야 합격률(?)이 높다. 마지막 시험으로 미래탐구영역에서는 무조건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부모세대의 고정관념을 유연하게 만들어준다. 자식의 직업으로 부모의 귀천을 보상 받으려는 보상심리를 접도록 도와주는데, 예를 들어 아이가 사회적 지식도 낮고 보수도 형편없는 직업을 선택하겠다고 할 때 부모들의 가치판단 기준을 묻는다. 자신의 가치 기준으로 남을, 특히 자식을 재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가정과 교육의 현실이니까. 다만 <부모자격시험문제>를 통해 끊임없이 복습하고 예습한다면 ‘야수의 성질’을 조금은 버리지 않을까? 저자 역시 성인군자형 부모보다는 대화하는 부모를 원했으리라. 결과적으로 기자는 간신히 자격은 있는듯 한데, 자신이 없다는 채점결과가 나왔다. 분발하라는 내면의 채점인 것이다. 이 책의 또 하나의 쏠쏠한 재미는 시험이 끝날 때 마다 덤으로 주어지는 정보에 있다.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 환경캠프, 문화유적답사, 체험학습에 관한 정보며, 전국의 대안학교, 홈스쿨링, 계절학교 목록, 지역별 청소년 상담기관, 독서지도, 독서토론, 독서치료에 대한 유용한 사이트를 총망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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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6월 벨기에에서 콜라를 마신 아이들이 집단 복통과 구토로 100여 명이 입원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콜라는 전 세계적으로 브랜드 가치가 가장 높은 코카콜라. 사고는 안트베르펜 공장에서 병을 밀봉할 때 '불량' 이산화탄소를 사용하는 바람에 콜라가 오염돼서 벌어졌다. 벨기에 정부는 제품 리콜과 판매금지 조치를 단행했지만 국민들은 한동안 콜라 공포증에 시달려야 했다.
사고 7년이 지난 지금, 코카콜라 브랜드는 건재하다. 이는 코카콜라가 그동안 공격적인 브랜드로 내성을 키웠기 때문이다. 위기관리와 기업 커뮤니케이션이 모자란 부분을 브랜드로 극복한 것이다. 브랜드 가치 하락을 브랜드로 극복하는 모순 속에서 브랜드 파워의 중요성이 새삼 느껴지는 대목이다. 코카콜라의 초기 대응 미숙은 브랜드에 서비스 개념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추세는 제조업 브랜드 속에 서비스가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일례로 제약업은 영업사원으로 하여금 병원이나 약국 일선에서 약의 올바른 효능효과는 물론 의약계 현실을 전달함으로써 의사와 약사는 제품 판단의 기준을 갖는다. 이런 측면에서 제약업은 제조업이지만 동시에 서비스업 측면을 갖는다. 그동안 브랜드는 소비재를 앞세워 성장한 이유로 서비스 개념 도입에 인색했다. 그러나 월리 올린스(Wally Olins)는 브랜드 속에 서비스를 담아 호흡하라고 지적한다. 그는 40년간 기업이미지통합 작업과 브랜드 관리의 노하우를 담은 이 책을 통해 이제는 제품 브랜드에서 서비스 브랜드 시대를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핵심 규칙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조직을 브랜드 위주로 재편, 조직원간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깨닫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는 조직원과 브랜드가 한 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브랜드의 소중함과 고객 존중이라는 일관성과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지켜져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 브랜드 위주로 조직개편... 조직원과 브랜드는 '한 몸' 이 책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국가 브랜드 정립의 중요성을 역설한 대목이다. 88서울올림픽을 통해 국가 브랜드를 세계시장에 내놓고 2002월드컵에서 브랜드 가치를 키운 우리나라의 경우 올해 열렸던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브랜드 가치를 확인했다. 국가야말로 거대한 브랜드 정체성을 먹고 사는 생물체와 같다. 따라서 국가도 생존을 위해서는 유혹의 전선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가 행간 사이에 배어 있다. 저자는 국가 브랜딩 작업의 대표적인 주자로 프랑스를 손꼽는다. 다섯 공화정과 두 제정, 그리고 네 왕정을 거친 프랑스는 건축, 궁전, 국기, 권력형태, 법제, 교육 등 체제가 변화될 때마다 시스템을 새롭게 브랜딩함으로써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다. 이같은 프랑스의 국가 브랜딩 작업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효과를 낳기도 했다.
이 세 요소의 적절한 조화가 국가, 기업, 제품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브랜드가 침투하지 않는 분야가 없으며 정부도 하나의 브랜드로 관리에 따라 국가의 성패까지 좌우한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저자는 브랜드가 나아갈 길에 대해 인상적인 한마디를 남긴다. "다소 심기가 불편할지는 모르나 이젠 브랜드를 자선사업과 예술, 대학, 스포츠, 문화영역 안으로 들여보내야 한다. 이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브랜드를 효율적이고 영향력 있는 존재로 키우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다." 책이 주는 정보는 저자가 관련 전문가로 몸담았던 40년이란 세월만큼 두텁고 방대하다. 그러나 엄청난 지식과 정보를 한정된 지면에 펼치다 보니 다소 우겨넣은 듯 한 느낌이다. 두텁지만 깊이를 재기가 어렵다. 브랜드의 정의를 늘였다 줄였다 쥐락펴락하는 저자의 전문성을 따라잡기 힘든 탓일 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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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는 한자로 클 거(巨), 구제할 제(濟)로써 '크게 사람을 구하는 섬'이란 뜻이다. 또 바다 건너 많은 섬을 거느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1900년 이전에는 한산도를 포함한 통영 앞바다에 크고 작은 섬들이 거제도에 소속돼 있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거제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는 놀랍게도 구석기시대로 추정된다. 이는 지역에서 출토된 당시 토기와 석기유물이 증명해준다. 또 청동기시대 대표적 유물인 고인돌(지석묘) 유적이 섬 전역에 분포돼 있어 이미 선사시대부터 거제도에는 원시조상들이 농경과 천렵을 하면서 살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선사 이후 기록물에 따르면 삼한시대 변한 12국 중 독로국(瀆盧國)의 일부로 추정되며 757년(신라 경덕왕16년)부터 거제군이라 하였다. 1914년 통영군에 폐합되었다가 1953년 거제군으로 환원되었으며, 1995년 거제시에 편입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같은 거제도의 역사는 물론 유물, 유적, 관광지, 문화와 섬사람들을 소개한 바다 색깔의 알싸한 책이 출간됐다. 현재 거제중앙고등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치고 있는 김철수씨는 거제의 해안선 700리를 몇 바퀴쯤 돌았음직한 종합 기록물인 <거제도>를 선보이고 독자를 쪽빛 바다가 넘실거리는 곳으로 유혹한다.
거제도의 이름이 국민의 뇌리에 각인돼 있는 것 중 하나는 한국전쟁 당시 세워졌던 포로수용소일 것이다. 전쟁 중 원래는 대전형무소 내에 설치됐던 포로수용소는 전황에 따라 대구, 부산 영도 등으로 이전된다. 그러나 14만 여명의 포로를 이동시키는 일이 쉽지 않음에 따라 제주도와 거제도가 새로운 장소로 거론됐으나 제주는 피난민과 공산주의자가 많고 식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제도가 최종 낙점됐다. 이같이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선택은 공산포로 폭동이라는 비극의 기록을 남긴다. 1970년대 들어서는 제3차 5개년 계획에 따른 중화학공업 육성책에 따라 옥포만에 옥포조선소가 들어선다. 그러나 오일쇼크와 사업변경 등 진통을 겪으면서 흐지부지 되다가 8년 뒤 대우가 새 주인이 되면서 옥포조선소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후 삼성중공업 역시 거제조선소를 세움에 따라 명실상부한 조선(造船)전초기지가 된다. 그러나 개발에는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경작지와 야산이 집터로 변했고 식수 해결을 위해 댐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을이 수몰되는 등 실향민까지 양산했다. 대우조선이 들어서면서 사라진 아양골은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마을이고 거제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몽돌해변이 있었던 곳이라고 저자는 안타까워한다. 조선산업의 발달과 개발논리에 밀린 천혜 환경 저자는 식물생태학 박사 출신으로 전문가 시각으로 동백림, 팔색조 도래지, 아열대 기후와 상록수림, 해양생물 등을 화보와 함께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또 섬 전체를 중부권을 포함해 4분할해서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과 문화를 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칠천도, 가조도, 이수도, 내도와 외도 등 부속 섬들을 드나들며 각각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뽑아내 '섬속의 섬'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거제도를 상징하는 노래도 있다. '거제의 노래'는 1956년 초대 거제교육감을 지낸 신용균 씨가 군민의 노래를 공모했는데 시조시인 무원(無園) 김기호 선생의 글이 당선돼 채택된 것이다. 노랫말은 충무공 기개와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지, 순박한 섬사람들의 인심을 잘 나타내고 있다.
섬은 섬을 동아 연연 칠 백리 굽이굽이 스며 배인 충무공의 그 자취 반역의 무리에서 지켜온 강토 에야디야 우리 거제 영광의 고장 구천 삼거리 물 따라 골도 깊어 계룡산 기슭에 폭포도 장관인데 갈곶지 해금강은 고을의 절승 에야디야 우리 거제 금수의 고장 동백꽃 그늘 이지러진 바위 끝에 미역이랑 가시리랑 캐는 아이 꿈을랑 두둥실 갈매기의 등에다 싣고 에야디야 우리 거제 평화의 고장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왜구의 침입이 잦았고 이에 대비한 성곽이 유난히 많은 것이 특징인 거제도가 서서히 관광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청마 유치진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고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 해금강, 무엇보다 눈앞에 펼쳐진 한려수도가 유혹하는 섬 거제도. 저자에게 섬 가이드를 부탁하면 흔쾌히 받아 줄 것 같은 넉넉함이 전해지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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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은 중년의 주인공들이 각기 다른 환경에서 겪는 열 가지 '서글픔'을 엮은 옴니버스 소설이다. 작가는 '너'를 앞세운 '2인칭'이라는 다소 낯설고 드문 시점으로 인간군상의 삶을 들춘다. 낯설음은 불편하다. 혹자는 2인칭이 등장인물의 내면을 찬찬히 섬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시선의 깊이를 준다고 하지만, 차라리 '그'라는 3인칭 시점이 아쉽다. 그것이 어쩌면 슬픈 우리의 자화상을 조금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낮술>에서 2인칭 시점이 선사하는(?) 중년의 삶은 무겁다. 작가의 집요한 들추기, 정밀한 묘사가 주는 지긋한 가슴 누름 역시 주인공 '너'와 읽는 '나'를 얽어매면서 아득하게 낮술에 취하게 만든다. 독자들을 흥건히 취하게 만든 작가와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소설가의 길로 접어든 지 20년, 여전히 무명이라는 작가에게 왜 애이불비한지 속내를 물었다. "하하하...한 마디로 문학상을 한번도 받아보지 못했다." 되돌아오는 답은 명쾌하면서 서늘했다. 그 속에서 우리 문단의 고질적인 병폐를 쉽게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 2인칭 시점을 주로 사용하는데 의도한 이유는? "독자들은 대개 1인칭 주인공시점과 관찰자시점, 3인칭 관찰자시점과 전지적 작가시점에 대해서만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교과서적 지식일 뿐이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하나의 시점을 택한다 하더라도 문장마다 대화마다 미세한 시점의 변화를 주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의 시점대로만 서술한다면 등장인물의 어법이나 문장이 어색해져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게 된다. 일부러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기 위한 실험소설이 아니라면 소설에 있어 자연스러움은 미덕이라 생각한다. 또한 소설에서 '낯설게 하기 혹은 생소화'야말로 문학성의 요체라 할 수 있다. 문학이나 예술은 낯익은 것을 낯설게 함으로써 사물들을 더욱 선명하게 인식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2인칭 소설의 성립여부는 문제제기될 수 있다. 2인칭 소설의 화자가 실체를 갖춘 '너'라는 점에서 1인칭 소설의 화자 '나'와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2인칭 소설의 화자나 1인칭 소설의 화자나 자신이 체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서술한다. 2인칭은 타인에 관해, 1인칭은 자기 자신에 관해. 그러나 소설이 주는 효과는 전혀 다르다. 2인칭은 3인칭 전지시점보다 오히려 '너'의 내면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낮술>에 나오는 2인칭 소설의 화자는 '너'의 또 다른 분신일 수도 있다." - 단편 '낮술'에서 광장, 낮술, 능(陵)이 함축하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광장은 그야말로 정글의 법칙만이 난무하는 '현대사회'를 의미한다. 광장에 나온 너는 '줄서기'를 잘못했고 융통성이 부족해 정리해고 된다. 너는 아내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한 채 거리를 배회하며 '낮술'을 먹는다. 여기서 '낮술'은 불안과 우울을 잠재우는 매개로 사용된다. 낮술을 먹으면 '세상은 다시 꿈속처럼' 변한다. 다시 말해 낮술에 취해 있는 동안에는 현실을 잊을 수가 있다. '낮술'의 의미는 우리가 바라는 '피안의 세계'쯤 될 것이다. 능은 아버지를 의미한다. 어린시절의 능은 거대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찾아간 능은 몹시 작아져 있다. 이 시대 아버지의 권위도 부권도 이 능처럼 작아져 있다. 그 옛날 아버지는 무능했지만 당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너는 아내에게 실직했다는 말도 하지 못하는 처지다. 단편 '낮술'은 얼핏 실직자에 관한 소설 같지만 사실 실직자를 소재로 야성을 잃어버린 이 시대의 남성에 관한 소설이다." - 도시인의 비극적인 삶을 유년과 결식시켜 풀어간 글이 많은데, 그 이유는. 유년은 현재의 운명론적인 연장인가, 아니면 삶은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뜻인가. "아마 상처받은 영혼이 자기정체성을 찾아가는 소설들 이야기인 것 같다. 유년, 다시 말해 세상과 처음으로 만날 때의 '첫인식'이 인생을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첫사랑'이 우리의 평생을 따라 다니듯이. 그러므로 유년은 현재의 운명론적인 연장일 수도 있다.
- 글 속에서 현대인의 삶의 고단함 속에 포기되는 것들이 많아 보인다.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 할 근원적인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누구나 어린시절 혹은 청소년 시절에 꿈을 가진다. 그 꿈이란 매우 비현실적일 경우가 많다. 그런 꿈을 실현시키기엔 현대사회는 너무나 척박하다. 유명 화가가 되기까지 호구지책이 막연하며, 유명 작가(시인)가 된다 해도 직업으로 하기엔 불가능하다. 직업이란 밥이 해결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모두들 꿈을 가슴에 안은 채 묵묵히 거대한 사회의 톱니바퀴의 한 나사못이 되어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다 어느 날 그 못은 녹이 슬고 급기야 바닥에 버려지게 된다. 그 순간 비로소 인간은 자신을 돌아본다. 그때서야 잃어버린 꿈에 대해 가슴 아파할 수 있다.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 할 근원적인 것은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고 그 내면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다. 그러나 삶은 우리를 그렇게 진정으로 살아가도록 구조적으로 잘 돼 있지 않다." - 이번 단편집에 대해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현대 사회는 가정이 파괴되고 있다. 가정은 이미 증발하고 없고, 가족관계만 유지 되고 있다. 언젠가는 서로 사랑하는 남녀끼리 살고, 아이들은 사회가 키우는 시대가 도래 할 것이다. 이 단편집에는 현재 한국 가정의 균열이 어떻게 시작되고, 진행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 많다. 서서히 진행되는 대화 단절과 섹스리스 가정이 늘어나고, 여자들에게 애인이 생긴다. 아내에게 애인이 있다는 걸 알지만 가정을 깨지 않기 위해 남편들은 모르는 척 한다. 모르는 척 못하면 이혼한다. 이혼율 세계 2위인 나라다. 한국 사회의 이 비인간화 현상은 정치, 경제, 사회 체제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샐러리맨의 뒷모습에 초점을 맞춰봤다." - 좋은 작품을 내고도 '무명 20년'이라고 했는데, 우리 문단의 문제점과 대안은? "어느 집단이든 인간이 모이는 곳엔 똑같은 문제점이 있다. 현시욕과 공명심이 강한 이들끼리 '장' 자리를 놓고 이전투구를 하기도 한다. 패거리문학이 성행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것만이라도 문학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곧 문학이 동호인모임으로 전락할 것 같은 위기감이 든다. 대안이란 없다. 그냥 그렇게 가는 거다. 중요한 것은 문학인들이 '재미있는 글'을 써서 외국 작가들과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 나도 노력하고 있다. 또한 유명세를 한번 타면 계속 언론에서 그 소수의 작가만 확대재생산하고, 출판사가 또 거기에 춤을 추니, 신인들의 우수한 작품이 사장되는 것이 안타깝다.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해 줬으면 하는 것은 일정한 심사를 거쳐 작품집에 한해서는 전국의 도서관에 배포한 책을 사 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에 대해 알려 달라. "실직자, 분단, 이데올로기니 하는 것들은 내 문학의 수단이나 배경일 뿐이다. 진정 내가 다루고자하는 것은 인간의 외로움, 그리움, 사랑, 희망에 관한 것들이다. 생명 가진 것들에 관한 측은지심이라든가, 인간이 인간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같은 것들이다. 다음 작품은 장편소설 <수국집 아이, 아키코>라는 연애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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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는 생명공학의 기반이다. 자본의 돈벌이를 위해 생명윤리를 경시한다면 후손의 생명이 경시된다. 건전한 생명공학을 위해서라도, 일부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같은 연구자 집단, 그 연구자 집단을 불투명하게 지원하는 정부의 감시와 제동의 멍에를 시민의 이름으로 씌워야 한다.’
조작 문제는 서울대 자체조사를 거쳐 이제 검찰의 손으로 넘어갔다. 관련자의 신문과 대질 등을 통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법리논쟁에 들어갔다. 그러나 조작이 이미 밝혀졌기 때문에 책임질 사람을 찾아내면 이 문제는 일단락된다. 그리고 주홍글씨로 남는 윤리문제를 다독이는 것은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몫이다. 우리 사회가 이런 고민에 휩싸여 있는 가운데 <녹색의 상상력>이 ‘기다렸다는 듯’ 출간됐다. 저자 박병상씨는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대표 등의 직함에서 알 수 있듯 생명과학의 무리한 발전 속도를 감시하고 제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이 책도 그 연장선상에 쓰여 졌다. 책이 나온 타이밍도 좋았다. 황우석 사태의 진실게임이 진행되는 가운데, 이 문제에 십자포화를 퍼부으며 책 전반부를 대거 할애했다. 책은 생명공학이 지닌 ‘동전의 양면’을 고찰하면서 위험성과 비윤리성에 무게중심을 두고 비판을 가한다. 또 인류의 근원적인 문제인 환경문제에 시각을 넓혀 하부구조인 생명공학 문제를 바라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 질병의 원인인 환경오염을 그대로 두고 환경을 더욱 교란하는 생명공학으로 질병을 말초적으로 치료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우리나라 생명공학 기술을 폄하하는 의미로 ‘젓가락기술’이란 표현이 있다. 이는 생명공학을 삶의 질적인 차원이 아닌 기술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한편 그 속에 들어 있는 윤리적 문제에 대한 은근한 비꼼이 담겨 있다. 그런 지적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황 박사팀은 연구용 난자 사용부터 시작해 모든 과정과 결과를 조작, 세계를 상대로 ‘연극’을 펼쳤다. 저자는 이러한 황 박사의 사기극을 ‘비판 없는 과학기술의 그림자’ 때문이라고 표현했다. 우리 언론의 호들갑스러운 이슈 따라잡기와 윤리문제에는 눈을 감아버린 이중성을 지적한다. 물론 광기어린 네티즌과 일부 언론의 돌팔매를 견디고 진실을 알린 < PD수첩 >의 용기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그들만의 윤리인 취재윤리에 대해선 옹호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그림자가 잔뜩 드리운 음습한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인위적 조작, 양심을 국익과 개인의 영달로 포장한 과학자들의 소곤거림, 우리 과학계는 언제까지 주홍글씨를 지고 가야하는지. 또 생태환경을 보지 않고 오직 자기분야의 과학적 성과에만 매달리는 과학자의 근시안적 안목. 속도전에 뒤지지 않으려고 브레이크마저 팽개쳐버린 위험천만한 과학계의 현실. 저자는 각박한 과학이라는 학문에 푸른 생명을 불어넣자고 주장한다. <녹색의 상상력>은 다소 느리되 과학과 생태의 균형 있는 발전을 갈구하고 있다. ‘생태계에는 이해당사자가 없다’는 저자의 목소리는 새만금, 천성산 개발과정에서 노출된 생태양극화의 문제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승자도 패자도 있을 수 없는 과학의 진보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생은 어쩌면 신인류로 가는 현생 인류의 성장통이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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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흔들의자>로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시조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늦깎이로 등단한 강정숙 시인이 그간의 글을 묶어 첫 시집 <환한 봄날의 장례식>을 펴냈다.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뼈아픈 과거사를 풀었다', '시집의 제목처럼 가벼움 속에 녹아든 무거움, 무거움이 밀어 올리는 가벼움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곱씹다보니 단순하게 평할 글이 아니다. 개인사를 꼬깃꼬깃 담았기 때문이다. 물론 책을 냈다는 것은 비평시장의 '상품'이 되고자 한 것이기에 취사(取捨)의 몫은 시인의 손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천이 된 시인의 굴곡을 논하기엔 평면적인 평자(評者)의 불혹살이가 다소 가소롭다. 게다가 '비린내와 함께 찾아 온' 초경에 시인은 죽어있었고 외려 '배도 오지 않을' 폐경기에 비로소 많은 것을 비우고 새롭게 태어남을 그린 두개의 시, 두 줄의 시어를 맞닥트리고 서평 쓰는 것을 대략 접었다. 그 대신 시인을 인터뷰하기로 했다. 책에 있는 이메일을 이용 했지만 좀체 회신이 없다. 그래서 시인이 이끌고 있는 인터넷 시동인 카페를 수소문해 간신히 연락이 닿았다. 덕분에 시인과 채팅도 하고 이메일 인터뷰도 가능했다. 책에 있는 이메일 주소가 잘못된 것이란 것도 알게 됐다.
"처음 책을 펴내는 사람들의 공통 심리가 대체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 합니다. 바로 부끄러움이죠. 내 속을 까발린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더 잘 쓰지 못 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겠지요. 그리고 다소 막막해 지기도 합니다. 어떤 평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물론 욕심을 버렸다고는 하지만 말입니다. 문단에도 참 여러 계층이 존재하는 게 염연한 사실이고 보면 그 중심부에 들지 못하는 99%의 시인들, 혹은 시인 지망생들의 안타까움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역설로 말해서 다 글 잘 쓰는 사람들만 있다면 세상은 오히려 재미없을지도 모릅니다." - 유년을 거쳐 장년에 이르는 현재까지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는 시어인 성(性, 또는 정체성)의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글을 쓸 땐 크게 의식하지 못한 점이지만 막상 책으로 묶고 보니까 제게 일관되게 부닥쳐온 것들이 정체성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많은 형제자매 속에서도 유독 외톨이(시인은 유년기를 시골에서 할머니와 고모랑 셋이 보냈다) 생활을 했던 유년기와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도 두려워했던 사춘기며 이후 폭력적 남성과 억압된 여성 모두에게 연민 내지 저항적 의식을 키웠던 것 같습니다. 그런 내면이 결국 알게 모르게 정체성 찾기로 귀결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전반적으로 은유적인 표현이 많은데 직설법을 쓰지 않는 이유는. "미국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T. S 엘리엇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메타포 안에서 이성과 감성은 통합된다'.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날(膾)것이나 인접성 보다는 유사성에 바탕을 둔 은유체계 속에서 감성은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좋은 글이란 진정성과 새로움을 동시에 갖춘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 시조로 등단했는데 시와 차이에 대해 설명해 준다면. 차이가 크다고 봅니다. 자유시는 행보가 자유로운 대신에 자칫 개인적 사념이나 사유의 방만에 빠질 수 있고 시조는 율격의 엄격함 때문에 사유가 갇히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시의 자유로운 사유를 어떻게 정형의 틀 안에 잘 담을 것인가가 시조인의 숙제입니다. 결국은 자유시와 시조는 한 몸인데 그것을 발현해 내는 방식에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두 가지를 다 잘해보고 싶습니다. 시조로 입문하였으니 시조 사랑엔 변함이 없습니다. 제 다음 목표는 좋은 시조시집을 엮는 것입니다."
"두 곳에서 동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2004년 첫 동인집 <이 위험한 경계>를 펴낸 '시와 색' 이라는 동인의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다음카페 'e시인회의'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제 근황은 불교적 사유 안에서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애착이나 집착에서 벗어나 되도록 많은 것을 놓아주고, 버리는 연습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 하루 중 주로 창작하는 시간과 1인3역(女婦母)을 하면서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시간을 정해놓고 하진 않습니다.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하다가도 시상이 떠오르면 즉석에서 적습니다. 살짝 귀띔해드리면 사실은 책을 내고 나니 많이 부끄럽습니다. 제 책이 혼신을 다한 열정의 산물이라 해도 많은 부분이 개인적 차원에서 머문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바깥을 바라보며 시대의 아픔이나 나 아닌 타인, 혹은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을 꺼내어 위무해주거나 다독여주는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그것도 아주 유쾌한 어조로 써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가정에 충실하고 아이들 잘 키우느라 남달리 늦게 입문했지만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었던 것 같습니다. 글을 써야하는 한 인격체이면서 또한 아내로서 엄마로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만 이제는 글로써 인정받고 싶습니다. 시인은 인터뷰 내용과 관계없이 자신의 소회를 밝힌 글에서 한발 재길 틈 없는 문단의 척박함을 슬퍼했다. 문단의 현실과 시인의 안타까움이 뒤범벅되어 다른 이의 마음까지 무겁게 한다." "소수를 제외하고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각 학교의 문창과나 사회교원의 시창작반, 혹은 문화센터 회원들이 오로지 좋은 글을 쓰겠다는 하나의 일념으로 열심히 정진하고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입문도 하기 전에 지치고 좌절하고 맙니다. 제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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