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4. 27. 22:03

낙산사 화재 이후....

춘래불사춘...낙산사의 스산한 봄 풍경
경내 전체에 화마 상처…석가탄신일 준비로 분주
유성호(shyoo)기자
지난 4월 5일 양양 지역 산불로 인해 화마의 상처를 입은 낙산사. 그로부터 보름 남짓 지난 23일, 낙산사로 가는 길목에는 화마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불길에 그을린 거무튀튀한 외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음식점이며 누렇게 변색한 작은 동산들. 춘래불사춘이 절로 떠오른다.

▲ 화마가 스친 송림. 푸름을 잃었다.
ⓒ2005 유성호
낙산유스호스텔에서 낙산사 입구인 홍예문까지 길옆으로 펼쳐진 송림은 더 이상 푸르지 않았다. 훤칠한 키를 자랑하며 푸른 머리를 이고 섰던 소나무들의 몸통에는 화마가 유린한 깊고 짙은 상처가 검게 나 있다. 사철 푸르던 솔잎도 달아오르는 불길에 죄다 누렇게 익었다.

▲ 홍예문 전경. 문루가 소실됐다.
ⓒ2005 유성호
사방에 무겁게 깔려 있던 탄내는 바람에 휩쓸려 오가는 이의 코끝을 자극했다. 홍예문 위에 서 있던 문루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1962년 만들어진 것이니 4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셈이다. 홍예문은 조선조 세조 12년(1466년)에 임금의 방문 기념으로 강원도 26개 고을을 상징하는 화강석 26개를 이용해 만들었다.

▲ 경내 곳곳에 쌓여 있는 화재 잔해들.
ⓒ2005 유성호
홍예문 석축 곳곳에 불에 그슬린 자국이 산불 예방의 만시지탄을 실감케 한다. 낙산사의 내외를 구분하는 홍예문에는 주지 명의로 화재 진압에 애써준 군관민에 대한 감사인사를 담은 플래카드가 걸려있고 주말을 맞아 많은 불자들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 석탄일 연등을 달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2005 유성호
경내로 들어서자 석가탄신일 준비가 한창이다. 오방색 연등이 꼬리를 물고 경내로 향했다. 자원봉사를 나온 포스코 직원들이 빠른 손놀림으로 연등을 달고 있었다. 한쪽에는 새까맣게 타버린 건물 잔해가 뒤엉켜 있고 눈앞에 들어 온 낙산사는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 석탄일 준비와 복구작업이 함게 이뤄지고 있는 경내 전경.
ⓒ2005 유성호
복구가 한창 진행되어야 할 시점에 석탄일이 겹치자 경내는 더욱 혼잡하고 어수선해 보였다. 그러나 석탄일이야말로 불교 최대의 축제일이니 만큼 주변 환경이 어찌됐건 정성스럽게 준비되고 있었다. 스님들과 불자들 모두의 마음은 그저 죄스럽고 부처의 달초(撻楚)를 받고 싶을 뿐일 것이다.

▲ 수려했던 담장이 깨지고 부서졌다.
ⓒ2005 유성호
경내는 온전한 곳이 없었다. 흡사 전쟁 통에 폭격을 맞은 듯 처참히 깨져 있었다. 담장은 허물어지면서 황토 맨살을 드러냈고 불자들이 공양한 기와는 조각나 신음했다. 황토와 기와를 켜켜이 쌓아 올린 사이에 둥근 돌을 박아 일월성신의 우주를 그린 수려했던 낙산사 담장은 이제 더 이상 없다.

▲ 재건을 위해 공양중인 불자들.
ⓒ2005 유성호
사찰은 새롭게 복원하는 건물과 담장을 위해 기와 공양을 받고 있었다. 많은 불자들이 앞 다퉈 사찰의 재건과 안녕을 갈구하며 기와 한 장 한 장에 소원을 적어 내려갔다. 사찰의 안위와 성공적인 재건을 기리는 불자의 마음이 낙산사의 밝은 내일을 약속하는 모습이다.

▲ 낙산사 동종은 녹아내리고 비석만 남았다.
ⓒ2005 유성호
불길은 경내 곳곳을 온전히 훑고 지나간 듯 했다. 멀쩡한 도량은 찾기 힘들었다. 본채와 멀리 떨어진 홍련암이나 해수관음상 정도만 성할 뿐 왜만한 요사채와 법당은 불길에 다치거나 완전히 소실됐다. 경내 수목들 역시 온전하지 못했다. 한창 벙글어야 할 화초목은 침묵하고 있고 새순을 틔우다만 벚꽃나무는 검푸른 진물을 눈물인양 흘리고 죽어갔다.

▲ 푸른 하늘, 검은 나무, 황토 담장, 붉은 연등.
ⓒ2005 유성호

경내의 전체적인 색깔은 먹빛과 황토색. 그나마 오방색 연등이 없었다면 멀리 쪽빛 바다 빛깔에 대비돼 처연한 봄날 풍경을 자아냈을 것이다. 다행이 경내에 두 그루의 벚꽃나무가 망울을 틔워 불자들의 마음을 다독였다. 지나는 불자들은 벙근 벚꽃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과 함께 재건의 희망을 새기는 듯했다.

눈 밑으로 홍련암이 온전한 모습으로 불자들을 반겼다. 홍련암을 보다가 눈을 들면 멀리 송림 위로 해수관음상의 상반신이 눈에 들어온다. 관음보살의 은은한 눈빛으로 묵묵히 동해를 응시하는 해수관음상은 이번 화마를 등으로 막아 관음전을 지켰다.

주지인 정념스님은 "모든 허물과 책임의 아픔을 부처님께 참회하면서도 먼 옛날 의상스님의 원력처럼, 역대조사스님의 발원처럼 이웃과 중생의 의지처로 거듭날 수 있음을 슬픔 속에서도 확신했다"며 낙산사 복원 의지를 밝혔다.

정념스님은 또 "낙산사가 국민의 도량이며 모든 불자의 기도처로 거듭날 것을 일체지불 보살님께 발원하며 고통을 나누어주신 사부대중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면서 "다시 한 번 참화의 모든 업보 종도와 국민여러분에게 사죄 올리면서 도량복구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 성공적인 복원으로 낙산사의 밝은 내일을 기원한다.
ⓒ2005 유성호
경내를 둘러보고 돌아가는 길섶으로 들어올 때 보지 못한 선홍빛 꽃무리가 타고남은 잔디 틈에서 꽃망울을 빠끔히 내민다. 어두운 홍예문 밖으로는 봄 햇살이 투명하게 쏟아진다. 어느 불자가 기와공양을 하면서 쓴 글귀가 햇살 속에 도드라진다. '부처님 힘내세요'
2005/04/25 오전 1:55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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