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2. 16. 09:50

막말쟁이 이시하라...

'망언대장' 이시하라의 이상한 고소사건
발언 자막처리 잘못한 명예훼손 사건 검찰 송치에 "당연한 일"
유성호 (shyoo)
이웃 일본에는 망언으로 유명한 정치인이 있다. 바로 현 도쿄 도지사인 이시하라 신타로. 그는 지난해 10월 28일 도쿄에서 열린 납북자 관련 집회에 참석 1910년 한일합병과 관련해 "합방은 조선인이 선택한 것"이라는 망언으로 물의를 빚는 등 주로 동북아지역 국가들을 대상으로 막말을 하기 일쑤다.

이런 그가 작년 11월 자신이 내뱉은 말을 잘못 자막 처리한 <동경방송>직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사건이 15일 검찰에 송치되자 "정치인의 말은 생명"이라며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을 보여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사건의 요지는 지난해 11월 2일 방송된 <동경방송>의 정보 프로그램 '선데이 모닝'에서 이시하라 지사의 발언에 대한 자막을 잘못 처리한 데서 시작됐다. 이시하라가 도쿄의 한 집회에서 "한일합방의 역사를 100% 정당화할 생각은 없다"고 말한 것을 는 "100% 정당하다"고 잘못 자막을 내보낸 것.

그동안 이시하라 지사가 단골처럼 써왔던 한일합방에 대한 자신의 망언에 대해 한발 물러서는 발언을 <동경방송>이 그동안의 전력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망언'으로 둔갑시킨 것.

이와 관련해 <동경방송>은 다른 프로그램을 통해 사과방송을 내는 등 진화에 섰지만 이시하라 지사는 "업무적인 실수라고 보기에는 어렵다"며 "의도적인 행동으로 보여진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시하라는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명예가 심각히 훼손당했다며 관련 직원을 올 2월에 경시청에 고발했으며 수사를 담당한 수사 2과는 15일 이 사건을 검찰로 송부했다. 잘못된 자막 처리로 검찰까지 올라간 사건은 극히 이례적인 것으로 고소당한 <동경방송>직원은 담당 PD를 포함 모두 4명이다.

경찰청은 " 직원들이 지사의 발언을 고의로 왜곡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인정돼지만 지사의 역사인식을 비판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사회적 평가를 폄훼 했다"고 송부 결정에 대해 설명했다.

이시하라 지사는 이같은 결과가 발표되자 "정치인에게 있어 말은 생명이며 이것이 왜곡돼 있었던 것은 매우 유감이었다"며 "검찰로 서류 송부는 당연하고 수사 결과를 지켜 볼 것"이라고 말해 <동경방송>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동경방송>은 "수사중인 사건이라 언급을 삼간다"며 "그러나 의도적인 왜곡은 없었다"고 말하고 향후 수사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같은 이시하라의 행동은 그동안 자신이 쏟아냈던 망언과 상반되는 것이어서 스스로 그동안 해왔던 망언을 부정하는 꼴이 됐다.

이시하라 지사의 망언은 한국은 물론 동북아 주변국은 물론 자국 내에도 거침없기로 유명하다. 중국에 대한 대표적인 망언으로는 "사람들은 일본이 난징에서 대학살을 저질렀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중국이 꾸며낸 것이다. 이로 인해 일본은 국가 이미지에 손상을 입었고 난징 대학살은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플레이보이>와 인터뷰)

"요즘 도쿄에 불법 침입한 많은‘삼국인(三國人)’들이 범죄를 일으킨다.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대단히 크다. 치안 유지를 위해서는 자위대가 출동하여 진압해 주기 바란다"(2000년 4월 육상자위대 부대창설 기념식)

"중국이 몇 개의 소국으로 분열된다면 좋을 것이다."(2002년 <슈피겔>지와 인터뷰), "중국은 15년 안에 6개 정도의 국가로 분열될 것. 그쪽이 오히려 경제적 효율이 좋은 체제라고 생각한다"(2002년 재일 미국상공회의소가 주최한 강연회) 등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북한 따위가 허튼 짓을 하면 한 방에 괴멸시키겠다"(2000년 3월), "내가 총리가 되면 북한과 전쟁을 해서라도 북한에 억류된 일본인들을 데려오겠다. 북한이 북한 내 일본인 납치자들에게 해를 가할 경우 전쟁도 불사하겠다”(2002년 <슈피겔>지와 인터뷰) 등이다.

자국에 대한 망언도 볼만하다. "현행 헌법을 수정 또는 파기해 대동아공영권을 구축해야 한다”든지 "여성이 생식능력을 잃고 살아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100세 이상 살았던 '쌍둥이 할머니' 긴상 자매처럼 오래 사는 것은 지구에 큰 폐해다. 문명이 가져온 가장 유해한 것은 할머니다." (2002년 <주간여성> 인터뷰) 등의 거침없는 막말을 쏟아 놓고 있다.

이로써 말이 생명이라는 이시하라 지사의 생명은 곧 막말인 셈이다.

2004/12/15 오후 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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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학생 바보...

일본 대학생 35% 자국어 능력 '중학생 수준'
일부 수업 지장 초래…핵가족화·무시험제도 등이 원인
유성호 (shyoo)
일본 대학생 중 상당수가 자국어 이해 능력이 '중학생 수준' 밖에 않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치바시에 있는 <미디어교육개발센터> 오노 히로시 교수에 따르면 대학생의 일본어 능력이 지속적으로 저하되고 있으며 국립대 6%, 4년제 사립대 20%, 단기(전문)대학생의 35%가 일본어 능력이 유학생보다도 떨어지는 등 중학생 수준밖에 되지 않아 수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고 <산케이신문>이 24일 보도했다.

오노교수는 올에 입학한 33개 대학의 학생 1만3000명을 대상으로 중고등 과정 수준의 시험 문제 풀게 하고 이를 2년전 중학생들의 성적과 비교했다. 그 결과 단기대학생 35% 등 모든 대학에서 중학생 수준밖에 되지 않는 학생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수치는 5년에 조사된 국립대 0.3%, 사립대 6.8%, 단기대학 18.7%보다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일본어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요구되고 있다.

일례로 '걱정하다'의 일본어인 '憂(うれ)える'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서 중학생 수준으로 판명된 대학생 3명중 2명이 '기쁘다'는 뜻의 '嬉(うれ)しい'를 음감이 가깝다는 이유로 선택해 말 그대로 '걱정되게(?)' 했다. 정상 수준의 대학생생도 50% 밖에 정답을 맞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테스트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의 경우 대학원생은 대부분이 '고등학교 수준'에 도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일본 대학생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일본어 능력 저하 원인에 대해 오노교수는 "핵가족화와 시험이 없는 입학 등이 증가하는 것에 있다"며 "입학 후 빠른 시기에 수업을 이해할 수 있는 고교생 수준까지 일본어 능력을 늘리는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에 치른 시험에서 '중학생 수준'으로 판명된 1200명 중 270명을 대상으로 조 1회 3개월간 재교육을 실시한 평균점수가 65점에서 96점이 되는 등 단기간의 훈련 이해력이 크게 성장하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오노 교수는 덧붙였다.

오노 교수는 "학생은 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재교육을 해 보면 의외로 실력이 성장한다"며 "대학측이 적극적으로 학생의 일본어 훈련에 나서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2004/11/24 오후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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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11. 25. 01:20

제천 바이오밸리 집적화...

제천시, 한방산업도시로 대변신 '박차'
산둥중의약대와 업무협정 조인 등 한방 집적화사업 추진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유성호(shyoo)기자
충북 제천시(시장 엄태영)가 중부권을 대표하는 한방산업 클러스터 개발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제천시는 23일 중국 산둥성(山東省)에 있는 산둥 중의약대와 상호교류를 위한 양해각서 조인식을 갖고 양국의 동양의학 발전을 다짐하는 한편 시를 한방특화 도시로 만드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 제천시ㆍ산둥중의약대 상호교류 양해각서 조인식.
ⓒ2004 유성호

엄태영 시장과 쑨증리앙(孫曾良) 산둥중의약대 당위서기는 이날 청풍 레이크호텔에서 열린 <한·중의학발전 국제세미나> 현장에서 양해각서를 교환하고 제천 바이오밸리 특화를 위해 중의학과 약학 등에 대한 폭넓은 학술 교류를 약속했다.

▲ 중국 산둥중의약대 쑨증리앙 당위서기.
ⓒ2004 유성호

엄 시장은 "중국 3대 중의약학대학과의 교류라는 면에서 무궁무진한 협력 가능성이 엿보인다"며 "양해된 내용에서 언급한 것처럼 앞으로 한·중의약연구소가 제천 바이오밸리에 들어서면 가장 앞서가는 바이오 클러스터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쑨 당위서기는 "제천시와 양해를 맺게 된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며 "양해각서 내용을 구체적으로 충실히 이행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양측의 양해 각서 체결에 앞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세명대학교 한의학연구소장 김정범 교수는 '한의학의 현황과 발전방안'이란 주제 발표를 통해 "한방의약품과 관련해 모든 단계에서 국제 규격을 도입해 처방과 대체 한약 연구를 통한 고품질의 한방의약품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현재 중국 한약재의 GAP(한약재표준재배) 제도가 지역 특성을 무시한 맹목적인 개발이 일부 진행되고 있다"며 "우리의 경우 국제 규격을 도입해 국내외적으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북대 수의학과 박승춘 교수는 "약용식물의 산업화를 위해서는 한약재의 품질체계 및 과학화, 지자체 한방 산업화 추진, 한액재 생산·유통 검증, 실용성 있는 사업계획 수립, 약용작물 연구, 농가 소득 향상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발표했다.

양해각서 조인식 이후 계속된 세미나에서 제천시 투자통상실 윤경섭씨는 "제천을 웰빙시티로 만드는 것이 최고 최상의 목표"라며 "이를 통해 국내 한방 바이오산업을 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중국 측에서는 산둥 중의약대 증펑잉(曾鳳英) 부교장, 티엔잉쩐(田景振), 샹구앙신(商廣新) 교수 등이 나와 중국내 한약재의 개발 현황과 임상실험 결과에 대해 발표했다.

한편 이번 세미나는 제천시와 제천시 한중민간교류추진협의회가 함께 주관하고 충북도와 보건복지부가 후원했다.

참고) 당위서기-당 서기 아래 직책으로 쑨 당위서기는 산둥중의약대에 소속돼 있으면서 성 내 20여개 대학을 총괄 관리를 겸하고 있다.

"중부권 한방산업 메카로 발전"
[인터뷰] 엄태영 제천시장

"한·중의약연구소를 제천 바이오밸리에 설립하는 것이 1차 목표입니다. 또 현실적으로는 어렵지만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제천에 산둥중의약학대학 분교 설립을 적극 추진할 예정입니다."

엄태영 제천시장은 23일 기자와 만나 산둥중의약학대학과의 상호협력 양해각서 조인식 이후 풀어갈 현안을 이렇게 설명하고 폭넓은 교류를 통해 한·중 전통의학 발전을 거듭 강조했다.

엄 시장은 제천이 한방산업화 단지를 선도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가장 잘 구축된 곳이라며 최근 노무현 대통령 현지 방문 때 한방 산업단지 조성에 대해 건의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제천의 한방 산업단지 조성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앞으로 이를 지역 발전의 성장 동력으로 십분 이용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산업자원부의 승인을 받아 235억원 규모의 전통의약산업센터 건립에 착수한 상태"라며 "앞으로 만들어질 한방산업지원센터, 한·중의약연구소와 함께 제천을 한방도시로 이끌 3대 축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제천의 청정 자연환경과 한방산업을 접목시킨 '에코테라피'(생태치료) 단지를 만들어 관광과 한방치료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특화 도시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특히 지역내 바이오밸리 땅을 한방 관련 제약사에게 염가로 분양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제약사들이 입주할 경우 최대한 행정 절차를 간소화시키는 등 편의를 봐주겠다고 말했다.

엄 시장은 "대통령에게 건의한 제천 중심의 태백권 한방산업단지가 확정되면 제2의 바이오밸리를 추진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중부권 한방 산업의 메카로 제천을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유성호 기자

2004/11/24 오전 9:25
ⓒ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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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를 만난 장애아들...

장애아들과 도깨비의 신나는 만남
백마사단 도깨비부대, 인강학교 장애인 초청 병영체험 행사
유성호 (shyoo)
지난 11월 7일 하늘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뽐내며 구름 한 점 없는 비취색으로 곱게 물들어 있었다. 발달지체 장애아 학교인 서울인강학교의 스카우트 학생들은 아침부터 한껏 들떠 있었다. 인근 군부대의 초청을 받았기 때문. 장애라는 이유로 앞으로 군대 문턱도 밟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학생들은 군부대에 방문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저마다 스카우트 복장을 추스르는 등 약간의 긴장감이 돌았다. 그러나 부대에 도착하자마자 연대장 이하 수많은 장교와 사병들이 도열해 환영을 하자 얼굴은 금새 천연덕스러운 웃음이 새어 나왔다.

백마부대는 서울 초입인 고양군 일대를 방어하는 부대로 학생들은 그 중 도깨비연대를 방문했다. 도깨비연대 연대장인 김현수 대령과 예하 대대장인 허남채 중령은 장병들과 함께 문 앞에서 이들을 반갑게 맞았고 학생들이 내리자 사병들과 일대일로 일촌 관계를 맺어줬다.

▲ 인강학교 학생들의 도깨비 부대 병영체험.
ⓒ2004 유성호

사병들의 얼굴에는 어떤 편견과 거리낌도 없었고 오히려 인솔 선생님들이 무색해질 정도로 학생들을 잘 돌봐줬다고 이날 인솔을 담당한 장인석 선생은 말했다. 이날 방문한 학생은 20명으로 김현수 연대장은 이들을 브리핑룸으로 데리고 들어가 눈높이에 맞게 부대 연혁을 '짧고 굵게' 설명했다.

▲ 사열대에 앉아서 특공무술을 관람하는 학생들.
ⓒ2004 유성호

그리고는 사열대로 이동, 도깨비부대의 자랑인 특공무술을 선보였다. 얼굴을 검게 위장하고 붉은 머리띠를 두른 군인아저씨가 눈을 부릅뜨고 나와 터질 듯한 목소리로 기합을 넣자 아이들은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특공무술단의 화려한 군무와 격파 시범이 이어지자 이내 탄성과 박수, 그리고 어렵게 혀를 틀어가며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2004 유성호

▲ 도깨비부대원들의 특공무술 시범 장면.
ⓒ2004 유성호

도깨비부대 장병들은 특공무술 시범에서 불붙은 링 뛰어 넘기, 기왓장·벽돌 격파 시범 등을 선보였으며 특히 장교들까지 가세해 몸을 사리지 않고 학생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특공무술이 진행되는 동안 연병장 뒤로는 105mm무반동총 등 각종 화기들이 도열하기 시작했고 무술 시범이 끝나자 학생들은 그곳으로 안내됐다.

ⓒ2004 유성호

▲ 각종 화기를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신기해 하는 학생들.
ⓒ2004 유성호

난생 처음 보는 중화기를 손으로 만져보고 운전대에 앉아서 차를 모는 시늉을 해가며 학생들은 마치 군인이라도 된 듯 한껏 들떠 있었다. 일촌으로 맺어진 사병들은 학생들에게 화기의 화력과 용도를 소상히 설명했으며 그럴수록 아이들의 눈빛은 군인처럼 빛났다.

생전 처음 보는 무기 구경에 시간가는 줄 모르던 아이들은 연병장 확성기를 통해 점심시간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리자 아쉬운 발길을 돌려 사병들과 함께 식당으로 들어갔다. 말로만 듣던 군대 '짬밥'을 먹는 시간이다. 사병들의 식사예절 설명을 듣고 아이들은 천천히 그리고 맛있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 일촌을 맺은 형들과 다정히 식사하는 모습.
ⓒ2004 유성호

특히 혼자 식사를 하기 어려운 중증 장애학생의 경우 일촌 사병이 자신의 식사도 거른 채 끝까지 밥을 먹여주는 장면에 인솔 선생님들도 놀라는 한편 감동했다. 사전에 사병들의 교육이 얼마나 철저하게 잘 이뤄졌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라며 교사들은 흐믓해 했다.

▲ 내무반을 들러보는 아이들.
ⓒ2004 유성호

맛난 식사를 한 후 김현수 연대장은 학생들을 군인들의 숙소인 내무반으로 인솔해 가정처럼 포근한 곳이라고 설명하면서 나중에 건강을 되찾아 이곳에 꼭 오라고 격려했다. 도깨비부대는 군 인터넷 시범사업부대로써 도서관에 컴퓨터가 매우 잘 갖춰져 있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일촌 형들과 사진도 찍고 인터넷도 하면서 자꾸 다가오는 귀가 시간을 애써 외면하는 듯 했다.

이별의 시간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날을 위해 몇 일을 준비했을 군부대 장병들과 마지막 인사와 기념사진을 찍고 학생들은 차에 올랐다. 일촌 군인형과의 작별이 못내 아쉬워 눈물이 그렁 매달리 아이, 포옹한 손을 놓지 않으려는 아이, 장병들의 눈도 어느새 벌겋게 충혈이 됐다.

▲ 도깨비부대 김현수 연대장과 함께 기념 촬영.
ⓒ2004 유성호

그러나 용감한 군인의 기상을 잃지 않으려고 애써 웃는 표정으로 아이들을 환송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두 손에 건빵 한 봉지를 작은 선물로 들려 보냈다. 김승진 군은 "군인 아저씨 짱이다! 짱!"이라며 오른손 엄지를 치켜 들며 좋아했다.이날 인솔을 맡았던 장 교사는 "아이들을 데리고 여러 곳을 다녀 봤지만 이렇게 아이들의 눈높이를 이해하고 준비한 곳은 없었다"고 감사한 마음을 나타냈다.

한편 이번 병영체험은 인강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중경산악회의 김진세 총무가 고등학교 동문 선배인 김현수 대령에게 지나가는 말로 부탁한 것을 김 대령이 흔쾌히 받아들여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김 총무는 행사가 치러진 줄조차 몰랐을 정도로 김 대령은 '왼손의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아이들을 기쁘게 했던 것이다.

인강학교 선생님들은 이번 행사에 대해 매우 만족한다며 기회가 된다면 병사들과 함께 하루 정도 숙식을 함께 하면서 야간 경계근무도 서고 군용 트럭도 함께 타는 등의 체험까지 하고 싶다고 말했다.

2004/11/17 오후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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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11. 18. 11:09

불수도북 종주기...


'불수도북' 산행에서 나이는 숫자일 뿐!
4·50대 남자들의 서울 북부 4개 산 무박2일 종주기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유성호(shyoo)기자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 산악인 사이에서 '불수도북'은 한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매력적인 코스다. '불수도북'이란 서울의 동쪽과 북쪽을 아우르며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불암산(508m), 수락산(637.7m), 도봉산(739m), 북한산(836m)을 하루 안에 오르내리는 강도 높은 산행 코스다.

빠르면 15시간에서 길게는 22시간까지 여러가지 조건에 따라 시간 차가 많이 나는 이 코스를 우습게 봤다가는 큰 코 다친다. 면면이 쉽지 않은 코스지만 하루를 꼬박 걸어야 하기 때문에 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등 기본적인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산악인들이 도전했지만 과반수 이상이 실패하고 중간에 내려오는 코스로 알려져 있다.

일반 산악인 사이에서는 '불수도북' 종주에 성공했다고 하면 어느 정도 '산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2·30대도 어렵다는 이 코스를 나이 값도 안하는(?) 4·50대들이 겁도 없이 도전한 길을 쫓아 본다.

지난 11월 13일 저녁 어스름이 짙어갈 무렵인 오후 6시경 태릉 45번 버스 종점에서 불수도북에 도전하는 고등학교 동문 선후배 8명이 모였다. 이들은 중경고등학교 동문들로 구성된 중경산악회 소속으로 1회부터 11회까지 모였으니 나이 분포로는 42세에서부터 52세까지 모인 셈이다.

▲ 불수도북 출발 직전.
ⓒ2004 유성호
이종기, 정영작, 최진수, 김진세, 이정화, 박종혁, 박준갑, 주권식 동문은 단단한 행장으로 성공적인 산행을 다짐하고 산을 오르려 했다. 그러나 출발부터 몇몇 동문이 면박을 받았다. 무슨 소풍 가듯이 배낭을 그리 크게 싸왔냐며 산행대장인 이정화 동문이 다그친다. 불수도북 산행의 가장 중요한 성공 포인트는 바로 '가벼운 배낭'에 있다.

엄청난 체력 소모가 요구되기 때문에 고열량의 행동식과 물을 준비하되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날 처음으로 불수도북에 도전한 한 동문은 몸무게 100kg에 배낭만 40kg은 족히 되도록 싸들고 왔다. 가뜩이나 산행 도전이 두려웠는데 면박까지 받으니 얼굴에는 두려움이 짙게 깔린다.

그러나 어쩌랴 길은 가야 하는데. 싸온 것을 버리진 못하고 불암산을 향해 출발했다. 주위는 완전히 어둠이 휘감고 있다. 헤드랜턴 불빛만이 산길에서 일렬로 춤을 추면서 이동한다. 불암산 매표소를 지나자 이날 오전부터 북한산과 도봉산을 종주하고 내려 온 여봉구, 김재영 동문이 기다리다 합류했다. 이로써 모두 10명이 불암산 정상을 향해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길을 재촉했다.

▲ 불수도북의 첫번째 목표인 불암산 정상.
ⓒ2004 유성호
출발한 지 1시간 반만에 불암산 정상에 올랐다. 불암산은 작은 산이지만 정상 부근이 완전히 암릉 지대로 이루어져 바위 타는 재미가 쏠쏠해서 산악인들에게 인기가 좋다. 그러나 정상 부근이 좁고 어두운 터라 모두 모여 사진을 찍기는 위험해 한명씩 돌아가면서 정상 확인 사진을 박았다.

불수도북은 성공 이후에 시간을 따지면서 등급을 따로 매긴다. 대략 20시간을 기점으로 안쪽으로 들어오면 제법 산을 탄다는 소리를 듣고 그 이후면 좀 더 체력을 보완해야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인지 일행은 사진 몇 장을 찍고는 서둘러 하산한 다음 수락산으로 향했다. 앞서 북한·도봉산을 오르고 중간에 합류했던 두 동문과 체력이 약한 한 동문, 이렇게 세 동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더 이상은 어렵겠다며 포기했다.

덕릉고개에 도착한 것은 밤 8시50분. 과거 길이 나지 않았으면 불암산과 능선으로 이어져 있을 길을 이제는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의지를 다시 다지고 심호흡을 길게 한번씩 한다. 그리고 정각 9시에 수락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수락산은 기괴한 모양의 암석들로 유명하다. 그러나 밤이라서 주변 경관은 포기해야 하고 오직 앞사람의 발뒤꿈치를 따라 조심스럽게 산을 즈려밟고 올라야 한다.

덕릉고개 능선을 따라 오르다 보면 흥국사라는 절을 만날 수 있다. 흥국사는 조선 선조가 1568년 중종의 아홉번째 아들 덕흥대원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 편액을 내린 절로 유명하다. 흥국사의 옆구리를 끼고 돌아 수종암을 거쳐 540봉우리에 올라 거친 숨을 내려 쉬자니 멀리 서울 북부의 야경이 찬란히 빛난다.

▲ 수락산 정상. 등뒤로 도시의 야경이 아련히 빛난다.
ⓒ2004 유성호
물 한잔, 초콜릿 한조각을 나눠 먹고는 동문회 돌아가는 이야기를 잠시 하고는 다시 배낭을 들쳐 맨다.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길을 재촉한다. 수락산을 타고 내려와야 따끈한 야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밤 11시10분 정상에 올랐다. 수락산을 정복하는 데는 2시간10분이 걸렸다. 야식 생각에 일행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산을 서둘렀다. 509봉우리를 거쳐 동막골로 하산길을 잡았다. 그래서 도착한 곳은 회룡역 근처 '고스락 감자탕' 집이다. 이때 시간은 새벽 1시25분. 하산 길에 날짜가 바뀐 것이다.

▲ 감자탕 집에서 야식을 먹고 짬을 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2004 유성호
쌀쌀해진 날씨 탓에 얼큰하고 따뜻한 국물이 그리웠다. 일행은 이구동성으로 뚝배기 해장국을 시켜 게눈 감추듯 먹고는 온돌의 유혹을 못이기고 잠시 가면을 취한다. 일부는 이미 체력이 바닥나 다음 산행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 때 천사 같은 목소리를 하면서 여자 동문인 김정숙 동문이 컵 라면과 꿀물을 타서 산행 팀을 격려하기 위해 나왔다. 일행은 동문의 따뜻한 정성에 힘을 얻어 바닥난 체력을 수습해 다시 배낭 끈을 졸라맸다.

그러나 우려했던 대로 몸무게 100kg의 동문은 배낭의 무게에 못 이겨 결국 2개 산 종주에 만족하고 다음 산행을 포기해야만 했다. 또한 가장 막내인 40대 초반의 팔팔함을(?) 자랑하던 동문 역시 체력 고갈을 이유로 아쉽게도 주저앉았다. 1회 동문은 다행이 아직 체력이 남아 있다며 산행대장을 앞세워 도봉산으로 향했다. 불수도북에는 나이가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 사패능선에서 자운봉과 사패산 갈림길을 나타내는 이정목.
ⓒ2004 유성호
일행은 새벽 3시10분경 식당을 나와 도봉산 공략에 나섰고 4시반경에 자운봉과 사패산 갈림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패산 정상을 찍고 오면 완벽한 '불수도북사'를 완성할 수 있지만 첫번째 시도하는 사람이 많아 포기하고 자운봉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날 산행대장을 맡은 이정화 동문은 이미 불수도북을 여덟차례 종주한 바 있고 100km 울트라 마라톤을 10시간대에 주파하는 강인한 체력을 가지고 있다.

▲ 세번째 목표인 도봉산 정상.
ⓒ2004 유성호
든든한 산행대장은 일행이 포기하지 않도록 완급을 조절하면서 안전하게 인도해 오전 6시 40분경 일행 다섯명은 도봉산 정상을 밟았다. 10명에서 절반으로 줄어든 셈이다. 일행은 신선대 계곡 우측을 이용해 우이암을 거쳐 하산했다. 하산길 우이암에서 바라 본 동녘 하늘로는 붉은 해가 '소 혀처럼' 구름 사이로 꿈틀대고 있었다.

▲ 우이암을 내려오다 만난 일출.
ⓒ2004 유성호
우이암 매표소를 빠져나와 우이동에 있는 설렁탕 집에 들어설 시각이 오전 8시 40분. 같은 산악회원이지만 사정이 있어 출발을 함께 하지 못한 장지태 동문이 해장국을 바리바리 싸와서 일행을 격려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코스 곳곳마다 동문들의 따뜻한 격려가 일행들에게는 큰 힘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동안 맏형으로서 후배들을 격려했던 1회 이종기 동문이 산행을 포기하고 만다.

▲ 북한산 위문에서 마지막 봉우리인 백운대를 오르기 전.
ⓒ2004 유성호
일행은 맏형 같은 선배의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오전 9시 30분 우이동을 출발해 도선사 매표소를 통해 불수도북의 마지막 봉우리인 북한산 백운대를 향했다. 마지막 코스가 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일행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해장국을 싸왔던 동문이 합류하면서 일행은 여전히 다섯명이다. 이들은 위문을 통과하고 출발 2시간 만인 11시 50분에 백운대에 올랐다.

그러나 아직 불수도북은 끝나지 않았다. 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올랐기 때문에 내려와야 모든 것이 종료되는 것이다. 잠깐의 감격을 여운으로 남겨둔 채 일행은 구기동 매표소에서 불수도북 산행의 종지부를 찍었다. 이때 시간은 오후 2시 25분. 총 20시간 25분 동안 4개 산, 약 45km 거리를 종주한 것이다. 이날 완주한 최진수, 박종혁, 이정화, 박준갑 동문은 서로 포옹하며 해냈다는 기쁨에 눈물을 글썽거렸다.

▲ 불수도북을 종주한 자랑스러운 얼굴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2004 유성호
이들은 모두 40대 초중반의 나이로 2·30대도 섣불리 감행하지 못하는 불수도북을 해낸 것이다. 마지막 대남문 코스에서는 이향민 동문이 따끈한 쌍화차를 준비해 일행을 반기는 등 힘겨울 땐 언제나 동문들이 함께 한다는 것에 이번 도전자들은 큰 힘을 얻었다.

불수도북이 단지 도전의 의미가 아닌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는 인생의 축소판이란 사실을 이들은 가슴에 새기고 하산했을 것이다. 불암, 수락, 도봉, 북한은 그렇게 인간에게 간단없이 베풀기만 하면서 어제나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2004/11/17 오전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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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땅 르포...

분노의 땅 충남…"노 대통령 결단에 달려"
[공주·연기르포]약속한 토지 수용하고 청와대 기능 절반은 옮겨야 납득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유성호(shyoo)기자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재의 위헌판결이 나온 지 20여일이 지난 12일, 이전 예정지던 연기-공주 지역은 겉으로는 평온한 모습이었지만 시민들은 분노를 좀처럼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이전 예정지 중심으로 가까워질수록 격문의 플래카드가 사방에 매달려 있었고 시민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어두웠다.

▲ 공주시내 초입에 내걸린 신행정수도 위헌 판결에 대한 격문.
ⓒ2004 유성호
백제의 고도와 교육 도시로 알려진 공주. 그만큼 시민들의 애향심과 자부심이 크던 이 곳은 헌재 결정 이후 넋이 나간 모습이다. 그동안 문화재 보호 이유로 개발에 제한을 받아서 인근 도시보다 발전이 더딘 이 곳은 이번 결정으로 다잡았던 '공주발전'의 기회를 놓친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 꽁꽁 얼어버린 부동산 경기에 속태우는 한 중개사.
ⓒ2004 유성호

'수도이전 위헌결정 충청인은 분노한다(공주시의회)', '헌재를 탄핵하라(대한전문건설협회 공주시협의회)'와 같은 플래카드가 도시 초입부터 외지인의 눈길을 잡아 끈다. 이 곳에서 20여 년 간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다는 김종일씨는 "신행정수도에 대한 오랜 기대가 한순간에 절망으로 바뀐 상황에서 충청인, 특히 공주시민의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상황을 전한 뒤 "그러나 양반고장이라는 자존심 때문에 격한 반발을 자제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부동산 옷걸이에는 아직도 '균형발전 헛소리다'고 적힌 붉은 머리띠가 매달려 있어 절망이 분노로 폭발할 여지를 남겨 놓은 듯했다. 부동산 내벽에 써붙인 '신행정수도 충남도청 투자의 최적지 공주'라는 선전문구는 이미 빛이 바라고 있었다.

공주에서 조치원 방향으로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도로 주변에는 수없이 많은 플래카드가 주민들의 분노를 대변하고 있다. 초등학교 동창회, 육사동우회, 시의회, 군의회, 심지어 보수단체들까지 가세해 헌재의 위헌 판결을 격렬히 비난하는 한편 신행정수도는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이제는 공염불이 된 한 중개업소의 선전문구.
ⓒ2004 유성호
이전 예정지 핵심지역인 연기군 남면에 들어서자 도시 전체가 분노에 휩싸여, 흡사 폭발물의 뇌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말 한마디 붙이기도 조심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말을 붙일 만한 인적도 찾기 어려웠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외지인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곳이라고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불과 100여m 남짓한 중심 상권에는 조그만 면 소재지에 걸맞지 않게 커다란 간판을 단 부동산 업소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 헌재 위헌결정 때 표정관리를 제대로 못한 한나라당에 대한 충청민의 분노.
ⓒ2004 유성호

▲ 이전 예정지 핵심지역인 연기군 남면은 사방이 온통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2004 유성호

▲ 이전 예정지 주민들은 비대위를 구성해 지속적으로 이전을 촉구한다는 방침이다.
ⓒ2004 유성호
일부는 문을 닫았으며 문을 열어 놓은 곳도 폐업을 고려하고 있을 만큼 반짝했던 부동산 경기가 바닥을 기고 있다. 남면 주민들의 분노는 공주와 같은 주변 도시와는 사뭇 달랐다. 정부의 토지 수용을 앞두고 대토지를 구하기 위해 받은 대출 때문에 하루 아침에 빚더미에 깔렸기 때문이다.

신행정수도지속추진연기군비상대책위원회 임각철씨는 "조사해 본 결과 인근 3개면에서 많게는 8억원에서 적게는 수천만원까지 약 1000여명이 1000억원 가량 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한 뒤 "헌재 판결로 인한 실질적인 피해액은 1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 신행정수도 이전 예정지인 전월산 인근의 항공사진.
ⓒ2004 항공우주연구원
전월산을 중심으로 연기군 남면, 금남면, 동면, 공주시 장기면 일원 약 2160만평 부지에 조성될 계획이었던 신행정 수도가 애꿎은 농민들을 자칫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미호천과 금강이 합류하면서 흐르는 물길은 아무것도 모른 채 도도히 흐르기만 하고 양화리에 있는 650여 년 묵은 은행나무 역시 묵묵히 자리만 지키고 서 있을 뿐 인간 세계에 일어나는 일에는 무관심하다는 표정이다.

▲ 전월산.
ⓒ2004 유성호
터질 듯한 긴장감을 뒤로하고 조치원 방향으로 더 올라가 연기군 전이면을 찾았다. 신행정수도 이전 예정지와 조금씩 멀어지고 있지만 도로변에는 분노를 담은 플래카드가 여전히 '깃발'처럼 나부끼고 있다. 어스름이 내릴 무렵 찾아든 전이면의 중심상권에도 예외 없이 충청민의 분노를 담은 격문이 가로등 밑에서 도시의 분위기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 미호천과 금강 합류지점.
ⓒ2004 유성호
식당에서 만난 한 면민은 "충청도는 멍청도여. 만약 전라도, 경상도만 같았어도 모조리 서울로 올라가 죽자고 한바탕 일을 치를 것인데…"하며 격분을 애써 삭혔다. '충청도 양반'이라는 오랜 지역 정서 때문에 이도 저도 못하고 속만 태우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 면민은 "노대통령이 빨리 뭔가를 내놓아야지 충청 민심을 달랠 수 있다"고 제안한 뒤 "농민들 죽는 꼴 안 보려면 토지수용은 계획대로 하고 청와대 기능의 절반쯤은 내려놓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멍청도'라는 비아냥 속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 온 순박한 촌부들의 가슴을 헤집어 놓은 신행정수도 이전 소동이 어떻게 매듭될지 노대통령의 입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2004/11/13 오전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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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화과자...

"일본 화과자는 우리나라에서 전해진 것"
[인터뷰]한국형 화과자로 일본 역공략하는 수예당 이명준 사장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유성호(shyoo)기자
화과자는 보통 '와가시'라고 해서 일본 과자를 말한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화과자 종주국을 일본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화과자는 우리 나라의 떡 문화가 일본으로 전해져 변형된 것으로 나라마다 쓰이는 재료가 달라져서 독자적인 전통식품인양 소개되는 것이다.

일본을 다녀오는 많은 관광객들 손에는 선물용으로 알록달록한 일본식 화과자가 들려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화과자의 본류를 되찾고자 하는 노력이 우리 나라에도 오래 전부터 시작됐으며 이미 일본을 뛰어 넘고 있다.

▲ 일본 구마모토에서 열린 화과자전람회에 한국에서 유일하게 초청된 수예당의 부스.
ⓒ2004 수예당
국내 대표적인 화과자 업체인 수예당(대표·이명준)은 지난 10월 23·24일 양일간 일본 구마모토에서 열린 과자전람회에 국내 업체로는 유일하게 초청돼 호평을 받았다. 4년 전부터 매해 일본 전역의 화과자 업체들이 참여하는 이 대회에서 수예당은 떡 종류인 모찌를 선보였다.

▲ 국내 판로와 시장 상황을 알아봐 달라며 일본 화과자업체들이 보내온 견본품.
ⓒ2004 유성호
행사에 참가했던 유문선 제품개발과장은 "일본 화과자와 우리 것은 재료부터 다르기 때문에 관심을 끌 수 있었다"며 "특히 건강·장수에 관심이 많은 일본인의 기호에 맞는 무당(無糖) 제품들이 호평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 수예당 이명준 사장.
ⓒ2004 유성호

이명준 사장에 따르면 일본 화과자의 주 구성 재료는 콩을 원료로 한 단맛 일변도의 앙금이다. 반면 우리 나라는 앙금과 함께 우뭇가사리가 원료인 양갱, 찹쌀로 만든 떡을 이용하기 때문에 단맛을 중화시키면서 시각적 아름다움까지 만족시킬 수 있었다.

양보다는 음식의 미적 감각, 질을 중요시하는 일본인들의 기호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내년 수예당은 일본시장을 역공략하기로 중점사업계획을 잡았다. 이 사장의 말에 따르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역시 자국의 화과자를 국내에 진입시키기 위해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수예당에는 한달에 서너 차례 대형 국제우편물 박스가 도착한다. 국내 반응과 판로를 알아 봐 달라는 부탁과 함께 일본 각지의 화과자 견본품이 가득 들어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수예당의 일본 진출 결정은 국내 동종업체의 수출 길을 개척한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수예당은 일본 수출품의 컨셉트는 가장 한국적이면서 일본 화과자의 미적 감각을 뛰어 넘는 아름다움에 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건강'을 생각한다는 것.



▲ 화려한 모양의 수예당 화과자. 한국적이면서 미적 감각을 한껏 살렸다.
ⓒ2004 수예당
녹차와 인삼, 호두 등을 이용한 화과자 개발이 이미 완료된 상황이고 국내에서는 유명 백화점과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 사장은 "이번 전람회를 통해 구매 욕구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본 수출 길은 낙관적으로 본다"며 "이와 함께 중국 시장도 타진 중이지만 아직 무르익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일본, 중국 시장에서 승산 있다"
[인터뷰]수예당 이명준 사장

ⓒ유성호
이명준 사장은 화과자는커녕 떡 만드는 법도 몰랐던 출판인이었다. 92년에 농구 잡지인 <덩크>를 창간해 97년까지 경영했다. 그러나 IMF가 터지자 98년 자진 폐간하고 그 동안 일본 출장을 다니면서 자주 맞닥트린 화과자와 인연을 맺었다. 일본 공항 면세점에서 우리 나라 사람들이 너도나도 하나씩 사는 것을 봤기 때문.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는데 잡지사가 어려워지자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관심사가 되더군요." 이 사장은 화과자를 처음 본 순간 우리네 손재주와 재료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겠다 싶어 2년간 연구 끝에 99년 수예당을 설립했다.

양과자 기술자를 수소문해 우리 전통 재료를 이용해 우리식 화과자를 만들어 보자며 의기투합, 매년 20%의 성장을 보이면서 연매출 25억원에 이르고 있다. 내년에는 본격적인 일본 수출로 100%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사장은 "현재 우리 나라에서 최고로 손꼽는 재료를 가지고 신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이 제품은 내수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시장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수예당은 떡종류 30가지, 빵종류 15가지, 사탕(양갱 포함) 15가지 등 총 60여가지의 제품을 생산, 국내 유명 백화점에 직영 코너를 통해 판매하고 있다. 또 인터넷 쇼핑몰에도 대부분 납품되고 있으며 경기 불황을 타지 않는 품목 중 하나로 알려졌다.

이 사장은 "양과자는 2·30대 고객이 주로 찾지만 화과자는 40대 중년층이 주 고객"이라며 "2·30대의 입맛에 맞는 제품 개발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화과자는 단맛이 많기 때문에 잘게 썰어서 녹차와 함께 먹어야 여러 가지 제맛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 사장은 은평구 독거노인들을 위해 노인들이 먹기 좋은 카스텔라 롤케이크 1000개씩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등 선행을 펼치고 있다. / 유성호 기자

2004/11/10 오후 12:13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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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리 갈대밭...

금강 물살을 거슬러 가을을 좇다
고즈넉한 장항·서천·한산·강경의 추색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유성호(shyoo)기자
한강, 낙동강, 영산강과 함께 우리 나라 4대 강의 하나인 금강에 아직 철새는 날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 금강의 볼거리가 철새만 있더냐. 물길 따라 흘러가면 보이는 것이 모두 볼거리요, 시장기를 채우는 것이 모두 토속 먹을거리인 것을.

오후 늦게 서울을 떠나 금강 하구언의 끝인 충청남도 장항에 도착할 무렵 해는 완전히 져서 사방이 어둡다. 약속한 지인과 어렵사리 만나 안내 받은 곳은 한 횟집. 바다에 인접한 도시라 횟감이 풍부하고 밑반찬이 거개가 해물이다. 오징어, 산낙지, 꽃게, 털게, 장어, 가리비, 키조개, 피조개, 석화, 새우, 전복 등 셀 수 없는 해물이 상다리를 위협(?)한다.

▲ 장항 한 횟집의 상차림. 온갖 해물이 그득하다.
ⓒ2004 유성호
넓은 하구언을 채우고 있는 바닷물은 조명에 번들거리고 건너 전라북도 군산항의 불빛이 어둠을 사르고 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도계(道界)를 이루면서 마주보고 있는 도시는 장항과 군산이 유일하다. 지정학적 위치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장항은 군산보다 발전 속도가 더디고 인구도 늘지 않는다. 그래서 군산에 대한 이곳 주민들의 피해의식은 남다르다는 지인의 설명에 술잔이 빠르게 비워진다.

서천 한 모텔에 짐을 풀고 잠을 청했다. 아침에 나와서 보니 고만고만한 건물 사이에 휑하니 서 있는 7층 서양식 모텔 건물이 오히려 볼썽사납다. 황태해장국과 된장찌개로 속을 달래고 간밤에 주인을 잘못 만나 고장이 난 안경을 고치려 안경점을 찾았다. 서천에 하나밖에 없다는 안경점 주인은 아픈 다리에 쑥 뜸을 뜨다말고 나와 정성스레 고쳐주고는 그냥 가란다. 이런 저런 따뜻한 인심이 한껏 느껴지는 곳이다.

▲ 가을걷이가 끝난 들녁.
ⓒ2004 유성호
아쉽지만 서천에 있어 또 하나의 볼거리인 마량포구와 후덕한 인심을 뒤로 하고 금강을 거슬러 길을 잡는다. 인적 없는 도로는 농촌의 한갓진 정취보다는 을씨년스러움으로 차창을 스친다.

도로 양쪽으로는 가을걷이가 끝난 논이 펼쳐지고 논 위로는 잘 묶여진 볏단이 듬성듬성 흩어져 있다. 모시의 고장 한산에 접어들자 차는 신성리 갈대밭으로 향했다. 함께 간 지인이 영화 <공동경비구역>의 촬영지였다고 귀띔했다. 그곳에서 극중 북한군 송강호와 남한병사 이병헌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고.

▲ 영화 <공동경비구역>의 촬영지인 한산 신성리 갈대밭.
ⓒ2004 유성호
금강 하구둑 공사로 인해 잡초가 늘고 있다는 마을 부녀회원의 푸념이 있지만 갈대밭은 넓고 그윽했다. 바람결에 따라 저항하지 않고 몸을 맡기면서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한껏 받고 있는 자태가 아름다웠다. 갈대밭 사이사이에 비집고 자리를 잡은 억새의 뽀얀 모습과 형형색색의 코스모스도 가을의 정취를 더했다.

▲ 빽빽히 들어서 있는 갈대밭 안쪽은 새들의 천국이다.
ⓒ2004 유성호
갈대밭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끊임없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날카로운 울음이 새어나오는 갈대밭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이름 모를 새들의 천국이다. 참새보다 작은 잿빛을 가진 작은 새는 이방인의 모습이 궁금했던지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는 이내 갈대를 파고 들어간다.

▲ 갈대밭 옆을 끼고 흐르는 금강. 겨울이면 철새들로 장관을 이룬다.
ⓒ2004 유성호
갈대밭 옆을 유유히 흐르는 금강에는 군데군데 새 무리가 떠간다. 지금은 한가한 모습이지만 초겨울이 되면 이곳은 철새의 낙원이 된다. 날갯짓 소리, 새울음 소리로 시끌벅적해지는 것은 12월 초. 올해도 세계적인 철새축제가 12월1일부터 5일까지 금강 하구언에서 열릴 예정이다.

▲ 경관과 부조화스럽지만 마을 주민들의 정성이 엿보이는 현판이 사잇길 곳곳에 걸려 있다.
ⓒ2004 유성호
갈대밭 사잇길로 걷노라면 중간중간 내걸린 시며 시조, 한시가 적힌 현판을 만날 수 있다. 주변 경관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정성을 들인 주민들의 성의가 엿보인다. 폭 200미터, 길이 1Km, 6만여 평의 땅위에 늘어 선 갈대밭. 3미터나 되는 높은 키 때문에 웬만큼 위에서 내려다봐도 길과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다정한 연인, 행복한 모자, 우정어린 친구들이 끊임없이 들고나는 갈대밭에서 그들은 무슨 추억을 만들까. 사색하기 좋은 길들이 여기 저기 갈래로 나 있고 마지막 나오는 길은 음악이 흐르고 있다. 갈대밭 사이사이에 스피커를 묻어두고 잔잔한 가요를 흘려 보내고 있다.

▲ 음악이 흐르는 길. 스피커가 설치돼 있어 음악을 감상하며 거닐 수 있다.
ⓒ2004 유성호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그것을 말없이 서서 바라보는 갈대의 모습이 주는 고즈넉함 속에 짧아진 가을 햇살이 물결에 부서진다. 갈대밭만 구경하고자 멀리 서울 등지에서 온다면 조금은 실망하리라. 말 그대로 갈대밭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장철이 가까워 오고 있는 지금이라면 한 가지 덤을 옆 동네 강경에서 얻을 수 있다.

▲ 바람에 맞서지 않고 태양의 온기를 한껏 받고 자라는 갈대.
ⓒ2004 유성호
차를 몰아 한산에서 논산방향으로 나올라치면 논산시 강경읍에 있는 젓갈촌이 반긴다. 차를 세우기가 무섭게 달려 나와서 반갑게 맞이하는 젓갈촌 상인들. 김장 생각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필요한 젓갈을 묻는다. 멸치액젓과 황석어젓을 사오라신다. 5kg 멸치액젓이 1만 3000원, 황석어젓은 2만 원을 달라고 한다.

▲ 6만여평 대지에서 자라나는 갈대가 장관을 이룬다.
ⓒ2004 유성호
이들과 함께 반찬으로 먹을 어리굴젓 한 통을 사자 무짠지와 군고구마를 덤으로 넣어 준다. 젓갈 통을 차에다 모두 실어주고 차가 떠날 때까지 배웅하는 그들의 인심은 참 거짓없어 보기 좋았다. 이 곳의 젓갈 축제는 매년 10월에 열리고 올해는 지난 10월 14일부터 18일까지 열렸다고 한다. 축제 기간에는 20% 할인된 가격으로 젓갈을 구입할 수 있다.

서둘러 내려갔던 충남의 끝 장항에서 금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들른 서천, 한산, 강경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 속에서 가을은 아직 포근하고 깊을 뿐이었다. 이 곳에 겨울이 쉬 오지 않을 듯하다.
한산 신성리 찾아가는 길 :
서울-서해안고속도로-서천IC-부여/강경방향 29번국도-한산방향-한산모시관-한신시내-우회전-신성리-갈대밭

신성리를 기점으로 장항방면으로 가면 서천, 장항에 이르고 반대인 논산방면으로 가면 강경읍 젓갈촌을 만날 수 있다.

2004/11/05 오후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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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소회...

가평에서 만든 아름다운 가을 추억
폐교에 똬리 튼 장애인 예술공동체 '아름다움만들기'에 다녀와서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유성호(shyoo)기자
서울에서 기차로 불과 1시간20여분 남짓한 거리인 경기도 가평의 가을은 깊어가고 있었다. 천연염색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소식에 한 달 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다 마침내 지난달 30일 가평행 경춘선 기차에 큰 아이와 몸을 실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오색의 가을색이 파란 하늘 밑에서 사이좋게 옹기종기 무르익어 간다. 서울 시내 지하철보다도 시간이 덜 걸리는 가평. 지척에 두고 있으면서 참 오랜만에 다시 찾는 길이다. 가평행 기차 속에는 모꼬지를 떠나는 학생들의 유쾌한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개곡2리에 있는 장애우 예술공동체 '아름다움 만들기'
ⓒ2004 유성호
가평역에서 유명산, 연인산 방면으로 차로 10분을 달리면 마장, 개곡으로 빠지는 길이 나온다. 그리로 한 5분을 더 달리면 좌측 길가에 조그마한 나무 간판이 오는 이를 반긴다. '아름다움 만들기'란 이름을 가진 이곳에서 지난달 29일부터 31일까지 환경 생명 평화 통일을 주제로 '우리들의 꿈바램전'이라는 작은 전시회가 열렸다.

▲ 쪽, 감, 재, 숯, 황토 등 자연 재료로 염색한 천연염색 제품과 서예, 서각 등을 전시해 놓은 전시실.
ⓒ2004 유성호
전시회는 '아름다움만들기'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 2년만에 지역 주민과 지인들에게 정식으로 개소식을 알리기 위해 더불어 마련된 행사다. 이곳은 지금은 폐교가 된 가평 마장초등학교 개곡분교가 있던 자리로 2002년 이 곳에 똬리를 튼 권영환, 이혜화 부부가 살고 있다.

▲ 가평꽃동네 장애인들이 손수 만든 작품과 그림. '1+1=1'은 이 곳 주인인 권영환 선생의 생활 철학이다.
ⓒ2004 유성호
이곳에서는 쪽, 황토, 감 등 천연재료를 이용한 천연염색은 물론 서예, 두부·떡 만들기, 고구마·감자·콩 구워먹기 등의 체험을 할 수 있다. 앞으로는 메주 만들기 등도 준비하고 있는 자연학습장이다. 30평 규모의 전시장에는 각종 천연염색 소품들이 차 있고 그 사이 사이에 권영환 선생이 쓴 통일시 서예작품이 운치를 더한다.

▲ '안얼어 죽고 살라믄 불씨를 나눠 가슴속에 묻어야제'. 한쪽 팔이 없는 가운데서 역경을 딛고 일어선 권 선생의 서예를 서각한 작품.
ⓒ2004 유성호
권 선생은 오른쪽 팔이 없는 장애인으로서 왼손조차 부자연스러운 지경이지만 서체는 정연하고 유려하다. 어려운 여건을 딛고 일어선 자신감을 같은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전해주고자 그는 장애인 시설인 가평꽃동네와 손잡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 정신지체 장애인이 만든 토우. 투박한 질감 속에서 정겨움이 묻어 난다.
ⓒ2004 유성호
'1+1=1'. 이것은 그의 생존 철학이다. 장애인과 장애인이 만나 서로를 보듬고 세울 때 완전한 하나로 거듭날 수 있다는 철학으로 장애인 재활과 사회 진출을 돕고 있다. 그래서 이날도 전시실 한 켠에 장애인들이 손수 만든 작품과 그림을 전시하는 등 하나됨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 인근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콩으로 두부를 만드는 정경.
ⓒ2004 이동수
한편 이날도 오전에 두부를 한 솥 끓여내서 손님 대접을 하고 있었다. 콩은 이웃 주민들이 행사를 위해 십시일반 추렴한 것으로 무공해 자연산이다. 이웃 주민과 멀리서 찾아 온 체험자들이 함께 어우러져 콩을 삶아 갈고 익혀 두부를 만드는 모습은 정겨움을 뛰어 넘어 도농(都農), 장애·비장애인 공동체 문화에 대해 새삼 느끼게 한다.

▲ 황토염색을 하고 있는 아이들.
ⓒ2004 유성호
게다가 잘 만들어진 두부를 서로의 입에 넣어주는 모습이란. 두부가 만들어질 동안 한 무리의 아이들은 황토가 개어진 양동이 주위에 둘러앉아 하얀 손수건에 황토 물들이기에 여념이 없다.

▲ 떡메를 치는 아이. 아이들 체험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2004 유성호
'조물조물 잼잼'을 백번 정도 하라는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목청을 돋우며 숫자를 세는 아이들의 조물거리는 손과 오물거리는 입을 보면 이곳이 아이들의 천국임을 알 수 있다. 이곳에 아이들을 풀어놓으면 저절로 잘도 논다. 분무기에 인체에 무해한 형형색색의 천연염료를 넣어 걸어 둔 천에 뿌리면서 색깔의 배합을 자기들끼리 익히는가 하면 한편에 마련된 떡메로 떡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 고구마, 감자, 콩 등을 구워 먹을 수 있는 모닥불 체험. 아이들 얼굴이 금세 꼬질해 진다.
ⓒ2004 유성호
그것이 싫증나면 발길을 조금만 옮기면 모닥불 속에 숨어 있는 군고구마와 감자를 꺼내 먹거나 콩을 구워 먹을 수 있다. 여기서 아이들의 얼굴에는 어느새 숯검정 물이 꼬질꼬질하게 든다. 흥이 조금 가라앉을 무렵엔 대학생 자원봉사 사물놀이패가 분위기를 돋운다. 흥에 겨운 할머니들이 어깨춤을 덩실 춘다.

▲ 밤이 이슥해 지면 모닥불로 사람들이 모여 정담을 나눈다.
ⓒ2004 유성호
짧아진 가을 햇살이 어슷하게 기울면 기온이 차츰 떨어진다. 그러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닥불 주위로 모이고 낮에 묻어둔 고구마며 감자를 꺼내 먹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가족끼리 모닥불가에 둘러앉아 쏟아지는 별빛을 보고 정담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 행복이란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이번 행사를 위해 잡은 돼지의 가장 맛있는 부위를 골라 은박지에 싼 다음 숯불에 박아 두면 기름이 쏙 빠진 감칠맛 나는 바비큐가 된다. 여기에 가평의 특산품인 잣막걸리를 한잔씩 걸치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어스름이 주변을 완전히 휘감은 한 밤에야 놀이판이 끝난다. 이 곳 주인은 아이들에게 절대 '하지 마라'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역설적으로 어른들을 가르친다. 자연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어울림, 그리고 장애인들이 완전한 하나로 홀로 설 수 있는 곳, '아름다움 만들기'란 이름의 유래를 깨우친 것은 그곳을 떠날 무렵이었다.

"1+1=1, 그것은 완전한 하나를 말합니다"
아름다움만들기 주인 권영환씨

▲ 권영환 선생
"개곡리 주민들이 손수 일궈낸 작은 배움터였던 개곡분교에 자리잡은 '아름다움만들기'는 장애우 예술공동체입니다. 이번 행사는 훼손되어가는 우리의 자연을 되돌아 보며 생명, 환경, 통일, 평화애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실천을 다짐하자는 뜻으로 준비했지요."

권영환 선생은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시종 활력 넘치는 몸짓과 웃음으로 방문객을 반겼다. 그는 틈틈이 가평꽃동네 희망의 집에 나가 장애인들을 가르친다. 장애는 생활에 조금 불편한 따름이지 살아가는 삶의 장애는 될 수 없다는 것이 지론이다.

그래서 궁리해 낸 것이 체험실습을 통한 장애인 자활 프로그램. 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과 그들이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기 위해 이곳에 자리잡게 됐다.

자신은 서예, 부인은 천연염색 기술을 장애인들에게 전수하고 나서자 많은 전문가들이 이 일에 자원하고 나섰다. 그래서 지금은 '식구'라는 공동체 정신으로 공동 자업을 해나가고 있다. 이웃 주민들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곳 식구들의 꿈은 장애인들이 다양한 체험을 통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프로그램 개발과 체험관 확충. 그래서 인근 부지를 매입해 숙소를 지을 예정이고 다른 지역에는 또 다른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구상 중이다.

권 선생의 서에 작품 중 '얼어죽지 안으려믄 불씨를 나눠 가슴에 묻어야제'는 나누는 삶이 얼마나 절대적인 선인가를 깨우치게 하는 경구인 듯 보였다.
찾아가는 길 : 청량리발 경춘선을 타고 가평역에 하차 후 가평터미널에서 개곡분교 경유 버스를 타면 됩니다. 승용차는 가평군청 앞에서 목동(북면), 명지산 방향으로 4km 올라 간 후 개곡, 마장으로 빠져 3km 지점 길가에 있습니다.
주소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개곡2리 개곡분교(문닫은 학교)
(☏ 031-581-0044/017-350-9652)
홈페이지 : www.ndgallery.co.kr(이메일 : ginnet@hanmail.net)

2004/11/02 오후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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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TV...

<아리랑TV> 법적 지위 확보 나선다
예산 부족으로 국가홍보방송 구실 어려움...법제화 방법에는 노사 의견 달라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유성호(shyoo)기자
24시간 영어 방송으로 전세계 182개국 4200여만명의 시청자에게 국내 소식과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는 <아리랑TV>가 현재의 민법에 규정된 재단법인이 아닌 재단 특별법 제정이나 공사화 등 새로운 법률적 지위 확보를 위해 사활을 걸었다.

<아리랑TV> 노조는 23일 법제화 투쟁방안 토론회를 위한 임시 조합원 총회를 열고 '공사화 특별법' 제정을 통한 법적 지위를 쟁취해 나가기로 잠정 결정했다.

이와는 별도로 사측은 태스크포스팀에서 공사화가 아닌 '재단 특별법' 제정 형태의 방안을 마련해 24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현재 구삼열 사장이 재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측 태스크포스 이석원 팀장은 "법제화에 절차적인 문제를 보완하고 노조와 충분한 대화를 나눈 후에 이 문제를 공론화시킬 방침"이라며 "오는 30일 재검토회의와 10월 1일 노조대표들과 회의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리랑TV> 무엇이 문제인가

<아리랑TV>는 민법에 따라 설립된 국제방송교류재단 산하 민간 방송기관. 민간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일반인들에게는 대외 국책 홍보방송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자리매김 했다.

그러나 재단 자체 기금 700억원의 이자 수입이 IMF 이후 급감하자 5년 전부터 예산 부족에 시달려 왔다. <아리랑TV>는 국고인 문화관광부 지원, 방송위원회의 방송발전기금, 광고·이자수입 등 자체 수익으로 운영하고 있다.

<아리랑TV>의 올 예산은 국고 15억원, 방송발전기금 190억원, 자체 수익 116억원, 재단 기금 42억원 등 모두 363억원. 그러나 올 들어 이들 예산만으로 모자라 모체인 국제방송교류재단의 기금을 깨서 42억원을 충당했지만 이것마저도 부족할 것이란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용재 노조위원장은 "현재 방영되고 있는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제작비용이 35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국가 홍보방송이라는 설립 취지가 무색해질 정도의 예산"이라고 말했다.

회사 내부에서는 예산 부족에 따른 제작비 축소로 10월부터 정상적인 방송 송출이 불가능할 것으로 관측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방송 중단 사태까지는 벌어지지 않아도 현재보다 재방, 삼방 편성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위원장은 "이렇게 될 경우 국가 홍보 방송의 이미지가 떨어지고 광고주의 광고 기피 등으로 인해 수익성 악화로 제작비 부족이라는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구삼열 <아리랑TV> 사장은 "예산은 언제나 모자라고 재방, 삼방을 한 지도 오래 됐다"며 "좋은 클래식 영화도 몇 번이고 보지 않느냐"고 말해 예산 부족이 파행방송으로까지 치닫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구 사장은 "독일의 해외 위성방송인 도이치 벨레의 경우 연간 예산이 4000억원에 달하는 등 국가 홍보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중요하다"며 "<아리랑TV>도 세계 방송을 송출하는 만큼 중요한 국책방송으로 자리매김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사 왜 따로 움직이나

노사 양측은 이 같은 상황을 같이 인식하고 있지만, 법제화 방안에는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노조가 공사화 특별법 제정을, 사측이 재단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상태에서 구 사장이 사측 방안에 대해 재검토를 지시해 놓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 양측의 법제화 방안이 나오면 내부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모은다는 방침이다.

노조측은 공사화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는 것이 현재 민법상 법인격을 공기업 형태로 바꿔 국가 홍보방송의 위상을 높이려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공사화가 되면 현재 재원 외에 수신료를 배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정적 예산 구조를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구삼열 사장은 "가는 목적과 방법이 같으면 자연스럽게 합의점에 도달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경영진의 최우선 목표도 법적 지위 확보에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추석 이후 <아리랑TV>의 법제화 문제는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아리랑TV> 문제 왜 불거졌나

한편 <아리랑TV>는 대외 국가 홍보방송임에도 불구하고 공사가 아닌 민간 재단법인 형태로 설립된 태생적 한계로 인해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부침을 겪으면서 삐꺽거렸다.

1998년 방송개혁위원회는 <한국방송공사(KBS)>에서 사회교육방송과 국제방송을, 국제방송교류재단에서는 <아리랑TV>를 각각 분리해 3개 방송을 국책방송으로 통합, 설립하도록 결정했다. 이는 <아리랑TV>의 법적 지위를 확보해 주는 한편 해외 국가 홍보채널의 중복 투자를 피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실행되지는 않았다.

이와 별도로 지난 2002년 김충일 전 사장이 정범구 전 의원의 소개로 특별법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당시 정 의원이 추진한 특별법은 문광부 산하에 법정기구화를 담은 '재단 특별법'으로써 국회 회기와 관계없이 폐기됐다.

이런 가운데 올 2월에 <아리랑TV> 관련 조항이 신설된 '문화산업진흥기본법'(문산법)이 국회 문광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자 시급히 대응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문산법은 <아리랑TV>를 계속 문광부 산하 법인으로 존속시키는 법안으로 이번 정기국회에 상정이 확실시되고 있는 법안.

<아리랑TV>

<아리랑TV>는 김영삼 정부시절인 1996년 국가 전략인 '세계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민법에 의해 설립된 국제방송교류재단이 97년 2월 국내 케이블 방송을 개국하면서 탄생했다.

이듬해인 98년 문화광광부에 의해 해외홍보방송 운영주체로 지정됐으며 99년 아시아·태평양권역 해외방송을 개국했다.

2000년에는 전 세계로 방송권역을 확대하기 위해 세계방송을 개국했으며 지난해에는 제주권역에 영어FM 방송을 개국해 라디오 방송으로 영역을 넓혔다.

현재 182개국 4200만 시청자를 대상으로 영어로 24시간 방송을 송출하고 있는 해외 국가홍보 방송의 가장 큰 축이다. 정규직 158명, 계약직 70명, 일용직 10명 등 모두 238명이 근무하고 있다.
노조는 문산법이 통과될 경우 <아리랑TV>가 국가 홍보방송이 아니라 문화산업의 한 부분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노조는 10월부터 문산법 반대 투쟁과 아울러 <교육방송(EBS)>이 한국교원방송원법이라는 특별법을 이끌어 내 한국교육방송공사를 설립한 점을 들어 독립적인 특별법 제정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언론노조 '지원 의사' 밝혀

한편 이날 노조 토론회에는 양문석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위원이 나와 "언론노조는 대규모 사업장 중심에서 중소 규모 사업장으로 관심 분야가 옮겨갈 것"이라며 "아리랑TV의 현안을 언론노조의 중심과제로 올리는 것은 여러분의 투쟁 성과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신학림 언론노조위원장은 23일 발행된 <아리랑TV노보> 기고문을 통해 "<아리랑TV>의 위상을 제대로 세울 수 있는 주체는 노동조합 밖에 없다"며 "언론노조가 함께 하겠다"며 지원의사를 밝히는 등 <아리랑TV> 법제화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2004/09/23 오후 6:54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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