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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아리랑> 등으로 민족주의 경향이 짙은 작가로 알려진 조정래. 그에게 과연 친일은 어떤 의미이고 어떻게 규정되어 지는가. 이 물음이 어느 날부터 입안에서 모래알 씹히듯 까칠거리더니만 오늘에야 소화된 기쁨으로 몇 자 적는다. 그는 요즘 민족문제연구소 간행 고문으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에 합류하고 있다고 한다. 갑신년 정월 끝자락에 그가 한 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근황을 밝히고 있다.
"요즘 크게 세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 이사, 아름다운재단 100인 발기인, 친일파 사전을 만드는 민족문제연구소 간행 고문인데요, 특히 친일파사전 편찬과 관련해서는 이번에 국회에서 예산을 줄이는 바람에 국민모금을 통해 일주일만에 5억원을 모았어요." "총 30억원을 조달하기 위해 나머지 25억원 국민발기인을 모집해 모을 예정입니다. 편찬은 실무자들이 일을 거의 마쳤지만 (친일파사전을)책으로 만드는 기금을 모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 번 그랬듯이 이번에도 기자는 미당 서정주에 대해 묻는다. 서정주 등 친일파 문인들에 대한 생각은 어떠냐고. 조정래는 주저 없이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말로 타협을 거부한다. 타협의 함의(含意)는 그와 미당과의 관계 때문에 떠오르는 단어다. "용서는 잘못한 자가 속죄할 때 이뤄지는 것이죠. 속죄를 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역사의 비판대 위에 서야 합니다. 역사의 교훈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선배들이 잘못한 모든 것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 돼야지요." 이러한 그의 입장은 오래 전부터 단호했던 터다. 지난 2001년 3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그는 미당과 황순원의 죽음에 대한 소회(所懷) 묻는 말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서정주(미당)는 내 스승이자, 내 아내를 등단시킨 사람이고, 우리 결혼식 주례도 섰다. 하지만 작가적 삶에서 서정주와 황순원은 대조되는 인물이다. 미당이 친일시를 쓸 때, 순원은 붓을 꺾었고, 미당이 전두환을 칭송할 때, 순원은 전두환이 폐간시킨 잡지의 복간을 위해 싸웠다. 미당은 이광수처럼 수십 년에 걸쳐 비판받아 마땅하다. 미당이 내 아버지라도 그건 어쩔 수가 없다. 인간의 3대 발명품은 종교, 정치, 문학(언어)이다. 그 중 문학은 인간을 위해 옳은 일만 하라고 발명한 것이지, 불의와 타협하라고 발명한 게 아니다." 이후 그는 같은 기조로 2002년 발간된 <실천문학> 여름호에 `용서는 반성의 선물'이란 제목의 글에서 미당의 친일문학을 비판했다. 이 글에서 그는 자신에게는 학교 스승이자 부인 김초혜 시인을 등단시킨 은사이며 두 사람 결혼식의 주례였던 미당과의 남다른 인연을 설명한 뒤, 생전에 그로부터 공개적인 사죄의 말을 받아내려 했다가 실패한 일화를 소개했다. 미당은 5공화국 때 전두환을 '단군이래 5000년 만에 만나는 미소'라 칭송했다. 이런 미당에게 제자인 그는 친일 행위와 함께 반성을 권했고 미당은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그는 글 말미를 "미당은 결국 죽을 때까지 진심에서 우러난 사과를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매듭지었어야 할 역사의 짐을 후세에게 떠넘기고 말았다"고 결론 맺는다. 이러한 그의 친일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노라면 속죄도 친일을 굴레를 벗어나기엔 역부족인 듯 하다. 그는 '친일'이라는 유전자는 역사 속에서 변하지 않고 고스란히 유전되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일제 시대에 친일파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항변도 있을 법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그는 논리적 비약을 질책한다. "그런 논리는 바로 친일파들의 자기 변명입니다. 일제 시대 한국에 들어 온 일본인이 80만명인데 이들에게 빌붙은 친일파가 160만 명이에요. 바로 이들 때문에 36년이라는 식민지 지배가 있었던 겁니다. 이들 외에는 친일파가 없어요."
그는 친일인명사전 편찬과 관련해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원래 2006년 발간할 계획이었지만 광복 6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2005년으로 앞당겨 발간해 민족사에 영원히 남을 판결문 구실을 하게 할 것입니다." 이쯤에서 원인 모를 나의 체기(滯氣)는 어느덧 사라졌다. <태백산맥>을 넘어 출렁거리는 <아리랑>을 지나 장대한 <한강>에 다다른 그의 대하소설 속에 녹아 있는 '친일파의 흔적'에 대한 작가의 명쾌한 결말을 기대했던 것이 그동안 체기의 원인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대해 이렇게 잘라 말했다. "하나의 정권이 곧 나라는 아니다.어느 정권이든 그 수명은 시한부이며,그 나름의 한계를 지니게 마련이다. 오로지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며,영원한 것은 민족밖에 없다. 그러므로 민족 성원인 우리는 영원한 민족사를 위해서 우리 스스로 불씨가 되고 원동력이 될 수밖에 없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은 <반민특위>의 재건이며, <민족법정의 개정>이다. 우리 민족의 올바른 역사를 위하여, 우리 민족의 참된 삶을 위하여 그 일에 동참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성스러운 의무이고 권한이다." 친일은 용서도 타협도 될 수 없다는 그의 손끝에서 재단되는 <친일인명사전>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 ||||||||||||
2004/01/30 오후 12: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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