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1. 18. 11:12

도깨비를 만난 장애아들...

장애아들과 도깨비의 신나는 만남
백마사단 도깨비부대, 인강학교 장애인 초청 병영체험 행사
유성호 (shyoo)
지난 11월 7일 하늘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뽐내며 구름 한 점 없는 비취색으로 곱게 물들어 있었다. 발달지체 장애아 학교인 서울인강학교의 스카우트 학생들은 아침부터 한껏 들떠 있었다. 인근 군부대의 초청을 받았기 때문. 장애라는 이유로 앞으로 군대 문턱도 밟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학생들은 군부대에 방문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저마다 스카우트 복장을 추스르는 등 약간의 긴장감이 돌았다. 그러나 부대에 도착하자마자 연대장 이하 수많은 장교와 사병들이 도열해 환영을 하자 얼굴은 금새 천연덕스러운 웃음이 새어 나왔다.

백마부대는 서울 초입인 고양군 일대를 방어하는 부대로 학생들은 그 중 도깨비연대를 방문했다. 도깨비연대 연대장인 김현수 대령과 예하 대대장인 허남채 중령은 장병들과 함께 문 앞에서 이들을 반갑게 맞았고 학생들이 내리자 사병들과 일대일로 일촌 관계를 맺어줬다.

▲ 인강학교 학생들의 도깨비 부대 병영체험.
ⓒ2004 유성호

사병들의 얼굴에는 어떤 편견과 거리낌도 없었고 오히려 인솔 선생님들이 무색해질 정도로 학생들을 잘 돌봐줬다고 이날 인솔을 담당한 장인석 선생은 말했다. 이날 방문한 학생은 20명으로 김현수 연대장은 이들을 브리핑룸으로 데리고 들어가 눈높이에 맞게 부대 연혁을 '짧고 굵게' 설명했다.

▲ 사열대에 앉아서 특공무술을 관람하는 학생들.
ⓒ2004 유성호

그리고는 사열대로 이동, 도깨비부대의 자랑인 특공무술을 선보였다. 얼굴을 검게 위장하고 붉은 머리띠를 두른 군인아저씨가 눈을 부릅뜨고 나와 터질 듯한 목소리로 기합을 넣자 아이들은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특공무술단의 화려한 군무와 격파 시범이 이어지자 이내 탄성과 박수, 그리고 어렵게 혀를 틀어가며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2004 유성호

▲ 도깨비부대원들의 특공무술 시범 장면.
ⓒ2004 유성호

도깨비부대 장병들은 특공무술 시범에서 불붙은 링 뛰어 넘기, 기왓장·벽돌 격파 시범 등을 선보였으며 특히 장교들까지 가세해 몸을 사리지 않고 학생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특공무술이 진행되는 동안 연병장 뒤로는 105mm무반동총 등 각종 화기들이 도열하기 시작했고 무술 시범이 끝나자 학생들은 그곳으로 안내됐다.

ⓒ2004 유성호

▲ 각종 화기를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신기해 하는 학생들.
ⓒ2004 유성호

난생 처음 보는 중화기를 손으로 만져보고 운전대에 앉아서 차를 모는 시늉을 해가며 학생들은 마치 군인이라도 된 듯 한껏 들떠 있었다. 일촌으로 맺어진 사병들은 학생들에게 화기의 화력과 용도를 소상히 설명했으며 그럴수록 아이들의 눈빛은 군인처럼 빛났다.

생전 처음 보는 무기 구경에 시간가는 줄 모르던 아이들은 연병장 확성기를 통해 점심시간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리자 아쉬운 발길을 돌려 사병들과 함께 식당으로 들어갔다. 말로만 듣던 군대 '짬밥'을 먹는 시간이다. 사병들의 식사예절 설명을 듣고 아이들은 천천히 그리고 맛있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 일촌을 맺은 형들과 다정히 식사하는 모습.
ⓒ2004 유성호

특히 혼자 식사를 하기 어려운 중증 장애학생의 경우 일촌 사병이 자신의 식사도 거른 채 끝까지 밥을 먹여주는 장면에 인솔 선생님들도 놀라는 한편 감동했다. 사전에 사병들의 교육이 얼마나 철저하게 잘 이뤄졌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라며 교사들은 흐믓해 했다.

▲ 내무반을 들러보는 아이들.
ⓒ2004 유성호

맛난 식사를 한 후 김현수 연대장은 학생들을 군인들의 숙소인 내무반으로 인솔해 가정처럼 포근한 곳이라고 설명하면서 나중에 건강을 되찾아 이곳에 꼭 오라고 격려했다. 도깨비부대는 군 인터넷 시범사업부대로써 도서관에 컴퓨터가 매우 잘 갖춰져 있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일촌 형들과 사진도 찍고 인터넷도 하면서 자꾸 다가오는 귀가 시간을 애써 외면하는 듯 했다.

이별의 시간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날을 위해 몇 일을 준비했을 군부대 장병들과 마지막 인사와 기념사진을 찍고 학생들은 차에 올랐다. 일촌 군인형과의 작별이 못내 아쉬워 눈물이 그렁 매달리 아이, 포옹한 손을 놓지 않으려는 아이, 장병들의 눈도 어느새 벌겋게 충혈이 됐다.

▲ 도깨비부대 김현수 연대장과 함께 기념 촬영.
ⓒ2004 유성호

그러나 용감한 군인의 기상을 잃지 않으려고 애써 웃는 표정으로 아이들을 환송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두 손에 건빵 한 봉지를 작은 선물로 들려 보냈다. 김승진 군은 "군인 아저씨 짱이다! 짱!"이라며 오른손 엄지를 치켜 들며 좋아했다.이날 인솔을 맡았던 장 교사는 "아이들을 데리고 여러 곳을 다녀 봤지만 이렇게 아이들의 눈높이를 이해하고 준비한 곳은 없었다"고 감사한 마음을 나타냈다.

한편 이번 병영체험은 인강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중경산악회의 김진세 총무가 고등학교 동문 선배인 김현수 대령에게 지나가는 말로 부탁한 것을 김 대령이 흔쾌히 받아들여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김 총무는 행사가 치러진 줄조차 몰랐을 정도로 김 대령은 '왼손의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아이들을 기쁘게 했던 것이다.

인강학교 선생님들은 이번 행사에 대해 매우 만족한다며 기회가 된다면 병사들과 함께 하루 정도 숙식을 함께 하면서 야간 경계근무도 서고 군용 트럭도 함께 타는 등의 체험까지 하고 싶다고 말했다.

2004/11/17 오후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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