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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매년 여름방학이면 텐트를 싸들고 찾았던 곳이 한탄강 유원지다. 고등학교 때는 텐트 하나를 쳐 놓고 연인원 20여 명의 친구들이 보름간을 오가며 청춘을 보냈던 곳이다. 그리고 경기문화재단과 연천문화원에서 전곡리구석기축제를 주관하기 전에 '전곡포럼'이란 민간단체인 대회를 꾸려왔는데, 그곳에서 지인들과 함께 했던 추억이 새록하다. 배기동 교수(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임근우 교수(강원대 미대), 안성길 대표 등이 주축이 된 이 단체(전곡포럼)에서는 매년 5월 전곡리 선사유적지에서 축제를 열어왔다. 몇 주 전부터 그곳을 오가며 설치미술작품을 만들거나 유물전시관을 정비하곤 했다. 10월에는 개천제례를 열기도 했다. 게다가 군 생활도 한탄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기도 전곡에서 하다 보니 인연이 참 많은 곳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뇌리에 깊이 박힌 이름이 <한탄강>이란 제목을 가진 책을 고르게 했다. 책 표지에는 역사와 예술혼, 생명을 품은 큰여울의 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짧은 소개말이 저절로 고개를 끄덕여지게 했다. 문화인류학적으로 한반도 최고의 길지 따지자면 그곳은 한반도 최고의 길지였다. 27만여 년 전 선사시대부터 인류의 조상이 살았던 곳이기 때문에 검증은 이미 오래전에 끝난 셈이다. 한반도의 유일한 화산강이란 또 하나의 이름을 가진 곳, 저자는 한탄강에 있는 분단의 역사와 선사시대 흔적, 예술, 그리고 천혜의 자연환경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기록으로 남겼다. 한탄강(漢灘江)의 한은 '크다'는 뜻의 우리말이다. 탄은 우리말로 여울, 개천이란 뜻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한탄이 아니라 대탄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지금도 한탄강 일부 구간을 대탄강으로 표기한다. 이는 김정호가 지은 <대동지지>를 통해 새롭게 밝혀낸 성과라고 한다.
한탄강은 임진강만큼 분단의 역사를 안고 흐르고 있다. 금강산 아래 장암산 남쪽 기슭에서 발원한 한탄강은 북녘 땅 소망을 담아 철책 밑으로 남한으로 흐른다. 한탄강의 또 다른 이름인 '한이 서린 탄식의 강'은 한국전쟁에서 흘린 동족의 피를 두고 한 말이다. 저자는 클라우제비츠의 말을 인용, '국민과 함께 이기는 전쟁만이 승리한 전쟁'이라며 전쟁의 의미를 묻고 있다. 강물 따라 예술은 흐르는데 댐 건설로 '몸살' 저자의 발길은 분단과 역사를 넘어 예술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한석봉의 일필이 휘날리고 겸재의 붓끝에 기암괴석이 살아서 꿈틀거린다. 한탄강의 지천인 영평천에 있는 수직 단애 창옥병 강가 바위에 새겨진 한석봉의 글씨는 필체의 웅혼함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松筠節操 水月精神(송균절조 수월정신) 1583년 율곡 탄핵문제와 관련해 박순이 부당함을 지적하자 삼사에서 그를 역탄핵해 조정이 시끄럽자 선조가 박순을 헐뜯는 자를 변경으로 유배 보내면서 내린 하교 내용으로 전해진다. 박순은 소나무와 대나무 같은 절개와 지조, 물과 달 같이 깨끗한 선비 정신을 가진 사람이란 뜻이다. 박순이 창복병에 살 때 한석봉이 글을 쓰고 석공 신이가 새긴 글씨인데, 한탄강에는 이 같은 암각문이 수도 없이 많다. 저자의 발길은 어느새 한탄강의 주상절리 수직 단애 앞에 멈춰 서 있다. 화산지형의 특징인 주상절리는 현무암이 물에 의해 침식되면서 바위가 절리면을 따라 덩어리째 떨어져 나가면서 만들어진 것. 단애 아래로 흐르는 강물에는 한반도 고유어종만 천연기념물 어름치를 비롯해 쉬리, 납자루, 돌마자, 꺽지 등 16종이 서식한다. 자연환경이 그만큼 좋다는 의미인 셈이다. 그런 한탄강이 몸살을 앓고 있다고 저자는 안타까워한다. 연천, 파주 일원에 홍수가 나자 정부가 1999년 임진강홍수대책 일환으로 한탄강댐 건설을 발표, 인근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발을 야기한 것이다. 이후 소강상태를 벌이다가 대통령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에서 이에 대한 중재안을 내놓았는데, 건교부와 주민 양측에서 비토됐다. 그러다가 2006년 7월 정부가 한탄강댐을 건설하겠다고 전격 발표, 또다시 주민들의 반발을 가져왔다. 화산지대에 댐을 짓는 것은 위험하다는 과학적 근거를 앞세워 댐 건설의 폐해를 들고 나오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저자가 댐 건설과 관련해 25쪽을 할여해 주민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았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은 정춘근 시인의 <한탄강은 흘러야 한다>로 장식했다. 시의 끝 소절이 인상적이다. (전략) 내가 서있는 자리/다시 아들 딸들이 서서/천년 만년 막힘 없이/이 땅에 푸른 동맥으로/한탄강은 흘러야 한다 있어야 할 곳에 꼭 필요한 사진을 배치함에서 편집 감각을 한껏 살린 책이다.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반쯤 읽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 책은 신문사 정치부 데스크인 저자가 문화부에 있을 때 2005년 기획시리즈 '한반도의 보고 한탄강'을 엮은 것이다. 이 시리즈로 저자는 제22회 최은희여기자상과 같은 해 수원시 문화상(언론부문)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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