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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네 언제라도 지금이라도 나는 벗이여 사십 년이란 내 삶의 뒤안길을 머뭇거리며 돌아보지 않고 의연하게 먼 산을 바라보며 저승의 사자를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네 그것이 어떤 이름의 죽음일지라도 상관없이 왜냐하면 삶과 한가지로 죽음도 스스로 기꺼이 맞이해야 할 설이고 추석이고 축제이기 때문이네 마지못해 영위되는 삶은 인간의 삶이 아니네 억지로 가는 길은 노예의 길이네 … … <후략> - 죽음에 대하여
그로부터 10년. '조국은 하나다'라고 뼈에 사무치게 외쳐대던 시인의 목소리는 아랑곳없이 조국은 세포분열하듯 조각나고 있다.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정치·경제는 울화가 치밀 정도로 답보하고 있다. 시인은 노래한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 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하고 가자 … … <후략> - 함께 가자 우리 이 이 길을 시인은 생애를 일관되게 천민 자본주의와 군사독재 권력을 비판하면서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사회 구성체를 바라봤다. 1973년 제4공화국이 유신을 발표하자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내용의 지하신문 <함성>, <고발>을 만들다 적발돼 고난의 길로 접어든다. 시인은 8개월간 피비린내 나는 감옥 생활에서 강요된 침묵 때문에 세상을 간결한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 시인은 계간 <창작과 비평>에 '잿더미'라는 시로 조심스럽게 칼을 빼들었다. 그리고 1979년 남민전사건과 관련 체포돼 징역 15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시인은 피를 토하듯 시를 썼다. 때때로 정련(精鍊)되지 않은 거친 활자로 민초를 밟고 서있는 권력의 교만함을 꾸짖었다. 연작 '학살'에서 보여 준 직설적 표현은 그의 일관된 저항정신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의 꾸짖음 때문이었을까. '학살의 원흉'들은 한결같이 법의 심판을 준엄하게 받지 않았는가. 그의 꾸짖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바다 건너 '아메리카' 역시 그의 투박한 칼끝에 뭉개진다. 아침 저녁으로 요즘 밥상 앞에 앉아 있노라면 텔레비전을 대하고 앉아 있노라면 후세인은 천하에 죽일 놈 살릴 놈이고 미군은 평화의 십자군 자유세계의 창과 방패이다 … <중략> … 나는 믿지 않는다 나는 믿을 수 없다 사람들이 전쟁과 평화를 가진 나라 가진 자의 눈으로가 아니라 억압받는 계급의 눈으로 볼 수 있을 때까지는 제국주의와 싸우는 식민지의 모든 민중이 그대의 얼굴에서 가면을 벗기고 위선의 평화를 읽을 수 있을 때까지는 -아메이카여 아메리카여 아메리카여 시집…남겨진 시인의 피와 살 시인은 옥중에서 수많은 시를 남겼다. 한편 한편이 시인의 피며 살점이다. 육신과 영혼을 시와 맞바꾸며 그는 울분과 저항을 시(詩)라는 활자에 담았다. 그가 없는 지금, 영원히 썩지 않을 붉은 색의 '조국은 하나다'(남풍·1988)를 비롯, '진혼가'(연구사·1984), '나의칼 나의피'(인동·1987), '솔직히 말하자'(풀빛시선21·1989), '사상의 거처'(창평시선100·1986), '이 좋은 세상에'(한길사·1992),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창비시선128·1995) 등의 시집이 남아 있다.
노래…청송녹죽 가슴에 꽂히는 시인의 읊조림 시인의 노래는 민중가요 발전에 비옥한 자양분 역할을 했다. 선동성과 서정성을 아우르는 시인의 읊조림은 수많은 노래로 만들어져 회자되고 있으며 그는 노래 속에서 영원히 존재한다. 안치환은 1집 '저 창살에 햇살이'를 시작으로 매 앨범마다 시인의 시를 노래로 만들어 담고 있다. 이런 안치환은 비정규앨범인 6.5집을 통해 시인에 대한 흠모를 한 곳에 모은다. 이른바 헌정앨범을 만든 것이다.
안치환은 앨범 에필로그에서 "어두운 시대 불꽃처럼 살다 가신 김남주 시인께, 음악적 영감과 노래의 바른 길을 깨우쳐 주신 그 분께, 어른의 눈빛이 그렇게 맑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신 그 분께, 이 음반을 바칩니다.(2000. 4)"라고 쓰고 있다. 10주기 사업…부활하라! 시인이여! 시인이 떠난 지 10년. 어느 해보다 남은 자들의 추모행사가 풍성하다. 김남주 기념사업회 5·18 기념재단, 해남기념사업회, 광주전남민예총, 광주전남작가회의, 70동지회와 함께 '민족시인 10주기 추모행사위원회'를 만들어 ▲문학기행(김남주 문학세계를 찾아서) ▲추모문화제 ▲추모식과 시비 순례 등을 준비했다. 13일 문학기행부터 공식적인 추모행사가 시작된다. 문학기행은 서울에서 출발 1박2일 일정으로 시인의 고향집인 전남 해남 생가를 찾고 해남문화회관과 해남유스호스텔에서 시 낭송 시간을 가지면서 시인을 추모한다.
15일 오전 10시에는 시인이 잠든 광주 망월동 5·18국립묘지에서 추모제를 지내고 비엔날레 공원의 시비를 돌아본다. 김남주기념사업회는 10주기 행사를 통해 김남주상 제정, 김남주 문학관 건립 등 기념사업을 확대한다. 추모행사를 통해 시인의 목소리가 이 사회를 밝히는 불이 되었으면 한다.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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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12 오전 3:4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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