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21. 12:41

[맛있는 동네 산책] 웃대에 숨은 색다른 건축 이야기와 맛있는 미식 경험

일본 가정식 누하의 숲라멘 성지 칸다소바

튀니지 현지식 꾸스꾸스할랄푸드 이프타르

한국의 가우디차운기 건축 작품 볼 수 있어

 

웃대 또는 우대는 경복궁 서쪽과 인왕산 동쪽 기슭 사이에 위치한 지역을 가리킨다. 정확히 말하면 청계천 광통교를 기준 윗 지역으로 청운동, 신교동, 옥인동, 통인동, 누상동, 누하동, 체부동, 필운동 지역이다.

 

웃대는 윗동네라는 의미를 가진 우리말이다. 한자로는 상촌(上村)으로 쓴다. 요즘은 흔히 서촌(西村)으로 많이 불린다. 경복궁 동쪽 북촌(北村)의 반대쪽 개념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신조어다. 상업과 관광 측면에서의 공간 개념이 들어 있다,

 

먼저 개발된 북촌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불거지자 대안지로 발달했다. 용산 경리단길 이후 해방촌이 개발된 현상과 같은 맥락이다.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이라 유명세를 형성하는 데 한몫했다. 대표적으로 과거 금천교시장이라는 조그만 골목시장이 세종음식문화거리로 이름을 바꾸자 서울의 대표적 먹자골목이 된 것이다.

 

조선후기 위항문학 꽃 피운 웃대 송석원

북악산과 인왕산으로 에워싸인 경복궁과 서촌 풍경 .  이 지역은 웃대 ( 우대 ,  上村 ),  장동 ,  북리 등으로 불렸다 . [ 사진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2014)]

 

 

웃대는 조선시대 대표적 위항(委巷)문학이 활발했던 곳이다. 위항은 마을 가운데 있는 작은 길이란 뜻이다. 이는 사대부, 양반 같은 문벌세력이 사는 대로변이 아닌 서민 대중이 모여 사는 골목 안 마을을 뜻한다. 이들을 위항인이라고 부르고 이들이 모여 시사(詩社)를 통해 한시를 나누던 것을 위항문학이라고 한다.

 

위항인은 중인, 서얼, 아전 등이 주축이 됐다. 중인은 의관, 역관을 중심으로 한 상급 기술관과 율관, 산관, 화원 중심의 하급 기술관, 악생, 악공 등의 잡직 기술관 등을 말한다. 아전은 서리와 향리, 서얼은 양첩과 천첩의 자식인 서자와 얼자다. 이들은 조선 후기 직업 특수성을 이용한 경제적 지위 향상과 문장력을 증진시켜 사회적으로 급격히 부상하는 신분집단이 됐다.

 

위항인들 주축으로 17세기부터 침류대시사, 낙하시사 등이 발달했다. 본격적인 시사가 열린 것은 18세기 중엽 송석원시사 때부터다. 송석원은 위항문학의 맹주이자 평민시인 천수경의 호인 동시에 시사가 열리는 터의 이름이기도 했다.

 

송석원은 웃대 인왕산 계곡 중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곳이다.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진 절경으로 유명했다. 정조 때 천수경이 이곳에 살면서 송석원이라 불렀다. 송석원 터는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 친일파 윤덕영의 별장인 벽수산장이 됐다.

 

위항문학과 벽수산장이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현대인들의 발걸음은 끊이질 않는다. 최근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을 쓴 조동범 작가와 함께 하는 우리가 잘 모르는 서촌 이야기를 주제로 웃대 일대를 누볐다. 공교롭게도 문화예술과 건축물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보는 답사였다.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인 경복궁역에서 만나 홍건익 가옥, 청전 이상범 가옥, 박노수 미술관, 윤동주 하숙집터, 수성동 계곡기린교, 윤 씨 가옥, 선희궁터(국립서울농학교), 건축가 차운기의 ‘12고칠재’. 상촌재, 윤덕영 벽수산장 흔적 등을 들러봤다.

 

제자 원희연이 완성한 작품 ‘12

종로구 신교동 골목에 있는 건축물 12주. 원희연이 건축했지만 차운기의 유작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사진=조동범]

 

이들 중 대부분은 기존 답사를 통해 무수히 다녔고 접했던 스토리이고 건축물이었다. 그런데 국립서울농학교 건너편 골목에 있는 ‘12’(종로구 신교동 12)는 건축가 고 차운기와 그의 제자 원희연의 작품이다. 12()란 이름은 건물 입구 바닥에 박힌 열두 개의 장대석에서 나왔다. 이전 건물인 한옥을 해체하면서 나온 부재를 활용한 것이다. 이처럼 차운기의 작품은 재료의 재활용에 방점이 있다.

 

그동안 외관만 훑어봤던 것을 하루는 운 좋게 건물에 근무하는 분의 배려로 내부를 볼 수 있었다. 비정형 구조의 대지 위에 펼쳐진 몽환적인 외관과 함께 눈앞에 펼쳐진 내부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각보다 선을 중시한 외형과 인테리어를 접하는 순간 르 꼬르비지에와 김중업이 떠올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차운기는 김중업 건축사무소에 근무한 경력이 있었다.

 

대지가 부채꼴 모양이라서 효율적 공간을 빼기가 어려웠지만 곡선 입면을 중첩되는 방식으로 처리해 볼륨감을 높였다. 특히 노출 콘크리트와 표면에 박혀 있는 아크릴 봉이 특이했다. 콘크리트를 타설 할 때 투명 아크릴 봉을 심어 낮엔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밤엔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조명을 밖으로 내보낸다.

 

자연에 가까웠으면 하는 바람으로 건축

비정형의 아름다운 곡선미를 보여주는 12주의 내부.[사진=건축문화]

 

내부는 창호를 비롯해 바닥, , 칸막이, 천장, 붙박이장 등을 대부분 손으로 직접 깎고, 다듬어서 만들었다. 창호의 경우 똑같이 생긴 것이 하나도 없다. 내부 천장 부분은 한옥 서까래처럼 만들어 이전에 이 자리에 있던 한옥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차운기는 폐자재와 재활용 자재를 활용한 건축가로 유명하다. 택형이네 집, 여수 재건교회, 우혁이네 집, 평창동 다가구주택, 고칠재 등 몇 안 되는 작품을 남긴 채 2001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자유분방한 건축기법으로 그는 한국의 가우디라는 별칭도 있다. 12주 인근에 고칠재(자하문로2126)는 외관이 그나마 반듯하다. 그래서 실내가 더더욱 궁금한 건물이지만 사생활공간이라서 접근이 어려운 아쉬움이 있다.

 

차운기는 생전에 나의 건축 작업이 구태여 재생이라든지 재활용의 의미보단 내가 만드는 건축이 조금은 자연에 가까웠으면 하고 마음의 고향처럼 사는 이, 보는 이가 편해졌으면 좋겠다이에 걸맞은 소재라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응용하고 있다고 건축관을 피력했다.

 

웃대에서 차운기란 뜻밖의 건축가를 만났다. 조동범 작가의 30년 단골 대학로 와인바 나무요일인테리어가 차운기 작품이라는 설명을 들으니 그의 세계관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갔다. 차운기는 말로는 설명하기 쉽지 않은 건축가란 결론이다. 그의 작품은 직관이 정답이다.

 

웃대 일대에는 외식산업이 잘 발달해 있다. 허름했던 옛 금천교시장이 세종음식문화거리로 이름을 바꿔달면서 뜨거운 곳이 됐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 대표적인 젠트리피케이션 사건인 궁중족발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건물주는 2016년 건물을 매입한 뒤 족발가게 보증금을 3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인상했다. 월세도 297만 원에서 1200만 원으로 올리면서 갈등을 빚었다. 명도소송과 강제집행 과정에서 임차인의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가 났다. 분노한 임차인은 건물주를 차로 위협하고 망치를 휘두르는 등 형사사건으로 비화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 사건이다.

 

아기자기 실력 있는 일식당 많은 서촌

누하의 숲 대표 메뉴인 치킨남방정식과 칸다소바의 이에게라멘 ,  사토루더서촌의 숙성 사시미 .  나머지 하나는 튀니지 요리 꾸스꾸스다 .

 

 

웃대 서촌은 이 골목 말고도 한 곳이 제법 있다. 청전 이상범 가옥 골목 어귀에 있는 일식당 누하의 숲’(ヌハの)은 일본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젊은 식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브레이크 타임이 없고 저녁 시간대 운영을 하지 않는다. 화요일이 휴무인 것이 특징.

 

수성동계곡 가는 골목 초입에 있는 칸다소바는 일본 라멘전문점 와이즈의 제면 기술과 마제소바, 이에게라멘(돈코츠소유라멘) 레시피를 직접 전수받은 정통파 일본라멘 전문점을 표방하고 있다. 이에게라멘은 돈코츠라멘과 소유라멘이 결합한 형태로 진한 수프, 굵은 면, 시금치와 김 토핑이 특징이다. 근처에 비슷한 메뉴 식당이 몇 곳 있었지만 칸다소바에 밀려 간판을 모두 내렸다는 후문이다.

 

사토루더서촌은 숙성 사시미 전문 캐주얼 일식당이다. 숙성 사시미는 완도산 광어, 도미, 생연어, 참다랑어 속살뱃살, 전복, 동해 단새우, 가리비 관자 등과 사이드 메뉴인 튀김, 야채 등으로 구성된다. 사이드를 뺀 사시미만 있는 메뉴도 있다. 초밥, 지라시 스시, 후토마끼, 마끼를 맛볼 수 있으며 매달 이달의 특선 사시미를 올려 메뉴의 변화를 주는 곳이다.

 

해외 관광객 위한 이색 식당도 생겨나

세종음식문화거리에 있는 할랄음식전문 이프타르는 무슬림을 위한 기도실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꾸스꾸스는 튀니지인이 경영하는 튀니지안 식당이다. 현지 맛을 재현하기 위해 재료를 튀니지에서 공수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 있는 튀니지인들이 그리운 할머니 손맛이라고 인정할 정도로 손맛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상호명이면서 대표메뉴인 꾸스꾸스 (CousCous)는 좁쌀 파스타에 양고기, 닭고기, 계란 등을 넣어 조리한 전통 요리다. 브릭은 바삭한 튀김 만두 속에 달걀이 들어간다. 차는 잣과 민트로 만든다.

 

이프타르’(iftar)는 이슬람권 관광객을 위한 할랄음식점이다. 기도를 자주하는 이슬람교인을 위해 식당 내에 기도실까지 갖췄다. 이프타르는 라마단 기간 중 낮 시간 금식을 마치고 일몰 직후에 하는 첫 번째 식사다. 이 식당은 한국무슬림연맹 할랄 인증을 받은 식재료만 사용한다. 내부는 고즈넉한 미음자형 한옥으로 공간이 꽤 넓다. 메뉴는 비빔밥, 찌개류 같은 한식과 나시고랭 같은 말레이음식 모두 취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