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10. 11:19

[맛있는 동네 산책] 새해 첫 산책 이야기는 강릉·파주 탐방기

지난 연말 강릉과 파주를 연이어 여행할 기회가 생겼다. 반도의 동쪽 끝 강릉과 서쪽 끝자락 파주까지는 193km 떨어져 있지만 도시 여행자에게는 거리가 문제 되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서울서 훨씬 먼 강릉은 당일치기로, 파주는 12일로 다녀온 이야기로 2025년 새해를 열어 본다.

 

당일치기 강릉행은 벤츠 공식 딜러사인 더 클래스 효성이 제공한 스타크루저를 타고 다녀왔다. 스타크루저는 더 클래스 효성이 고객 서비스 일환으로 운영하는 20인승 고급 리무진 버스다. VIP 고객의 이동 편의를 제공하거나 행사에 특별히 투입되는 차량이다. 편안한 좌석과 넓은 공간이 특징으로 좌석이 거의 수평에 가까울 정도로 펴진다.

 

조동범 작가가 꾸린 강릉문화답사단

조동범 작가가 꾸린 당일치기 강릉문화답사단이 허균·허난설헌 생가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필자제공

 

 

시인인 조동범 작가가 차량을 섭외해 문우(文友)들과 강릉문화답사단을 꾸렸다. 사당역에서 오전 9시에 출발한 차량은 세 시간 가까이 달려 평창군 대관령면에 있는 남경식당에 도착했다. 시원한 대형 창을 가진 남경식당은 여름엔 막국수, 겨울엔 꿩 만둣국에 주력하는 곳이다. 막국수와 꿩 만둣국은 강원도 대표 음식이다. 특히 꿩 만둣국과 꿩 칼국수는 평창을 본고장으로 친다.

 

평창은 겨울에 꿩이 많아 사냥이 활발했던 곳으로 이를 활용한 음식 문화가 자리 잡았다. 꿩고기로 낸 육수에 칼국수를 넣어 끓이는 꿩국수와 꿩고기를 넣어 빚은 만두와 함께 끓여내는 꿩 만둣국이 발달했다. 메밀과 꿩의 슴슴한 맛의 조화가 척박한 강원도 겨울 날씨에 훈기를 불어넣었다.

 

이날 답사단과 스타크루저 기사까지 모두 21명 중 대부분이 꿩 만둣국을 주문했고 필자 포함 단 두 명은 마치 얼죽아처럼 살얼음 육수를 기대하고 막국수를 선택했다. 꿩 만둣국에는 만두가 상당량 들어가 여성들은 한 그릇 비우기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필자는 오래전 강릉과 제주에서 꿩 만둣국을 맛본 후 주문을 피하는 메뉴다. 평이한 육수와 만두 맛 때문에 미식의 즐거움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국수를 선택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역시 강원도 특유의 맛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출발 직전까지 점심식사 식당이 정해지지 않아 명주 상회 근처 맛집을 잔뜩 찾아 놓은 수고가 더욱 아쉬운 순간이었다.

 

강릉 옛 지명 명주를 사랑한 이정임 작가

이정임 명주상회 대표가 강릉문화답사단에게 짜이를 끓여준 뒤 강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필자 제공

 

 

서둘러 점심을 먹고 이날 주요 목적지인 명주상회에 도착했다. 명주는 강릉의 옛 지명이다. 이곳은 강릉 태생 이정임 작가가 꾸려 가는 여행자의 쉼터이자 작은 문화 공유공간이다. 아울러 밀크티의 인도 버전인 짜이를 맛볼 수 있는 아담한 카페이기도 하다.

 

이 작가는 지난해 여름 내가 좋아하는 것들, 강릉이란 에세이집을 펴냈다. 그는 책 자기소개에 청년 시절 잠시 강릉을 떠났다 돌아온 이후 줄곧 시민운동가로 살았다고 적고 있다. 평생을 살아온 강릉이지만 지금도 알아 가는 중이라며 자신 안에 담긴 강릉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답사단 20명이 들어서자 명주상회는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작고 아담한 공간을 짜이의 달근한 향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벽에는 인도에서 가져온 여러 소품과 짜이와 작가의 책 등이 어우러져 이국적 분위기를 더했다. 이 작가가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한 잔씩 따라서 답사단을 대접했고 조동범 작가 진행으로 작은 북토크가 진행됐다.

 

각종 향신료의 이국적 맛 짜이

명주상회의 인도식 밀크티 짜이에 사용되는 각종 향신료와 명주상회 내부 풍경. 필자 제공

 

이 작가는 명주상회를 기반으로 짜이 마니아층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짜이는 인도 국민 차(). 한마디로 요약하면 향신료를 첨가한 밀크티다. 짜이는 힌디어로 차를 의미한다. 특히 마살라 짜이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홍차·우유·설탕·각종 향신료가 주재료다. 인도에서 짜이는 하루 여러 번 마시는 일상 음료다. 각 지역과 집마다 독특한 조리법과 향신료 조합이 있는 것이 우리네 다방 커피와 비슷하다. 인도 길거리 노점에서는 짜이왈라라고 불리는 차 판매원이 따뜻한 짜이를 종이컵이나 작은 유리잔에 담아 판매한다.

 

명주상회 짜이는 홍차·카다멈·클로브·시나몬·진저·블랙페퍼·스투아니스·넛맥·베이리프·히말라야솔트 등의 조합으로 맛을 낸다. 반은 알고 반은 모르는 향신료 이름이다. 인도는 역시 향신료의 나라답다. 짜이는 아주 달디 단 밀크티에 다양한 향신료 맛이 혀의 이곳저곳을 자극하는 맛이다. 겨울철 몸을 데우기에 딱 좋은 차다. 여름엔 아이스로 마시면 더위를 식힐 수 있을 것이니 아메리카노 커피와 다를 바 없다.

 

일정상 명주상회의 짧은 북토크를 마치고 이 작가의 안내로 허난설헌 생가와 경포호를 둘러봤고 강문해변을 자유롭게 산책했다. 경포대·오죽헌·소금강·정동진·선교장·대관령 자연 휴양림·강릉단오제·경포도립공원이 강릉 8경이라는데 지역이 너무 넓어 두어 곳 보기도 버거울 정도다. 그나마 제1경 경포대를 멀리서나마 본 것을 위안 삼는다. 강문해변에 있는 분식점 강문분식에서 막걸리에 곁들인 튀김의 기름지고 고소한 여운이 입안에 오래 남는다.

 

국립민속박물관파주관 인근 맛집

국립민속박물관파주관 근처에 있는 황금 코다리 헤이리점의 코다리 시래기 조림 한상. 필자 제공

 

필자는 서울로 돌아와 잠시 눈을 붙이고 다음 날 파주로 도보 문화답사를 떠났다. 이번엔 꼭 둘러보고 싶었던 곳을 찾아 개인적으로 움직였다. 합정역에서 2200번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리면 파주 맛고을 입구에 다다른다. 이곳은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33일까지 수장고 산책·문자 한 바퀴가 전시되고 있다. 개방형 수장고를 활용한 시원한 전시 기법으로 보다 많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도자기·단지·금박함·나전, 등잔·저울추 등 각종 생활용품 속에 담겨 있는 문자의 재발견을 소구하고 있다. 박물관 맞은편 전통 건축 부재 보존센터에는 운현궁에 있었던 아재당을 복원시켜 놓아서 볼 만하다.

 

점심시간이 됐기에 파주 맛고을 초입에 있는 코다리 요리 전문점 황금 코다리 헤이리점으로 향했다. 산등성 끝 둔덕에 현대식 한옥을 지었는데 향()이 좋아 정오 햇살이 실내로 한껏 들이닥친다. 특이하게 흘러간 60·70년대 올드 팝송이 잔잔히 깔려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손님 연령대가 음악과 딱 맞아떨어진다.

 

코다리 작은 접시는 맛과 양을 보니 가성비가 좋다. 게다가 막걸리 첫 주전자는 공짜로 제공되기 때문에 반주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매력적인 서비스다. 밥과 국수를 선택할 수 있는데 각각 하나씩 주문해서 다양하게 맛보길 추천한다.

 

비빔국수에 싸 먹는 숯불닭갈비

고구려최강달인의집 간장과 양념숯불닭갈비 .  필자 제공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파주 장단콩 웰빙마을과 검단사를 거쳐 파주프리미엄아울렛까지 둘러본 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장준하 공원과 묘소를 들렀다. 도보 답사의 한계상 멀리는 못 가지만 아기자기하게 둘러볼 수 있어서 좋다. 이번 파주 여정도 그런 면에서 좋은 코스였다. 숙소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저녁 식사를 위해 생활의 달인 2관왕으로 숯불닭갈비와 비빔국수를 전문으로 하는 고구려최강달인의집을 찾았다.

 

간장과 고추장 양념 닭갈비를 각 1인분씩 시켜서 맛을 본 후 두 번째 주문은 간장 닭갈비로 의견 일치를 봤다. 사장님은 비빔국수에 싸 먹어야 제맛이라고 권했지만 고기로 배를 채우겠단 욕심 때문에 그리하지 않고 닭갈비만 연신 먹어댔다.

 

닭이 실해서 배는 불렀지만 아쉬움이 남는 맛이다. 역시 권유대로 국수에 싸서 육쌈을 했어야 맞다. 또 닭은 뼈를 발라내고 네 조각이 나오도록 큼지막하게 잘라야 제맛이다. 이 또한 사장님이 강조한 맛있게 먹는 방법 중 하나다.

 

서비스로 내준 더덕을 구워 숯불 향이 은근하게 밴 닭갈비와 함께 입안에 넣으면 식감과 식향의 변주가 좋다. 사장님의 구수한 입담과 적극적인 서비스가 인상적인 곳이다. 달인이란 자부심이 음식에 묻어난다. 닭갈비가 고소하고 노릇하게 숯불에 구워지면서 파주의 밤도 덩달아 깊어 갔다. 2025년 올해도 다양한 지역 문화+맛집답사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갈 예정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